전 세계에서 가장 큰 택시업체 우버. 택시를 한 대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 어떤 콘텐츠도 생산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구가하는 알리바바, 어떤 재고도 갖고 있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숙박업체 에어비앤비, 어떤 숙박시설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바로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의 결과물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이 산업 구조의 근간까지 흔들고 있다. 매일경제 더비즈타임스 팀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디지털라이제이션이 산업 환경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그 미래에 대해 분석하기 위해 예브게니 카가네르 스페인 이에세(IESE) 경영대학원 교수, 마이클 웨이드 스웨덴 IMD 경영대학원 교수, AT커니의 토드 휴스비 디지털 실행부 파트너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인해 '현실'과 '가상(디지털)' 세계가 혼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산업 전반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 키워드로는 '민첩성(agility)'을 꼽았다. 이들은 또 CEO들은 디지털 기술 자체가 아닌 디지털 기술에 걸맞은 전략과 리더십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하는 일문일답.
―기존 기업 중 디지털라이제이션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면 어디를 꼽을 수 있을까.
▷휴스비 파트너〓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설립된 회사가 아무래도 디지털라이제이션에 잘 적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우버, 아마존 등의 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들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가장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왔다. 특히 어떤 물리적인 기반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택시업체 우버는 어떤 운송 수단도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숙박업체 에어비앤비도 고정된 숙박시설 없이 운영되고 있다.
―기업들은 디지털라이제이션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웨이드 교수〓모든 산업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민첩성이다. 디지털 사회에 필요한 민첩성은 3가지가 있다. '초민감성(hyperawareness)',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 making)', '재빠른 실행(fast execution)'이다. 초민감성은 강력한 감각적 역량이 된다. 충분한 정보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초민감성으로부터 정보를 인지하고 판단할 수 있는 감각에서 나온다. 빠른 실행은 의사결정을 빠르게 현실에서 이행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세 가지가 바로 앞으로 급격하게 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성공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되겠다.
▷카가네르 교수〓디지털라이제이션은 산업의 '약결합 구조(loosely coupled architectures)'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스마트폰 경우를 보자. 스마트폰의 운영체제는 사람들이 필요한 어떤 앱이든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따라서 누구나 헬스케어 앱을 개발하고 회사를 차릴 수 있다. 혹은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차와 관련된 앱을 개발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어떻게 산업의 경계를 구분지을 수 있겠는가?
기업이 선택해야 할 전략은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우선 자신의 사업과 경쟁구도에 대해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단순히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기반을 뒀다. 하지만 이 전략은 이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대 핵심 수요와 회사가 제공하고자 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어떤 회사와 이해관계가 있는지 등을 충분히 분석해야 한다.
―CEO들은 디지털라이제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어떠한 전략을 마련해야 하나.
▷카가네르 교수〓디지털라이제이션에서 CEO가 주목해야 할 점은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 기술에 따른 기업 전략과 리더십이다. 전략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크게 그리는 것이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를 크게 그린 후 직원들이 이 목표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지 충분히 이해시켜야 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은 비즈니스 변화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회사가 겪고 있는 딜레마는 회사가 어떻게 다시 생각하고, 비즈니스 모델이나 조직을 새로운 세계에 100% 적응시키기 위해 어떻게 다시 이를 재편하느냐는 것이다.
목표를 충분히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디지털이 우리 일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고객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 업무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바뀌는지 직접 보여줘야 한다. CEO가 직접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디지털라이제이션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CEO들은 스타트업 기업을 방문해 그들이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 시각 등을 경험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휴스비 파트너〓리더들은 디지털라이제이션과 관련된 주제를 이끌어 나가고 분석하며 이에 따른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또한 CEO들은 디지털 기술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해 명확이 이해해야 한다.
▷웨이드 교수〓CEO는 디지털 기술 자체의 변화보다는 디지털 기술로 인한 비즈니스의 변화에 더 초점을 둬야 한다. 기술은 계속 변하지만 회사도 이에 대응해 성공적으로 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프로세스, 시스템, 인력, 전략 등 총체적인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에 대한 말은 많지만 정의는 모호하다. 명확한 정의를 내려달라.
▷예브게니 카가네르 이에세(IESE) 경영대학원 교수〓디지털라이제이션은 바로 디지털 기술로 인해 우리의 일상과 산업 전반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디지털라이제이션이 가속화할수록 현실과 디지털 세계 간 장벽이 점점 더 허물어지게 된다. 우버 택시의 경우를 봐라. 우버를 이용했을 때 우리가 물리적 경험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디지털 가상 경험이라고 말해야 될까? 두 가지 모두다. 우리의 경험은 물리적인 경험부터 디지털 가상 경험까지 확장·혼합되고 있다.
▷토드 휴스비 AT커니 디지털 실행부 파트너〓디지털라이제이션은 소비자, 연계성, 콘텐츠의 융합이라고 본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은 새로운 기술에 의해 촉발되고 비즈니스 모델, 혁신 과정 그리고 사회적 행동이 어떻게 변화돼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다.
―디지털 시대에 기업에 맞는 인재상은 무엇인가? 기업은 디지털 시대에 어떤 인재를 채용해야 하고 어떻게 인재를 교육 및 관리해야 하나.
▷카가네르 교수〓디지털 시대는 경영진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 사고방식 자체의 변화를 요구한다. 경영진은 디지털 변화에 대한 수준 높은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는 직원들은 어떻게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어떻게 직원들이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
▷카가네르 교수〓우선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심어줘야 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이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 수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면, 우리는 직원들에게 소비자 수요를 인지하는 능력,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구축하는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아이디어를 빠르게 최소요건제품(시제품)으로 제조한 뒤 시장 반응을 통해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인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 대표적인 전략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대응 전략은 바로 파트너십이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은 플랫폼 기반의 경쟁을 만들었다. 이런 변화는 파트너십을 회사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켰다. 대부분 직원들은 아웃소싱 경험이 거의 없다. 따라서 조직 내부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존 위계질서를 약화시키고 내부 소통 채널을 늘려서 아이디어가 다양하게 교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디지털 기술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카가네르 교수〓디지털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그 변화에 대응하기 쉽지 않다. 아울러 최신 기술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다들 디지털 시대의 '메가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몇 년 전에는 클라우드와 소셜네트워크였다. 이후 모바일, 그다음은 빅데이터로 계속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단, 이런 메가트렌드는 단지 디지털라이제이션의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는 상징일 뿐이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은 메가트렌드로만 바라본다면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몇 년 전 디지털 기술의 진화의 경로를 이해할 수 있는 '디지털 밀도(digital density)'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디지털 밀도는 '연계성(connections)' '정보(information)' '소통(interaction)'에 기반한다.
▷휴스비 파트너〓앞서 언급했던 디지털라이제이션의 급속한 발전 성향을 고려해보자. 디지털라이제이션의 기저에는 바로 '무어의 법칙(컴퓨터 프로세싱 속도가 가격과 사이즈는 동등한 상황에서 매 2년마다 2배가량 상승하는 현상)'이 있다. 무어의 법칙이 현실화하면서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성장 속도와 그에 따른 결과를 바라보면서도 영향을 바로 인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혁신 역량 등은 바로 이런 급속한 성장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시대는 경제적인 영향뿐 아니라 실업이나 직업의 변화 등 사회 구조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 있을까.
▷카가네르 교수〓긍정적인 면이 부정적인 면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최근 디지털화를 과거 산업화 과정과 비슷하게 보는 의견이 있다. 산업화로 인해 많은 노동혁명이 일어났던 것처럼 디지털화도 고용 구조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오히려 많은 직업을 창출해낼 것으로 분석됐다. 예를 들어 앱 경제를 보자. 7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산업이다. 그러나 현재는 150억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커지면서 고용 창출 효과를 내고 있다.
▷웨이드 교수〓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기술이 인력을 대체할 것이라고 염려하고 있다. 물론 몇몇 산업에서는 실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고용은 특별히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오히려 인력의 재분배가 일어날 것이다. 이제 곧 없어질 직업이 아닌 앞으로 새로 창출될 직업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등의 교육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기업 교육 또한 중요하다. 기업 지식, 혁신 교육, 기술 지식의 조합은 미래 디지털 시대에 아주 강력한 무기로 작용할 것이다.
―디지털라이제이션이 각 산업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휴스비 파트너〓개인적으로는 제조업이 민주화된 것이 가장 큰 파급력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제품 디자인, 제조, 생산이 용이해졌다. 누구나 제품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앞으로 제조업의 민주화는 상상도 못할 디자인의 제품군들을 생산해 내리라 기대한다. 서비스 분야에 주는 가장 큰 영향은 바로 '임시직 경제(gig economy)'의 탄생이다. 임시직 경제란 산업현장에서 필요할 때 해당 산업과 관련 있는 사람과 계약을 임시로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서비스 제공자들은 스스로 경영인이 되거나 직접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카가네르 교수〓각 산업마다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제조업의 경우 내부 자원과 프로세스를 확장하고 향상시키는 데 영향을 준다. 디지털라이제이션으로 정보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생산라인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 업계는 기업들이 기존 고객들에게 더 편리하고 풍부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교통 서비스를 예로 들어보자. 고객들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언제 버스·택시를 탈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다.
―기업들은 디지털라이제이션에 어떻게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나? 구체적으로 산업별 혹은 상황에 따라 대응 전략의 차이가 있다면 알려달라.
▷웨이드 교수〓각 산업마다 다르고 산업 내에서도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 서비스, 소매, 기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은 핵심 제품이나 서비스가 재빨리, 그리고 고도의 수준으로 디지털 기술에 적응해야 한다. 반면 제약, 헬스케어, 건축, 에너지 등과 같은 산업은 디지털 기술이 비교적 느린 속도로 적용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적용할 것이다.
▷카가네르 교수〓우선 디지털 기술의 변화가 각 산업, 그리고 각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야 한다. 회사는 디지털화 기술이 경쟁력을 강화시켜줄지, 아니면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다 줄지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 잡지, 프린트 산업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시장의 근본적인 생태계를 바꿔 놓았다. 반면 농업은 디지털화로 경쟁력이 강화됐다. 곡물을 재배하고 수확하고 분배하는 일은 GPS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이 향상시켰다. 따라서 농업은 디지털라이제이션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한국 기업의 디지털화 시대 적응 수준은 어떻게 평가하나.
▷휴스비 파트너〓미국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 회사들의 무선통신과 전자기술의 정교함은 놀랍다. 한국 회사들의 강점은 직원들에 대한 익숙함과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려고 하는 열의다. 한편 기업들은 혁신을 충분히 빨리 적용시키느냐에 대해서 고민한다. 한국 기업들도 앞으로 10년 동안 빠르게 변하는 기술에 대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생존의 기로를 결정할 것이다.
▷웨이드 교수〓한국은 삼성, 현대차, SK하이닉스, 포스코 등 기술적인 측면에서 진보한 기업이 많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이 디지털 기술 변화에 따른 조직 변화 대응에서는 상대적으로 느리다고 생각한다.
■ '디지털라이제이션' 전문가 3인은…
▶ 마이클 웨이드 IMD 경영대학원 교수
웨이드 교수는 혁신과 전략 부문 강의를 맡고 있다. IMD와 시스코 이니셔티브가 함께 설립한 디지털 비즈니스 변환 글로벌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는 디지털라이제이션, 혁신, 정보시스템 전략, 글로벌 비즈니스 등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며 IBM, LVMH, 구글, 노바티스 등 기업의 비즈니스 전략 상담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 토드 휴스비 AT커니 파트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시카고 경영대학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20년 동안 IT에 기반한 디지털 변화에 따른 기업들의 전략 상담을 담당해 왔다. 특히 디지털 사업, 소비재 공급 체인 전략, IT에 따른 비즈니스 변화, 헬스케어 가치 체인 등의 전문가다. 현재 AT커니 디지털사업부 담당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 예브게니 카가네르 이에세(IESE) 경영대학원 교수
스페인 IESE 경영대학원에서 정보기술 전략·디지털 비즈니스 강의를 맡고 있다. 주로 디지털라이제이션이 사업 모델과 조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그는 MIT비즈니스리뷰, 파이낸셜타임스, 비즈니스위크 등에 디지털라이제이션에 따른 영향에 대해 기고하고 있다. 또 HP, 오라클, 아마데우스 등에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