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허탕일 듯싶다. 태풍이 북상한다는 일기예보가 보도되기 이전부터 하늘은 검기울었다. 왜바람이 음산한 거리에 널린 허접쓰레기들을 몰고 양품점 유리 진열장으로 돌진한다. 부딪쳐서 깨지고 흩어지기는커녕 더욱 탄력을 받는다. 어깨동무를 한 채 천지를 할퀴듯 휩쓸며 좌충우돌이다. 머나먼 북태평양 남서부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이 태풍은 북상할수록 더욱 기승을 부렸다. 끈질긴 생명력이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행여 바람에 날아갈까 싶어 곱송그리고 있다. 이런 태풍을 뚫고 찾아올 손님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그 이름은 '루사'였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물사슴'이라고도 하는 '삼바사슴'이다. 꼬리가 길고 암갈색 털을 가졌으며, 풀을 뜯어먹는다는 유순한 동물인데도 심술이 여간 몰강스러운 게 아니다. 진흙탕 목욕을 좋아한다더니 천지를 진흙탕 같은 혼돈으로 만들어놓고 연신 자맥질하고 있다. 이히히, 으어! 으어! 한 떼거리의 삼바사슴이 울음소리를 터트리며 뿔로 유리 진열장을 들이받는다. 이윽고 용수철처럼 퉁기면서 함성을 지르고 거리로 되쏘아져나갔지만 그 기세만큼은 투명한 유리를 뚫고 실내까지 엄습한다. 벽걸이 거울에 비치는 실내 풍경이 그로테스크하다. 벽면에 하루핀으로 고정시켜 디스플레이 해놓은 옷들이 광란의 춤을 춘다. 박제표본이 되어버린 날것들이 영혼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일까. 하늘이라도 덮을 듯 자랑스럽게 날개를 펼치고 힘차게 비상(飛翔)한 다음 기류를 타고 느긋하게 활공했던 그 날이 그립기도 할 것이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하루핀은 요지부동이다. 침술 달인이 인체의 경혈을 찾아 시술해놓은 침처럼 당당하다.
섬광이 번쩍하더니 천둥이 하늘 복판을 찢는다. 해경은 덴겁하며 몸을 움츠린다. 일순간에 굉음과 어둠이 천지를 뒤덮는다. 빅뱅이라도 일어났던 것일까. 실내가 극단적인 수축을 하고 중력이 무한대가 되면서 블랙홀로 변한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 손을 허우적거린다. 코가 막혀 호흡이 곤란해진다. 이명 때문에 귀가 욱신거린다. 수축현상이 계속되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실내로 삽시간에 빨려들다가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슈바르츠실트반지름에 가까워진 것일까.
해경은 그 자신이 어디에도 있고 또 어디에도 없다는 아뜩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벽면 거울 속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자신은 보이지 않는다. 실체를 되찾고 싶었다. 허둥지둥 탈출구를 찾기 시작한다. 한 줄기 빛이 실내를 빠져나가려고 바동거리다가 속절없이 끌려들어오기 시작했다. 빛줄기가 자리했던 빈자리에 나선형으로 이어진 기나긴 터널이 휑하니 뚫린다. 그 터널 저 먼 곳에 검은 점 하나가 도사리고 있다. 그 점이 다가오면서 클로즈업되기 시작한다.
어서 불을 켜야해! 이러다간 어둠에 묻혀 영영 헤어나지 못할 거야.
거울에서 시선을 뗀다. 벽면을 더듬거려 텀블러 스위치를 찾는다. 가벼운 탄력이 느껴지면서 할로겐 빛이 물 위에 떨어트린 한 방울의 기름처럼 실내에 번진다. 나선형의 구멍 속에서 클로즈업되었던 검은 점의 실체는 남편, 현우가 실내장식으로 설치해 놓았던 슴새 박제였다.
또 한 떼거리의 삼바사슴이 거센 울음을 터트리며 진열장으로 돌진한다. 하루핀으로 고정시켜놓은 옷들이 날개처럼 펄럭거린다. 추석빔으로 가져다 놓았던 것들이다. 여전히 하루핀은 요지부동이다. 슴새 박제의 날개만이 당당하다. 거센 바람이 불수록 그 날개는 더욱 의젓하고 여유 만만해진다. 그럴 만하다. 폭풍우가 몰아쳐 길길이 날뛰는 파도의 물머리 위를 의연하게 날아 태평양 횡단이라는 대장정을 해냈던 슴새였다.
어머머! 어쩌면 좋아! 간판이…간판이 날아가면 어떻게 해…….
해경은 아뜩한 정신을 바로 잡으며 불에 덴 듯 흔들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양품점 분위기를 특이하게 꾸미려고 네온간판 대신에 검은색 천막간판을 달았다. 그게 태풍을 이기지 못하고 실 끊어진 종이연처럼 날아 가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비 냄새를 머금고 있는 왜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날개가 복사뼈 언저리에 돋아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듯하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말뚝을 박듯 중심을 잡고 간판을 바라본다. 검은 천 바탕에 흰 글씨로 '날개'라고 쓴 천막간판이 바람을 머금어 부풀대로 부풀었다가 다시금 홀쭉해지곤 한다. 오랜 비행 끝에 착지한 날것들의 헐떡거리는 가슴 같다.
옷이 날개라 했고, 날개 돋친 듯 팔리면 좋겠지. 그리고 '날개'라는 소설을 쓴 박제된 천재, 이상의 본명이 김해경이었거든. 그래서 날개야.
해경이 양품점을 계획했을 때 현우가 '날개'라는 상호를 지어주면서 했던 말이었다. 그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박제된 천재와 자신이 동명이인이었다는 것을 망각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1910년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서 태어났다가 28세의 아까운 나이로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폐결핵으로 객사했다는 이상과 1966년에 남해안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현재 조그만 양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자신은 아무런 인연이 있을 턱이 없다. 다만 이름만 우연히 같았을 뿐이다.
또 한 번의 번개와 천둥이 지상의 모든 것을 압살해버릴 듯 난무한다. 천막간판에 쓰여진 날개라는 흰 글씨가 섬광을 받아 유난히 빛난다. 진짜 날개로 변해서 번개가 찢어놓은 검은 하늘의 틈새로 솟구칠 기세다. 세상 저쪽은 과연 어떤 세상이 있을까? 해경은 천둥번개의 두려움을 잊은 채 하늘을 올려다본다. 검은 하늘은 전설의 붕새였다. 그 새는 하늘에 떠있는 구름 같은 넓은 날개로 한번만 날개를 쳐도 구만리나 날아갈 수 있어서 북해를 온통 뒤덮었다고 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성긴 빗줄기였지만 방울만큼은 무척 굵다. 눈물처럼 떨어져 대지를 파헤친다. 해경의 얼굴로 파고든 두서너 개의 빗방울이 신경을 타고 발끝까지 흐른다. 비설겆이를 염려하다가 문득 현우를 떠올린다. 벌써 한 달째 행방이 묘연했다. 평소에 소원이었던 날개라도 돋아나 철새처럼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일까. 이별이라는 단어의 애처로움보다 오래 전에 갈라섰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흐름에 젖어든다. 새벽을 타고 은밀하게 흐르는 한 줄기 차가운 개여울이 가슴을 적시자 섬뜩해진다. 만남처럼 이별도 평범하게 끝날 리가 없을 것이다.
해경은 비를 피해 양품점 안으로 들어선다. 거울이 할로겐 불빛을 반사하면서 다가온다. 판자바닥 위로 앓는 소리가 번진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의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다고 했다. 해경의 거울 속에는 천둥과 빗소리가 들어있다. 이상의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다고 했다. 해경의 거울 속은 가위 무인지경이다. 해경은 물론이고 현우도 없다. 현우가 자신의 곁을 돌연히 떠났던 그날 저녁 무렵에 날아온 문자메시지가 떠오른다.
<나는 거울 없는 실내에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역시 외출중이다.>
해경은 이런 문자메시지를 심드렁하게 여겼다. 그날 밤 현우는 귀가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문자메시지가 또 발견되었다. 발신 시각을 조사해 보니까 꼭두새벽에 보낸 거였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불면의 밤을 보내다가 점자를 어루만지듯 하나씩 글자를 조합하며 메시지를 찍었을 터였다.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두 번째 메시지를 발견하고 나서 왠지 모를 야릇한 예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숙명처럼 아침이 오고 밤이 찾아오듯 이별의 발자국소리가 어둠이 깔린 회랑을 울리며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다시금 사라져 정적으로 뒤덮이게 되면 그의 모습은 영영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건 돌연히 싹튼 예감이 아니었다. 현우와 금이 가기 시작했던 징후는 오래 전부터 실뿌리처럼 은밀히 번지고 있었다. 그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처럼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곤 했다. 이상이 아달린과 아스피린으로 연명했다면, 그는 한사코 약발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도리머리를 했다는 것만 달랐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진찰을 권유해보았다. 그는 의료보험카드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해경이 그의 옛 친구인 정신과의사를 찾아가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특이한 소리나 빛과 같은 외부자극이 수면을 방해한다고 했다. 그의 방을 수면에 적합하도록 꾸며주었다. 효험이 없었다. 외부자극뿐만 아니라 내부자극 때문에도 수면이 방해를 받게 된다면서, 근육으로부터의 구심성 임펄스가 차단되어 뇌에 도달하지 않게 되면 잠이 오게 된다고 했다. 몸을 옆으로 하고 근육의 긴장을 풀게 하라는 처방이었다. 역시 효험이 없었다.
성긴 빗줄기가 작달비로 변해 억수장마처럼 쏟아진다. 유리 진열장 바깥 풍경이 급박하게 변해 가는 중이다. 아스팔트가 물고랑으로 변한다. 건너편 뜨개질 가게 노처녀가 불안한 걸음으로 실내를 바장인다. 건너편 우측에 있는 전파가게 종업원이 출입문 밖으로 머리를 잠시 내밀다가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고 사라져버린다. 골목 안쪽 무슨 빌라엔가 산다는 민이엄마가 웅크린 자세로 허둥지둥 다가오고 있다. 우산이 없다. 벌써 흠뻑 젖어 물에 빠진 강아지 꼴이다. 태풍과 집중호우가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알고 있었을 텐데 우산도 휴대하지 않고 어디를 다녀오는 길일까. 승용차 한 대가 민이엄마와 양품점 유리 진열장에 물을 튀기고 빗줄기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진다.
해경이 흔들의자에서 일어난다. 비에 젖어 있는 민이엄마가 애처롭게 보인다. 양품점 안으로 잠시 들어와 비를 피했으면 좋을 텐데……. 민이엄마는 브라운 계통의 사파리 점퍼로 뭔가를 감싸안고 있다. 그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는 민이 모습이 눈동자로 빨려든다. 강아지가 아니라 비 맞은 캥거루 어미와 새끼였다. 품에 안긴 세 살배기 민이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연신 해죽거리는 중이다. 아이는 태풍도 억수장마도 모른다.
비 좀 피하고 가세요, 민이엄마!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일까. 민이엄마는 벌써 저만큼 멀어져 빗줄기 속으로 파묻히고 만다. 민이엄마는 해경보다 세살 아래였다. 빗속에서 해죽거리던 민이의 말간 얼굴이 떠오른다. 해경이 결혼 두 해만에 들어선 첫 아이를 그대로 낳았다면 민이보다 네 살 위였다. 일곱 살이라면 초등학교 일 학년이나 되었을 것이다. 개구쟁이였을까, 아니면 현우처럼 과묵했을까. 산부인과 의사는 사내아이였노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해경은 흡입기에 부착된 흡입큐렛이 자궁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는 느낌에 사로잡힌 채 병원 문을 나섰다. 현우는 그날따라 너스레를 떨었다. 좋은 때가 오기만 하면 아홉 명의 아들을 낳아 야구팀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 좋은 때는 여태 찾아오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해경은 현우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질펀한 수다 뒤편에 남모르는 아픔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후 해경은 현우 몰래 성당을 찾아가서 지워버린 아이를 위한 연미사를 올렸다. 부활보다 속죄와 망각을 위한 의례였다.
해경은 흔들의자 위에 쓰러지듯 주저앉는다. 오디오 전원을 넣고 음악을 꺼낸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저 푸른 소나무보다 높이, 저 뜨거운 태양보다 높이, 저 무궁한 창공보다 더 높이…
빗소리가 음악을 짓누른다. 도저히 음악에 안길 수가 없다. 현우가 양품점 개업 선물로 슴새 박제와 함께 준 녹음테이프였다. 그는 없고 박제된 새와 빗소리에 짓눌리는 음악만 남아있다. 밥 딜런의 노래가 이어진다. 현우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였다.
사람들이 그를 인간이라고 부르기 전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길을 걸어야하나?
한 마리 하얀 비둘기가 모래에서 잠들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만 할까?
…그 대답은 오직 바람만이 알고 있다네…….
현우는 이 노래를 함께 들을 때마다 어떤 음악평론가의 이야기를 습관처럼 인용하며 낮게 주절대곤 했다.
엘비스가 몸을 열었다면 딜런은 우리의 마음을 열었어. 이젠 바람을 가득 안고 훨훨 날고 싶어. 이 지겨운 세상을 떠나서 말이야.
노래 사이에 흘러나오는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소리처럼 흐르면서 빗소리를 잠재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람소리에 실려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빗소리가 다시금 커진다. 해경은 현우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고통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는 어느 날부터인가 표정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점점 말수가 사라졌다. 불면증과 가출이 뒤따랐다. 부부는 닮게 된다고 했던가. 그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해경 역시 그 고통의 찌꺼기를 흠뻑 뒤집어썼다. 불면증의 역사는 현우보다 해경이 앞섰다. 불면의 씨앗은 그가 이 사회로부터 돌아앉았을 때부터 은밀하게 잉태되었을 것이다. 첫아이를 지워야만 했을 때나 아이 갖기를 극구 반대했던 그의 독선적인 태도가 불면의 씨앗을 발아시켰다. 불면증은 인간을 박제시키는 포르말린이었다. 불면의 시간 내내 육신과 영혼의 짐을 힘겹게 짊어지고 낑낑거리다 보면 아침 햇귀 속에서 포르말린 냄새가 났다. 해경에게는 최면을 위한 술이 필요했다. 지친 육신이라도 잠재워 놓아야 억지 안식이라도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생활이 습관화되자 불면이 먼저였는지 술이 먼저였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빈 소주병들이 불면의 생채기에서 떨어진 딱지처럼 콩켸팥켸 쌓이는 날이 연속되었다. 그와 헤어져야할 때가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싹튼 것도 그 즈음이었다.
<역사는 무거운 짐이다. 세상에 대한 사표 쓰기란 더욱 무거운 짐이다. 나는 나의 문자들을 가둬 버렸다. 도서관에서 온 소환장을 이제 난 읽지 못한다.>
세 번째 날아온 문자메시지였다. 해경은 그 문자메시지에서 현우의 데드마스크를 환영으로 느꼈다. 그는 어느 때부터인가 무능력한 인간으로 변해갔다. 그가 애타게 갈구했던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이미 죽음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아른거리자 해경이 그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가 가출한 이후 처음으로 보였던 관심이었다.
고객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부재중이었다. 몇 번이나 연결을 시도해보았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이별 연습을 해왔고, 해경의 가슴속에 이미 부재중이었는지도 모른다. 해경은 반복되는 안내음성을 듣다가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가출 이후 세 번에 걸쳐 날아온 문자메시지가 아무래도 이상야릇했다. 그가 날린 메시지가 아니라 제3의 인물로부터 날아온 것 같았다. 그는 평소에 간명하고 사실적인 단어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상한 점은 문자메시지 내용이 낯설지 않았다는 거였다. 언젠가 한번쯤 읽어보았음직한 구절이었다. 어디서 그런 구절을 만났는지 기억의 창고를 뒤적거려보았으나 쉽게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던 일주일 후쯤이었다. 천막간판의 '날개'라는 상호를 바라보다가 박제된 천재, 이상의 얼굴이 문득 폭죽처럼 피어올랐다. 컴퓨터를 뒤져 이상의 홈페이지를 찾았다. 홈페이지 문을 열자마자 검은 바탕 화면에 이상의 초상화가 나타났고, 배경음악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클래식 기타의 선율이 깔렸다. 세 손가락으로 퉁기는 트레몰로 주법은 전율 그 자체였다. 생각했던 것처럼 틀림없는 이상이었다. 첫 번째 문자메시지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두 번째는 '꽃나무'에서, 세 번째는 '회한의 장(章)'에서 발췌한 글이었다. 그가 이상의 글을 발췌해서 보냈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혹시 하늘 높이 날고 싶다는 욕망에서?
애당초 인간에게 날개는 없었다. 이상이 원했던 날개는 하늘을 날아보겠다는 희망이 아니라 미쓰꼬시 옥상에서 하늘을 날 듯 추락하는 것을 소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은 그의 골방에서 오랫동안 추락 연습만을 해왔지 않던가. 해경이 이상의 홈페이지를 두루 살피는 내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선율이 되풀이되었다. 이상은 그토록 원했던 날개를 달고 지구 저편으로 깊숙이 추락하여 스페인 최후의 무어왕국인 나사리 왕조가 머물렀던 알함브라 궁전에 잠들어있었다. 나태와 폐결핵에 지쳐서 나른한 오후처럼 느껴지는 이상은 처연함과 섹시함을 동시에 풍기고 있었다고나 할까. 부재중인 그는 지금 어디에 안착해 있을까. 해경은 양품점 거울 속을 뒤진다. 현우뿐만 아니라 해경도 부재중이다.
남쪽 바닷가 마을. 해경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실루엣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혀를 끌끌 찼다.
엠병할 인간이 산은 뭐땜시 올라갔을까잉. 개살구 지레 터진다등만, 지가 뭘 안답시고 까불거리다가 그 모냥 그 꼴이 됐냐, 이거여. 그리여, 속 씨원허게 잘 갔당께. 지 좋다는 세상으로 훨훨 잘 날아가부렀어. 아나, 배나 굶지 말거라잉.
할머니는 붉은부리갈매기를 향해 햇볕에 말리려던 멸치를 한 줌씩 뿌려주곤 했다. 언제이던가, 해경은 멸치가 아까워 할머니 팔을 붙잡았다.
저 새가 바로 니 애비여, 애비! 날아가고 싶어서 환장을 하등만 결국 새가 되어 날아갔단 마다.
해경은 할머니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었다. 저녁 무렵, 동네 아이들이 바다 냄새에 절어있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깔깔거리며 걸어갈 때면 까치놀 물든 궁형(弓形)의 해안을 따라 활공하는 갈매기들을 그리움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갈매기는 너무나도 의젓했다. 선술집에 앉아 목로를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너덜대는 목청으로 발악하듯 노래를 불러대고, 걸핏하면 멱살을 잡고 싸움질이나 하던 뱃사람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해경은 새가 되었다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아버지는 언제나 저 멀리 날고 있을 뿐 한 번도 자신의 손에 내려앉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 얼굴도 보기 힘들었다. 아버지가 새로 변하기 이전부터 돈벌이를 위해 대처로 나갔다고 했다. 어머니는 명절이 되거나 얼굴이 잊혀질 만하면 옷이며 과자가 든 보따리를 보듬고 찾아왔다가 이내 바람처럼 떠나버렸다. 어머니는 바람이었고, 아버지는 새였다.
아버지가 산에 올라간 죄 때문에 폐인으로 변해 여생을 무지렁뱅이처럼 살다가 저 세상으로 떠났다는 사연을 알게 된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가슴속에 실루엣으로 남아있었던 아버지의 모습과 새가 되었다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무참히 깨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빈자리에는 고향 바닷가 해안에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만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바로 현우였다.
해경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우성. 요란한 총성과 쫓고 쫓기는 발자국소리. 매캐한 최루 냄새. 해경은 일상처럼 벌어지는 그런 상황에 이미 무감각해져 있었다. 서가의 책을 정리하면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마로니에 우듬지와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간간이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에 입사(入絲)된 마로니에 흰 꽃잎은 꿈꾸는 메시지였다.
출입구 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조심스러운 걸음걸이였는데 발자국 소리는 천둥처럼 울렸다. 이상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는 해질 무렵의 잔광을 등에 업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실루엣만 느낄 수 있을 뿐인데도 무척이나 낯익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누구시죠?
저 말입니까?
그래요. 누구신지…….
저는 한 마리 샙니다. 저기 마로니에 앉았다가 날아온 새라고나 할까요.
정말로 저 마로니에 새가 앉아있었나요?
해경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자신을 새라고 소개한 사내의 말을 또박또박 되받았다. 마치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그런 대화가 유치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내가 한 걸음 다가섰다. 눈동자만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망원경과 돋보기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새의 동공이 떠올랐다. 그가 해경의 빈 가슴속으로 걸어 들어오듯 낮은 목소리로 냈다.
그럼요. 정말로 슴새가 앉아있었다니까요.
슴새라구요? 아, '마오, 마오,' 이렇게 낮게 울고 또 섬새라고도 부르는 슴새 말이군요.
슴새를 잘 아시는군요. 슴새는 학명으로 칼로네트리스 레우코메라스라고 하죠. 북에서는 슴새를 어드렇게 부르는지 아심메까? 꽉새라고 함메다. 꽉새 말임메다.
사내는 슴새의 날개처럼 팔을 벌리고 제자리에서 한바퀴 돌았다. 해경은 그의 동작과 북한말투가 재미있어서 그만 까르르 웃고 말았다. 웃음이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군화발 소리가 복도를 울리자 사내가 재빨리 서가 뒤로 몸을 숨겼다. 그때서야 사내의 몸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해경의 품으로 날아온 한 마리 새였다. 어쩌면 실루엣으로만 남아있던 아버지의 빈자리에 그가 운명처럼 내려앉았는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은 박현우. 국문과 4학년이며 복학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숙명처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후 현우가 사회로부터 잠시 강제 격리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해경이 덴가슴을 부여안고 찾아갔다. 그는 의외로 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건 억지로 짓는 표정이 전혀 아니었다. 걱정했던 마음을 어느 정도 놓으면서 여유를 되찾았다.
고생이 많지? 어쩌면 좋아.
요즘 편안하게 쉬고 있다 보니까 무척 근질근질한 걸 뭐.
갑갑하겠다, 그지? 창공을 날던 새가 새장 속에 갇혔으니 오죽 갑갑하겠어.
천만에. 내가 갇힌 게 아니라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갇혀 있는 거라구. 자, 여기를 봐! 내 날개 짓은 너무나도 자유스럽잖아?
바깥에 있는 사람들? 그러면 나도 갇혀있다는 거야?
그럼! 여기서 보면 바깥 사람들은 날개가 없다니까.
자신만만하고 여유 만만한 그 모습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웠는지 모른다. 정신적인 궁합이라는 것도 있을까? 해경은 댕돌 같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버지가 떠나간 빈자리를 한 치의 틈도 없이 메워 줄 상대로 여겼다.
현우가 졸업을 하자마자 두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 그는 치열한 일선에서 거짓말처럼 뒤로 물러났다. 중소기업에 취직을 했다. 그는 모든 생계를 책임질 테니까 가정만 잘 지키라며 당당하게 말을 뱉어냈다. 그리고 가장의 책무가 뭔지 보여주기라도 하듯 열정적인 샐러리맨으로 변해갔다. 그뿐만 아니라 휴일만 되면 해경을 데리고 산과 바다를 쏘다니며 새를 관찰하거나 촬영하기도 했다. 해경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대였다.
그는 간간이 조류도감을 펼쳐놓고 해박한 지식을 풀어놓았다. 저 새는 휘파람 소리처럼 지저귀는 동박새야. 저길 보라구. 눈 둘레가 하얗지? 그래서 백안작(白眼雀)이라고도 부르지. 저건 또 뭔지 알아? 꺼병이야. 만화 주인공 꺼벙이가 아니라 꿩의 새끼를 일컫는 말이지. 그리고 저 슴새는 바다의 방랑자라고도 하거든. 쉬지 않고 무려 150일간을 시속 30마일의 속도로 날면서 태평양을 횡단하기 때문이야. 물론 부유 생물을 잡아먹으며 물 위에 떠서 눈을 잠깐 붙이기도 하지만 여러 날 동안 한 숨도 자지 않고 대장정을 감행한다, 이런 이야기야. 그래서 슴새의 대장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지, 슴새들은 슬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지. 원래 슴새들은 천만 단위에 이르는 집단생활을 하는 새들이었는데 울릉도 개척 단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도리깨로 깡그리 때려잡아 먹었다는 거야. 서양에서는 슴새 고기 맛이 양고기 같다고 해서의 '양고기 새'라는 별명을 붙였대. 그들도 슴새 잡기에 얼마나 열을 올렸던지 지금은 개체수가 줄어들어서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새가 되고 말았어. 하, 슴새는 고달픈 운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새야.
현우는 새 박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조새는 파충류처럼 긴 꼬리가 달려있었다거나 새의 날개들은 완벽한 항공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 갈매기는 공중을 헤엄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펠러 추진을 한다는 이야기, 체중 2킬로그램에 날개 길이가 무려 2미터나 되는 군함조의 뼈 무게가 불과 100그램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흥미롭지 않은 게 없었다. 또 새의 지저귐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감상적인 사람들은 새들의 지저귐을 환희의 찬가라고 생각하나, 사실은 자기의 세력권을 주장하며 출입을 통제하는 경고의 소리라는 거였다.
해경은 그가 병적일 정도로 새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간혹 걱정스럽기도 했다. 어떤 때는 자신보다 새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해서 어이없는 질투심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행여 새처럼 날아서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현우와 늘 함께 있다는 행복감이 모든 염려를 덮어버렸다. 그런데 너무나 행복하면 왠지 모를 불안감 밀려온다고 했던가.
오늘 직장 그만 두었어. 생계는 걱정 마. 글을 쓰기로 했어. 전업작가로 말이야.
그거 힘들지 않을까?
스스로 알을 깨트리고, 또 하늘 높이 나르려면 안이한 생활에 안주해서는 안될 것 같아. 자진해서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뭔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어?
작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라던데…….
아, 그렇지! 경철이라고 알잖아, 김경철? 우리 결혼식 사회를 봤고 또 출판업을 하고 있는 친구 말이야. 든든한 동지라서 많은 도움이 되어줄 거야.
3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매사에 열정적인 그는 새를 좇아 다니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창작에 매달렸다. 그때부터 현우에게 문학은 또 다른 새였다. 현우 역시 새였다. 폭풍우가 몰아쳐 길길이 날뛰는 파도의 물머리 위를 날아가는 슴새였다. 그의 열정이 어느 정도 열매를 맺는 듯했다. 책도 몇 권 펴냈고 반응도 제법 좋았다. 그에게 출판물 계약 건이나 원고 청탁이 쇄도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이라면 행복처럼 보였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어느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대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소련의 붕괴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이 시작되면서 이 땅에도 크나큰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또 컴퓨터와 시각매체들의 활발한 움직임도 변화에 한 몫 거들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각(四角)의 틀 속에 갇혀버렸다. 어느 누구도 사각의 틀 앞에서 자유스러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변화와 혼란을 틈타 새로운 흐름들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웃기는 자식들! 이젠 끝장이라고? 웃기지 말라, 이거야! 언제는 좋은 때가 있어서 꽃을 피웠나. 우리는 쓰러지지 않는다구. 나는 들러리가 아니란 말이야! 우리는 거친 파도를 꿋꿋이 헤쳐 나온 전사들이었어! 동요하는 너희들이나 꺼져! 꺼지란 말이야!
현우의 절규. 만취된 육신. 세상을 향한 저주와 발악. 해경은 그의 모습에서 서서히 밀려오는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눈부실 정도로 조명하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점점 고개를 돌렸다. 현우와 같은 길을 걸었던 경철 씨의 출판사도 재정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날개 꺾인 새들이었다. 그럴 즈음에 해경은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동네 아이들이 고무줄로 만든 새총으로 장난삼아 쏜 돌멩이에 참새 한 마리가 추락했다. 어린 참새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다시 날아오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개구쟁이들은 어느 누구도 동정이나 연민의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추락해서 퍼덕거리는 참새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사냥개처럼 몰려들었을 뿐이었다.
현우는 그런 상황에서도 창작에 대한 열정을 접지 않았다. 예전보다 눈빛을 더욱 반짝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그 후로 책을 펴낸 적이 없었다. 그 어느 날인가 경철 씨가 비틀거리며 현우를 찾아왔을 때 술상을 봐주었다.
하 이거, 명퇴다, 졸지에 짤린다고 해서 졸퇴다, 황당하게 짤린다고 해서 황퇴다, 이거 정말 어떻게 되는 판인지 모르겠어. 나도 이제는 문을 닫아야할 모양이야. 버틸 만큼 버텨보았는데 이젠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버거워.
제기럴! 명퇴는 문학동네가 더 심하다니까 글쎄. 쓰러지기 싶으면 유행을 따르라는 거야 뭐야. 그러니까 딱 잘라 말해서 전향하라, 이런 이야기인 모양인데, 이거 웃기지 않어? 아, 글쎄 말이지, 우리의 지나온 이야기를 써놓으면 후일담이니 어쩌니 하면서 개똥 취급을 하려고 들더라니까 글쎄. 누가 그러는지 알어? 어제의 동지였다는 자들이 먼저 설레방을 까더라구.
나는 우리가 실상이었다고 생각해왔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까 허상이었던 모양이지. 허수아비보다 못한 허상 말이야. 이젠 지쳤어…….
허허, 지쳐서는 안돼. 우리는 허상이 아니었어. 우리의 실상을 되찾으려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야한단 말이야. 그래, 보아란 듯이 창공을 훨훨 날아보자구. 자랑스럽게 나는 모습을 미물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잔 말이야.
그날 두 사람은 술에 흠뻑 젖었다. 그 이후로도 두 사람은 종종 만나곤 했는데 그때마다 술에 흠뻑 젖어 날지 못하는 새들로 변해 있었다. 해경은 그들을 측은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그들은 날개가 없었고, 다만 두 팔을 날개처럼 벌려 새처럼 날아보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이리라.
결국 경철 씨는 출판사의 간판을 내리고 무슨 사회단체의 사무국장 자리를 맡았다. 물론 현우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밥이 하늘이라고 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자신의 문학을 밀쳐놓고 방송국 스크립터로 변신했다. 해경은 고집스러운 그가 그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잘 알고 남음이 있었다.
절대로 외도가 아니야. 화려한 외출이라고 생각해봐. 글을 쓰는데 좋은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거야….
해경이 그를 위로하려다가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고통의 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그의 생채기를 건드리는 꼴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현우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무반응이 오히려 불안했으며 머지않아 현실로 나타났다. 첫 직장을 돌연히 그만 두었듯이 두서너 달만에 방송국 스크립터 자리를 미련 없이 내팽개쳤다.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그의 말수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아이를 갖는 것도 극구 거부했다. 그는 날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임(不姙)의 새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해경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불면증에 빠져들었다. 존재와 부재라는 의미에 골몰했다. 해경은 불면의 밤에 시달린 날이면 두 사람이 부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속절없이 빠져들곤 했다. 고통을 잠재우고, 지친 육신을 잠재우기 위해 한 동안 술에 빠져들었다. 가까스로 제정신을 차리면서 조그만 장사라도 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양품점을 시작하면서부터 금세 폭발할 것만 같았던 상황이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해경은 옷을 디스플레이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새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동대문과 남대문 상가를 돌아다녀야 하는 일로 분주해서 예전처럼 현우의 처연한 현실에 매달려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미 예정되었던 것처럼 각방을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다. 얼굴을 마주 대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며칠 간격으로 용돈을 주기 위해 담배 연기 자욱한 그의 방을 찾는 것이 고작이었다. 현우는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아두었다가 해경이 새 상품을 구입할 때쯤이 되면 화장대 위에 슬그머니 올려놓곤 했다.
소강상태가 다시금 활성화된 것은 경철 씨의 돌연한 사망 소식이었을 것이다. 경철 씨의 죽음은 곧 현우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경철 씨가 사망하기 전날 두 사람은 술을 진탕 마셨다고 했다. 모르기는 해도 여느 때처럼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거나 신세를 한탄하는 술자리였을 것이다. 그런 다음날 경철 씨는 사회단체 회원들과 가까운 산을 등반하던 도중에 갑자기 토사 물을 쏟아내면서 쓰러졌다고 했다. 그 토사 물은 몸 속에 쌓여있던 고통의 찌꺼기와 분노의 편린들이었을 것이다.
경철이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일회용이었어! 그래, 우리는 폐기물이야! 너꺼무! 그렇지만 경철이는 이제 자랑스럽게 날개를 달았어.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단 말이야! 땅위를 박박 기어다니는 너희들이 날개를 알아? 너희들은 날지 못하지? 경철이는 이제 자유롭게 하늘 높이 날 수 있단 말이야!
현우는 평생 해야할 말을 다 토해내 버렸다는 듯 그 이후로 입을 굳게 다문 패각류처럼 변해버렸다. 불면증도 극심해졌다. 가출로 이어졌다. 그는 오랫동안 부재중이다.
태풍이 잠시 숨을 돌린 듯하다. 비도 잠시 그친다. 양품점 유리 진열장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때문에 바깥 풍경이 흐느적거린다. 행인들이 흐느적거리며 걸어간다. 비가 잠시 그친 틈을 놓치지 않고 어디론가 가야할 곳이 있는 모양이다. 걷는 게 아니라 아스팔트 위를 기어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현우가 일주일 전쯤에 보낸 마지막 문자메시지는 이상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에서 발췌한 내용이었다.
<라지에이터의근방에서승천하는굳바이. 바깥은우중. 발광어류의군집이동>
어디선가 트레몰로 주법으로 연주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선율이 쏟아진다. 다시금 쏟아지는 작달비 소리였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모양이다. 날개가 있다면 세상 저 쪽의 또 다른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개는 없다. 우리에게는 허망한 날개보다 대지를 밟고 우뚝 설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필요하다. 길거리의 행인들이 쏟아지는 비를 피하려고 거미 새끼처럼 흩어진다. 비가 다시금 몰아닥칠 줄 알면서 그들은 어디를 향해 길을 나섰던 것일까. 이제 거리에 사람은 없고 비만 내린다. 전조등을 켠 차량들만이 빗줄기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 그야말로 '바깥은 우중'이다. 삼바사슴이 우중을 뚫고 유리 진열장을 들이받는다. 흐느적거리던 바깥 풍경이 옆으로 눕다가 끝내 해체되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바깥은 비만 있을 뿐이다. 해경은 흔들의자에서 일어나 두 다리로 굳건하게 선다. 작달비가 더욱 거세어진다. 삼바사슴이 자꾸만 몰강스러워진다. 슴새 박제가 우중을 뚫고 날아가기라도 하겠다는 듯 깃을 친다. 빗속을 뚫고 하염없이 걸을 수는 없는 걸까.
오늘은 허탕일 듯싶다. 태풍을 뚫고 찾아올 손님은 아무도 없을 터였다. 해경은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옴켜쥐고 번호판을 또박또박 누른다.
..........................................................................끝
박혜강: 1954년 전남 광양 출생. 1989년 무크지 <문학예술운동>에 중편소설 <검은화산>으로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검은노을>로 제1회 실천문학상 수상. 장편동화 <자전거여행>으로 제1회 대산문예창작지원금 수혜.
장편소설 <젊은 혁명가의 초상>, <검은노을>, <다시 불러보는 그대 이름>, <안개산 바람들 (上下)>, 대하소설 <운주(전5권)>이 있으며 장편동화로 <자전거여행>을 펴냈다. 현재 무등일보에 오월 광주를 주제로 하는 대하소설 <꽃잎으로 눕다>를 연재하고 있으며, 광주전남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이다.
김창규 목사님, 부족한 소설을 높이 평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면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인터넷 신문에 게재하는 건에 대해서 계간 <문학과 경계>사와 상의한 결과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게재하실 때 <문학과 경계>사 이번 여름호임을 명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첫댓글 박혜강님 <청주기별>인터넷 신문에 귀하의 소설을 소개하여도 될까요. 너무 감동적인 소설입니다. 허락하시면 여기 꼬리말에 답을 주세요.
김창규 목사님, 부족한 소설을 높이 평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면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인터넷 신문에 게재하는 건에 대해서 계간 <문학과 경계>사와 상의한 결과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게재하실 때 <문학과 경계>사 이번 여름호임을 명시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