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댓글발렌스 황제가 이민족들을 받아들이고 인력공급처로 삼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로 끝을 맺었죠.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서고트족을 흡수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성공적이었지만(고트족출신 집정관까지 나옵니다. 알라리크도 그리스어를 아테네인보다 더 잘했데나 뭐래나) 대제가 너무 빨리 죽었고 그 이후 이런 유화-흡수정책기조가 엉망이 되면서 실패, 결국 로마까지 약탈당합니다. 야만족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흡수하는 건 전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성공한다면야 좋지만.
음...... 전 비잔틴 쪽 역사는 일부 밖에 모르니;;; 무지한 제 의견으로는 어차피 전투로 끝장났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전투전의 전력에 변화를 줄 수는 있겠습니다만...어쩌면 전쟁이 안 일어났을 수도 있고. 그렇다 치더라도 제국도 오래되었으니. 아리우스 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2. 문화적으로 너무 이질적으로 동화시킬 건덕지가 없습니다. 동화자체도 백년이 넘게걸려야할 문제인데 이걸 장기적으로 추진한다고 해도 왕으로 치면 3대 4대 정도입니다. 그 동안 문제가 없다면 모를까.. 대개는 문제가 생기죠..
3.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언급하신 애들의 대부분은 유목민족입니다.(불가르, 투르크)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국가체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지도자를 섬깁니다. 고로 애들의 충성은 1대에 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대에 충성을 받아낼려면 여전히 실력을 보여야 가능하지요.. 하지만 이게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서
말 안듣는 새퀴들은 주변애들을 충동질 하거나 밀어줘서 조져버렸습니다(....) 당이 워낙 부유한 강대국이다보니 위구르 같이 군사적으로 당을 밀어낼 능력이 충분한 나라들 조차도 중국 공주와 결혼해서 그 권위를 인정하고 떡고물이나 받는 쪽을 채택하는 현실정치가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_-;;
게다가 여타 부족 집단과 달리 당 밑에 있는 애들은 한 두번 패한다고 지도자 모가지가 날라가는 식이 아니라서 당의 지원을 받고 순식간에 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최종적인 승자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애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죠..
주변애들이 감히 건드를 수준도 안될 정도로 막강한 애들이 있긴 했는데.. 이건 수십년 동안 당의 정규군대가 동원되어서 조져버렸습니다. 이 대표적 케이스가 고구려와 돌궐인데 고구려의 경우 원래 거주지역이었던 만주-한반도에서 수천리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통치했죠.. 그래서 나온 장군 중 하나가 고선지고..
당의 경우도 성공한 것은 태종 이후 약 50여년 정도입니다. 측천무후 시기에 들어서면 아시다시피 돌궐도 부활하고 발해도 탄생합니다. 다만 현종 시기에 고선지 등의 활약으로 서역과 토번은 잠시 통제하에 두지만 유명한 탈라스 전투의 패배로(고선지가 유명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패배 때문이군요;) 다시 서역과 토번을 잃습니다. 이후 당의 통치령은 수나라 때와 거의 흡사합니다.
다 일리 있고 옳은 말씀이긴 한데 "당을 제외하고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는 건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후기 로마 제국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야만족들 통제에 실패한 건 어디까지나 아르보가테스트로 인한 서부 야전군 반란-붕괴 사건 때문이었지 야만족들 자체의 역량과 의사에 달린 문제가 아니었으며, 또한 비잔티움 제국 때에도 "국경 지대가 아니라 거주지에서 완전 반대쪽으로 보내버리거나" 혹은 아예 야만지에 정착촌을 건설해가면서 압박해들어가는 이스라엘틱 정책이 꽤 재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 발렌스 황제가 이민족들을 받아들이고 인력공급처로 삼으려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로 끝을 맺었죠.
테오도시우스 대제는 서고트족을 흡수하려 한 적이 있습니다. 나름 성공적이었지만(고트족출신 집정관까지 나옵니다. 알라리크도 그리스어를 아테네인보다 더 잘했데나 뭐래나) 대제가 너무 빨리 죽었고 그 이후 이런 유화-흡수정책기조가 엉망이 되면서 실패, 결국 로마까지 약탈당합니다.
야만족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흡수하는 건 전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성공한다면야 좋지만.
아 발렌스황제의 그 고트족부분만 보면정말. 이지방총독들 너무잔인하더군요. 사람의 탈을쓰고 부모에게서 자식강탈하고 식량다빼돌려서 개고기나 갖다주고. 참.
음...... 전 비잔틴 쪽 역사는 일부 밖에 모르니;;;
무지한 제 의견으로는 어차피 전투로 끝장났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전투전의 전력에 변화를 줄 수는 있겠습니다만...어쩌면 전쟁이 안 일어났을 수도 있고. 그렇다 치더라도 제국도 오래되었으니.
아리우스 님의 의견은 어떠신지요?
흠; 이민자를 받아들이는것은 6c경 슬라브족의 발칸침공이후. 기독교로 개종을 시켜가면서 이내들을 아나톨리아로 이주시키는 사민정책을 펼칩니다. 아주욕을얻어먹다못해 별 소문을 다 달고산 의지의 인물인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그사람이지요.
역시 지도자 한 명의 영향이 크군요;;
혹시 전에 디씨역갤 아리우스햏?
맞습니다만. 뉘신지요 ?? ㅇㅅㅇ??
난 거기서 가입안하고 아무 이름이나 썼던 유동닉이라서 나도 내가 쓴 아이디가 뭔지 몰라요ㅋㅋㅋ
1.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걸 성공한 케이스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2. 문화적으로 너무 이질적으로 동화시킬 건덕지가 없습니다. 동화자체도 백년이 넘게걸려야할 문제인데 이걸 장기적으로 추진한다고 해도 왕으로 치면 3대 4대 정도입니다. 그 동안 문제가 없다면 모를까.. 대개는 문제가 생기죠..
3.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데.. 언급하신 애들의 대부분은 유목민족입니다.(불가르, 투르크)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국가체제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유능한 지도자를 섬깁니다. 고로 애들의 충성은 1대에 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음대에 충성을 받아낼려면 여전히 실력을 보여야 가능하지요.. 하지만 이게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서
당을 제외하고 성공한 케이스가 없습니다.
투르크의 경우 황제 죽고 아들이 어리니까 바로 반란 때린 케이스도 있는데(사실 투르크도 롬 투르크, 셀주크 투르크 등등 분파가 많죠..) 문제는 초원 민족들은 이걸 악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는 거죠..-_-;; 그럼 약자를 섬기리? 이게 애네들 사고방식입니다.
저런 사민정책이 성공할려면 아예 무장을 해재시킨 다음에 국경지대가 아니라 그들의 거주지에 완전 반대쪽으로 보내고 그것도 철저하게 분산시켜야 성공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재들이 빈민이 될 가능성이 무지 높으니 이것도 다 처리를 해야겠지요..
당나라는 어떻게 이민족을 통치 융화 시켰나요????
말 안듣는 새퀴들은 주변애들을 충동질 하거나 밀어줘서 조져버렸습니다(....) 당이 워낙 부유한 강대국이다보니 위구르 같이 군사적으로 당을 밀어낼 능력이 충분한 나라들 조차도 중국 공주와 결혼해서 그 권위를 인정하고 떡고물이나 받는 쪽을 채택하는 현실정치가들이 나올 정도였으니까요..-_-;;
게다가 여타 부족 집단과 달리 당 밑에 있는 애들은 한 두번 패한다고 지도자 모가지가 날라가는 식이 아니라서 당의 지원을 받고 순식간에 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최종적인 승자는 중국의 지원을 받는 애들이 되는 경우가 많았죠..
주변애들이 감히 건드를 수준도 안될 정도로 막강한 애들이 있긴 했는데.. 이건 수십년 동안 당의 정규군대가 동원되어서 조져버렸습니다. 이 대표적 케이스가 고구려와 돌궐인데 고구려의 경우 원래 거주지역이었던 만주-한반도에서 수천리 떨어진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통치했죠.. 그래서 나온 장군 중 하나가 고선지고..
오늘 마침, KBS1에서 고선지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하더군요.
당나라처럼 확실하게 하지않는이상 매우힘들군요 ;
당의 경우도 성공한 것은 태종 이후 약 50여년 정도입니다. 측천무후 시기에 들어서면 아시다시피 돌궐도 부활하고 발해도 탄생합니다. 다만 현종 시기에 고선지 등의 활약으로 서역과 토번은 잠시 통제하에 두지만 유명한 탈라스 전투의 패배로(고선지가 유명한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패배 때문이군요;) 다시 서역과 토번을 잃습니다. 이후 당의 통치령은 수나라 때와 거의 흡사합니다.
결국 칼로 일어서는자 칼로 망하는군요...
다 일리 있고 옳은 말씀이긴 한데 "당을 제외하고 성공한 케이스"가 없다는 건 너무 성급한 결론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후기 로마 제국도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야만족들 통제에 실패한 건 어디까지나 아르보가테스트로 인한 서부 야전군 반란-붕괴 사건 때문이었지 야만족들 자체의 역량과 의사에 달린 문제가 아니었으며, 또한 비잔티움 제국 때에도 "국경 지대가 아니라 거주지에서 완전 반대쪽으로 보내버리거나" 혹은 아예 야만지에 정착촌을 건설해가면서 압박해들어가는 이스라엘틱 정책이 꽤 재미를 보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