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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잡는 설날
글/김덕길
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이 다가왔다. 내 어릴 적 설날은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형님 누님들을 맞이하는 입장이었다면 39살 지금의 심정은 그저 홀로 살고계신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다. 어릴 때 그 설레던 감정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설 하루 전,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우리는 용인에서 정읍으로 출발하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팔남매인 우리 가족들 모두가 모이는 날은 추석과 설날 그리고 곗날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모이는 숫자가 차츰차츰 줄어들더니 몇 년 전부터는 절반으로 줄었다. 형제들이 얼마나 오느냐에 따라 어머니의 웃음의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막둥이인 나는 가능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였다.
출발 전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저 덕길이예요. 안녕하셨어요?”
“아이고 내 강아지 그래 어디냐? 잘 지냈냐?”
“예, 어머니 잘 지냈습니다. 명절에 누구 온데요?”
“모르것다. 너희 큰 형은 온다고 하는데 딴 애들은 전화가 없네.”
전화기를 타고 힘없이 들리는 84세 늙으신 어머니의 쓸쓸함이 가득 묻어나와 순간 울컥 하였다.
“어머니!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저희가 다 할게요! 조금만 기다리셔요. 지금 출발할게요.”
방송을 타고 들리는 설 교통 특집 방송에서는 천안까지 밀린다는 통신원들의 보고가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밀리는 천안을 피해 내려가기로 하고 처음부터 국도로 출발을 했다.
길 찾는 것 하나는 귀신인지라 나는 전혀 밀리지 않고 용인, 안성, 공주, 논산, 익산, 김제를 거쳐 고향인 정읍 이평까지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경북 풍기에서 시집을 온 아내는 벌써 차례 준비만 13년째 해 오고 있다. 처가에서는 차례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아내는 차례 음식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 아내를 어머니는 손수 시범을 보이시면서 새 며느리에게 가르쳤다. 아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음식 차리는 법을 배우더니 시집 온 다음 해 부터는 윗동서들이 내려오지 않아도 전혀 거리낌 없이 모든 음식 준비를 척척 하는 게 아닌가?
며느리들이 내려오지 않는다는 말을 어머니에게서 들은 막내며느리인 내 아내는 서운한 속내를 애써 숨기지 않았다.
“어쩜 좋아? 나 혼자 언제 그 많은 음식들을 다 해? 난 몰라!”
거의 울상이 된 아내를 위해 내가 해 줄 말이 없었다. 다들 사는 게 힘이 들어 설날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하시는 형님들임을 알기에 나야 서운한 감정을 숨길 수 있다지만, 모든 일을 어머니 대신 자신이 손수 해 나가야 할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걱정 마! 여보! 나랑 우진 이랑 열심히 도와줄게!”
아내는 메모지를 꺼내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었다.
“당신 뭘 적어?”
“응, 음식 준비할 재료들 적었어. 가자마자 빠진 것 체크해서 다시 시장에 나갔다 와야할까봐!”
먼지 풀풀 나는 신작로는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고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찌르던 가로수들은 이미 베어진지 오래였다. 나는 익숙한 시골길을 달려 내가 살던 이평중학교 앞으로 차를 몰았다. 농사철이 아닌 길 옆 개울은 말라있었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짐을 들고 방문을 열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머리를 감고 계셨는지 머리가 젖어있었다. 야윈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부축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보일러가 작동이 되지 않아 차디찬 방바닥에 냉기가 흘렀다. 지난번에 내린 폭설로 샘터의 담벼락은 이미 넘어져서 찬바람이 토방으로 밀려왔다.
우리는 차례 상에 필요한 재료를 적은다음 부안 시장으로 향했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로 엄청나게 밀렸을 시장도 한가하기만 하다. 그래도 모처럼 시골의 장을 구경하노라니 즐거웠다. 마냥 구경만 할 시간이 없어 우리는 서둘러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총각일 때, 전을 부치는 형수님과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보여서 크기가 쟁반만큼 큰 전기 프라이팬을 선물로 사 드렸다. 그 프라이팬 하나만 있으면 조그만 프라이팬으로 다섯 번을 해야 할 일을 한 번이면 말끔히 끝을 낼 수 있었다.
“어머니! 제가 사드린 커다란 그 프라이팬 어디 있어요?”
“아 글쎄 그것이 여름 물 난리 때 다 젖어버렸잖아. 너희 형이 닦아서 시렁에 올려놓았는디 잘 될 란가 모르겠다.”
나는 그 프라이팬을 찾아 전기를 넣었다. 다행이도 프라이팬은 작동이 되었다.
나와 5학년짜리 아들, 그리고, 어머니는 그 프라이팬 앞에 빙 둘러앉고 아내는 전 부칠 재료를 우리에게 가져왔다.
아들은 커다란 양재기에 계란을 깨어서 노른자가 풀리도록 저었고, 한쪽에는 부침가루를 놓은 다음 나는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전기를 넣었다.
첫 번째로 우리는 동그랑땡을 지졌다. 동그랑땡에 부침가루를 입힌 다음 다시 계란을 두른 후, 프라이팬에 올렸다. 어머니는 옆에서 꽂이를 하셨고, 아들도 신기한 듯 꽂이를 도왔다. 꽂이는 이쑤시개처럼 생긴 막대에 손가락 크기로 맛살, 돼지고기, 파, 버섯 등을 꼽아서 계란을 두른 후 지져내면 되는 것이었다. 가장 맛이 있던 지짐은 동태포 지짐이었다. 동태를 얇게 포를 뜬 다음 그것에 계란을 둘러 부쳐내면 그 구수한 생선냄새가 너무나 구수했다.
남은 계란 반죽으로 무엇을 할까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다.
“어머니! 남은 계란 반죽으로 뭘 할까요?”
“계란찜이나 하렴!”
나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 혹시 묵은 김치 있어요?”
“응, 물난리 때 면사무소에서 보내준 김치 좀 남았을 거여!”
나는 그 신 김치에 밀가루와 계란반죽을 올려 지짐을 하였다. 신 김치의 신 맛이 입안을 가득 맴돌았다. 아들이 김치 지짐을 먹어보다니 연신 “아빠! 따봉!”을 외쳤다.
나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까지 함께 차례 상 준비를 한 덕분에 우리는 수월하게 잔치준비를 끝냈다. 아내는 그 와중에서도 언제 잡채까지 만들어 어머니에게 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유난히 잡채를 좋아하셨다. 너무나 맛이 있다며 어머니는 칭찬이 그치지를 않으셨다. 밤이 되자 친구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명절 때만 만나는 유일한 학교 친구들인 그들을 보는 재미 또한 명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만남이었다.
이튿날 나와 아들은 오붓하게 차례를 지냈다. 손수, 아들이 할아버지 차례 상에 술을 올려드렸다. 우리 집은 떡국대신 삶은 닭과 밥을 먹는 것이 거의 명절 아침의 행사가 되어버렸다. 토종닭을 맛있게 삶아 메밀묵과 함께 먹으니 너무나 맛이 있었다.
차례가 끝나고 근처 사는 친척들이 어머니에게 새배를 오고 그들이 모두 떠난 후에 나는 오학년짜리 아들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진아! 아빠랑 조개 잡으러 갈래?”
“조개요? 그걸 어떻게 잡아요? 아빠?”
아들은 조개구이를 좋아했다. 또래들이 아무도 내려오지 않자 우진 이는 심심했던 모양이다. 우진이는 선뜻 나의 말에 동참을 해 주었다.
아들과 나는 장화를 신고, 대야를 들고, 손에 칼을 한 개씩 들었다. 그리고 조개가 있을만한 고랑을 찾아 나섰다.
조개는 숨을 쉴 때 혓바닥을 내 밀고 있다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얼른 혀를 감추곤 한다. 그 숨 쉬는 조그만 구멍이 물살 아래로 보이는 것이다. 나는 정확한 표적을 찾아 낸 다음 아들에게 외쳤다.
“우진아! 저기 조그만 일자 모양의 금이 보이지? 거기 한번 파 봐!”
아들은 가지고 있던 칼로 그 곳을 파냈다.
“어라? 정말이네? 아빠! 조개 좀 봐요. 아빠는 어찌 그리 잘 아세요?”
“하하하! 내가 시골에서만 20년을 살았잖아. 그러니 알지!”
“이번엔 제가 찾아볼게요!”
아들은 개울 속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무엇인가를 발견 한 듯 칼을 넣었다. 잠시 후 아들의 손에서는 커다란 조개가 쥐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아빠! 이것 봐요. 저도 잡았어요.”
아들은 다시 허리를 숙여 개울 바닥에 손을 넣더니 어느새 손에는 두어 개의 조개가 따라 나왔다. 이제 아들은 조개잡이에 정신이 쏘옥 팔려있었다. 너무나 신이난 모양이다. 잠시 후 아내가 냉이를 캐러 왔다. 벌써 아들의 옷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추운데 뭐 하니? 에고 여벌옷도 없는데 그렇게 다 버리면 어떡해?”
“엄마는? 이것 봐요 제가 이거 다 잡았어요.”
“조개 잡아서 뭐 하려고 그래? 그 조그만 것으로 뭘 먹겠다고 그러니?”
“엄마는? 자꾸 그러시려면 냉이나 캐세요!”
아들은 엄마의 꾸지람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는 대야에 가득 우렁과 조개 그리고 덤으로 미꾸라지 한 마리까지 잡았다.
대야에 한가득 조개를 들고 집에 도착하니 막내 매형께서 오셨다.
“매형 이거 먹으려고 하는데 어찌 하죠?”
매형은 낚시를 좋아하셔서 민물 요리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으셨다.
“흐래는 빼지 않아도 되니까 끓는 물에 담가 조개가 벌어지면 알맹이를 꺼내 똥을 빼내서 초장에 찍어먹으면 맛있을 거야! 처남!”
나는 큰 벽돌을 가져다가 마당에 임시 아궁이를 만든 다음, 낡은 철 양동이를 올리고 물을 끓였다. 아들은 또 신기한지 자기가 불을 때 보겠다면서 나무를 가져왔다.
내가 어릴 때는 소죽을 쑤는 게 일인지라 맨 날 아궁이에 불을 때곤 했는데 아이에게는 이 불을 지피는 장면이 그렇게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잠시 후, 물이 끓자 조갯살을 꺼내 일일이 씻었다. 이윽고 싱싱한 조갯살은 다과상위에 올려졌고, 우리들은 다과상 주위에 모여 앉았다.
삶아진 미꾸라지는 아무도 먹으려 하지 않아서 내가 초고추장을 찍어 한입에 넣었다. 너무나 맛이 있었다. 조갯살은 초장에 찍어 먹는데 모두들 맛이 있어 했다. 조갯살보다는 우렁이 훨씬 고소했다.
그렇게 설날 하루가 저물어갔다. 나는 우진 이에게 물었다.
“올해 설날 어땠니?”
“아빠랑 조개도 잡고, 전도 부치고 차례도 지내고 너무나 좋았어요. 올라가면 꼭 일기장에다 쓸 거예요.”
“그래 그러렴, 네가 경험한 오늘 하루는 평생 너의 추억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날 거야!”
아들과 나는 모처럼 티 없이 까르르 웃었다. 식혜를 내 오던 아내는 두 부자가 뭐 그리 좋아서 저리 웃는지 모르겠다며 덩달아 까르르 웃었다.
설날 저녁의 어둠 속으로 수줍은 가로등불이 뽀얗게 얼굴을 드러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첫댓글 올 설 연휴는 춥지 않아서 다행이예요....시인님 글 보니 설 잘 보내고 오셨네요. 새로운 에너지로 좋은 글 많이 쓰시길.......^^
항상 변치않는 걸음 감사드립니다. 권 시인님의 가정에도 행복이 촘촘하게 엮어가는 새해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