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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풍의 언덕’의 스산한 페나인 황야로 떠나다 | |||
이동진 닷컴 | 기사입력 2007-11-29 11:03 | |||
[이동진닷컴] (영화의 촬영지를 순례하는 ‘세계영화기행’을 연재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등장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거대한 바위 울룰루와 일본의 바닷가 작은 마을 아지초를 시작으로,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각지에서 찍은 영화의 궤적을 밟아나갈 예정입니다.)
상쾌한 아침이었다. 잉글랜드 북부 요크셔 데일스 국립공원 인근 작은 마을 세틀의 시설 좋고 친절한 B&B(Bed&Breakfast-영국식 아침식사와 잠잘 곳을 제공하는 영국 특유의 작은 숙박시설)에서 숙면을 취한 뒤 창 밖의 화사한 햇살과 지저귀는 새소리에 자연스레 잠에서 깼다. 영국에서 이렇게 하루를 연 것은 처음이었다. 모처럼 아침도 먹었다. 계란 프라이 두 개가 따뜻했던 푸짐한 식사였다. 영국인들처럼 홍차에 우유도 넣어봤다. 부드러웠다. 격정으로 휘몰아치는 사랑을 상상할 때 제일 먼저 떠올려지는 이야기는 ‘폭풍의 언덕’이 아닐까. 영화 ‘폭풍의 언덕’(1992년. 주연 줄리엣 비노쉬, 랠프 파인즈)의 흔적을 찾아 떠난 날, 영화와 원작 소설 속 스산한 풍경과 악천후를 상상하며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시작은 의외로 달콤하고 평화로웠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도 처음엔 그랬다. 버려진 아이 히스클리프를 아버지가 폭풍이 휘몰아치는 언덕의 집으로 데려온 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연인인 듯 오누이인 듯 즐거운 나날들로 숙성해갔다. 첫 행선지인 말럼 코브(Malham Cove)를 향해 가면서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바람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잉글랜드 북부 마을들의 인상적인 두 줄 돌담 사이로 급경사의 좁은 산길을 차를 타고 천천히 달릴 때, 코 끝을 향기로 간지럽히는 바람이 더없이 신선했다. 말럼은 7~8세기에 새로운 땅을 찾아온 몇몇 가족들이 세운 산 속 작은 마을이었다. 낮엔 목장 울타리를 두르고 땅을 일구다가 밤이 되면 늑대로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해 교대로 불침번을 서면서 아주 조금씩 개척해간 곳이었다. 폭포와 시냇물이 어우러진 석회암 지역 말럼 코브는 영화 속에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이 둘만의 사랑을 나누는 곳으로 등장했다. 에밀리 브론테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영화 ‘폭풍의 언덕’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1939년작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찍었다. 실제 ‘폭풍의 언덕’을 탄생시킨 지역에서 촬영한 영화는 줄리엣 비노쉬와 랠프 파인즈가 각각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연기했던 1992년작이었다. 폭포로 가는 길은 찾기 쉬웠다. 음표 사이를 구르듯 다양한 음역을 옮겨 다니는 시냇물 소리의 근원을 향해 쫑긋대는 귀의 본능에만 따르면 됐다.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산책하는 부부의 뒤를 따라 걸을 때, 햇볕이 어깨에서 포말로 부서졌다. ‘폭풍의 언덕’의 저주받은 사랑에도 볕은 있었다. 폭포는 말라 있었다. 텅 빈 폭포의 수십미터 수직 절벽 위를 네 명의 남자가 팀을 이뤄 올랐다. 폭포 아래 유량이 많지 않은 계곡 근처 바위에 앉았다가 물 속 나무에 돌로 동전을 박아 넣는 한 남자를 보았다. 나무에는 이미 동전이 수도 없이 박혀 있었다. 여행자들은 세상의 구석구석을 떠돌며 기어이 흔적을 남겼다. 어떤 연인들은 바위에 하트 문양을 새기고, 어떤 연인들은 철망에 자물쇠를 채운다. 어떤 이들은 모래밭에 돌탑을 쌓고, 또 어떤 이들은 나무에 동전을 박아 넣는다. 여행은 달콤하지만 동시에 허망하다. 가져 온 사진 몇 장의 희미한 평면 추억과 두고 온 잡다한 물건들의 까무룩히 잊혀져가는 잔영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잠시 머물렀던 누군가의 순간은 영겁 속에 산산이 흩어져버린다. 그리고 무너진 돌탑과 희미해진 낙서, 녹슨 자물쇠와 닳아버린 동전은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로운 여행자의 눈동자를 텅 빈 세월의 이명 속에서 무심하게 맞는다.
말럼을 떠나 하워스(Haworth)에 도착할 때쯤 날은 점점 흐려졌다. ‘폭풍의 언덕’의 본고장인 하워스는 에밀리 브론테가 역시 작가로 명성을 날렸던 다른 자매들과 함께 살던 곳이었다. 예상 외로 하워스는 벽돌이 촘촘히 박힌 거리와 예쁘게 단장된 가게들이 인상적인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자매들이 자란 집은 ‘브론테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1820년부터 1861년까지 브론테 가의 소유였던 그 이층집에는 초상화와 편지, 각종 가구가 전시되었다.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물렀던 것은 때묻은 붉은 쿠션이 하나 놓여 있는 검은색 소파. 에밀리 브론테가 숨을 거두었던 곳이었다. 광포한 사랑 이야기 하나만을 세상에 남기고 그녀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쉬던 그 소파는 두 사람 정도가 앉을 만한 작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때 에밀리는 서른살이었다. 전시장의 끝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묘비가 나란히 서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가 기증한 석판이었다. 그 앞에서 연인들이 한동안 묘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을 남자에게 내맡긴 여자는 오른손을 들어 ‘히스클리프, 서기 1802년’이라고 쓰인 글자 하나하나를 어루만졌다. 수많은 이들의 젊은 날을 뒤흔들어 놓은 오래된 사랑의 감촉.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현실의 남녀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에 매혹되어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허구의 슬픔을 자신들의 삶에 접종함으로써 면역을 얻으려는 걸까. 이럭저럭 만나서 고만고만하게 헤어지는 현실의 사랑은 미쳐 날뛰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신화적 사랑의 파편 속에서라도 기필코 에너지를 끌어내고 싶은 것일까. 박물관 옆의 하워스 교구 교회 뒤뜰은 마을 사람들의 비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를 비롯한 브론테 가족들은 지하 납골당에 따로 안치되어 찾아볼 수가 없었다. 허구의 사랑은 선명하게 묘비가 전시되고, 현실의 삶은 그 마지막이 숨겨져 있는 역설이라니. 브론테 가문의 세 딸과 아들 하나는 하나 같이 요절했다. 그러나 목사였던 아버지 패트릭은 천수를 누렸다. 아내와 아이들을 하나씩 떠나 보내고도 한참 뒤인 84세의 나이로. 교회 뒤뜰을 나서자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 이야기 대부분이 펼쳐졌던 황량한 언덕과 낡은 저택이 있는 탑 위딘스까지, 걸어갈 수 밖에 없는 산길은 왕복 4시간 거리였다. 어느새 해가 기울어가는 오후 3시. 페나인 황야를 향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이 기사의 후반부는 11월30일자 ‘이동진의 영화풍경’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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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밋게 슨 글 잘 보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