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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정권 실세들의 성향
2001년 인터뷰 기사, [사회주의 서적 번역 옥살이]
韓明淑씨가
국무총리에 지명된 후 남편 朴聖焌 씨의 사상편력이 화제가 되자, 박씨는 과거 통혁당 가입사실을 부인해 왔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로동당이나 통혁당 같은 조직에 가입한 적도 없고 포섭된 적도 없다] (2006년 4.3 동아일보) ,[사건에 연루왼 신영복 선생에게서 자본론 등을 빌려본 게 전부다](2006년 3.27 오마이 뉴스), [나는 통혁당과 관련이 없고,사건에 연루된 신영복 선생에게서 자본론 등을 비려본게 전부다](2006년 3.27 조선일보),[ 신영복 선생으로부터 책을 빌려 본 것이 전부인데 15년 형을 받았다](2006년 3.25 문화일보) 고 밝혔다,
그러나 박성준씨의 통혁당 관련 사실은 언론보도에서도 상당부분 엇갈린다. 박성준 씨와의 인터뷰를 다룬 2001년 季刊 [새길이야기 (3호)]는 1968년 당시 통혁당 사건에 대해 [마르크스 경제학 책을 번역, 그가 조직한 경제복지회 회원들에게 유포해서 옥살이를 했다]고 보도했다. 관련 부분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기자: 박성준 선생님 이력을 보면,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릿코 (立敎)대학 신학박사...그런데요 왜 이렇게 오래 계셨어요?
박성준: 함석헌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발꿈치에 채여서랄까..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지요. 한편으로는 우리의 역사속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감옥에 쉽게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도 얘기할 수 있겠읍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요? 기사의 분량이 어느 정도 되나요?
그(박성준 씨)는 한국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구 살 아래인 동생과 함께 고아가 됐다. 그의 나이 열 살때였다. 책을살 돈이 없어, 친구들 교과서를 빌려 헌 종이 묶음에 베껴 쓰면서, 그에겐 무슨 책이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생겨났다.
대학시절, 그는 성서를 읽기 시작해 기독교 신앙을 받아 듫였고,,경제학도로 여러 가지 경제학 책을 섭렵했다. 미국 경제학은 사회의 모순을 설명해 내지 못했다. [함께 잘 사는 세상], 복음과 사회과학을 결합시키는 대안을 모색하던 그는, 당시 금서였던 마르크스의 경제학을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고,
(어릴 때부터 익힌, <빌린 책 단숨에 베끼는 재주를 발휘해) 일어로 된 책들을 번역, 그가 조직한 <경제복지회> 회원들에게 유포했다. 이는 당시,국가보안법 제1조에 해당하는 중죄였다.그는 같은 서클 후배였던 한명숙과 결혼한 지 7개월만에 투옥,13년반동안 옥살이를 했다]
박성준은 당 소조 조직책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발표에 따르면 박성준 씨( 당시 성루대 경제학과 4년.25세)는 1967년 6월 신영복에게 포섭된 [당 소조책(小組責)]으로서 처 한명숙 및 박 00, 김00 등을 소조호 포섭했다. 그는 서울 상대를 위시한 각 대학 출신 및 재학 중인 기독교 계 학생을 모체로 결성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주도하여 자본주의 資本主義 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위 사회주의社會主義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 보급했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박성준씨가 주도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 등 8개 서클을 통혁당의 [민족해방전선] 산하 조직 가운데 하나라고 발표했다.
당시수사발표에 따르면 통혁당은 김 종태를 당수로 하여 [민족해방전선]과 [조국해방전선]의 양대 조직으로 지도부가 구성됐었다. [민족해방전선]은 김질락이 책임비서, 신영ㅂ족이 조직책임비서, 이진영이 교양책임 비서를 맡았고, [조국햅장전선]은 이문규가 책임비서, 윤상환.오병철이 교양책임비서를 맡았다.
[민족해방전선]은 다시[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비롯해 [새문화연구회],[청년문학가 협회],[불교청년회] ,[동학회] [민족주의 연구회], [경우회],[청맥회] 의 8개 서클을 조직했다. 8개 서클은 대중조직으로서, 서클의 책임자들은 서클 속에서 쓸 만한 사람들을 小組로 조직해 갔던 걳으로 알려졌다. 공안전문가 A 씨는 당 소조책과 小組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의 지하당에서 입당入黨한 당원 중 초소 조직을 세포細胞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세 명의 당원이 1개 세포를 이루며 , 3개 세포가 1개 소조를 이룬다. 소조와 세포는 지하당활동의 최소조직을 가리킨다. 지하당의 소조와 세포, 그리고 이들을 관리하는 간부인 당 소조책小組責이었다는 것은 당연히 지하당에 입당한 당원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중앙정보부는 박성준 씨를 서클 회원들을 소조와 같은 [통혁당 당원黨員]으로 포섭 도는 포섭을 시도한 소조책이라는 [통혁당 간부幹部]로 판단했고,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여 1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재판에서 박성준 씨가 포섭 또는 포섭을 시도했다는 박00씨는 2심에서 3년형을, 김00씨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한명숙씨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다.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적] (朴聖焌 씨 판결문 中)
당시 검찰은 박성준 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 죄를 적용했다. 검찰 공소장에는 [박성준이 사회주의.공산주의.유물론 등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북이 발행한 불온서적도 열심히 학습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박성준 씨는 이와 같은 책을 읽은후 주변 인물에게 사상을 전파한 걸로 돼 있다. 그가 공부했던 책은 다음과 같다.
[말크스 자본론],[사회사상전집],[불란서 유물론],[레닌의 성과적 유물론],[레닌주의란 무엇인가],[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청년의 노래] (北傀 발행) [중국혁명돠 중국공산당],[공상에서 과학으로],[새벽길](北傀발행)
판결문에 나타난 김성준씨의 발언이다
[우리가 現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후배들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合法을 가장해 동지규합단체를 확대, 現 정부에 대항하고 외세에 항거, 현 사ㅣ회제도를 타파하고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민족적, 사회민주적,사회대중적 사회]라는 구호 밑에 외견상 합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고 동지를 구합하자,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조직은 민족해방전선( 엔.이 엘)이라고 호칭하자
現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외세의 지배下에 있고 , 경제적으로 불평등하여 대단히 모순이 많은 사회다. 자본주의 체제의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하여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개혁하여야 한다]
1심 판결에 불복한 박성준씨는 항소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민족해방전선>을 구성한 바 없으며, 4.19 묘지에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사실도 없고, 그 밖에 이 사건 책ㅈ다를 구입하거나 빌려보거나,빌려 주고, 궐기;시키고 한 모든 행위가 북괴를 이롭게 한 것이 아니며, 신영복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경솔한 소행을 하기에 이른 것이니 기독교인으로서 깊이 반성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성준이 <현 사회는 사회주의 체제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반 국가단체의 활동에 주목한다]고 판단 원심을 확정했다.
한명숙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
한편 한명숙 씨의 통혁당 사건과 관련 판결문은 이렇게 적고 있다.
[피고인 한명숙 등은 북괴는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반국가단체로서, 북괴가 간행하는 표현물이거나 기타 사회주의 서적을 반포하는 행위는 북괴가 시도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행위로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피고인은 박성준으로부터 부괴 간행 [청춘의 노래]를 빌려 받고, 박성준의 부탁으로 엥겔스가 쓴 [사회사상 총설] 1권을 받아 그 책에 있는 [공산당 선언]을 노트에 필기하고, 박성준의 지시로서 이00,최00 와 같이 일고 반 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한편 찬양고무하는 표현물을 취득해 복사.보관. 반포하여 북괴를 이롭게 했다]
한명숙씨는 1979년 이른바 [크리스천 아카데미]사건에 연루되어 도 다시 처벌 받았다. [크리스천 아카데미]는 1970년대 초반 한국 사회구조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강원룡 목사가 만든 단체이다. 한명숙씨는 당시 여성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부문 간사로 일했다.
한명숙씨는 이우재,장상환, 황환식, 신인령, 김세균과 만나 모스크바 방송. 북경방송. 평양방송 .통혁당 목소리방송 등을 들었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서클 회원 6명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속개하기에 앞서 그 집에 있던 라디오를 조작한여 <어버이 수령 김일성...>하는 북괴의 어린이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괴의 방송을 함께 들은 후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스웨덴의 탁아소 등 어린이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잘되어 있는 곳은 以北이라고 하더라]는 요지의 말을 하여 반국가단체인 북괴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에 동조 또는 찬앵하여 이를 이롭게 하였다]
판결문은 한명숙의 여성사회에 관한 활동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피고인 한명숙은 다른 피고인에게 <여성문젱를 이헤하는데 참고가 될 것이니 읽어 보라>면서 <조선여성독본> 복사판을 제공하였다]
박성준씨는 한명숙씨의 국무총리 지명 이후 통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한명숙총리는 [크리스챤 아카데미] 와 관련해 2001년 민주화 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 조치는 1973년 통형당 사건 과는 무관하다.
필자는2006년 3월 성공회대 NGO 대학원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인 박성준 씨와 인터뷰를 시도 했었다. 통혁당사건과 관련, 사실事實 확인을 요펑하는 필자의 요청에 대해 박성준 교수는 [언론에서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이 보도돼 예기치 못했던 오해가 생기고 있다. 인터뷰는 사절한다]고 말했다.
글쓴이:김성욱 기자
실린곳:대한민국赤化보고서
** 우익은 승리한다~!
박 교수의
거듭된 고사固辭로 인터뷰가 어려워지자 필자는 [팩스로 질문지를 보낼 터이니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답변해 줄 것]을 부탁했다.[ 보내주십시오 그러나 답변 여부는 제가 판단하겠읍니다 양해해 주십시오]라는 박교수의 멘트로 통화를 마친 후 필자는 통혁당 입당 여부, 마르크스 서적 번역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팩스.메일. 전화 등 가능한 수단으로 회신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질문서를 보낸 후 박 교수의 답변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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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까마귀는 세월이 흘러도 백로가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한번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를 신봉하면 전향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성욱 기자가 제대로 잘
지적하고 있듯이 박성준의 과거 행적은 애국하는 입장에서 보면 너무
화가 난다.
김성욱 기자님 노고에 감사 드리며
진정 참된 기자 정신을 높이 평가합니다 ~
끼리끼리 논다고 노무현 패거리들은 배경 보면 죄다 북한과 연루돼 있었네. 이런 인간이 대통령을 하고 앉아있었으니 뭐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었을리가 없었지.
개잡놈의 새키로군 마누라 옥바라지 잘 해라
맹숙아 너는 감옥에서 평생 살고 거기서 뒈지거라
노무현 정권은 그냥 친북좌파 동호회 수준
명수기나 정은이 박창신 때중이는 오리발 전문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