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공산당이 싫어요"
반공의 대표적인 이야기로 유명한 '이승복 피살 사건'이 진실이란 판결이 나왔다.
1998년 조선일보가 김종배 미디어오늘 전 편집장과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을 대상으로 소송을 건지 8년만이다.
대법원 형사2부(대법관 김용담)은 24일 조선일보의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항거 입찢어』기사를 '작문 기사'라며 '오보 전시회'에 포함시킨 김 전 언론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승복 피살 사건에 관련한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제일 먼저 의구심을 나타낸 김 미디어오늘 전 편집장에 대해서도 검찰측의 상고를 기각, 원심을 확정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적이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건 당시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해 일가족이 살해됐다는 이 군의 형 이승권씨의 진술과 당시 이를 전해 들은 이웃 주민 최순옥, 서옥자씨 등의 일치된 증언, 시신 중 유일하게 입가가 찢어진 이 군의 시신, 사진 등을 종합할 때 이 군이 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허구, 조작, 작문, 오보, 소설, 조선일보 기자들은 현장에 없었다' 등의 주장은 허위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 승복아, 너는 누구더냐?
이승복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알고 있는 유명한 일화다.
1959년 12월 9일 평창군 진부면 도사리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10살의 어린 나이에 무장공비들에게 무참히 살해 당했다.
1968년 10월 30일. '울진, 삼척지구'에 120명의 무장공비가 침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은 무장공비 120명을 15명씩 조를 편성, 침투시켜 군복, 신사복, 등산복 등으로 위장하여 게릴라전을 펴게 하였다.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11월3일 새벽 주민들을 모아놓고 남자는 남로당, 여자는 여성동맹에 가입하라고 총검으로 위협한 사건이다.
△ 이승복군의 생가 터
12월 9일, 무장공비 한 조가 우리의 군, 경, 예비군의 추격을 피해 북으로 도주하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 계방산 중턱에 위치한 이승복군의 집에 침입하였다.
그들은 공산주의를 선전하며 그들을 도와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승복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하자 순식간에 그를 비롯하여 어머니 주대하(당시 33세), 3남 승수(당시 7세), 4녀 승녀(당시 4세) 등 4명을 살해하였다.
아버지 이석우(당시 35세)씨와 장남 승권(당시 15세, 호적상 이름은 ‘학관’) 군 등 2명에게 중상을 입고 군,경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실려갔다.
◎ 이승복 사건 논란 과정
'이승복 피살 사건'은 반공을 내세웠던 박정희 정권에 의해 유명해졌다.
이 군의 얘기는 책과 영화, 만화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파됐고, 심지어 영화로 제작되거나 동상이 건립돼 전국 초등학교에 세워지기도 했다. 이 군의 동상은 지난 2001년 경기도 의정부의 몇몇 초등학교 교장단에 의해 다시 건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승복군이 피살된 지 5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 이승복이란 인물이 실존 인물인지, 그가 정말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란 말을 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나오게 된 계기
이승복 가족이 무장공비들로 부터 무참히 살해된 다음 날 10일, 중앙, 지방 신문사들은 사건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수습이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군,경과 인근주민들의 증언, 참사현장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12월 13일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항거 입찢어』란 제목으로 머릿기사를 실었다. 이 때 당시의 조선일보에 따르면,
▷ 장남 승원 군에 의하면 강냉이를 먹은 공비들은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 넣은 다음 북괴의 선전을 했다. 열 살 난 2남 승복 어린이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얼굴을 찡그리자 그 중 1명이 승복 군을 끌고 밖으로 나갔으며 계속해서 주 여인을 비롯한 나머지 세 자녀를 모두 끌고 나가 10여m 떨어진 퇴비더미까지 갔다.
공비들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벽돌만한 돌멩이로 어머니 주여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현장에서 숨지게 했으며 승복 어린이에게는 ‘입버릇을 고쳐 주겠다’면서 양손가락을 입 속에 넣어 찢은 다음 돌로 내리쳐 죽였다.
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로 인하여 국민들은 이승복은 공산당이 싫다는 말을 했단 이유로 입이 찢어진 채로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김종배, "이 군 피살 사건은 조작"
'이승복 피살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논란이 일게 된 것은 사건 발생 24년 뒤인 1992년이다.
미디어 편집국장이었던 김종배씨가 한국기자협회가 발간하는 <저널리즘> 가을호에서 장남 이승권씨의 인터뷰를 토대로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실은 것이다.
승권 씨는 동생 승복 군이 살해된 후부터 원주에 있는 병원에 후송되기까지 당시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고 김 전 국장은 전했다.
그 때 당시 생존자였던 사람이 승권씨였다는 점에서 조선일보는 그를 취재했을 것이고 보도가 작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나중에 "당시 보도에서 승권 씨를 '승원 군'으로 표기한 것은 오기였다"고 시인해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 이승복군 가족 피살 사건을 그린 그림
그 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1998년 8월 '언론계 50대 허위, 왜곡보도'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 군에 관한 조선일보 기사를 대표적인 작문기사로 지목했고 같은 해 8월~9월에 걸쳐 서울·부산 등지에서 관련 전시회를 열었다.
이에 조선일보는 김주언 당시 언개연 사무총장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 논란의 중점은 당시 이를 취재했던 '강인원, 노형옥 기자가 현장에 있었는가'이다. 조선일보는 당시 자사 기자들이 가장 빨리 현장에 도착해 사건을 취재한 뒤 관련 기사를 서울로 송고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군 가족 피살 사건 현장에 처음 도착했다고 밝힌 강한필, 이봉섭 경향신문 기자들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조선일보 기자들을 만난 적은 없다고 증언하였다.
◎ 언론시민연대 그대들은 누구편?
'이승복 학살 사건'이 거짓이라고 주장한 김 전 미디어오늘 전 편집장과 김 전 언론시민연대 전 사무총장이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고 있다.
네티즌들은 9살의 어린 아이가 무장공비들에게 죽음을 당한 것도 안타까운데 그것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이승복은 실제 인물이며 이승복 기념관에 가면 알 수 있듯이 이 군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있다"며 "역사를 허위로 왜곡시키려는 자는 처벌받아도 마땅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네티즌 joy88sky는 "언론 시민단체 이것들도 빨갱이라니까. 시민단체 상당수가 이번 일심회와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빨갱이 시키들. 저런 것들은 징역이 아니라 사형을 시켜야 한다. 할 짓이 없어서 저런 걸 왜곡하냐?" 라며 언론시민단체에 강한 반발심을 드러냈다.
네티즌 knh411127는 "오~~! 승복아 유명을 달리 해서도 네가슴에 피멍이 들었겠구나! 이제 모든 진실이 밝혀저 살아 있는 우리의 마음이 이제는 가벼워졌다.
그 동안 너를 생각하면 그 천추의 한을 어쩔 수 없었는데 대법원 확정 판결로 너와 우리가 우리는 죽었다 소생한 느낌이다. 너는 이제 구천에 떠돌지 말고 좋은 마음으로 천국에 가거라! 다시 한번 너의 명복을 빈다"라며 이번 판결에 찬성하는 한편 이 군의 사건을 거짓으로 몰아간 시민단체들을 비꼬았다.
네티즌 teratoma111는 이 군이 정말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적군이 남의 지역에 불법으로 들어와서는 그것도 무장공비(공산당)가 일가족을 살해하고 그것도 9살 어린얘의 입을 찢여 죽였다. 그 아이가 무슨 말은 하던 공산당 무장공비 적군이 우리 9살 어린아이를 입을 찢어 무참히 학살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아이가 무슨 말을 했던"
이라며 이 군이 무엇때문에 죽었는지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무장공비가 남한에 쳐들어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네티즌 songa68는 "이승복 사건을 왜곡해서 무엇을 얻어려고 하는 건지. 할 일 더럽게도 없는 인간들인 모양이군. 왜곡해서 공산당이 입을 찢을 정도로 악랄한 족속들이 아니란 것을 알릴려고 그랬나? 한심하긴."이라며 시민단체를 비판했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한 것은 조작됐을 거라 주장했다. 그들이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그 때 당시 이 군의 나이다. 이 군이 무장공비들에게 피살됐을 때 나이가 9살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 군이 공산당이란 개념조차 잘 알지 못했을 나이에 공산당이 싫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수의 네티즌들은 그 때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군이 피살 되었을 당시는 북한 간첩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즉, 북에 관한 감정이 안 좋았을 시기고 '반공' 감정이 만연해있을 시기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네티즌 suzhy는 "이승복이 어렸는데 알긴 뭘 알았냐고? 그당시 이승복이 반공교육에 쓸모있었다고 하는 넘도 있는데 이승복이 쓸모가 있던던게 아니라 그 반공교육의 효과가 이승복한테서 나타난거다."라며 이 군을 이용하여 반공교육을 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이 군이 반공교육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네티즌 myji02도 그 때 당시의 분위기를 봤을 땐 이 군이 충분히 공산당이 싫단 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국민학생이라면 그냥 공산당이 싫어라고 말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반공교육이 얼마나 심했는지 너희들은 모르지. 그 때 당시 국민학생들은 공산당이 뭔인지도 모르면서 반공을 외쳤다"라며 그 때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네티즌 tjrwjraus1도 그 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 군이 공산당이 싫다고 말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반공교육으로 인한 것이 아닌 사회 분위기 흐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는 김일성의 남침으로 나라가 쑥대밭된 직후 아니냐? 그럼 어린이든 어른이든 공산당에 진저리치고 싫어하는게 정상 아니냐?
근데 게시판에 좌빨놈들 몇 마리는 어린애한테 반공 가르쳐서 죽었다니? 어린이를 죽인 무장공비들에겐 한 마디 말도 안하고 억울하게 죽은 이승복과 그 당시 정권을 욕하네?" 라며 이 군이 공산당이 싫다는 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첫댓글 어떻게 이런 사건에 저렇게 적은 형량이 나왔을까?
과연 대한민국의 사법기관을 믿을 수 있나?
1000만 크리스찬이여 회개하며 예수님의 마음이 어디에 계신지 잘 생각해봅시다,
정말 형량이 너무 적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