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공소시효 폐지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흉악범에게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하겠단다. 그 예로, 화성연쇄살인사건이나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을 들었다. 옳거니! 그렇다면 제보하고 싶은 사건이 있다. 한둘이 아니다. 그중 하나를 우선 이야기해보자.
이 땅에는 수많은 살인의 목격자들이 있다. 내가 스물두 살 되던 해, 강경대와 김귀정이 경찰의 손에 죽었다. 제주 4·3항쟁, 보도연맹 학살, 국민방위군 학살, 광주항쟁… 일일이 적자면 이 지면으로는 턱도 없을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 모두는 명백한 타살이었다. 작년 봄에,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뒤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현장에 간 적이 있었다. ‘강제연행 강제노동 희생자를 생각하는 홋카이도 포럼’이라는 단체에서 진행하는 일이었는데, 일본인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일본인들한테 한국전쟁 희생자 유해발굴 현장은 절대 보여주면 안된다는 얘기였다. 그랬다가는 강제징용 희생자 문제 정도는 시쳇말로 ‘껌’이라고 여기게 될 거라는 얘기였다. 그렇다. 우리는 참혹한 살인 사건에 희생당한 수십만의 주검이 묻혀 있는 땅 위에 세운 화려한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이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은, 언론에서 알려준 바, 목격자나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현대사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있는 그 수많은 살인 사건에는 그 만큼 많은 목격자와 증거가 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박포가 명대사를 날렸다. 일곱 다리만 건너면 명나라 황제와도 선이 닿는단다. 우리는 그런 땅에서 살고 있다. 일곱 다리까지 갈 것도 없다. 한 다리만 건너면 역사라는 이름으로 묻혀 있는 수많은 살인 사건과 그 목격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왜, 즉각 수사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이것을, 살인이 아니라 역사라 부르는가. 사람이란 참 재미있는 것이,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집에서는 하룻밤도 발 뻗고 자기 힘들지만, 수십만의 원혼이 묻혀 있는 땅에서는 잘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니까 그 수많은 학살의 용의자들 혹은 학살자의 후계자들은 뻔뻔스럽게도 공소시효 따위는 겁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활동에 종료를 선언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살인 사건의 공소시효는 폐지된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살인의 목격자와 희생자들은 하루하루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전쟁 목격자라 하면 최소한 일흔 이상의 노인들이다. 그런가 하면, 광주 학살 주범으로 지목된 노태우는 병원 특실에서 대한민국 최고 의사들에게 둘러싸여 생의 마지막 고비를 맞이하고 있단다. 결국 국립묘지 안장으로 끝날 것이다. 바로 그런 2011년의 12월이다. 다가오는 2012년, 우리는 얼마나 진실에 더 다가설 수 있을까. <이현 | 동화작가>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