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드'님의 글을 전제합니다.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The Well-Tempered Klavier)곡집 대해서 쉽게 말한다면, 바흐의 음악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균율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전에 음정을 잠깐 이야기 해야 하자면, 우리는 중학교 음악시간에 두 음 사이의 거리를 음정이라 배웠습니다. 가령 낮은 도(C)에서 그 다음 높은 도(C) 사이에는 피아노 흰건반이 8개가 있는데 이것을 완전 8도라 합니다. 그리스어에서 octa-가 8이니까 흰건반이 8개인 완전 8도의 상태를 옥타브라고 하죠. 그런데 이 옥타브라는 거리는 두개의 음이 청각적으로 가장 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똑같은 음 두개가 내는 완전 1도와 아울러 절대 협화음정이라 합니다. 완전 8도의 음역, 즉 옥타브의 발견은 수학에서 0의 발견만큼이나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완전 8도의 거리에 있는 임의의 두 음은 진동수비가 언제나 1:2이기 때문이죠.
다시 피아노로 돌아가 보면, 낮은 도(C)에서 높은 도(C)까지가 옥타브인데, 낮은 도(C)건 높은 도(C)건간에 도(C)는 도(C)니까 도(C)가 하나라고 생각하면 흰건반이 7개인 셈이 되고 검은 건반이 5개, 그렇게 해서 모두 12음이 한 옥타브 안에 존재합니다. 이렇게 건반이 12개인 상태에서 건반과 바로 이웃한 건반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반음입니다.
이 반음이 단 2도로 진동수비가 항상 15:16인 불협화음정입니다.
요컨대 피아노 위에서 모든 건반은 바로 이웃한 건반과 반음 관계, 즉 단 2도의 상태로 평균되어 있다는것입니다. 이 평균된 조율을 평균율이라 부르며 오늘날의 모든 악기가 평균율로 조율이 됩니다. 평균율로 조율이 된 옥타브 안에서 12개의 음은 어떤 음이던지 으뜸음이 되어 그 음에서 시작하는 조를 만들 수 있으며, 또 각각의 으뜸음에서는 장조와 단조의 2개 조가 나오니까 모두 24개 조가 평균율상에 존재하게 됩니다. 음율(temperament)은 음악에서 사용되는 음높이의 상호관계를 음향이론적으로 또는 수학적으로 규정하는 것을 음율(音律, temperament)이라고 하는데, 음율에서 기초가 되는 것은 음의 진동수가 아니라 진동수에 의한 비율입니다.
우선 피타고라스의 음계(pythagorean scale)는 3/2비율에 의한 5도를 차례 차례로 포개어 각 음을 확정하고, 그 정해진 음들을 모두 8도 안에 정리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순정율(純正律 ; pure temperament)은 피타고라스 음률의 가장 큰 단점은 무엇보다도 장3도의 불협화성에 있었으므로 이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음향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순정율입니다. 이것은 진동비 3/2의 5도와 5/4의 장3도를 기초로 하여 각 음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 음률에 의하면 주요 3화음을 순수하게 협화된 것으로 쓸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평균율(平均律 ;equal temperament)은 중전음률이나 순정율의 단점을 극복하고 정율의 과정을 거쳐 8도를 12개의 반음으로 평균하여 등분하는 오늘날의 평균율이 가장 합리적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불순한 음향이 평균율의 결점이지만, 모든 온음과 반음의 관계가 2:1이 되고, 쉽게 다른 조로 바꿀 수 있다는 실제면에서의 합리성이 바흐에서부터 시작하는 유럽 음악의 중흥과 함께 12평균율이 전세계적으로 보급되었습니다.
평균율을 처음 들고 나온 사람은 베르크마이스터(Andreas Werckmeister)였습니다. 그리고 바흐는 베르크마이스터의 평균율이 실험대 위에 올려져 있을 때, 이 평균율이 순정율이나 피타고라스 음율 보다 우월함을 그의 평균율로 입증하였습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BWV 846-69까지 24곡으로 구성된 1권과, BWV 870-93까지 24곡인 2권으로 되어있습니다. 12음계의 모든 조, 즉 24조 편성으로 각각에 전주곡(Prelude)와 푸가로 번호를 붙인다면 24번까지 있고, 또한 1권과 2권으로 48개의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곡입니다. 각 권에 수록된 24곡은 "평균율"이라는 이름에 알맞게 평균율 상의 24개조를 하나씩 채용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하나의 곡들은 그 조에 해당하는 전주곡과 푸가로 이원화 되어 있어 바흐의 조형성를 보여줍니다.
푸가는 다성음악 가운데서도 구조적으로 가장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형식으로 선도(dux)라 불리는 주제가 제시되면, dux를 모방한 코메스(Comes) 따위가 선율적인 대위를 형성하면서 주제를 발전시킵니다. 이때 처음 제시된 으뜸조는 여러 관계조와 번갈아 나타나면서 지극히 입체적인 다성음악을 창조해내게 됩니다.
바흐의 "평균율"에서 푸가를 선도하는 격인 전주곡은 비교적 즉흥적인 악상으로 꾸며진 편입니다. 물론 대개의 바흐 작품들은 "즉흥적"이라는 수식어가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질만큼 계획된 형식을 준수하고 있습니다. 작곡은 우선은 바흐가 교육적인 목적으로 작곡했음이 명시되고 있어 다른 작품과는 성격이 매우 다릅니다. 바흐는 이곡의 스코어에 전혀 음악적인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연주자 해석이 주관이 될 수 있어 이곡의 표준적인 연주가 이거다라고 쉽게 말할 수가 없죠. 오늘날의 연주를 보면, 그 연주 시간이나, 연주 스타일이 그야말로 각양각색입니다. 심하게는 어떤 연주자의 연주는 피아노 입문자가 치는 바이엘이나 체르니와 같은 연주를 했는가 하면, 베에토벤의 소나타를 치듯 연주한 사람도 있습니다.
평균율곡중 가장 유명한 것은 1권의 첫번째 곡의 전주곡으로 구노의 아베마리아의 피아노 반주에 쓰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곡의 제목 중에 클라비어, 즉 피아노라고 되어 있지만, 이것을 지금의 피아노와 연관을 시키면 안됩니다. 바하의 시절엔 지금과 같은 피아노가 없어서 하프시코드, 혹은 챔발로라 불리우는 악기가 피아노의 전신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이 곡은 거기에 맞게 작곡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프시코드는 지금의 피아노 소리와는 아주 다릅니다. 부드러운 소리가 아닌 쇠줄을 내리치는 음의 강약이 없는 약간은 경쾌하면 가벼운 금속성의 소리가 납니다. 크기에 있어서도 지금의 것 보다는 매우 작고, 또 건반사이가 좁아서 연주자가 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챔발로는 현대의 피아노 같이 건반사이가 넓어 졌는데 이를 흔히 모던 챔발로 라고 부릅니다.
지금의 피아노나 악기 조율은 컴퓨터까지 동원하여 아주 정확하게 그 피치를 조절하고 튜닝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이러한 것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완벽한 조율이란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기가 어려웠습니다. 대개의 피아노 전공자에게 평균율에 대하여 물어보면 입시곡으로 연습하면서 연주상의 난점에 치를 떨어온지라 그 음악적 가치를 고의적으로 잊으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바흐는 평균율 하나 만으로 이미 서양음악의 천재소리 듣기에 충분합니다.
2권 분량의 48곡의 전주곡과 푸가의 평균율 곡집은 그 규모나 크기에 있어 형식적인 다채로움에 있어서 다른 작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대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였던 독일의 한스 폰 뵐로가 이 곡집을 피아노의 '구약성서'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을 '신약성서'로 비유한 것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평균율이 C장조에서 B단조까지 반음계적으로 올라가는 배열은 보히미아의 악장이었던 F.피셔의 "아리아도네 무지카"에서 바흐가 영감을 얻은 것이라 합니다. 제1권은 1772년에 출판되었는데 게르버의 전승에 의하면 대부분이 짧은 기간에 작곡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곡집은 쳄발로(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오르간 중 어떤 것을 대상으로 작곡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슈바이쳐에 의하면 클라비코드를 의해 작곡된 것이라고 단정했다 합니다. 슈바이쳐는 이 평균율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형식이나 구성때문이 아니라 이 곡들에 담긴 세계관, 즉 그의 종교성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곡집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베토벤,슈만,쇼팽등 많은 작곡가에게 영감을 준 것은 음악사가 이미 증명하고 있습니다.
처음 들으실 때는 약간의 딱딱함이나 지루함을 느끼실지 모르나 자꾸 듣다보면 점점 그 위대함이 느껴질 겁니다. 푸가라는 곡의 심오함을 알 수 있죠. 대위법 음악의 최고봉이 이 평균율 곡집의 푸가이니 대위법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들어 보시면 좋을 겁니다. 이곡은 듣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고 아주 아늑하며 평화스러우며 이 곡이 주는 정신적인 깊이는'우주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작곡경과 및 관련용어 해설
1. 작곡경과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된 각각 24개의 전주곡(프렐류드)과 푸가로 이루어진 두 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음집은 흔히 건반주자들에 의해 "48번" 또는 "구약성서"라고 불리운다.(반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신약성서"라고 불리운다.) 전주곡과 푸가는 각각 모든 장조와 단조로 작곡되어 있으며 이것은 이러한 형태의 최초 작품이다. 평균율 클라비어의 모델이 되었던 것은 피셔에 의해 1702년 발간된 아리아드네 무지카이다. 아리아드네 무지카는 24개 조 중 20개 조로 이루어진 간단한 3성 푸가를 포함하고 있는 짧은 즉흥전주곡이 담겨져 있다.(24개조 중 C#과 F#장조, e 플랫, b 플랫, g#단조가 없음) 바흐는 피셔의 작품에 대하여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작품 중 하나를 채택함으로써 피셔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있다.(2권 푸가 9번 E)
바흐의 빌헬름 프레드만을 위한 소곡집은 평균율 클라비어의 원형을 담고 있다. 1720년에 아들인 "빌리"의 교재로 쓰여진 이 작품에는 후에 평균율 클라비어 1권에 수록되어 잇는 11개의 전주곡이 담겨 있다.(C,c,d,D,e,E,F,C#,c#,e플랫,f) 이들은 수정없이 그대로 사용되거나(E, F,c#,e플랫,f) 상당한 수정(예를 들면,전주곡 C는 프레스토 환타지아, 아다지오 도입부, 알레그로 종결부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수정은 불협화음이나 변위음 등의 드라마틱한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었다. 초기의 작품을 재 작업하는 것이 바하의 평균율 클라비어 작곡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평균율 클라비어의 초기 재료중 하나는 작은 전주곡과 푸가이며 이것은 2권-15번 푸가(G장조)의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1722년에 만들어진 평균율 클라비어의 작품 제 1권의 완벽한 자필악보는 현재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며 베를린에 있는 Staatsbibliotek Preussischer - Kulturbesitz의 멘델스존 문서 보관소의 음악 모음집(Mus.ms. Bach P415)에 보관되어있다. 이 자료의 타이틀에는: 평균율 클라비어, 또는 모든 조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는(장조 3가지와 단조 3가지를 포함) 호기심 강한 젊은 음악가와 이 분야 전문가의 특별한 경험을 위해 1722년 요한 세바스찬 바하에 의해 작곡되었다고 적혀있다.
비록 1722년에 완성되긴 하였지만 바흐는 평균율 클라비어 작품 1권을 그후 20년간 4차례에 걸쳐 수정을 가했으며 1740년대에 마지막 작품이 완성되었다. 사후 50년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균율 클라비어 작품 1권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 갔으며, 건반 연주 레파토리의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고, 작곡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 베토벤은 어릴적 "48번"을 연주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작품 2권은 1744년에 완성되었으며(돈 프랭클린에 의하면 1728년에 시작되었다고함) 작품 1권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현재 하이든 도서관에 악보가 보관되어있다. 건반악기의 레파토리로써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는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으며 피아노 시험이나 작곡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 관련용어 해설
<1> 클라비어란?
바흐가 살던 시대에 클라비어는 모든 종류의 건반악기를 칭하는 말이었다.(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오르간이나 포르테피아노 포함). 클라이버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비스(clavis)로 건반 연주자에 의해 눌러진 기계적인 건반(machanical key)을 의미한다. 흥미로운 것은 바흐의 아들인 카를 필리프 엠마누엘 바흐(1714-1788)가 살던 시대에 "클라비어"는 저렴하고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던 클라비코드만을 의미하였다. 바흐가 평균을 클라비어를 작곡했을 당시에는 이 모든 악기를 염두에 두었었다.(Goldberg, 1995)
<2> 평균율이란?
평균율은 건반악기를 조율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조율체계는 음률(temperament)로 논의되었다. 바로크시대에는 건반악기의 범람으로 인해 이에 대한 음률이 큰 골치덩어리였다. 하지만, 이문제는 수천년동안 수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음악가들의 숙제거리였다. 이 문제의 근원은 '옥타브'를 8음계로 나눈 고대 그리이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반악기의 음률에 대한 문제는 아래와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하나의 현이 정확히 다른 현보다 2배 빠르게 진동할 때 (2:1의 비율로)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음정(interval)이 옥타브이다. 두개의 현이 2:3의 비율로 진동할 때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음정이 5도 이다. 문제는 우리가 건반악기에서 완전한5도와 완전한 옥타브를 동시에 조율하고자 할 때 발생한다. 수학적인 비정확성 때문에 2:1과 2:3을 동시에 조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결과 우리는 완전한 옥타브(완전8도)나 완전 5도 둘 중에 하나만을 가질 수 있다. 바흐가 살던 시절에 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근대 피아노에서 우리가 알고있는 음율(temperament)은 바하에 의해 주장된 것이 아니다. 평균율에서 모든 음정은 균일하게 불완전(equally imperfect)하다. 모든 음정을 균등하게 "조율하지 않음"을 통해 모든 조는 동일한 특성과
색깔 또는 Affekt를 갖게 된다. 평균율(equal temperament)과 다르게 바흐는 진화(revolving) 또는 평균율(well temperament)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접근방식에서, 몇몇 음정은 완전하게 조율되고 나머지는 불완전하게 남겨진다. 모든 평균율(well temperament)에서는 모든음정은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조를 사용한 작곡은 상당한 량의 불협화음이 각각의 조에 사용되며 상이한 특징을 보여준다.
위와 같은 평균율은 바로크시대에 사용되었으며 각각은 상이하게 불완전하게 조율된 음정을 포함하고 있다. 바흐의 제자였던 Kirnberger 3세의 조율방법이 바흐의 조율방법과 동일하다고 생각되어지고 있다. 몇몇 학자들은 Kirnberger 3세가 바흐로부터 이것을 직접 배웠다고 주장한다. 하프연주자들도 이러한 역사적인 평균율을 사용하고 있다.
<3> 전주곡(Prelude)
17세기 초반까지 전주곡은 악보를 가지고 연주된 것이 아니였다. 전주곡은 즉흥연주의 형태였으며 손을 풀고, 음향을 조정하거나 조율하고 이후 연주될 음악의 조성을 알려주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1675년 Thomas Mace는 "전주곡은 혼란스럽고 와일드하며 형태가 없으며 복잡한 음악형태로 어떠한 완벽한 형태나 일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고 (기껏해야) 동일조(one stop) 또는 조에서 다른 조'로의 무작위적인 움직임의 모임이며, 악기가 잘 조율되어 있는지 테스트 하기 위해 연주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William Byrd는 1612년 파르티아에서 첫번째 전주곡집을 발간하였다. 이것은 장조와 단조 3화음에 대한 미니스큐엘로 구성되어있다. 20년뒤에 Fitzwilliam Virginal Book(1630)은 1,297개의 곡 중 18개의 전주곡만을 포함하고
있다. Frescobaldi(1583-1643)의 전주곡은 즉흥성을 잃지 않은 가운데 일정한 규칙의 틀에서 연주되는 형태로 발전시켜 전주곡의 형태를 확장시키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Louis Couperin , Gaspard le Roux 그리고 D'Anglebet는 즉흥전주곡을 작곡함으로써 이러한 형태를 좀더 발전시켰으며, 제스처를 제안하는 악절의 삽입을 통해 즉흥성을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1650년 이후 장,단조의 응집력이있는 음조 시스템이 초기의 수정된(modified) 양식을 대체했을 때, 이후 사용될 조를 알려주는 전주곡의 역할은 그 중요성이 떨어졌고, 류트 음악에 의해 영감을 받은 아르페지오에 기반한 전주곡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예를들면 퓨렐류드 No.1, 1권).
평균율 클라비어는 전주곡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평균율 클라비어의 전주곡은 바로크 양식의 다양한 형태를 포함하고있다.
<4> 푸가(Fugue)
푸가의 기원은 상이한 음조(pitch)를 내는 다양한 소리를 동시에 사용하는 다성음악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음조를 내는 단선율에 다른 목소리가 상이한 음조를 내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노래를 하면 다음 사람은 똑같은 주제로 앞사람의 뒤를 따라 노래를 한다. 이를통해 하나의 주제가 가지는 단선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하모니도 이루고 통일성도 확보할 수 있다. 주제선율을 도입부에 사용하며, 다성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푸가의 가장 간단한 개념이다.
푸가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Speculum musicae of Jacobus Liege(1330)에서였다. 그당시 푸가는 현대 영어에서 이야기하는 도돌이(round)나 캐논(canon)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든 소리가 첫번째 소리를 그대로 흉내내며 차례로 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성부는 독립적이지 않으며 상호의존적이 된다. 주제를 다루는 모방적 방식은 르네상스 시대의 주요한 음악적 형태가 되었다;
돈 니콜라 빈센티노, 지오세포 자리노와 그의 제자인 잔 피에테르스조가 중요한 이론가였다. 토마스 몰레이 또한 중요한 초기의 이론가였으며 그의 업적은 17세기 초반을 대표하고있다. 위의 초기 작곡가로부터 푸르스 2세, 퍽스 라미우 등을 거쳐 바로크 시대로 옮겨가는 동한 푸가는 엄격한 캐논적 모방에서 연주양식로 발전해 갔다.
바흐가 살던 시대에 푸가는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 바흐의 푸가는 각각의 성부가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는 도입부와 주제와 잘 어울리도록 만들어진 대주제가 그 특징적인 면이다. 전개부에서 주제(그리고 대주제) 반진행이나 역행 그리고 이 둘의 결합을 통해 주제는 확대되어진다. 발전부에는 에피소드도 포함되어 있다. 에피소드가 연주될 때에는 새로운 재료가 등장한다.
바흐의 푸가는 또한 한 두개의 스트렛토(stretto)를 포함하고 있으며 제시부에 주제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짧게연주된다. 스트레타는 보통 작곡의 긴장감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사용되며 자주 클라이막스를 제공한다. 푸가의 종결부에서는 주제가 다시 한번 제시되거나 카덴짜(cadenza)로 끝을 맺는다. 푸가는 한 개 이상의 주제와 대주제를 가지고 있음을 주목하라. 평균율 클라비어의 푸가는 2-5개의 성부를 가지고 있다.
그 밖에, 에피소드(episode)는 푸가에서 주제부분과 대조를 이루는 삽입부분을, 스트렛토(stretto)는 푸가적 용어의 하나로 주제가 미처 끝나기전에 응답주제가 미리겹쳐서 등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의의
1. 통일성 속의 다양성
'평균율' 이라는 말은 서양음악에서 장단음계의 음정을 12개로 균등하게 나누는 방법 및 실제를 나타내는 것이다. '순수' 혹은'자연'음계. 즉 현 혹은 공기주가 자유로이 진동할 때에 생기는 배음열로부터 음정을 만들어 이를 분할한 음계(이런 음계를 바탕으로 음정을 분할하는 방식을 순정조율이라 한다)는 단성음악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일정한 배음렬에만 적응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이러한 자연음계에서 가져온 음정은 서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순정조율에 의한 장삼도를 차례로 세번 쌓아올리면 옥타브 음정을 이루지 못한다.이러한 문제는 근대에 이르러 피아노라는 악기가 처음 개발되자 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그전까지는 대개의 악기들이 단선율만을 연주하면 되었는데 이제 새로 생긴 피아노는 동시에 여러음을 연주하는 이른바 다성음악을 연주하였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조율문제가 대두되었다. 평균율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방법으로, 이후 이제까지 서양에서 사용되던 순정조율 방식대신 건반악기 조율방식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혹은 하프)가 더더욱 평균조율 방식이 필요했던 것은 이 악기들로는 연주자가 연주를 하면서 음 높이를 즉각적으로 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반악기를 어떤 식으로 가장 잘 조율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바흐 시절에 아주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당시 작곡가 및 이론가들은 한편으로는 좀더 커다란 화성적 자유를 누리고 싶어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조성변화방식' 을 존중하고 싶어하기도 했다. 다양한 조율 방식의 잇점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작곡가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조성들로 일련의 곡들을 작곡하였다. 바흐는 평균율을 작곡하기 전인 1720년경에 이미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되던 15개의 서로 다른 조성들로 된 일련의 건반음악을 작곡하였다. 또한 이보다 더 중요한 선례로 J.C F 피셔(1670년경-1746)의 <아리아드네 뮤지카>를 들 수 있다. 이곡은 20개의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서로 다른 19개의 조성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비어>는 피셔가 포함하지 않았던 극단적인 조성 5개를 더 추기시킴으로 만드러진 것이다.
바흐가 과연 <평균율 클라비어>에서 어떤 조율 방식을 염두에 두었는가를 놓고 오랜동안 학자들 간에 논쟁이 벌어졌었다. 이 곡은 오늘날 건반악기를 조율하는데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이른바 평균율을 의도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지만 이것은 정확한 사실이 아니다. 바흐가 평균율을 마음에 두었건 아니건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평균율이라는 조율 방법이 적어도 첫 전주곡의 시작지점에서 단순한 3화음적 진행을 이룰때나 마지막 푸가에서 반음계 주제를 제시할 때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는 사실이다, 이 두곡은 근대 조율 체계의 24개 장단조를 이루는 반응들의 연쇄 중 C장조에 너무나도 다양하여, 1722년 당시 사람들은 '바흐는 이제 이 곡을 통해 한 사람의 작곡가로서 가능한 모든 기법 및 표현 양식을 모두 소진시켰노라'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바흐는 이후 20년이 지난 뒤에 앞선 평균율 클라비어에 이어 평균율 클라비어 2권을 작곡함으로써 이 형식으로 얼마든지 많은 표현이 가능함을 입증하였다. 이 두권의 작품을 합쳐서 흔히 48개의 평균율이라고 부르며, 오늘날 연주자들의 고정 레파토리로서 자리를 굳혔다.
2. 신세대에게 보내는 호소
(원문에는 Appealing to Yonger Generation 이라고 되어 있다)
1722년 바흐는 모든 장단조를 망라한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작곡하여 이를 <평균율 클라이비어>라고 이름지었다. 제목이 나타내듯 이 모음집을 작곡한 이유의 하나는 건반악기 조율체계의 효율성을 입증하기 위함이었다. 건반악기를 가지고 모든 조성으로 작곡된 연주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 그의 주된 의도였다. 바흐가 이때 염두에 둔 조율 체계가 오늘날 건반악기의 조율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평균율(한 옥타브를 균등하게 12개의 음정으로 나누는 방식)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바흐가 이곡을 작곡한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즉 그는 1722년 악보의 표지에적힌대로 "이미 기술을 연마한 연주자들의 여흥과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학생들의 연습을 위해"서도 이 곡을 작곡하였다. 바흐는 같은 것을 또 다시 욹어먹는 류의 작곡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그가 1742년에 <평균율 클라이비어>라고 하는 똑같은 이름으로 또다시 전주곡과 푸가 모음을 위한 두번째 모음집을 만든 데에는 각별한 이유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우선 그는 분명 새 모음집에 적합할, 수많은 곡들을 이미 만들어 놓은 상테였고, 이중에는 1720년대에 이미 작곡해두었던곡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평균율 클라이비어> 2권은 비록 일부 곡들의 경우 다른 조로 옮겨지기는 했지만 기존의 곡들을 한데 모아 최종적인 형태로 묶어놓기에 아주 편리한 방편이 되었을 것이다. 또다른 이유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1권과 마찬가지로 2권도 바흐 자신의 제자들을 가르치는 지침서로 사용할 용도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바흐는 여러 차례에 걸쳐 1730년대와 1740년대에 일어난 음악 양식의 변화에 대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아마도 그는 평균율 클라이비어 1권보다 제자들에게 더욱 어필 할 수 있는 새로운 모음집을 선보이고 싶어했을 것이다. 평균율 클라이비어 2권에 포함되어 있는 전주곡과 푸가보다는 전주곡이 좀 더 최신의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쉽게 찾아볼 수 있듯이, 1권에서는 단 한 곡의 전주곡만이 이부분 형식(각 섹션은 반복된다)이었던 것에 비해, 2권에서는 10개 이상의 전주곡들이 이러한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부분 형식은 춤 악장에 표준적인 형식으로 바흐의 모음곡들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새로 만들어진 평균율 클라이비어 2권에서는 구성방식이 훨씬 더 발전하였다.
5번, 18번, 21번과 같이 길다란 길이로 된 전주곡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전주의 소나타 형식에 접근하여, 주요 주제가 두 번째 섹션에서 아주 신중하게 으뜸에 의해 재현된다. 21번은 전체 48개의 곡들중에서 유일하게 몇년뒤 출판되게 될 도메니코 스카를랏티의 소나타에서처럼 피아노 건반에서 양 손을 교차시켜 연주해야 하는 전주곡이다. 5번째 전주곡 역시 아르페지오에 의한 '트럼펫'의 도입과 트럼펫의 화려한 기교적 연주 서법이라는 측면에서 스카를랏티의 음악을 연상케 한다. 2성부로 된 한 권의 푸가와 5성부로 된 두 곡의 푸가를 포함한 1권과는 달리, 2권에서는 모든 푸가들이 3성부 혹은 4성부이다.
@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음반소개
오늘의 주인공, '평균율'에 대한 가장 진부한 표현은 '음악의 구약성서'라고 부르는 일일 것이다.이 표현은 때때로 '평균율'이 율법적인 계율의 테두리에 머무른다는 오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량분석을 하듯 날카롭게 해부되고 봉합된 24편의 프렐루드와 24편의 푸가들이 바흐이후의 모든 건반음악에서 잣대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흐의 '평균율'은 다만 계율이라고만 부르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점이 있다. 그 수학적인 복층구조는 놀랍게도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곡은 동시에 '여가적'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이부분이 바흐가 밝힌 공식적인 창작 배경의 하나다. 결국 가장 치밀한 계율이 가장 인간적일 수 있다는 실증을 '평균율' 은 보여주는 것이다.
고백한건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잡' 레코딩들을 리뷰하기란 두렵고, 그리고 동시에 영광스런 일이다. 평균율이야 말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들이 일상의 호흡처럼 친밀히 여기면서, 믿기지 않겠지만 한편으로는 녹음을 꺼리는 진귀한 작품이다. 트레버 피노크나 크리스토퍼 호그우드, 그리고 신세대의 바로크 음악 기수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등 초기 음악의 전문가들도 아직 '평균율'의 녹음을 만들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그 48편의 곡들이 무엇이었던가. 피아노 건반의 C음에서부터 시작하여 단지 반음씩 높여 가며 낱낱의 모든 조성을 아우른 곡, 장조와 단조의 결합으로 12개의 반음은 24개란 지극히 수학적인 건축물로 '평균율'을 완성했다.
반다 란도프스카로부터 키스 자렛에 이르기까지 15종류의 '평균율'음반을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은 건축가를 방불케 했던 뛰어난 건반악기 주자들 덕분이다. 때로는 깔깔한 맛을, 그리고 때론 입안 가득 넘쳐나는 정갈한 맛을 즐길 수 있었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순서를 밟아 하프시코드, 즉 쳄발로 연주자들의 '평균율'부터 차례대로 짚어보기로 하자. 그 선두에는 신뢰감 있는 해석의 전승자로 귀감을 살 이름들이 있다. 길버트와 레온하르트, 바로 그들이다.
케네스 길버트(Archive)의 '평균율'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도이치 하모니아 문디)의 지극히 학구적인 해석과 더불어 오랫동안 기억될 양대 기념반이다. 바흐에 대하여 서로 다른 독보법을 지키고는 있으나 두 사람 모두 대중적인 인기에 얽매이지 않는 담백한 접근을 보이는 것이 흥미롭다.
일례로 알레그로로 빠르게 전개되는 BMW 847의 프렐루드에서 길버트의 연주는 몰아치는 듯한 느낌을 배제하고 신중한 음 고르기에 몰두해 보인다.그 결과 개개의 음 고르기에 몰두해 보인다. 그 결과 개개의 음들은 한껏 닦이고 정련되었고, 제자인 다비트 모로니(그가 직접 해설까지 도맡아 썼다)가 울림이 좋은 악기의 튜닝에 전력한 결과인지 매력적인 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BMW 848의 프렐루드와 푸가에서 보듯이 좀 더 공격적인 대처가 필요한 곳에서 조차 안온한 모습을 지킨 것은 의외였다. 간헐적으로 자연스런 흐름이 다소 억제되는 것은 결국 피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족스런 음질의 풀 프라이스 음반.
톤 쿠프만(Erato)의 80년대 초반 레코딩은 그의 '프랑스 모음곡' 과 마찬가지로 잘 선택된 악기의 도움을 톡톡히 보고 있다. 1978년의 빌렘 크로에스베르겐 쳄발로는 높고 낮은 음역 모두에서 고르고 투명한 미감을 창조해낸다. 쿠프만에 이르러서 바흐는 앞서 두 연주자가 주도했던 '엄격주의'에서 일탈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융통성이란 생명력있는 바흐를 주장하는 쿠프만에게 있어서 불가결했다. 물론 그 융통성의 대부분은 '장식은'의 구사에 주어졌다.바흐에게 있어서 장식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바흐 스스로 남긴 장식음의 규약(!)이나 그 표기법이 복잡하고도 모호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트릴과 모르덴트 처럼 거의 같은 모양을 한 장식음부호는 차라리 암호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그것을 풀어가는 쿠프만의 입장이다. 아마도 가장 다양한 트릴을 매끄럽고 우아하게 연주한 음반이 바로 쿠프만의 '평균율'일 것이다.
키스 자렛(ECM-BMG)의 '클래식'음반이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것은 첫째로 그것이 성공한 재즈 피아니스트의 저으기 무모한 시도라는 점이었으며, 둘째로 무모함이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음악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 평균율은 키스 자렛이 욕심을 내었던 첫 번째 클래식 레퍼토리였다. 일단 그의 음반을 들으면 당신은 당혹감을 금치 못할 것이다. 3년의 세월을 두고 녹음된 1집과 2집의 음향조건이 현저히 다르니까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악기가 달랐으니 말이다. 얼마쯤 마스킹이 되어있는 1집 그 건반의 목소리.... 바로 피아노다. 키스 자렛의 의도가 '과도한 색채감'에 대한 항거였다면 이러한 음색은 제대로 간택된 것일 터이다. 그러던 그가 2집에 이르러서는 개방적인 쳄발로 음색으로 복귀하고 있어 재미있다. 누구도 키스 자렛의 재능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온당한 보수적 템포를 지켜낸 이 음반의 정신은 한마디로 무소유다 아무것도 강조하려 하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이끌어내거나 혹은 감추지 않았다는 어느 비평은 그러므로 옳다. 경계선에 서 있기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잘 이해한다. 부동표와도 같은 자렛의 해석은 불가피하게 부분적으로 단조로웠다는(일부 푸가) 느낌이 들었다. 품성 고른 사람처럼 제 분량의 힘의 안배로 끝까지 밀고 나간 연주, 출반 당시 그라모 폰의 'Want List'와 그라모폰의 '크리틱스 초이스'에 동시에 올랐던 그 음반이 키스 자렛의 평균율이다.
위게트 드레이푸스(DENON)는 길버트나 레온하르트의 음반에 대한 대안이랄 수 있겠다. 정확히 말해서 레온하르트의 기품있는 학자풍의 연주가 아닌, 조금 더 느슨하게 이완된 여유로움을 맛보고 싶다면 데논의 이 디지틀 레코딩을 찾는 것도 유용하다. 썩 아름다운 음색으로 악기를 콘트롤하는 드레이푸스의 능력이 출중하다. 악곡의 빠르기는 부분적으로 조금 성급하나 눈여겨 볼만한 정도는 아니다. 분출하는 생동감은 그러나 톤 쿠프만의 연주가 좀 더 리얼하다.
바흐의 '평균율'에 대하여 가장 할말이 많은듯한 인물은 다름아닌 다비트 모로니(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다. 스승인 케네스 길버트의 음반에서도 박식함이 내비치는 장문의 논문을 준비하더니, 자신의 음반에서도 적절한 일화를 섞어가며 거의 천의무봉한 글솜씨를 과시해 보였다. "평균율은 지금까지 한번도 '쉽다고' 간주된 적이 없었다. 손가락을 위한 것이든, 마음으로 부터의 것이든." 모로니의 말이다. 물론 모로니 자신도 경외의 뜻을 지닌 채 이 작품에 접근해 보였다. 모로니의 연주가 갖는 놀라운 점은 무엇인가. 그는 피아노에서의 쉬프처럼 '평균율'과 하프시코드의 불가결한 만남을 거의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첫 번째의 프렐루드부터 남다른 솜씨가 엿보이는데, 푸가 부분과의 화학적 결합은 거의 한치의 오차도 없어 보였다. 완벽한 연주. 즐기거나 연구하거나, 그 어떤 용도로서도 부족함이 없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글렌 윌슨(Teldec)이 길버트와 레온하르트의 문하인 듯 하다.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미국인 쳄발리스트의 탁월한 레코딩은 더 이상 배포되지 않고 이싸. 아마도 CD로 나왔던 숱한 쳄발로 버전 '평균율' 가운데 가장 음질이 뛰어난 것의 하나일텐데, 속히 재발매 되기를 기원한다. 자신감에 가득찬 확고한 어프로 치는 밥 반 아스페렌(EMI)과 곧잘 비교되곤 했으며, 정확한 기교는 오히려 우위에 있지 않나 싶었다. 드물게 잘 만들어진 알프렛 뒤르의 '평균율' 해설도 보너스 이상의 가치가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평균율'의 부활을 주도한 장본인이 반다 란도프스카 여사란 주장은 당연시 되어왔다. 그렇다. 어느 재는 풍부한 동료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은 바흐를 당신의 방식대로 치는군요. 난 '그의'방식대로 치는데."물론 여기서 '그'는 신성한 대 바흐다. 여러분은 탁월한 피아니스트인 클라우디우 아라우가 젊은 시절 '골드베르크'를 녹음하고 돌연 출반을 보류한 사실을 기억하는가. 바로 같은 레이블 RCA에서 란도프스카의 '골드 베르크' 출반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만한 카리스마의 란도프스카 위세에 견주어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1933년의 '업적'을 여기 소개한다.
에드빈 피셔(EMI). 건반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에 눈이 부시기 이전에 일단 음질 상태에 탄복한다. 30년대의 녹음이라고는 거의 믿어지지 않는 안정감. 이 음반이야말로 금세기 처음으로 '완주된' 평균율 전곡반이다.(피셔 이전에 '평균율'을 부분적으로 녹음한 유일한 선각자는 아놀드 돌메치였다.)
본질적으로 피셔의 바흐 해석에는 경질의 다이내믹한 한곡 한곡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조여가는 긴장감이 주류를 이룬다. 장식음의 처리는 강조되지 않으며, 대신 프렐루드와 푸가의 명징한 대비로 각기의 곡들은 뚜렷한 외각선이 유지될 수 있었다. 나는 피셔의 음반이야말로 멀리 60년대 후반에 이르러 글렌 굴드를 잠깨워 일으킨 각성제였다고 믿는다. 낭만적인 색채감이 풍부한 란도프스카의 RCA반이 녹음된 것이 1949. 이미 피셔가 이 호화로운 대작의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탐사한 후였다.
피셔와 란도프스카의 사이에서 우리는 잠시 잊었던 러시안 피아니스트 사무엘 파인베르크(Arlecchino)의 이름을 발견한다. 알렉산드르 골덴바이저의 문하였던 그는 러시안 스쿨에서는 선각자인 동시에 진지한 바흐 전문가였다. 세 장의 음반으로 압축되어 담긴 그의 '평균율'은 매우 독특한 프레이징과 강약법으로 한눈에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이를테면 평균율 1권의 2번 C단조 프렐루드의 5마디,7마디, 9마디는 예기치 않은 액센트를 주어 주위를 환기시킨다. 바흐의 관점에서 강약법은 사실 연주자에의 위임사항이었다고 본다면, 파인 베르크의 어법은 리드미컬한 효과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일단 이채로웠다. 러시안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최초로 '평균율'의 전곡 연주에 도전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입지를 독특한 것으로 만들었다.
발터 기제킹(DG)의 50년대 모노 음반으로 잠시 눈길을 돌려보자. 드뷔시와 라벨 스페셜리스트였던 한 대가의 앞에 우리는 서있다. 무거워 보이는 그의 음반 재킷에는 '도큐먼트'란 이름이 붙어있다. 그러나 이 음반은 광범위하게 추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기제킹의 건반 언어는 바흐와 정말이지 인연이 닿지 않아 보였다. 그의 바로크 해석은 낭만주의로 심하게 굴절되어 있어서 마치 한편의 환상곡을 듣는 느낌이었다. 프렐루드의 운동성은 이상스런 프레이징으로 본디의 의미를 잃고 정체되었다. 물론 그 점은 푸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프리드리히 굴다(Philips)의 1972년 음반은 이미 오래전에 프랑스 하모니아문디를 통하여 배포되던 것이다. 이 탁월한 피아니스트의 바흐 또한 안타깝게도 그리 탁월하지 못한, 어느 정도 개인적인 체험의 자술서에 가깝다. 눈여겨 보자면, 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문항을 철저하게 자신의 답안으로 메꾸어가는 스타일이다. 바람직하게 여겨졌던 바흐에 관한 기존의 덕목들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으며,간혹 무시 되었다. 페달의 효과를 바흐에게 구사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해서 연주는 더욱 건조한 성질의 것이 되었다.필립스의 저가형 듀오 시리즈. 음질은 신뢰할만한하다.
또 다른 버짓 경쟁반으로는 낙소스의 터줏대감격인 예노 얀도가 떠오른다. 퍽 울림이 강한 터치로 첫 음을 짚은 얀도는 힘있고 드라마틱하게 전체를 그려 나간다. 그가 바로크 건반 음악에 대하여 '예의를 갖추는'부분은 꾸밈음의 처리 정도일 뿐, 거의 예외없이 규모가 큰 페달링으로 압도해 보였다. 물론 규모가 큰 장조의 전주곡에서는 그것이 유효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소소한 부분도 있었다는 점을 밝혀야 겠다.
글렌 굴드(SONY)의 '평균율'은 다음에 언급할 안드라스 쉬프와 전혀 다른 측면에서 인상적인 작품이다. 특유의 흥얼거리는 비음에 섞여(그의 테너 음성에 실린 콧노래를 바흐의 악보에서 하나의 성부로 이해하려는 비평가조차 있다) 그는 아주 여유롭게 악곡의 전체를 조망한다. 1962년부터 시작된 전곡 녹음은 1971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기실 녹음에 투자된 세월의 이력이 문제가 아니라 , 한곡 한곡을 해부하듯 도려낸 굴드의 직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굴드의 음반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짐작하겠지만, 그의 터치나 프레이징에는 물리적인 의미에서 '아름다움'이 없다. 굴드는 결코 피상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려 하지 않았다. 데이빗 듀발의 멋진 경구대로, 그것은 '북녘의 바흐'다. 흰 입김이 뿜어나오는 백야의 바흐처럼 기존의 '평균율'을 둘러싼 프레이징,페달링, 아티큘레이션은 거의 모조리 부정되었다. 어느 낭만주의의 잔재도 그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런 굴드의 바흐에서 우리는 매우 이질적인 형태의 또다른 아름다움에 몰두하게 된다. 장식음의 경묘함과 프레이징의 긴장과 이완이 사라진 곳, 보편적이며 온당한 수순의 바흐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방문할 수 없는 세계, 바로 글렌 굴드다.
오랫동안 안드라스 쉬프(Decca)의 1985년 음반은 모범적인 미덕을 지닌 '평균율'로칭송을 받아왔다. 비평가들의 추천반 목록에 '반드시' 끼어있는 이 음반은 그러므로 비유컨대 '평균적인' 평균율이라고 부를만하다. 하기야 '평균적'이란 어휘란 그리 적절치 못하다.
페달링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를테면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굴다도 가꾸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평균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연주가 '평균적'인가. 쉬프의 피아노가, 그 물리적인 연주의 도구가 평균적이란 의미다. 사실, 쉬프의 해석 자체는 우아할지언정(특히 드라마틱하지 않은 프렐루드들을 골라 들으라)보편타당하지는 않다.쉬프는 피아노가 '평균율'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명료하게 믿게 만든 최초의 피아니스트다.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이다. 기본적으로 쉬프는 처음부터 '평균율'이 단일 악기가 아닌, 여러 종류의 건반악기가 모두 사용 가능한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여성적인 카덴스나 아포지아투라(둘다 꾸밈음의 한 종류)가 빈번한 것을 보면 이 악기가 (쳄발로가 아닌)클라비코드에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보편적인 건반악기인 피아노에게도 '평균율'의 몫은 가능하다. 필요한 경우 쉬프는 적당히 페달링을 구사하면서 '평균율'을 가장 세련된 '피아노 작품'으로 만들었다.각각의 아티큘레이션도 연주자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만큼 경탄스런 뒤나믹을 성공시킨 피아니스트도 드물 것이다.
현대의 거장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RCA)연주에는 깊은 성찰이 있다. 그러나 1970년에 만들어진 1권과 몇 년이 지나 만들어진 2권 사이에 불균형한음상이 개입해 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간단히 말해서 이 음반의, 특히 '평균율'1권의 음질은 둔중한 울림으로 인해 만족스럽지 못했다. 2권으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점들이 대부분 해소된 것은 저으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를 가리켜 대가라고 부르는 까닭이 새삼스레 피부로 느껴지는 연주다.
*** [월간 CD가이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