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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산(天山).
중원에서 최북단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곳은 온 천지가 백설에 뒤덮여 은빛 일색이었다.
한데 달빛에 반사되어 영롱한 빛을 흩뿌리는 은백의 설야를 가로지르는 푸른 선 하나가 있었다.
쉬... 익!
천산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곳으로 푸른 선은 나는 듯이 그어지고 있었다.
문득 푸른 선은 한 설야의 구릉 위에 멈추어 섰다.
그린 듯한 용모의 청삼 미서생, 바로 단몽경이었다.
그는 마침내 천산에 당도한 것이다. 그는 설백으로 물든 산야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옥녀지존께서는 희대의 색녀이셨다지. 하나 지금 그분은 모니불(牟尼佛)같이 아름답고 고귀하게 변하셨다."
단몽경은 옥녀지존의 얼굴을 떠올렸다.
과거에는 색녀였다고 하나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옥녀지존은 고상하고 품위있는 미소를 지닌 여인이었다. 또한 무림의 평화를 위해 고귀한 목숨을 기꺼이 희생한 그녀였다.
눈 덮인 천산의 웅자를 바라보며 단몽경은 다시금 중얼거렸다.
"그 분께서 남긴 섭혼진경과 미백수혼보로 일어난 미정옥녀궁은 그 분만큼이나 좋은 곳일 것 같구나."
휘리리리링!
문득 살을 엘 듯한 한풍이 일어나며 눈보라가 일어 은빛 분말이 하늘을 가득 뒤덮었다. 하나 단몽경의 눈빛은 눈보라 속에서도 신비한 기운을 발산했다.
등천제일룡 단몽경, 그의 행적은 중원의 북쪽 끝인 천산까지 이어진 것이다.
밤.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은 밤이었다.
스스......!
단몽경은 만년설 위를 나는 듯이 달렸다. 눈보라는 어느덧 멎어 있었고 하늘은 잠든 장막이었다. 만월이 촉촉한 푸른 빛을 설원에 뿌리고 있는 설야(雪夜)였다.
문득 주위의 기온이 따뜻해지고 있었다. 하나의 호리병처럼 생긴 곡구(谷口)에 이르자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실로 기이한 일이었다.
"......."
단몽경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눈보라 치는 한겨울인데도 계곡 입구는 봄이었다. 사철 녹지 않을 것 같던 눈도 모두 녹아있었으며 바닥에는 부드러운 풀까지 돋아나 있었다.
어디선가 훈훈한 미풍마저 불어와 그의 코 끝을 간지럽혔다. 단몽경은 몸 뿐 아니라 마음까지 따뜻해져옴을 느꼈다. 수일 내내 이곳에 당도하도록 그가 보아온 것은 빙설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기이한 곳이군. 빙천설지 가운데 이런 곳이 있다니.'
단몽경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렇군. 이곳이 바로 미정옥녀궁이 있다는 장춘옥녀곡(長春玉女谷)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가 당도한 곳은 장춘옥녀곡의 입구로 사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는 별천지였다.
단몽경은 계곡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자욱한 밤 안개가 잔뜩 깔려있어 계곡 안의 정경을 엿볼 수가 없었다. 문득 그의 준미한 눈썹 끝이 쫑긋 치켜 올라갔다.
'진법이 펼쳐져 있군......?'
스스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은 곡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환무구유살진(幻霧九幽煞陣)이 펼쳐져 있지만 이 정도라면 어려울 것이 없다.'
그는 빙긋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의 금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삼대금지도 뚫은 그였다. 그런 그에게 이 정도의 진법은 아무 장애가 되지 못했다.
잠시 후 그의 눈 앞에 넓은 분지가 펼쳐졌다.
장춘옥녀곡이었다. 아무런 술법을 쓰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는 이미 진법을 통과한 후였다.
넓은 광장에는 괴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결같이 체격이 당당한 장한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벌거벗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달빛 아래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백 팔 명으로 열과 행을 맞춘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두 손은 사타구니 근처에 모았고 모두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안색은 대추처럼 붉었다.
단몽경은 바위 뒤에 은신한 채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그는 괴이함을 금치 못했다. 문득 그는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보게 되었다.
달빛이 중천에 가까워지자 장한들의 입과 코 사이 인중에서 번쩍이는 한 점 금빛이 그의 눈에 띈 것이다. 그는 흠칫 놀라며 내심 중얼거렸다.
'금침이 하나씩 박혀있다.'
단몽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모두 이상한 수법에 금제되어 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단몽경은 왠지 섬칫한 느낌을 받았으나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가 들어온 곳은 미정옥녀궁으로 천하오패 중 하나이며 현재는 외부와 어떤 은원 관계도 맺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상태였다. 한 마디로 강호제일의 신비문파인 셈이었다.
장춘옥녀곡은 십 마장이 넘는 거대한 분지였다.
사방을 빙 둘러 산이 병풍같이 쳐져 있어서 곡구를 제외하고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다.
분지 안은 조금도 춥지 않았으며 사철 일정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온갖 초목과 기화요초가 난만했으니 실로 별천지였다.
미정옥녀궁의 규모는 방대했다.
분지 전체가 고루거각으로 형성되어 거대한 궁(宮)을 이루었다. 그것도 기와는 황옥이었고 처마 끝에 황금풍경이 달려있을 정도로 호사스러웠다.
한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인들은 팔다리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반나의 차림새로 돌아다녔다.
그녀들의 옷 색깔은 모두 달랐다. 은(銀), 자(紫), 녹(錄), 홍(紅) 등의 네 가지 색깔이었다. 그것은 각기 신분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최상의 지위를 가리키는 것은 금의(金衣)였다.
단몽경은 미정옥녀궁에 들어온 후 기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바깥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점이 많았던 것이다.
그는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옥녀지존의 명을 받들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했다.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천연의 욕지(浴池).
바위가 둘러싸고 있는 곳에 방원 십 장 정도의 욕지가 있었다. 물빛은 녹색이었고 흰 김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실로 신비무쌍한 광경이었다. 천산의 한가운데에 온천이 있다는 것은 알려진 바 없었다.
욕지 주위에는 십 팔 명의 나녀들이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나신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단몽경은 갑작스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띠... 딩... 땡... 때잉......!
빌리리... 릴릴... 삘리리......!
어디선가 주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노래 소리도 들려왔다. 그것은 지극히 웅장한 노래였다.
'합환봉황무곡(合歡鳳凰舞曲)이다.'
단몽경은 내심 중얼거렸다.
합환봉황무곡이 들리는 가운데 십 팔 명의 나녀들이 춤을 추었다. 터질 듯한 젖가슴과 풍만한 둔부가 좌우로 흔들리고 미끈한 두 다리가 살짝 벌어질 때마다 드러나곤 하는 아찔한 비경(秘境).......
그 가운데 욕지 안에는 한 미녀가 몸을 씻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미녀였다.
십전미(十全美)의 완벽한 나신을 따라 녹색의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뿌옇게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마치 선계인양 더욱 신비감을 부추겼다.
한데 그녀의 눈빛은 순결한 선녀의 눈빛이 아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본 단몽경은 가슴이 더워짐을 느꼈다.
'저 욕지에는 녹색의 향유를 풀었다. 장춘주안선유(長春駐顔仙乳)란 것으로 그 물에 몸을 씻으면 회춘할 뿐더러 영원히 미모를 가꿀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진다. 한데 저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
단몽경은 좀처럼 쉽사리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띵... 띠딩... 띠딩......!
삘리리... 삘리리리......!
합환봉황무곡의 음탕한 선율과 십 팔 명의 나녀들이 추는 요요로운 춤. 그리고 욕지 안에서 몸을 씻는 고혹적이고 뇌쇄적인 여인.......
그것은 가히 고혹적인 장면이었다.
욕지 안의 미녀는 터질 듯 부푼 젖가슴과 그 정상에 맺혀있는 두 알의 열매를 자신의 손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마치 몹시 소중한 보물을 만지는 듯한 손놀림이었다.
그녀의 요사스런 눈은 가히 일만 명 사내의 넋을 한꺼번에 마비시킬 듯 요사스러웠다.
'일단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하자. 한데... 점점 괴이한 광경만 나오는구나.'
단몽경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더 이상 보고있다가는 빨려들 것만 같은 지독한 유혹이었다.
스스......!
단몽경은 그 자리를 떠났다.
쏴아... 쿵쿵......!
요란하게 폭포수 소리가 울려대는 협로(峽路).
검수들이 협로 입구를 막고 있었다. 그들은 십 팔 명의 은의소녀(銀衣少女)들이었다.
그녀들의 눈빛은 비수보다도 날카로웠는데 십팔단봉검진(十八丹鳳劍陣)의 진세를 치고 사방을 날카롭게 경계하고 있었다. 한결같이 기도가 범상치 않았다.
협로 쪽으로 접근하는 흐릿한 청영이 있었다.
단몽경이었다.
그는 폭포수 소리에 이끌려 협로로 향한 것이다. 십 팔 명의 은의소녀들을 발견한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진짜 중요한 것이 저 안에 있을 것 같구나.'
그는 슬쩍 손을 흔들었다.
'이물진기(移物眞氣)!'
스스스......!
그의 손이 두어 번 가볍게 흔들리자 바닥의 모래들이 휘말려 올라갔다. 모래알들은 회오리바람으로 화해 협로로 몰아쳐 갔다.
"아니?"
고요하기만 하던 협로에 돌연한 모래 회오리가 몰아치자 은의소녀들은 크게 놀랐다.
창... 창......!
소녀들은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이소궁주(二少宮主)가 암살자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경계해라!"
"철저히 막아라!"
차차... 창......!
날카로운 일갈과 함께 검광이 어지럽게 난무하며 십팔단봉검진이 절정으로 펼쳐졌다.
비록 몰아쳐 오는 회오리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지경이었으나 그녀들은 어떤 고수라 해도 자신들의 검진을 뚫을 수는 없으리라 믿었다.
잠시 후 회오리바람이 그치자 그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미 단몽경은 사풍(砂風)과 함께 협로 안으로 들어가고 난 후였다.
백룡폭(白龍瀑).
길이 오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폭포수였다.
이름처럼 거대한 백룡 한 마리가 땅에서부터 검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세외선경이었다.
백룡소(白龍沼)라 불리는 폭포수 밑 깊은 연못에는 미녀 한 명이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
눈을 꼭 감고 있는 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니,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는 천상의 우물(尤物)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미녀의 얼굴은 조금 전 욕지에서 몸을 씻던 요녀와 완전히 똑같았다. 세상에 어찌 그토록 똑같은 얼굴이 있단 말인가? 설사 쌍둥이라도 그렇게 닮긴 힘들 정도였다.
미녀는 전신에 착 달라붙은 옷을 입고 있었다. 흑색의 승복이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미녀가 승복을 입고있다니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승복을 걸쳤으나 머리카락은 길었다. 기나긴 머리카락이 물에 흠씬 젖은 채 등까지 늘어져 있었다.
미녀는 고뇌에 잠긴 표정이었다.
우르릉......!
백룡폭은 그녀의 고뇌를 아는 양 자욱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울음을 토해내고 있었다.
단몽경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닮을 수가 있다니... 두 여인은 대체 무슨 관계기에?'
그는 놀란 나머지 그만 실수로 발을 헛딛고 말았다.
사삭......!
가벼운 음향이 그로 인해 일어났다. 우렁찬 폭포소리에 비하면 들리지도 않을 미세한 음향이었다.
하나 미녀는 기척을 느낀 듯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향옥(香玉)아, 어차피 승자는 너다. 난 비무에서 승리해 궁주가 될 생각이 없다. 너는 그것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그렇기에 이제껏 아주 태평히 지내지 않았느냐? 어차피 비무에서 내가 져 주리란 것을 말이야. 한데 왜 자객이 되어 왔느냐? 정녕 날 죽일 생각이란 말이냐?"
미녀는 차분히 말하며 살며시 눈을 떴다. 순간 미녀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 번졌다.
그녀의 눈 앞에 서있는 것은 향옥이란 여인이 아니라 미서생이었다. 바위 위에 우뚝 올라서 있는 그는 신비롭기 짝이 없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냐?"
미녀는 대경하여 외치며 옥용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그녀의 옥수가 흔들리며 어지러운 장영이 뿌려졌다.
파파... 팟......!
옥녀산화수(玉女散花手)였다.
수천 개의 장영이 굉음을 내며 물보라처럼 뿌려져 강기를 일으켰다. 놀라운 위력이었다.
하나 놀랍게도 미서생은 그녀와 똑같은 수로 장을 마주 쳐냈다. 오히려 더욱 심후했고 더욱 능숙한 솜씨였다.
꽈꽝......!
폭음이 나며 두 줄기 장력이 부딪혔다.
"흐흑......!"
미녀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내공이 흐트러짐을 느낀 것이다.
그 뿐이 아니었다. 눈 앞이 흐릿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녀의 희고 고운 섬섬옥수가 미서생의 역시 고운 손아귀 안에 들어가 있었다. 도저히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금나수에 당한 것이다.
미녀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미정옥녀궁에 잠입자가 있다니......!"
"......."
단몽경은 말 없이 신비한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대가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나 결코 살아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미녀는 싸늘하게 외쳤다.
'이 여인의 눈에는 먼저 번 여인과 달리 마성(魔性)이 없구나. 똑같은 줄 알았으나 심히 다르구나.'
단몽경은 그녀의 맥문을 놓아주었다. 그는 품 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이것을 아시오?"
그가 꺼낸 것은 백옥상이었다.
옥녀비무상(玉女飛舞像).
전라의 미녀가 춤추는 모습이 조각된 것으로 미녀상의 얼굴은 옥녀지존과 똑같았다.
단몽경이 옥녀비무상을 내밀자 미녀는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곧 이마를 땅바닥에 대었다.
그녀는 격심한 충격을 받은 듯했다.
"옥녀지존 사조님의 전인이십니까?"
단몽경은 빙긋 웃었다.
"아니오."
미녀는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그럼... 어이하여 백 년 전 궁을 떠나신 사조님의 신표를 지니고 계십니까?"
미녀는 음성을 떨고 있었다.
단몽경은 담담히 말했다.
"난 옥녀지존의 명으로 십오야의 옥녀탈혼제(玉女奪魂祭)를 없애러 왔소."
"네엣?"
미녀는 놀란 듯 아름다운 눈을 크게 떴다. 단몽경은 힘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내게 옥녀탈혼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없애는 방법이 무엇인지 일러주시오."
그 말에 미녀의 얼굴은 몇 번씩이나 변하더니 종내는 희열의 감루로 적셔졌다.
"아아! 기적입니다."
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은은한 향기가 감도는 격조 높은 규방.
단목으로 된 탁자에 단몽경이 앉아있고 그의 앞에는 검은 승복차림의 미녀가 바닥에 무릎 꿇고 있었다.
여인은 아름다운 입술을 열었다.
"소녀는 혈수빙아(血水氷兒) 모용화운이라 합니다."
단몽경은 탁자에 놓인 향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럼 그대와 얼굴이 똑같은 여인은 누구인가?"
모용화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아이는... 제이소궁주인 혈수냉아(血水冷兒) 담향옥(曇香玉)입니다. 그 애와 저는 모친이 같습니다."
"음."
단몽경은 신음을 발했다.
'성이 다른 것은 부친이 다르다는 말이겠군.'
그는 미정옥녀궁이 남녀관계가 복잡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혈수빙아 모용화운은 어두운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 애와 저는 곧 궁주 자리를 놓고 비무를 해야 합니다."
"언제 말인가?"
모용화운은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만월이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바야흐로 십오야로 넘어가기 하루 전이었다.
"내일 밤 자시, 십오야가 떴을 때입니다."
모용화운은 어눌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미정옥녀궁의 궁주가 되려면 궁도들에게 세 가지를 알려야 했다. 그것은 과거 옥녀지존이 세운 법칙이었다.
첫째, 자신이 미정옥녀궁에서 가장 강함을 보여야 한다.
둘째, 백 팔 권의 방중술법책을 완전히 외우고 있음을 미정옥녀궁 십장로에게 인증 받아야 한다.
셋째, 옥녀탈혼제를 만인 앞에서 행해 자신이 천하제일색임을 알려야 한다.
그런 법칙이 세워진 이유는 옥녀지존이 과거 천하제일색으로 칭해졌기 때문이었다.
단몽경은 처음 듣는 괴이한 얘기에 눈썹을 찌푸렸다.
"음, 악습이로군."
잠시 후 그는 다시 물었다.
"그럼 옥녀탈혼제란 어떤 것이오?"
"그것은......."
모용화운의 얼굴은 수치감으로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며시 떨구며 설명했다.
"십오야에 달이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백 팔 명의 동정 남자와 교합하는 것입니다."
"뭣이......?"
단몽경은 아연실색했다.
"그것도... 필히 만인이 보는 앞에서 갖가지 방중비법을 시전해 보여야만......."
모용화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순결한 처녀의 몸으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백 팔 명의 사내와 온갖 방중비법을 동원해 교합을 해야 하다니, 실로 인간으로서는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
그것이 혈수빙아 모용화운을 백룡폭에서 고민케 한 문제였다.
그녀는 궁주가 될 충분한 자격을 지닌 여인이었다. 하나 차마 십오야 옥녀탈혼제만은 실행할 수가 없었다. 마성에 물들지 않은 그녀로서는 끝까지 인간의 심성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무에서 스스로 짐으로써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반면 혈수냉아 담향옥은 모든 면에서 그녀와는 달랐다.
그녀는 마성에 깊이 빠진 여인이었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정옥녀궁의 궁주가 되기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단몽경은 침상에 누워있었다.
달빛이 쏟아져 들어와 그의 준수한 얼굴을 비추었다. 미정옥녀궁에서의 밤이 그를 다소 들뜨게 했을까?
"......."
침상 아래에는 혈수빙아 모용화운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침상에 반듯이 누워있는 사내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난생 처음 자신의 방에 사내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자신만이 사용하던 침상을 내주었다.
'단 한 번의 눈빛만으로 이 모용화운의 마음을 앗아가신 분.......'
모용화운의 눈빛은 몽롱하게 변했다.
짧은 순간에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보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분은 내 마음을 송두리째 가져가신 것을 알고나 계실까? 아아! 오래도록 비워두었던 내 마음이 단시간에 이토록 온통 한 사람으로 가득 차게 될 줄이야!'
모용화운은 섬섬옥수를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복숭아 빛 가슴 속으로 불씨 하나가 싹터 오르더니 이내 뜨거운 불길이 되어 번져나갔다.
그녀는 살며시 몸을 일으키더니 침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잠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단몽경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녀는 가슴이 아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그의 입술로 가져갔다.
두 개의 꽃잎같은 입술이 접촉되었다.
"......!"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모용화운은 이 시간이 영원히 멎어버렸으면 하고 바랬다.
그때였다.
단몽경의 손이 움직였다. 그는 손을 뻗어 모용화운의 긴 머리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창문을 통해 월광이 휘황하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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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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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씩 지원 세력을 만들어 가나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