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고역입니다(창1:17). 에덴 밖 동쪽에 사는 사람들은 수고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창3:24). 노동은 우아할 수 없습니다. 얼핏 우아해보는 일들도 그 속살을 만져보면 굳은살 투성이 입니다. 발레리나는 척추분리증에 걸리기 십상이요, 피아니스트는 건초염에 걸리기 쉽고, 트럼펫 연주자는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걸리는 확률이 높고, 오케스트라의 타악기 연주자는 강박관념이 심장병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아해보이는 노동이라도, 노동은 고역이어서 고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노동의 결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밭에 엉겅퀴를 두셨지만, 밭에서 일하는 자에게 채소를 먹게 하십니다(창3:18). 고되겠지만 일하는 만큼 버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하는 자에게 정당한 삯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당연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한 삯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장하신 것입니다.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레19:13)" 하나님께서는 우리 급여에 관심이 있습니다.
일하는 야곱이 고용인 라반에게 삯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라반의 제안은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창30:28)” 라반과 야곱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합니다(창30:31~32). 계약의 내용인즉, 아롱진 것, 점있는 것, 검은 것이 태어나면 그것들을 야곱의 삯으로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에게 임금을 지불할 마음이 없습니다. 라반은 야곱이 치는 가축들 중에서 얼룩박이, 점박이, 검둥이는 모조리 사흘 길 떨어진 것으로 분리해 가져가 버립니다. “라반이...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검은 것들을 가려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창30:34~36)” 야곱이 노동에 대한 삯을 받으려면 아롱진 것이거나, 점있는 것이거나, 검은 것이 태어나야 하는데, 지금 야곱이 치는 가축들은 ‘흰 것’밖에 없습니다. ‘흰 것’들끼리 교미하면 ‘흰 것’이 태어날 것입니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유전자가 있긴 하겠고, 돌연변이가 더러 있겠지만, 사실상 흰 것들 사이에서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것이 태어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삯을 지불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삯을 주지 않으려는 라반에게 대항하여 야곱이 취한 방식은 어설픈 주술입니다(창30:37~41). 껍질 벗긴 가지를 보고 교미를 한들, 아롱진 것, 얼룩진 것, 검은 것이 태어날 리 없지요.
그런데, 흰 것들 사이에서 아롱진 것, 얼룩진 것, 검은 것이 태어납니다. 야곱의 어설픈 주술이 효과를 본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흰둥이 사이에서 돌연변이라 할 검둥이가 태어난 것은 창조주의 거룩한 유전자 변형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흰둥이 사이에서 점박이와 얼룩이가 마구 태어난 것은 창조주의 개입으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라반은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이에 그 사람(야곱)이 매우 번창”합니다(창30:43).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돌과 흙에 달아 손톱을 깎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은행나무 껍질 같은 손바닥을 지닌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해고당한 동료들을 대신해 송전탑에서 겨울을 난 사람들에게, 교회 종탑 위에서 텐트치고 ‘긴 밤 지새우는’ 학습지 교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정당한 삯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지난 3월 8일, 우리 교단 총회장 목사님께서 쌍용자동차 철탑 농성장을 찾으셨습니다. 지난해 민들레교회가 앞서 간 길을 올해 총회에서 추인해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삯이 지급되고, 저들 노동자들이 일하던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서 원하시며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노동의 결실을 비싼 임대료로 내야하는 소자본 자영업자에게, 맞벌이에 투잡, 쓰리잡으로 대출 갚아가며 근근히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공공의 가치를 창출하며 살인적인 저임금으로 살아가는 사회적기업과 엔지오의 활동가들에게, 전세아파트에 사는 대가로 다달이 대출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샐러리맨에게,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해 꿈 담긴 이야기를 소매하는 가난한 무명 배우에게, 들이마신 물을 고스란히 땀으로 쏟아내며 유해 재료로 도장하는 소기업 가족들에게, 대학등록금에 머리새고 등뼈 휘는 중년에게, 진로를 찾지 못하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청년 실업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정당한 삯을 주실 것입니다. 어설픈 주술에 의지하는 야곱에게도 정당한 삯을 주셨거든요.
야곱이 신실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삯을 주신 것은, 야곱이 신실해서가 아니라, 노동자에게 정당한 삯을 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라반이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첫댓글 밤새 일을 하며 요즘은 넘 고되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원망스런 마음이 생길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지요.ㅠㅠ결국 나 잘 먹고 잘 살자 하는건데 말이에요.
말씀을 묵상하며 위로가 됩니다.
욕심을 버리고 기도하며 기다리려고 합니다. 설상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감사하며 기다리겠습니다.
힘이 되고 위로된 말씀 넘 감사해요.^^
힘내세요, 노동이 기도라는 떼제공동체의 가르침이 집사님에게 육화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라반이 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아~!
아멘입니다.
그런데요. 목사님~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야곱처럼 7년을...또 다시 7년을?
자신이 없어요 ㅠㅠ
지쳐가고...그런 모습에 사단은 꼬이기 시작하고...ㅠㅠ
오늘 요한복음 16장을 묵상하면서...33절이 가슴에 파고듭니다. 지금 제 현실 때문이겠죠 위로받고 싶은...
환난을 당해야만 담대해지는 거겠죠?
사실요. 목사님, 사실은요, 환난 당하고 싶지 않아요 ㅠ
그냥 평안만 주시기를...
너무 형편없는 모습이죠?
인생이 끝나도록 환난은 멈추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설픈 미봉책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죽은 자에겐 부활을, 산 자에겐 주의 재림을 말씀하시지요. 우리는 몸의 부활과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습니다.
아멘.
녜에~~ 아멘! 그분의 시간까지 ?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시간은 지금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우리에 앉고 일어섬 을 아시오매 때가 차매 이루어 주지 않을까 싶네요
때가 차매, 지금 우리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예배 드리는 것은 장차를 위함이 아니라 때가 찼고 이미 성취된 구원에 대한 반응입니다.
아멘입니다! 구원에대한 반응이 아들 며느리 가정도 회복이 되어지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