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데 또르메스(Alba de Tormes) 순례 ▶ 대 데레사 성녀의 팔과 심장이 보관되어 있는 갈멜수도원 성녀 대 데레사 성당
■ 알바 데 또르메스(Alba de Tormes)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
알바 데 또르메스(Alba de Tormes)의 뜻은 「동틀 무렵의 강」이라고 한다. 도시 이름이 참 낭만적이다. 또르메스의 알바 공작
알바 데 또르메스는 아빌라의 데레사 수녀님(1515~1582)이 Burgos에서 마지막 갈멜 수도원을 만들고 고향 아빌라로 돌아가다가 선종하신 곳이다.
성녀 데레사 수녀님은 가톨릭의 위대한 성녀 중 한 분으로 갈멜 수도원의 개혁가, 신비주의 종교문학의 기초를 닦은 분이란다.
Alba de Tormes: la Basilica Teresiana, piedras vivas
그는 19세 때에 아빌라에 있는 갈멜수도원에 입회해 30년을 그 안에서 생활했다 갈멜은 '포도밭'을 의미한다고..
그러나 수도원이 기부금, 헌금으로 부를 축적하고 심지어 왕족*귀족 출신 성직자들은 몸종과 함께 들어와 수도원에서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보게 된다.
Alba de Tormes, sepulcro de Santa Teresa
이를 개혁하고자 입회한지 30년 후 몇몇 수녀들과 뜻을 같이 하여 갈멜수도원을 나와 고행을 하게 된다.
아빌라, 살라망카의 황량한 지대를 지팡이 하나 짚고 걸어서 어떤 때는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데레사 수녀님이 원하는 스타일의 수도원을 설립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맨발의 갈멜 수도원」이다
*
나는 이번 성지 순례로 스페인을 오기 전에는 그냥 가톨릭 성녀들 중에 '성녀 대 데레사' 와 '성녀 소화 데레사'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았었는데.. 사전에 데이터 수집과 공부를 하면서 '성녀 대 데레사'에 대하여도 조금 알게 되었다.
대 데레사는 '아빌라의 대레사' 또는 '예수의 대레사'로 불리우고.. 성모님이 전구 하시는대로 사신 분이다. 소화 대레사는 프랑스 '리지의 대레사'로 불리운다.
* 갈멜 수도원, 성녀 대 데레사 성당
「맨발의 갈멜 수도원」은 초기 갈멜수도원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청빈, 가난, 기도, 관상, 고행을 주목적으로 하였으며..
성직자들은 평생 수도원 안에 살면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보속하는 뜻으로 육식을 금하고 딱딱한 침대에서 자며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난방을 하지 않았다고 또한 가족 면회도 철창을 사이에 두고 했다고 한다.
수녀님은 돌아가신 후 매장되었는데, 성녀로 시성된지 약 200년 후에 관을 열어보니 시신이 썩지 않았다고 한다.
알바 데 또르메스에는 성녀 대 데레사 수녀님의 한쪽 팔과 심장이 보관되어 있다. 시신의 일부는 몇몇 다른 수도원에 보관하고 있으며 그 외 나머지 부분은 이곳 성당 안 석관에 안치되어 있다.
* 성녀 대 데레사의 오른 팔 성녀 대 데레사의 심장 (Brazo de Santa Teresa de Jesus) (Heart de Santa de Teresa)
⊙ 가이드 소피아는 성녀의 유해는 사진을 찍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카메라가 습기에 찼는지 맛이 가는 듯 해서 폰카로 찍고 있는데 마침 잘 됐다.. 인터넷에서 퍼와서 올려 놓으니, 사진도 선명하네요 ^^
성녀 대 데레사와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 그리고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공통점이 있단다. 즉, 3분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청빈과 가난 속에서 생활을 추구했다.
♡ 흩어진 성녀의 유해
성녀가 선종한 방 오른편으로 조그마한 박물관이 꾸며져 있다. 여러 성물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유리벽 안에 놓여있는 성녀의 왼쪽 팔뼈와 심장이다.
순례객에게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느끼게 할 법도 하지만 이는 알고 보면 세인들의 불신과 다툼 그리고 기복신앙의 산물이나 다름없다.
대 데레사가 돌아가신 뒤 그녀의 탄생지인 아빌라와 임종을 맞은 알바 데 또르메스 사이에 서로 유해를 모시겠다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관을 열게 되었는데 시신이 부패하지 않았고 일부에서는 이 기적이 교회의 자작극이라는 소문도 돌았던 모양이다. 결국 성녀의 유해에 어떠한 약품이나 방부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시신에 칼을 들이대고 말았던 것이다.
한때 몰래 아빌라로 빼돌려졌던 성녀의 유해는 알바 공작이 로마에까지 탄원하여 결국 알바 데 또르메스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 복잡한 과정에서 성녀의 오른발과 턱의 일부는 로마에, 왼쪽 손은 리스본에, 왼쪽 눈과 오른손은 론다에, 그리고 손가락과 살 조각들은 아빌라를 비롯한 스페인 여러 곳으로 흩어졌다. 현재 알바 데 또르메스의 성모 영보 수도원 내 중앙제대에 모셔진 유해는 나머지 부분인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세인들의 소동과 광기가 빚은 끔찍한‘카니발리즘’이 아닐 수 없다.
미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알바 데 또르메스를 돌아보는 데에 두어 시간이면 족하다. 그러나 순례란 눈보다는 마음의 볼거리를 우선하는 여정이므로 이 마을을 방문할 이유와 가치는 충분하다고 본다.
또르메스 강을 건너 다시 호텔로 향하는 비좁은 국도에 석양이 지고 있었다.
4백여 년 전 어느 날의 이 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저 지평선 너머 마을로 사라지던 대 데레사의 마지막 뒷모습과 귀족의 딸로 태어나 기꺼이 고난의 길을 감수한 그녀의 생애를 되새기다 보면 어느덧 순례자의 눈가도 노을처럼 붉게 물들기 쉽다.
[출처 : 경향잡지, 2008년 5월호]
알바 데 또르메스 수도원에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두 분의 한국 수녀님이 지금 이곳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성녀 대 데레사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살고 계신다.
저희 순례자들을 맞이해 주셨고 성녀 대 데레사와 수도원에 대해 더 많이, 더 올바르게 순례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수고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없는 나는 무(無)요, 나에게 하느님은 전부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 안에서 힘차게 뛴 성녀의 심장은 분명 오늘도 교회와 순례자, 모든 사람들을 위해 힘차게 뛰고 있습니다.
* 수도원의 성녀 데레사 성당입니다. 성당 안에는 작은 박물관처럼 꾸며진 곳이 있는데, 성녀의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데레사 성녀의 팔, 심장이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요.
이곳은 성녀의 임종 순간을 재현해 놓은 곳입니다. 십자가를 품에 안은채로 "주님, 저는 교회의 딸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선종하셨다고 전해집니다.
** 대데레사 성녀의 시신이 모셔진 관이 있다.. 제대 뒤편으로 돌아 올라가면 관을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순례자들을 배려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중세시대 사람의 시신이 모셔진 관을 눈앞에서 대하다니.. 그것도 대데레사의 성녀의 시신이 모셔진 관을... 감동...또 감동이었다.
우리는 오늘 데레사 성녀의 유해가 모셔졌던 곳의 석관 뒤 소성당안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린다
신부님의 강론 말씀은 성주간을 시작하면서.. 각자 지금가지 살아 온 생을 주~욱 되돌아 보면서 반성하고 회개해 보라고 하면서 참회예절도 함께 해주신다.
오늘의 양형 영성체에 이은 평화의 인사도 역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였다. 37명 + 기사 알베르또까지 모두 38명이 돌아가면서 한명 한명 찐하게 포옹하며서 평화의 인사를 나누었다.
* 박물관 한쪽에는 데레사 성녀의 훌륭한 협조자였던 십자가의 성 요한의 뼈조각이 모셔져 있습니다.
우리의 호프 소피아 자매는 또 다시 '유해는 사진 찍지마세요'말한다 우리라도 훼손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으면 좋지 않겠냐며
▷ 하기야 사진은 인터넷으로 퍼오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스킾하고..
1617년 스페인 국회는 성녀를 스페인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했고 돌아가신지 40년 되던 해인 1622년 로욜라의 이냐시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교황 그레고리오 15세는 성인 반열에 올리셨다.
1970년 9월 7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성녀 대 데레사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셨다
성녀가 교황님을 뵙기 위해 성지순례를 하다 로마에 도착해서는 "영원한 도읍, 로마" 라고 하시며 감격하시던 장면에서 한참 머물렀습니다.
⊙ 십자가의 성 요한(St. John of Avila)
1499~1569. 스페인 출생. 사제. 스페인 사제들의 수호성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도회 개혁에 앞장섰던 활동가였다.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는 "서정시인의 주보성인"일 정도로 주님에 대한 수많은 찬미시와 노래를 봉헌하여, 교회의 음유시인으로도 불린다.
성인은 교회 개혁과 영성 쇄신에 특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부패한 사제들과 나태한 신앙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며 올바른 삶을 살라고 촉구했습니다.
[출처 : 평화신문, 2010년 5월 9일]
성녀 대 데레사 성당 밖에서 담장 넝쿨 사이로 석판에 새겨진 성인의 시 한 구절을 볼 수 있었는데.. "하느님은 우물과 같아서 우리 각자의 그릇 크기만큼 채울 수 있다" 라는 내용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