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비 찰튼-지미 그리어브스(62,66년 월드컵 출전)-제프 허스트(66, 70년 월드컵 출전)-케빈 키건(82년 월드컵 출전)의 대(代)를 이은 잉글랜드 스트라이커가 게리 리네커다.
1960년 레스터에서 태어난 게리 윈스턴 리네커는 지역 클럽팀인 레스터 시티에서 볼을 차기 시작해
18세 때 톱팀에 데뷔했다. 초창기엔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으나 81/82시즌에 17골을 기록한 것을 계기로 매시즌 26골, 22골을 터뜨렸고, 84-85 시즌 24골로 리그 득점왕에 등극하며 자연스레 잉글
랜드 대표팀에도 선발(84년)됐다.
그 이듬 해 시즌 에버튼으로 이적한 리네커는 입단 첫 해 30골을 터뜨려 2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고,
리그 연간 최우수 선수상까지 수상했다.
리네커는 에버튼에서의 상승세를 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이어 나갔다.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는 그다지 강한 전력이 아니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 지 않았다.
그 예상은 대회 초반까지 맞아 떨어졌다.
잉글랜드는 조별 리그에서부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첫 게임인 포르투갈戰에서 1대0으로 패했고, 이어 벌어진 모로코와의 게임에서는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특히 모로코戰 때 전반전 종료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팀의 핵심인 브라이언 롭슨이 어깨 탈구로 교체 되어 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브라이언 롭슨의 전열 탈퇴는 잉글랜드로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게임 상대는 포르투갈을 1대0으로 이긴 강호 폴란드.
경기 전, 예상은 보니에크가 이끄는 폴란드의 우세였다.
잉글랜드는 폴란드에게 패하면 조별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보비 롭슨 감독은 폴란드戰에서 주전 4명을 교체 시키는 등 파격적인 전술로 임했는데 이 모험이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이 날 리네커가 헤트트릭을 기록하며 존재를 과시했다.
폴란드를 골득실 차로 누르고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잉글랜드는 그 여세를 몰아 남미의 강호 파라
과이 마져 3대0으로 완파했다. 리네커는 파라과이戰에서도 2골을 터뜨리며 월드컵 득점왕 레이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탄력을 받은 잉글랜드는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 8강전에서 만났다.
이 날 잉글랜드는 전반전에 수퍼스타 마라도나를 비교적 잘 마크했다.
그러나 에이스 리네커도 전반전 내내 아르헨의 스토퍼인 루게리에게 철저히 봉쇄 당했다.
승부는 결국 후반전에 갈렸다.
후반 시작 5분 경에 아르헨의 발다노(스타 클래식 7)가 잉글랜드 페널티 에이리어 안으로 볼을
띄워 주자 뛰어들던 마라도나가 잉글랜드 GK피터 실튼의 머리 위로 볼을 넘겨 득점했다.
머리가 아닌 손으로!!
그 행위를 주심과 선심들이 놓치고 만 것이다.
그 골이 득점으로 인정되자 GK피터 실튼을 비롯한 잉글랜드 선수들이 주심에게 달려가 강력히 항의했으나 받아 들여지질 않았다.
4분 후, 하프라인 근방에서 볼을 키핑한 마라도나가 그대로 드리블을 치며 잉글랜드 수비수 5명을 제치고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무려 60여 미터 단독 드리블이었다.
잉글랜드는 후반 35분 경 반스의 크로스를 리네커가 헤딩으로 득점하며 추격을 시도했으나 끝내 동점골을 뽑지 못하고 아르헨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도 이 대회에서 리네커는 잉글랜드 선수 사상 최초로 월드컵 득점왕(6골)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월드컵 득점왕 리네커는 86-87시즌에 스페인의 명문인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는데 바르셀로나에서도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리네커의 바르셀로나 시절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시합이 하나 있다.
그 시합을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다.
1987년 1월 31일 바르셀로나VS레알 마드리드.
당시 두 팀의 시합은 수위(首位)팀의 대결이었다.
시합 전, 바르셀로나는 승점 36으로 수위를 달리고 있었고, 레알 마드리드는 35점으로 그 뒤를
바싹 따라 붙고 있었다. 이 게임에서 리네커가 헤트트릭을 기록했다.
이 날 리네커는 노우캄푸 스타디움에 운집한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을 천국으로 인도했다.
리네커의 헤트트릭 후, 레알 마드리드는 발다노의 골과 우고 산체스(스타 클래식 12)의 골(페널티킥
2골)을 터뜨리며 3대3으로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는데 경기 후 관중들은 5분 이상 리네커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을 정도니까......
* 바르셀로나 시절의 게리 리네커
리네커가 스페인 팬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은 이유는 플레이 면에서뿐 아니라 온화한 성품과 품격 높은 매너를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리네커는 스페인 리그에 진출한 후, 3개월 만에 카타루니아 방언(方言)을 익혔다고 한다.
많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그 나라 말을 익히지 못해 성공 못한 예를 생각하면 리네커의 자세는 너무도 이상적이고 또 본 받을 만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셀로나 감독이 잉글랜드인 테리 베나블스에서 요한 크루이프로 바뀌면서 리네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리네커는 바르셀로나에 진출한 첫 시즌에 38시합/21골을 기록했으나
크루이프가 감독이 되면서 전,후반 90분을 풀로 뛴 게 고작 6시합 밖에 되질 않았다.
이 사태를 보고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인 보비 롭슨이 크루이프 감독을 맹렬히 비난했다.
‘요한 크루이프는 잉글랜드 축구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가 리네커를 기용 안하기 때문에 언론도 그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리네커는 잉글랜드의 재산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리네커를 지켜줄 필요가 있다. 이런 상태라면 리네커가 하루 빨리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게 낫다!‘고
롭슨 감독은 분개했다.
또한 에버튼에서 리네커를 지도한 적이 있는 하워드 켄델(당시 에슬레틱 빌바오 감독)도 ‘리네커는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스트라이커다. 그와 같은 선수를 기용 안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보비 롭슨 말에 힘을 실었다.
리네커는 바르셀로나에서 3시즌 동안 활약하면서 국왕배와 컵위너스컵 우승에 공헌 했으나 결국 요한 크루이프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89-90시즌에 토트넘으로 이적 했다.
리네커는 토트넘에서 ‘개성파' 게스코인과 절묘한 콤비를 이루며 그 시즌에 24골로 세 번째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그 이듬해 시즌에는 FA컵 우승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90년 이태리 월드컵에 큰 기대를 걸고 출전했다.
노장 GK피터 실튼과 브라이언 롭슨 그리고 리네커가 건재했고, 흑인 라이트윙 반스의 실력이 본궤도에 올라섰다. 또한 폴 게스코인, 플레트 등의 '젊은 피'가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기에 4년 전 월드컵 때 보다 훨씬 더 안정된 전력으로 대회에 임했다.
잉글랜드는 조별 예선 첫 게임인 아일랜드戰에서 예상 밖의 졸전 끝에 1대1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리네커가 첫 골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2차전 상대는 네덜란드.
잉글랜드는 강력한 우승 후보인 네덜란드를 맞아 아일랜드戰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였다.
특히 네덜란드의 키 플레이어인 루드 굴리트를 완벽하게 마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득점을 올리는데 실패하면서 결국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잉글랜드는 라이트의 결승골로 이집트를 1대0으로 누르고 16강에 진출했다.
잉글랜드VS벨기에의 16강전은 매우 빠르고 산뜻한 경기로 진행되어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해주었다. 벨기에는 엔조 시포와 클레망스를 앞세워 공격을 전개 했고, 잉글랜드는 반스, 와들 두 수준급의 윙이 좌,우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려주며 벨기에 문전을 위협했다.
그러나 양팀 모두 전,후반 득점을 올리지 못했다. 연장전에 들어가서는 양팀이 서로 매우 조심스럽게
경기를 진행하다가 연장 후반전 막판에 잉글랜드의 플레트가 극적인 결승골을 터뜨렸다.
잉글랜드의 8강전 상대는 대회 최고의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카메룬!
잉글랜드는 훌리건 문제와 주장인 브라이언 롭슨이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인해 고국으로 귀국을 했기 때문에 팀 분위기가 가라앉은 상태였다.
잉글랜드는 전반 25분 플레트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기선을 잡아 나갔다.
카메룬은 후반전에 백전노장 로제 밀러를 투입하며 반격에 나섰는데 후반전 15분 경 잉글랜드 페널티 에이리어 내에서 게스코인이 로제 밀러에게 반칙을 하는 바람에 페널티킥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상승세를 탄 카메룬은 4분 뒤 로제 밀러의 스루패스를 받은 에케케가 역전골을 터뜨렸다.
분위기는 완전히 카메룬 쪽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잉글랜드엔 '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 게리 리네커가 있었다.
경기 종료 10분 전, 리네커가 카메룬 GK은코노의 태클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었다. 이 페널티킥을 리네커 본인이 직접 성공시켜 2대2 무승부를 만들었다.
기사회생한 잉글랜드는 연장전에 들어서 카메룬에게 결정적 찬스를 몇 차례 허용했으나 운이 따라주었다. 위기를 모면한 잉글랜드는 연장 전반전에 카메룬 페널티에이리어 안에서 리네커가 게스코인의 패스를 받으려고 움직일 때 카메룬 GK은코노에게 걸려 넘어졌다. 또 다시 페널티킥을 얻은 것이다.
이번에도 킥커는 게리 리네커!
리네커는 강력한 인스텝슛으로 골 네트를 가르며 4강 진출을 결정 지었다.
잉글랜드는 16강전부터 연속 3게임 연장전을 치루었기 때문에 선수들 체력이 거의 바닥을 들어낸 상태에서 강적인 서독과 준결승전을 치루게 됐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예상을 뒤엎고 선전 했다.
이 날 리네커는 서독이 자랑하는 강력한 스토퍼 위르겐 콜러의 밀착 마크를 당하면서도 순간순간 번뜩이는 플레이를 펼쳤고, 와들과 게스코인의 세련된 패스웍은 인터밀란 트리오(마테우스-브레메-클린스만)를 압도했다.
전반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잉글랜드는 후반전에 접어들자 체력 열세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후반전 14분 경에 잉글랜드 진영에서 서독이 프리킥을 얻었다.
슛이 좋은 서독의 안드레아스 브레메가 강하게 프리킥을 했는데 이 볼이 벽을 쌓고 있던 플레트의 몸을 맞고 높이 치솟으며 GK피터 쉴튼의 머리 위를 넘어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피터 실튼이 정상적인 위치에 서 있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볼이었는데 실튼이 앞으로 나온 바람에 골을 먹은 것이다.
잉글랜드는 총공세에 나섰다.
후반 30분이 지날 무렵 서독 페널티에이리어 내에서 리네커가 위르겐 콜러의 실수를 듬타 기어코 동점골을 터뜨렸다. 역시 리네커였다!
그 후 양팀은 연장전에서도 득점을 올리지 못하고 승부차기에 들어갔는데 결국 잉글랜드의 다섯 번째 킥커인 와들이 실축을 해서 서독에게 4대3으로 패하고 말았다.
승부차기 패배 후 게스코인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찡~~하다.
게리 리네커는 기존의 유럽 스트라이커들과는 달리 매우 섬세한 플레이를 했다.
유럽의 정통파 센타포오드들과 비교해 신체적 조건(신장 177cm)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고, 준족을 자랑하지도 않았지만 탁월한 위치 선정과 순발력으로 득점을 양산해 내는 감각적인 스트라이커였다. 특히 남미 스트라이커를 연상케하는 부드러운 볼 터치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리네커는 양 발을 모두 완벽하게 사용했고 헤딩 능력 또한 수준급이었다.
리네커는 1992년 잉글랜드 대표팀 유니폼을 벗고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에이트에 입단했으나
도중 부상으로 인해 전혀 활약을 못하고 94년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리네커는 잉글랜드 대표팀 통산 48골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49골의 보비 찰튼에 이은 역대 2위에
해당 된다. 여담이지만 92년 5월 17일 브라질과의 친선 시합 때 리네커가 페널티킥을 실축했는데 만일 당시 페널티킥을 성공 시켰다면 보비 찰튼과 타이 기록을 세우는 것이었다.
리네커는 20여년 간의 현역 시절 동안 단 1장의 옐로우 카드를 받은 적이 없는 선수로도 유명
하다. 아마도 이러한 선수는 리네커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걸로 필자는 알고 있다.
리네커는 시합 때 상대 선수 및 주심/부심을 존중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도 늘 겸허하고 친절한 자세로 타인을 대했다. 장남이 중병(필자는 백혈병으로 알고 있음.)을 앓고 있을 때 조차도 그 태도는 변함 없었다고 한다.
이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92년 12월 21일 리네커에게 훈장을 수여 했다.
게리 리네커는 축구 실력 뿐 아니라 '사상 최고의 페어플레이어'였기에 지금까지도 전세계
축구팬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 리네커는 은퇴 이후 TV 진행자로 활약중이다. 지난 주에 열린 영국 TV/라디오 시상식에서 진행자상을 받고 소감을 밝히는 리네커.
게리 리네커(Gary Lineker)
국적: 잉글랜드
나이: 1960년생
포지션: 센타포오드
신장: 177cm
소속팀: 레스터 시티(74/85)-에버튼(85/86)-바르셀로나(86/89)
-토트넘(89/92)-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에이트(92/94)
잉글랜드 대표팀 데뷔: 1984년
A매치 기록: 80시합/48골
월드컵 출전: 86, 90년 대회.
주요 개인 타이틀
84-85시즌 리그 득점왕(레스터 시티)
85-86시즌 리그 득점왕(에버튼)
89-90시즌 리그 득점왕(토트넘)
86년 멕시코 월드컵 득점왕(6골)
Statistics
첫댓글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