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반갑습니다.
전심법요
간절히 털끈만큼이라도 어디를 향해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만일 아주 훌륭한 모든 부처님이 영접해 주시는 것과 같은
아 좋은 것을 가지가지 보게 될지라도
또 한 마음이 따라감이 없어야 하고
만약 가지가지 나쁜 모양이 나타나더라도 역시 마음의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랬습니다.
어 털끝만큼이라도 어디를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털 끝만큼이라도 어딜 향해 가는 게 있으면 안 된다.
근데 어떡하지?
우리는 어 계속 가던 사람들인데.
중생은 사람들은 뭐 계속 어디를 향해 가요?
우리는 멈추라고 해도 못 멈추죠.
뭐 더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더 좋은 직업을 향해
성향이 돈을 향해 명예를 향해 칭찬을 향해 뭐 좋은 조건을 향해
또 이 집 말고 저 집을 향해.
온갖 것들을 향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가야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가는 것에 성공하면
내가 원하는 곳 여기 말고 나는 저기를 갔으면 좋겠어 이러고
어떤 사람은 나는 돈 같은 건 관심 없어. 나는 건강을 향해 갔으면 좋겠어.
나는 뭐 돈 건강에는 관심 없어 난 명예가 중요해.
어떤 사람은 나 그런 거 싹 다 관심 없어 나는 깨달음이 중요해.
그래서 다들 서로 다른 것이지만
어디를 향해 가고 있어요?
아주 열심히
그걸 유의 조작이라 그래요.
조작 애쓰는 거예요.
애써서. 뭔가 가는 거예요.
여봉암 뿌옇고.
근데 어디로 가야 되는지에 대해서만 다르게 생각하죠.
다른 목표 지점을 향해서 저마다 가고 있어요.
각자 자기가 생각한 다른 목표 지점을 향해서 가고 있어요.
내 생각에는 내가 생각한 그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게 내 인생에 제일 중요할 것 같거든요.
그 목표 지점에만 도달하면 내 인생이 확 풀릴 것 같거든요.
아주 좋아질 것 같거든요.
그래가지고 저마다 자기 생각이 그려놓은 목표지점 거길 향해 열심히 가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도착하면 진짜 내가 원하는 행복이 있을까요?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
행복은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죄송합니다. 저는 멀리 있다. 그런 식으로 써 왔더라고요.
우리 생각에는 행복이 그렇게 욕을 할 정도로 멀리 있어 보인단 말이에요.
요 가까이는 없는 것 같아요.
엄청나게 멀리 가야만 아주 먼 어느 곳에 가야 행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죠.
그래서 그 멀리 어딘가로가 행복했을 것 같은데.
내가 그래서 내가 원하는 행복이 되려면 행복이 오려면 나는 여기를 가야 돼.
나는 저기를 가야 되든 저마다 자기 생각으로 정해놨어요.
그리고 나 그곳을 향해 가고 있잖아요.
그런데 내가 생각으로 정해 놓은 그 목표 지점에 거기 도착하면 정말 행복하다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그거 알 수 있나요?
정말 나는 여기만 가면 행복해.
난 이것만 이러면 난 정말 행복해.
여보 모르잖아요.
사실 알 수 없거든요.
오히려 나는 이건 원하고 저거는 죽어도 원하지 않아.
내 인생에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게 일어났는데?
오히려 그렇게 내 인생을 완전히 행복하게 바꿔놓을 수도 있죠.
어쩌면 난 회사에서 죽어도 승진을 해야 돼. 승진이 똑떨어져 가지고 아무것도 할 게 없어서 밖에 나가서 뭐 이것저것 찾다가 어쩌어찌 만나게 된 일이 완전히 나하고 너무 찰떡같이 맞는 일이어서
그쪽이 훨씬 잘 될 수도 있죠.
어쩌면 모른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는 자기가 생각으로 그림 그려 놓은 목표 지점 행복의 다이어트 난 저까지만 가면 돼.
난 더 많은 것도 바라지 않아.
나는 저기까지만 가면 돼 하고.
나는 많은 걸 바라지도 않아. 나는 뭐 한 몇 억 정도만 벌면 돼. 이렇게 생각하거나.
빠른 많은 것도 바라지 않아. 그래서 그냥 안 아프고 살다가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자고 나갔더니 죽었으면 좋겠어.
저마다 꿈꾸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단 말이에요.
되고 싶은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단 말이에요.
그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거 고기 망상이에요.
불異법이 아니잖아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려는 거잖아요. 진리는 진리는 不異법이에요?
불교에서는 不異 中道 그래요?
또 어 한 마음 一心 이렇게 표현하죠.
한 마음. 이렇게 깨달음이 3개 4개 5개가 있어요?
깨달음은 하나밖에 없죠? 부처가 되는 게 이런 부처 있고 저런 부처 있고 저런 부처가 있나요? 아 있긴 있네요. 그러니까 우리 헷갈리면 안 되는 거예요.
보니까 아미타불도 있고 뭐 약사여래불도 있고 석가모니불도 있고 이러니까 이런 부처 저런 부처가 이렇게 있는 줄 알아요.
아니 진짜 그런 줄 알겠네요.
워낙 이런 부처처럼 부처가 많으니까.
이런 부처 저런 부처가 따로 없어요.
오로지 일불승
오로지 하나의 부처밖에 하나에 부처. 하나의 진실밖에 없어요.
진리 진실은 하나밖에 없어요.
진실이 진리가 하나밖에 없다면 체크미디죠.
미래에 내가 열심히 수행하면 미래에 부처가 될지도 몰라요라고 생각하면 둘이잖아요.
현재와 미래가 둘로 나뉜다는 얘기잖아요.
꿈은 진리가 아니죠. 불異법이 아니죠. 하나가 아니죠. 지금은 내가 좀 맘에 안 드는 상태인데. 내가 열심히 갈고 닦고. 열심히 노력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상태 마음에 드는 위치로 옮겨갈 수도 있을 거예요라고 생각하면 진리가 아니잖아요
진리가 아니고 뭐예요?
생각이 원하는 거죠.
분별심이죠.
분별심은 둘로 나누어 가지고 하나를 취하고 하나는 버리거든요.
분별심을 따라가면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사는 것은 문제야.
너가 더 열심히 노력해서 저쪽으로 가야 돼.
지금보다 더 건강해져야 돼.
지금보다 돈도 더 벌어야 돼.
지금보다 더 좋은 더 아름다운 세상으로 가야 돼라고.
끊임없이 속삭여요.
누가? 생각이
생각은 착구리를 자꾸 긁어 가지고는 지금 여기에 있지 못하도록
지금과 더 찬란한 미래를 둘로 나누어서
미래로 가도록
지금은 아무 문제 없는데
과거에 아주 좋았던 때와
지금을 자꾸 둘로 나누어 가지고 비교한 다음에
옛날에 그때까지 왔잖아.
그때로 갈 수 있어. 가야 돼. 이렇게 자꾸 속삭여요.
지금 너 있는 이들의 너는 있는 이대로 만족하겠다고?
어 미친 거 아니야라고 속삭여요.
너 더 열심히 해야 돼.
더 노력해야 돼?
지금 여기에 있는 이대로 만족하는 건 게으른 거야.
그렇게 끊임없이 우리를 다그쳐요.
자꾸 뭘 하도록 노력하도록 애쓰도록
그리고 세상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 그래요.
더 열심히 해야 된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된다.
갈고 닦아야 한다.
그니까 내 생각하고 딱 맞잖아요.
세상에 하는 말도 왜 그럴까요?
세상에서 하는 말이 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분별이니까요.
다 분별심 가지고 하는 말이니까
더 애써야 된다고 얘기를 하죠.
진리는 어디로 간 적이 없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아 지금 제가 하는 말을요.
뭐 맨날 하는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딱 한번 들어보세요.
깨달음은 뭘 깨닫는 거냐?
지금까지 이걸 향해 저걸 향해 돈을 향해 명예를 향해 건강을 향해 내 몸의 몸에 좋다는 거 뭐를 향해 온갖 좋은 거를 향해 가려던 삶에서
어딘가 자꾸 가려고 하는 삶의 중생의 삶이에요?
그 현재와 미래를 둘로 나눠서 자꾸 어디를 가려고 하는 거예요.
그 자꾸 가려고 하는 거 그게 중생의 삶인데 깨달음이라는 거는
중생을 멈추고 중생의 분별심을 멈추고
止觀
지금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 뭐가 있는지를 그냥 보라는 거잖아요.
그게 止 觀이거든요. 멈추고 봐라.
뭔가 열심히 하는 걸 더 노력해라.
멈추지 말고 더 노력해라라고 하지 않죠?
그리고 야 지금 가만히 즐길 데가 아니야. 그 볼 때가 아니야. 더 열심히 할 때지.
보는 거 구경하는 건 나중에도 늦지 않아.
더 열심히 해. 이렇게 세상에서 다 그친단 말이에요.
근데 불교에서 직원에서는 중도에서는 얻을 가는 게 아니라고 말해요.
멈추라고 말해요.
그럼 지금 이미 있을 건 다 있다.
이렇게 말해요.
있을 건 이미 주어져 있다.
부족하다는 생각 있을 뿐 부족한 인생은 없다.
더 가져야 된다는 생각이 있을 뿐 또 가져야 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미 충분하다.
그러니까 자꾸 어디를 가려고 하다가 아 갈 필요가 없구나.
지금 여기 도착해 있구나.
완전히 도착해 있구나.
온전하구나.
요거 깨닫는 거예요.
그럼 그렇게 탁 깨달아서
지금 여기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걸 깨닫게 돼서 지금 여기 딱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지금처럼 되죠.
뭐 색다른 사람이 되겠어요?
뭐 대단한 부처가 되겠어요?
갑자기 뭐 삶이 좋아지겠어요.
사는 게 나아지겠어요?
돈도 더 벌겠어요?
몸도 더 건강해지겠어요?
자식은 말도 잘 듣겠어요.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깨달았다 하니 나한테 와서 허 거룩하신 부처님
이러게하면서 삼배를 하겠어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거든요.
지금 지금 이렇게 지금 이렇게 사는 거예요.
그냥 깨달아도 지금 이렇게 사는 거 아니에요?
깨닫기 전에는
지금 이렇게 살면서 다른 걸 꿈꿔요.
그 지금 이건 싫은데 딴 게 되고 싶어.
근데 안 돼서 괴로워 죽겠어.
이러고 사는 거예요.
그럼 마음은 힘들죠.
딴 게 자꾸 되고 싶은데 안 되니까 괴롭죠.
근데 깨닫고 나면 어떻게 되냐?
지금 이렇게 사는데 완전히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토끼가 토끼로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거예요.
사자가 될려고 바라지 않는 거예요.
토끼는 토끼로 사는 거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지금 이렇게 사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아 아무 문제가 없었구나.
이러면 끝나는 거예요.
갈 필요가 없었구나.
내가 평생 지금까지 죽도록 달려왔는데
달려갈 필요가 없었구나.
지금 여기 다 있구나.
근데 뭐가 자꾸 방해해요?
몸을 나라고 여기면 이 몸은 마음에 안 드는데
저 저 친구 몸 저 친구 저 사람들 몸은 나보다 더 건강해 보이고
나는 나이도 똑같은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건강한가 싶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 사나 싶고
자꾸 비교가 된단 말이에요.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하면
기준점을 잡은 거예요.
나는 요거야 이렇게 정해놓은 거예요.
요걸 나라고 딱 정해놓으면
얘 아닌 게 생기잖아요.
둘이 둘로 나뉘잖아요.
나와 나 아닌 존재가 둘로 나뉘잖아요.
여러분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면 분별하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고 멍 때릴 때
이 몸이 나다라는 생각 있나요? 없어요.
내가 몇 살이라는 생각 있어요?
여러분 생각하지 않을 때는 내가 몇 살이라는 게 없어요?
실제로 나이가 없어요. 성별도 없어요.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달랐다 못 났다도 없어요.
그냥 생각 없이 그냥 볼 때 있잖아요.
뭔가 바닷가에 갔는데 순간와 생각 없이 머리가 움직이지 않고 그냥 가슴이 와아 하면서. 그냥 그걸 그냥 무심하게 바라볼 때 거기 있으면 그때 내가 몇 살인데? 내가 나이가 들었는데 내가 늙었는데 내가 뭐해야 되는데 이런 생각 없죠. 그 순간에 아무 문제가 없지 않아요. 와아 하는데 고기는 20대 아이들도 오랜만에 바닷가에 가서와 하는 것과 우리 나이 56. 70 80이 되든 우리도 바닷가 가서와 여기 똑같지 않아요?
생각이 움직이지 않으면 똑같아요.
거기 하나밖에 없어요. 먹었다. 밖에 없어요? 이 보험밖에 없어요. 止觀 생각 판단 분별을 멈추면 그냥 이 보는 놈이 깨어 있단 말이에요.
이 깨어 있음이라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비추는 이 깨어 있는 진정한 자기밖에 없어요.
고기는 내가 없어요.
이 몸이 나다라는 생각이 없어요.
내가 몇 살이라는 생각도 없고 성공해야 돼. 성취해야 될 생각도 없어요. 그냥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진 않아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비춰보는 코끼리의 숨은 있단 말이에요.
코끼리 끼어 있음이죠.
그게 깨달음이죠.
깨어나는 거죠.
그 깨어나는 게 어려운 건가요?
우리는 그 깨어남 없었나요?
깨어 있으면 없었나요?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장착돼 있는 거죠.
이게 있음이라는 것은 깨달음입니다.
근데 생각으로 움직이면 이 깨어 있음 속에 너와 나가 있을 둘이 있어요? 있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보는데 거기 둘이 없어요.
근데 생각으로 내가 저것을 본다? 이렇게 생각해요. 그런데 진짜로 생각 없이 그냥 볼 때는 가슴으로 와아 하면서 그냥 볼 때는 내가 저것을 본단 생각이 없어요. 생각이 딱 끊어져요.
특히 옛날 깨달은 도인이 그런 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개 시민 시인이 물아일체라는 말을 썼어.
옛날부터 누구든 시인들은 어떤 압도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은 나와 세계가 둘이 아닌 것 같다. 저곳과 내가 둘이 아닌 것 같다. 물아일치인 것 같다.
뭐 사물과 내가 둘이 아닌 건 일체감 같은 걸 느낀다.
이런 느낌을 노래한다니까요. 어
떤 일체감을 노래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