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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둥글이세상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둥글이
포용과 비판 사이 4 - 포용세력, 비판세력
과거 전체주의 질서를 ‘벗어나’ 이에 ‘대항’하는 듯한 구도를 형상화 한듯한
꽃 한송이를 찍어 올린 적이 있었다.
[ 2007년 5월 거제에서 ]
보령으로 들어오면서는 전체주의 질서 ‘안에서’ 전체주의 질서 자체를 ‘흐트리는’ 듯한
꽃 한 송이를 발견하게 된다.
[ 2007 년 10월 보령에서 ]
이는 인간성 말살을 불러일으키는 전체주의/파시즘적 사회상에 저항하는
두부류의 시민사회세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즉, 첫 번째 사진은
독재, 자본 세력에 분명한 선을 긋고 그들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서
사회의 기반을 다지려는 운동으로 주로 ‘조직적’ ‘집단적’ 실력행사를 동반하는
[사회적실천]운동의 상징성을...
두 번째 사진은
사회이슈와 대항투쟁의 거대한 문제보다는 일상에서의 자기성찰에 기반한,
자잘한 사안에 대한 고민과 실천에 중점을 두면서 ‘주체적 실천성’을 각기의
사회구성원에게 확대함으로 건전한 사회 기반을 형성하려는
[주체적 실천운동]의 상징성이 형상화 된 듯하다.
안에서 싸울 것인가? 밖에서 싸울 것인가?
적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이 오래된 인류 역사 투쟁의 고민이 이 두장의 사진에 담겨있는 듯하다.
거제에서 찍은 사진에 대한 ‘그때’ 감상 보기 => 클릭
죽어가는 농순이...
이 활동이 본시 마음 따라 발길 따라 가고 싶은 대로 가고 쉬고 싶은 대로
쉴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 지역별로 할당된 일수를 채우면서 ‘캠페인’을 주목적으로,
‘유량’을 부수적으로 하는 활동이다 보니, 필히 관심 있는 이들의 후원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이 활동은 본인의 젊음과 체력을 투자해서 하는 활동이기에 돈 벌 시간이 없다.ㅠㅜ
따라서 의욕은 있으나, 젊음과 체력을 투자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으신 분들의 후원을
종종 요청 드려 왔다.
하지만 이에 미동도 하지 않는 독자들의 ‘굳건한 마음가짐’에 힘입어
둥글이는 거의 아사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번 일지를 통해 이 비보를 전 세계에 알린 직후부터 품을 팔기 위해
한동안 나설 예정이다.
내 활동이 ‘공공성’을 띄는 부분이 없지 않기에,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느끼는 책임만큼의 후원금은 바람직하리라.
이동 중 차에 치이지 않게 조심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 주의력의 책임이지만,
아사해서 길바닥에 둥글이 시체가 굴러다니지 않게 해야 함에는,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책임도 있으리라.
내가 노동전선에서 땀 뻘뻘 흘리고 있을 때 에도
내 바닥난 통장은 후원금의 쏟아 부워짐을 기다리며
그 아가리를 딸각거리고 있을 것이다.
[ 0010 우리 아리따운 농순이(농협통장)(농협 : 090-12-023267(박성수))가
배가 고파서 호소하고 있다. 당신은 저 절규 앞에서 무심할 수 있는가?
천연덕스럽게 ‘응’이라고 답변할 사람들이 밉다. ㅠㅜ ]
보령을 향해서... 10월 10일
서천에서 볼일 보다가 다섯시 경에 일정을 마치고 보령으로 향한다.
서천을 나서면서 들어올 때와는 전혀 딴판의 ‘모양’?을 접한다.
들어올 때는 서천의 상징물 ‘정면’을 대했었는데,
나가는 길에 그 뒤통수를 접하게 된다.
잘 있어라 서천아~~~
[ 0020 서천 상징물의 뒷 통수 ]
서천을 나서면서 이정표를 접하는데 만감이 교차한다.
지나온 곳, 가야할 곳, 가고 싶은 곳의 표시...
마치 도로 이정표가 아니라, 복잡한 내 심정이 그대로 표현된 듯 한다.
[ 0025
우측 길(부여) - 앞서 지나온 곳
중앙 길(보령) - 내 가야할 곳
좌측 길(군산) - 내 고향 가고 싶은 곳]
문득 하늘을 올려다 봤더니 구름이 만들어내는 장중함이 이루 말할 데 없다.
[ 0030 0040 하늘 풍경 ]
늘상 그렇듯이 가는 개가 왈왈거리고...
[ 한참 걷는 중에 보령까지의 거리표지가 눈에 드러난다.
걸어온 길까지 합치면 서천에서 보령 가는 길이 40km 가 넘는다는 말이다. ]
[ 0070 아스팔트에도 불구하고 돋아나는 생물 ]
[ 0080 아스팔트에 판박이 된 동물 ]
[ 0090 떨어진 담배꽁초 - 담배꽁초 버리는 사람을 발견했을 때
신고하면 벌금 3만원이 국고에 채워진다. ]
[ 0100 ‘마을회관에서 말씀 드리긋습니다.’ ]
[ 0110 삭막한 벽돌구조물에 활력을 주는 군부대 참호 디쟈인.
벽 페인트 칠 작업을 했던 김상병은 장난꾸러기~~~ ]
[ 0120 앗? 근데 이게 뭐야. 구제향 아주머니 찾기 플랭 아냐?
부여에서 서천 오는 중 내내 시외버스정류소 벽면 등에 빼곡히 풀질되어서
‘사람을 찾습니다’ 포스터가 붙어 있길래 그를 찾는 이의 정성에 감복해서
서천 일지에 실종 포스터를 올렸건만...
여기에서는 아예 ‘플랭카드’를 보게 될 줄이야.
부내초등학교 앞에서 실종되셨답니다.
잃어버리는 사람을 찾는 이의 심정이 얼마나 애탄 것일까. ]
[ 0130 부내 초등학교 입구 간판 - 바로 이 앞에서 실종되셨다고 함.
혹시나 이 글을 보시고 비슷한 인상을 가진 분을 지나쳤던 분들은 제보 주세요. ]
[ 0140 도로 한편 텃밭에서 콩 따는 아쥐매 ]
[ 0150 해는 서산너머로 .... ]
‘비인면 다사리’로...
해안가 마을의 풍경을 눈에 좀 담고 싶어서
국도에서 삐져나온 비인면 다사리 쪽으로 향하는 샛길로 들어섰다.
고향 군산에서 비교적 가까운 모래사장 길로 예전에 생태조사한답시고
한번 지나친 기억이 있다.
이 사나운 팔자에 혹시라도 연인이 생기면 함께 밟아볼 곳으로 사전 탐색을 나선다.
[ 0200 좁다란 시멘트 포장도로 길에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가로등이 비춰진다. ]
[ 문제 : 앞선 그림과 다른 그림 찾기
정답 : 길 중간에 개새끼 한 마리가 가는 길을 막고 왈왈 거린다. ]
[ 30여 분 정도를 더 걸으니, 썰물에 갯벌이 드러나 보이는 어촌마을의 야경을 접한다. ]
일곱시가 넘어 배도 고프고 피곤도 해서 당장이라도 짐을 내려 놓고 쉬고 싶은데,
어디 텐트 칠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
다사리의 해안가 삼거리의 ‘빈’ 민박집 뒤편에 텐트를 쳤다.
이는 민박집 주인에게 걸린다면 후라이펜으로 대가리를 맞아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준 범죄행위? 이다. ㅠㅜ
다른 곳도 아니고 민박집 앞마당에 텐트를 치다니...
하지만 주변에 마땅히 텐트 세울 곳이 없다.
마을 사람들에게 혹시나 발견될까 싶어 최대한 사각방향을 찾아서 텐트를 치고,
조심조심 쥐 죽은 듯이 움직이며 비밀리에 취식을 수향한다.
해안가 마을이라 유난히 습한데, 텐트를 친 직후부터 습기가 달라붙기 시작한다.
[ 0310 민박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가 습한 공기에 흠뻑 젖어서 물방울이 뚝뚝떨어지고 있었지만,
상쾌하니 기분으로 나서는 어촌마을 앞 바다가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 0320 비인면 일대 앞바다 ]
[ 0410 0490 어촌마을 분산한 풍경 - 서천의 해안가 어촌마을 일대에는
‘어촌체험’이라는 이름으로 갯벌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운영되고 있었다. ]
[ 0500 0530 어촌마을 한산한 풍경 ]
다사리에서 장포리 - 선도리를 잇는 해안가 모래사장을 두 어 시간에 거쳐 거닐었다.
모래밭이기만 한 곳이 있었고, 자갈이 섞여 있는 곳이 있었고,
울퉁불퉁한 괴석들이 바닥에 곳곳이 튀겨나와 있는 모습도 살필 수 있었다.
생계를 위해서 분주히 갯벌을 오가는 이들의 모습도 내내 눈에 띄었다.
그물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다.
[ -0640 다양한 모래사장 / 갯벌 풍경들 ]
[ 0700 썰물에 모래 씻겨 내려지는 모습 ]
[ 0710 ‘신발은 달리고 싶다!’ ]
[ 0720 사진상의 굴뚝 같이 솟은 것은 ‘등대’. 비인만의 최 외곽 모서리인 마량에서
험한바다를 떠도는 선박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
천지에 게 녀석들이 진을 쳐 놓고 있다.
모래를 파고 들어가 판 모래를 똥글똥글 말아서 그 주변에다 툭 던져 놓는 등으로
집을 짖는 것이 욘석들이 대대로 물려 이어온 건축 기법인가보다.
[ 단독주택(게집) ]
[ 다세대 주택 ]
[ 아파트 ]
그런데 여느 게집주변과는 다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다른 녀석들은 돌돌 말은 모래를 그냥 집 주변에 편한대로 툭 던져 놓는데
욘석 던져 놓은 모래 똥은 예사롭지가 않다.
특별한 공학적 의도내지는 예술적 취향이 반영된 듯 하다.
[ 0850 독특한 풍경 뭔가 표현하고자 하려한 시도가 엿보이는데...]
다른 게들의 그것과는 다른 나름의 역동적인 감정을 어떤 ‘규칙’을 바탕으로
모래바닥에 표현 한듯 한데... 도무지 이를 찾을 수 없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10여분 고민하다가 이 명석한 두뇌에 그 정답이 주워진다.
[ 0860 게가 표현하고자 했던 영상의 구현 ]
그렇다. 이 작품은 달팽이 가족의 안타까운 이산소식을 접한 금붕어가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달팽이를 등에 태우고 대서양을 건너서 가족을 상봉시켰다는...
붕어과 민물고기의 불굴의 의지와 복족류 생명체의
아름다운 우정 얘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었던 것이었다.
그 추상의 이면에 담겨진 대상의 이미지를 발견해 내기는
나와 같은 천재에게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오늘의 대발견은 참으로 특별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발견이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등뼈가 있고 ‘뇌 용량이 천CC가 넘지 않는 생물의
상징적 예술적 표현이 가능하지 않다‘던 기존의 뇌생리학계에 일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앞서 얘기했듯이 ‘까치’가 마을 입구에 배회하면서 ‘깍깍’ 거리는 것이
인간을 조롱하는 것이고, 멍멍이들이 사람 지나는데도 벌러덩 누워서 본체만체하는 것이
인간을 괄시하는 모습이었음까지를 설명하여 앞으로 그들의 태도에 인간이 적절히 대응할
여지를 갖게 하는 각 동물들의 인지반응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초석이 될 것이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러한 과학상의 발전에 힘입어,
앞으로 인간은 동물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건방진 까치 박멸용 장총’과
‘싸가지 없는 개 계도용 채찍’등을 휴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이 가득 차 혼란한 와중에 갑자기 앞길이 막힌다.
뭔가 거대한 벽이 내 앞을 막고 있다.
[ 0730 앞길을 막고 있는 녀석 - 엄지손가락만한 게 한 마리가
‘너이 새뀌 나랑 한번 해볼텨?’ 하고 버티고 서 있다.
괜히 맞서다가 큰 부상을 입을 것이 걱정되어서 피해간다. ]
버릇없는 놈들... ㅠㅡ
녀석들에게 맞서기 위한 장총과 채찍이 필요하다니깐...
하기사 그 ‘버릇없음’(자유분방/위계질서없음/본능적)이 생명의 본질인지도...
[ 1000-1020 바닷가 풍경 ]
[ 1030 이곳 일대의 모래사장은 소나무와 참 잘 어울리는 정경을 하고 있다.
중간 중간 평상이 놓여져 있는 풍경이 한산하다. ]
[1040 시간상으로 더 이상 모레사장만 거닐 수 없어서 ‘선도리’ 부근에서
방향을 틀어서 다시 보령으로 향하는 국도로 오르기 직전.
모레사장이 보이는 해변가 한쪽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개 한 마리가 집 앞으로 나와서 왈왈거린다. 텃새보이는 개에게
잘 보여서 좀 편하게 쉬어가려고 씹고 있던 오징어를 던져주니
돌 던지는 줄 알고 잠깐 움찔거렸다가 다시 왈왈거린다.
개시끼~ㅠㅜ 채찍이 필요해~~]
선도리에서 보령 가는 국도에 올라타기 위해서 시골마을의 길을 관통한다.
[ 1060 갑자기 나타난 나그네에 ‘깜딱’ 놀라하는 굉이 ]
[ 1070 쌀을 똑바로 쏟아 펴지 못한다고 구박하는 아쥐머니와
쌀을 똑바로 쏟아 펴지 못한다고 구박받는 아저씨 ]
[ 1080 바람결에 그 잎을 반짝이며 흔들어 대는 포풀러 한 쌍 ]
그로부터 30분 가량 걸어서 국도에 다다르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보령으로 향한 발길질을 시작한다.
중간 중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배낭을 깔고 누워 쉰다.
사람들은 ‘어떻게 갓 길에서 누워쉬냐’고 궁금해 하곤하는데
이참에 그 ‘비밀’을 공개할까 한다.
수면의 기술
피곤할 때는 좌우지간 누워서 자야 한다.
위험-염치 불구하고 피곤할 때 갓길/인도에서 누워 자는 기술을 소개한다.
[ 1085 수면방법론 요약 ]
1. 수면에 임하는 마음가짐?
누워 쉴 때는 지나는 차량,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끊어야 한다.
최대한 편히 쉬어야 다시 걸을 때의 힘을 충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쉬고 있는 길 옆 1,2m 근방으로 차들이 바람을 뿜어내며 지나갈 때도
‘무심’할 수 있는 평정한 마음이 없다면 이러한 대담한 ‘쉼’을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누워서 지나는 차량과 사람들 신경 쓰니느라고 쉬어야할 시간이
‘상심’가 ‘고뇌’의 시간으로 변질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신경이 많이 가는 이들은 그냥 앉아서 쉬어야 한다.
이러한 편안한 쉼은 보통 45분 걷고 나서 15분 동안 주워지는데,
충분히 연마가 된다면 15분 동안 단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원하는 목적을 향한
힘찬 행군을 이뤄낼 수가 있다.
2. 길거리 수면 문제와 대처
그런데 누워서 쉬는 사람의 입장과는 달리 지나며 보는 이들이 편치 않은 듯 하다.
내가 편한 쉼을 쉬고 있는 모습을 본 이들 중에서 가끔 사고 나서
죽은 시체인 줄 알고 놀라거나, 누워 자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시기심으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의 출동은 내가 단잠을 끝내고 다시 이동 중에 이뤄지는 이유로,
뒤늦게 출동한 경찰은 ‘주의’만 주고 사라져가곤 한다.
사실은 내가 갓길에서 누워 자는 이유에 대해서 주의를 받을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도로교통법 상에 ‘갓 길에서 잠깐씩 누워서 자면 안된다’는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 적용을 확대해서 ‘교통방해’행위로 볼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교통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길을 가는 중에 좀 쉰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워 잔 행위’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누워 잔 행위가 아닌 것이게도 된다.
‘앉아서 쉬는데, 몸의 각도보다 좀 더 기울어진 것 뿐이다’
3. 객관적 상황
‘도로’는 차들이 통행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길이다.
하지만 차가 없고, 운전면허가 없는 이들도 자신의 발을 이용해서 이 도로를 걸을 수 있다.
더불어 도로를 걷는 마당에 피곤해서 중간 중간에 한 번씩 푹~ 쉴 수도 있는 문제이다.
‘편히 쉬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생리 현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로가에서 내가 누워 쉬는 것이 불만인 당국자가 있다면 도로가 아닌
국내를 자유자제로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인도’를 만들어 놓으면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도보여행자’의 이동의 권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5,6 시간을 걸어도 도보여행자가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하나 세우 놓지 않아
어쩔수 없이 길바닥에 누워자게 만든 당국자들은 내가 갓길에서 그리 편히 쉬는 모습에
배 아파 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내가 그리 뻗어 쉬는 것은 내가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맨발만 가지고
이동할 권리를 실현하는 중에 부득히하게 보여지는 모습인데,
자동차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내기에 급급한 이들이
나에 대한 어떤 배려를 했으며 나에게 무엇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 1090 철저히 자동차만을 위해 만들어진 도로 ]
[ 1100 1160 다른 생명에 대한 배려가 없는 도로가 만들어내는 폐해 ]
[ 1165 지렁이들의 지옥 - 아마 옆의 옹벽 위화단에서 비가 많이 내려 물이 고일 때,
지렁이들이 숨을 쉬기 위해서 흙을 파고 나오다가
모두 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햇빛이 내리 쬔 후에 모두 말라 죽은 듯 ]
[ 1170 차에 치여 죽은 개구리 한 마리 /
마치 플래툰에서의 아군의 배신으로 정글에 버려져서 결국
적군의 공격을 받아 만신창이가 된 ‘윌리엄데포’의 연기 장면을 대하는 듯하다.
인간의 세계는 어머니 자연의 존재에 의해서 가능했지만,
배은망덕한 인간은 자연을 배신하고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냈다.
인간의 배신에 포효 절규하며 쓰러지는 생물들의
죽음의 행렬은 그러한 인간이 존속하는 한 계속 이어지리라. ]
지도를 보며 길을 걷는데 갑자기 발 밑에 무언가가 눈에 띈다.
염증 때문에 눈이 한쪽이 상하고, 몸이 상처투성이인 비둘기인데
날지도 못하고 사람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달아날 곳 자체가 없다.
날수 없는 처지이기에 도로와 갓길 사이만 왔다갔다 한다.
[ 1180 야만의 왕국 한가운데에 버려진 비둘기. ]
상처를 보아하니 몇 주정도 길바닥에서 저런 생활을 한듯 하다.
몸도 아프고, 먹이도 없으며, 동료도 없이, 적응하기도 힘든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야만의 세계에 버려진 삶... 더군다나 야생동물의 지옥인 ‘아스팔트도로’에...
측은한 마음에 가방을 내려놓고 쌀을 좀 꺼내서 던져 준다.
이리 서글픈 삶을 힘든 몸을 끌고 네가 이어가야하는 것은
내가 속해있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낸 현실 때문이리라...
다른 것은 못해주더라도 한 끼 배불리 먹여 주리라...
그런데, 여느 비둘기와는 달리 떨어진 쌀 알갱이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두리번 거리기만 하더니 뒤돌아 제 갈 길을 간다.
잡아서 산으로 올려 보내 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오히려 들쥐나 야생고양이에게 잡혀 먹힐 확률이 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냥 내 갈 길을 가는 것이다.
[ 1190 중앙선의 비둘기 ]
50여 발짝 쯤을 뗀 후에 뒤를 돌아보니,
이 초췌한 모양의 비둘기가 쩔룩거리며 중앙선에 나와 있다.
이 녀석도 곧 길바닥에 뭉게지리라.
재수 좋게 차량의 바퀴를 피할 수 있더라도
죽음의 길위에 먹을 것을 찾아 생명을 이어 가기는 만무하다.
그러고 보니 여지껏 길가는 중에 보게 되었던 길바닥에 깔아 뭉게진...
혹은 길가에 굳은 표정으로 메말라있던 그 시체들은
이 녀석과 같이 야만의 왕국에 발을 디딘 후에 자신들의
세계로 되돌아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 자들의 흔적이리라.
[ 1200 도로바닥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말라죽은 민달팽이 ]
치명적인 실수로 인하여 도로 바닥에 떨어진 민달팽이.
광범위한 영역을 걸쳐서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함정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도로 바닥에 떨어진 녀석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계속 헤매였을 것이다.
내리쬐는 땡볕이 몸의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타는 목마름을 느끼게 했을 것이지만,
도무지 자연의 피조물답지 않은 인간이 만들어낸 콘크리트구조의 ‘몰생명성’은
그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길목을 찾지 못하고
결국 그 헤매임의 끝에 말라죽게 만들어 냈다.
[ 1210 말라 죽은지 하루쯤 되어 보인다. ]
이들을 고통스럽게 한 ‘인류’는 그들에게 준 것을 다시 받으리라.
[ 1230 사고 나서 휘어진 가드레일 ]
[ 1240 사고 난 차량 떨어진... 이제는 ‘망자’가 된 이의 수첩인가?
빼곡한 ‘관계’가 정리된 수첩이 길바닥에 버려진 체로 불어오는 바람에
한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
[ 1250 1251 더 많은 도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인간의 욕심 ]
보령경계면
[ 2000 위의 서천 경계표시 / 아래의 보령 경계표시 ]
[ 2100 보령시에서 접하는 첫 풍경 ]
[ 2105 가지를 넓게 드리운 플라타너스 ]
[ 2110 저수지에서 물내려가는 풍경 ]
[ 2130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풍경 ]
[ 2140 논일 마치고 돌아가는 아저씨 ]
[ 2150 자연의 결실을 맺는 중 ]
[ 2155 잘려진 플라터너스 그루터기에서 가지와 잎이 뻗어 나오는 모습
그래도 희망은 샘솟고... ]
이날 저녁에는 ‘웅천’에 닿았다.
그 직전부터 석재상들이 즐비하게 눈에 띄었는데,
이곳 ‘웅천’은 그야 말로 ‘석재마을’이었다.
천변을 따라서 석재상이 족히 50여개는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 같았다.
[ 2160 웅천읍의 늘어선 석재상 ]
네모나게 쪼개진 돌들을 씨맨트질 해서 벽에 붙이는 작업만이 아닌 이상,
돌을 쪼개서 특별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석재공들은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분들이다.
하지만 여지껏 내가 주변에서 주로 보아왔던 석재작품은 주로 실용성 위주의 그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싸고’ ‘빨리’ 같은 형상을 많이 깍아내다보니 정제되고 규격화된 ‘정질’만
느껴질 뿐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형상에 대한 통찰과 직관,
예술성을 별로 느낄 수 없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정질이 깊이 되지 않고 뭉뚱하곤 하다.)
그렇기에 만들어진 조각상들이 시선을 사로잡지도 못했었고
만들어낸 이들의 예술 혼이 느껴질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의 작품들은 달랐다.
아마 이는 석재상들이 집적되며 석재공들이 서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던 이유인 듯 했다.
=> (일지 추가) 보령을 떠난 후에 알아봤더니, 국내 인건비로는 타산이 안맞아서
주로 중국산을 수입한단다. ㅠㅜ
[ 2170-2190 이곳에 늘려 세워진 작품들은 힘차면서도 우아한 선과 분명한 굴곡이 있다. ]
[ 2195 이 조각 역시 이곳 석재상들의 작품인 듯 한데, 웅천에서 좀 벗어난 공원에서 대함 ]
[ 2200 다듬어지기를 기다리는 석재 ]
이 네모난 돌 속에서 석재공들은 원하는 형상을 찾아낸다.
‘피에타(성모마리아가 예수를 껴안은 형상)상’과 ‘다비드상’을 만들어낸 천재예술가
미켈란 젤로는 네모나게 잘리워진 대리석을 볼 때 마다,
그 안에서 자신을 끄집어주기를 기다려주는 그 어떤 형상이
손짓을 하고 있는 듯하여, 망치와 정을 들고 달려들지 않을 수 없음을 이야기 했었다.
[ 2210 2220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조각품 - 피에타상과 다비드상 (인터넷에서 펌)]
[ 2300 여기도 미켈란 젤로가 한분 계시구만 ]
[ 2400 이렇게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의 밥을 먹고 있어서 그런지 석재상 앞에 묶여있는
개의 몸짓에도 혼신을 다한 부르짖음이 들리고 보여진다. ]
다리를 건너서 몇 분 걸으니 저녁에 야영할 곳이 눈에 들어온다.
‘웅천초등학교’
[ 2500 웅천초등학교 전경 - 정문 우측으로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
특이하게 이곳 보령의 초등학교 앞에서는 ‘공덕비’가 세워진 모습을 자주 접한다.
‘학교를 지은’이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이다.
앞서 주산면에서도 초등학교 앞에서 짐을 벌려 놓고 잠시 쉬면서 공덕비를 대한 바 있었다.
[ 2600 점심에 주산면의 초등학교 앞에서...
습한 바닷가 공기에 의해서 텐트가 몽땅 젖어서
잠시 누워 쉬는 마당에 펴 놓고 말렸었다.
학교 앞에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
여섯시 경에 학교에 들어갔는데, 아직 선생님들도 야간 일을 하고 계시길래,
괜히 도둑처럼 숨어서 텐트를 치기도 뭐하고 해서 교무실로 찾아 들어가서
사정 말씀을 드렸다.
친절한 선생님 한분과 교장선생님의 배려 덕분으로 ‘공식’적으로 이를 허가받았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퇴근이 늦어서 한 시간 넘게 배회하고
어둑해진 후에야 체육관 옆에다가 쳤는데... (이럴 수도ㅠㅜ) 8시가 좀 넘은 후부터
배드민턴 동호회 분들이 그 앞을 들락달락하는 것이다.
밤에 운동하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기에 체육관 옆에 텐트를 안친다는 것은 야영의 원칙이지만,
어둑해 져서 야영지를 찾는 중에 불 꺼지고 사람의 기척이 없는 체육관을 대할 때는
저녁이 되고 밤이 되도 더 이상 사람이 안올 것 같은 기대감이 현실감으로 굳어져서
종종 그리 오판을 하곤 한다.
‘무슨 텐트가 쳐져 있대?’
‘자는가봐?’라는 등등의 이야기가 지나는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 2700 이곳 웅천초등학교 현관 입구에는 100년 넘은 거목이
‘당당히’ 버티고 서서 세월의 흐름을 관조하고 있다. (은행나무)]
[ 2800 욘석도 학교마다 안 보이는 곳이 없구만...
전라도쪽 보다 경상도 쪽이 욘석 동상이 많이 세워져 있는데,
여지껏 보아온 바로는 충청도는 그 경상도 보다 더 많이 세워진 듯 하다.
버릇없음을 훈계하는 어른에게 만화책을 옆에 끼고 눈에
쌍심지 키고 대드는 이러한 싹수없는 아이의 형상?(예술의 재해석?)이
어린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런지... ]
남은 길 가는 내에 다채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 2900 밭에서 쓰는 대나무대 창고풍경과 그 위쪽에서 밭을 매고 있는 아주머니 ]
[ 3000 전봇대 ]
서천에서 보령 가는 길에서는 작년 10월경에 진도에서 완도
가는 길에서와 같은 길가의 풍성함을 맛 볼 수 있었다.
가진 것 없는 나그네에게 그 한해 동안 이뤄낸 성과를 대지는 그렇게 다 퍼주고 있었다.
[ 3300 3305 길가의 감나무 / 가을의 끝자락에까지
부여잡은 가지를 놓지 않고 그 속내를 빨갛게 달궈놓은 홍시감 ]
[ 3500 대부분의 대추나무는 그 열매가 짙은 갈색으로 변해가는 중에
그 주인들이나 지나는 행인들이 열매를 다 따 먹은 상황이지만,
종종 남아있는 대추나무는 당분이 한껏 올라와서 초절정의 맛을 느낄 수 있다. ]
[ 3600 길 양편의 포도밭 - 한 시간 가량 걷는 내내 크고 작은 포도밭이 눈에 들어온다.
수확을 끝내고 짜투리 포도알 들이 좀 붙어있는 것이 많았는데,
적당히 눈치 보면서 한 송이씩 따서 먹는다. ]
[ 3700 잘 익은 해바라기 씨를 까먹는 맛은 그만인데...
올해는 기온 때문에 그런지 쭉정이들이 많아서 해바라기 씨 본연의 맛을 볼 수는 없었다.
[ 3800 노천상의 사과판매점이 있길래 상품성이 좀 떨어지는 사과 네 개를 2천원에 사서
‘아각아각’ 씹어 먹으며 길을 걷는다. 보기에는 좀 푸석푸석 할 것으로 알았는데,
섬유질이 질기면서 바삭바삭하고 당분이 높다 못해서 신맛까지 날 지경이었다. ]
길 걷는 내내 주변에 유실수가 있는지를 두리번 거리고,
눈에 띄면 ‘후딱’ 달려가서 정신없이 따 먹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볼 때가 종종 있다.
흡사 거지의 모습이리라. ㅠㅜ 성공했어!!
[ 4000 보령 가는 이정표 왼쪽 옆으로 희미하게 건물의 윤곽이 하나 드러난다.
보령시 내의 건물이리라. ]
[ 2km 정도 더 걸어 시가지에 들어오기 전에
산맥을 배경으로 널따란 벌판에 보령체육관이 눈에 들어온다. ]
[ 4150 황금들녘 너머로 보령시를 두르고 있는 성주산이 눈에 들어온다. ]
[ 4200 눈에 들어오는 보령시가지 ]
일상의 해체
21세기의 재생 불가능한 석유산업기반에 의한
대중소비문화확산과 이에 따른 자원의 고갈과 환경파괴,
이로 인한 나라와 나라,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으로 혼란스러워질 미래,
인류에게 남아있는 시간의 부족함을 염두에 둔다면...
‘혁명적(급진적)인 사회변화’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즉, 기존의 대중사회문화(전체주의)의 질서는 신속히 재편되거나 무너져야 한다.
물론 대중사회의 급격한 변화 노력은 극도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의 생태계붕괴와 인류의 절멸 가능성을 가늠해 본다면
급격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를 갖을 이는 없으리라.
서로를 의식하면서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조금이라도 더 편하고 자극적이며 향락적인 일상을 위해서 힘쓸 뿐이지,
그러한 노력자체가 더 많이 지구자원을 파헤치고 더 극심히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임을 헤아리지 못하는 대중의 삶.
모두가 똑 같은 가치와 행태로 유기적으로 짜여진 사회질서 속에서
톱니바퀴의 일환으로서의 일상을 유지하게 만들어내는 대중사회문화의 질서는
환경과 후손들에 대한 재앙의 다름이 아니다.
우리는 그 사회문화의 관성에 휩쓸려 우리의 것이 아닌 것까지
미리 빌려다가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긁어 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 현대 문명의 쓰레기는 후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이러한 터이기에 ‘혁명적(급진적)인 변화’의 필요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변화의 ‘필요성’이 ‘실천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음은 지금 여기에 놓여있는 현실의 한계이다.
현 시점에서 당장 ‘혁명’‘실력행사’‘민중의깨침’을 통해 사회 체제가 뒤바뀌지는 않는다.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지려는 인간의 욕망은 그 욕망의 끝에
생태계 붕괴와 후손들의 절멸을 초래할 망정,
지금 당장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편리를 줄일 것을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편리를 줄일 의지가 없는 대중으로부터
대중사회문화를 변혁시킬 혁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혁명은 커녕 이러한 혁명을 ‘구상’만이라도 할 지도력 있는 세력도 부재한 상황이다.
사회적인 약자를 위한 자본계급에 대한 투쟁 - 즉 사회주의 혁명 투쟁 등은 지금도
상당히 힘 있는 민중세력들에 의해서 공공연히 구상되고 있지만,
누가 과연 ‘생태계’와 ‘후손’의 존립을 위해서 그리 급진적인 혁명을 계획할 것인가?
하지만 이러한 푸념만으로 일관하기에는 생태계와 우리의 후손들이
미래에 직면해야할 고난이 너무 가혹하다.
따라서 우선은 현실적으로 ‘내 자신’부터 실천할 수 있는 활동으로서
대중문화와 사회체제에 저항하고 ‘주체적 실존’을 깨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주체적 개인이 주변으로 확장되고 그것이 사회적인 파급력을 통해서
사회체제의 변화를 기할 수 있는 ‘이상’을 꿈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상은 시간이 지나며 그 노력의 성과물들이
축적되는 과정에 현실로도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
점차 자원고갈과 생태계 파괴에 대응해야할 필요가 증가하면서,
과거의 대중문화사회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에 저항하는
‘주체적 개인’들이 더욱 많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생태계 파괴와 후손들의 절멸을 유도하는 [대중문화사회]에 맞설 수 있는,
그 주체적 개인들의 숫자가 ‘적절한 때’에 임계량에 달하면
사회는 급진적인 변화(혁명)를 맞을 것이다.
현대적 대중문화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는 ‘주체적 개인’들의 번성이 시기적절하다면
생태계와 후손들은 안정-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인류는 인류가 다른 생명들에게
그렇게 했던 것과 같은 멸종을 자신의 것으로 맞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래의혁명’을 위해서 자각한 이들은 우선 그 ‘길’을 열어 놓을 필요가 있다.
선대에 이러한 노력이라도 없다면, 본격적인 파국이 시작되었을 때 후대가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지게 되고, 그들은 원하는 결과를 이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볼 이들이 집중적이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서 필요한 준비를 이뤄낸다면,
후대가 해야 할 일들은 훨씬 수월해지고 세대가 함께한 ‘이상’을
실현키 위해 쏟은 힘은 원하는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 있어서 이러한 ‘준비’를 위한
가장 적극적인 노력이 ‘일상의 해체’임은 말할 나위 없으리라.
지속불가능한자원소비에 기반한
대중소비사회적 삶의 ‘개개의 공간에서의 실현’인 [일상].
이러한 야만적인 ‘일상’을 자신의 생활의 장에서부터 해체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각자의 생활의 장에서 이뤄낼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활동이다.
지극히 ‘당연시’여겨왔지만, 그 결과로 환경과 후손들의
존립가능성이 파괴되는 ‘일상’을 해체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강구와 실천이
지금 여기에서의 ‘나 자신’의 주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연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극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며 유기적으로 맞물려진 경제체제.
하나라도 더 채우고 높아지려는 개개의 욕망을 부추겨서 유지하는 현대대중소비사회.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이의 운영 원리를 내면화한 대중들의 일상.
이로 인해 망가져온 자연과 인간의 세상.
모두가 이러한 삶을 지당하고 상식적으로 여기며 거리낌 없이 여겨온 사회 경향 속에서
누군가 이 힘을 거슬러 정반대의 길을 외롭게 거닐었던 이들이
있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리의 후손들은 그들이 열어야할
바람직한 세상의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채우고 높이려는 욕망을 고도화해서 유지되는 현대대중소비사회를 거슬러서
우리가 당당히 그 ‘주체’와 ‘실존’의 광야를 외롭게 고독하게 거닐은 만큼...
우리가 먼저 낸 그 길을 후손들은 수월히 뒤밟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주체적 ‘나’가 실현하는 ‘일상의 해체’를 위한 시도는
지구상의 생명과 우리의 후손들이 공존해 나갈 평화와 화합의 정원으로 이끌 것이다.
현대대중소비사회의 고도로 관료화되고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사회상은
하늘에 맞닿은 바벨탑을 연상케 한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이 지시하는 길을 향해서만 나아가려 할 뿐이지,
그 욕망 안에 내제한 모순이 결국 자기 자신마저도
무너트려질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의 경쟁과 분열을 유도하던 맹목적으로 채우고 높이려는 욕망을 버리고,
모든 존재는 결국 흙에서 와서 흙으로 분해되어 돌아간다는
소박한 진리를 우리가 [일상의 해체]를 통해서 ‘재발견’해 낼 수 있기를...
부조리한 일상을 강화하는 종교인들의 삶에 대하여...
현대의 많이 쓰고 많이 소비하는 [대중소비사회]의
기반 자체가 인간 서로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생태계의 붕괴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후손들의 절명의 원인임을 앞에서 논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순이 증가해서 붕괴직전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혁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임으로,
‘각자’의 ‘현재적 노력’으로 이러한 대중소비사회 체제에
저항하기 위한 ‘일상의 해체’를 논했었다.
이 ‘일상의 해체’는 대중소비사회적 삶에 저항하고
‘자기비움’ ‘자기낮춤’으로 귀결되는
주체적 고민과 실천을 동반하는 삶을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석가모니를 스승으로 여긴 이들이 말하는 ‘해탈’(도)이나,
예수를 믿는 이들의 ‘영생’의 개념과 언듯 맥이 닿을 수 있지만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해탈과 영생을 위해서 법당과 교회를 부지런히
드나드는 상당수의 이들은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개인의 (영적)‘자유’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일 뿐이다.
종교를 가졌다는 이들의 이러한 ‘편협한 개인성’(=>이기성)은
생태계를 파괴하고 후손들의 미래를 망가트릴망정 ‘현재적 편리’를
축소할 의지 없이, 대중소비사회에 잘 적응한 삶을 통해서도 살필 수 있다.
더군다나 기독교인들이 흔히 말하는 ‘모든 사람을’ 복음화 하려는 전략은
그 자체로 전체주의적이고 파시즘적이기에
기존의 사회부조리와 모순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두 보고 있다시피, 현대 한국적 기독교가 자본과 권력에 결탁해서
오히려 대중소비사회적 삶을 더더욱 지향하면서
‘생태’와 ‘후손’들에 대한 해악으로 작용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들의 ‘행태’는 결과적으로 사회적인 ‘부정’ ‘부패’ ‘부조리’ 를
점점 고조하고 있으며, 그들이 말하는 ‘악’의 근원으로서의 작용을 사회에 미친다.
대부분의 교회는 ‘부자는 천국가기 힘들다’ ‘이웃을 위해 살아라’
‘비우고 낮추라’는 이야기 등의 ‘공존’적인 삶의 메시지를
신도들에게 전하면서 신도들 각 개인이 예수의 삶을 본받고
각자의 생활의 장에서 적극적으로 나누고 비우며, 공유할 수 있는
‘주체적 일상’을 실현할 기회를 주지는 않는다.
다만 ‘나를 따르라!’라며 ‘추종심’을 유도하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이 기다릴 뿐이다’는 류의 공포감을 고조하며,
번번히 ‘집단행동’을 통한 감성자극(부흥회 같은)으로 신도들의 수를 불리고
교회의 규모를 확대할 고민 해대고 있다.
그들은 ‘주체’와 ‘개인’이 깨어나게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설령 알더라도 그렇지 못하게끔 힘을 쓰고 있다.
왜냐하면 주체와 개인이 깨어난다면 그들이 세워놓은
‘권력’의 지반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실로 그러했던 철저히 비움과 낮춤의 의지는 없고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기반한 성장과 확대,
승리를 향한 욕망만이 가득한 그들 대부분 교회의 행태가
도무지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전체주의-파시즘 사회와 다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러한 잡다한 논리와 이론,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서만
이 개탄스러운 문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 절실한 기독교인들(불교도인) 대부분의 ‘일상적 삶’을
살펴봐도 이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절간이나 교회에서 그들이 믿는 대상을 향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헌금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산다고 자부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하나라도 더 갖고 높아짐으로
자기 자신을 부풀리려는 대중소비사회적 노력만이 가득하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들이 믿는 예수(석가)는
세상의 모든 재화와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최고경영자의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을 ‘관리’하는 종교지도자의 인도에 힘입어 (설교/법회시간에)
예수와 석가의 손에 큰 재화(부자로 살수있는)와 권력(영생, 평안, 힘)이 쥐어진 것을 살필 뿐,
‘빈손’ ‘나누는 손’ ‘낮추는 손’이 어떻게 세상에 작용하면서
만물이 공평무사하게 다뤄지면서 공존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한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세상'이 이모양 이꼴인 것은 당연지사이다.
물론 모든 불교도인들과 기독교인들이 다 이러한 부조리로 일관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올바로 ‘도심’을 갖추고, ‘예수믿음’ 행위를 통해서 온전히 비우고 낮추는 삶을
사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사회문제’ 에 대해서 너무 ‘비심’한 나머지
자신이 얻은 혜안과 통찰을 사회적으로 공유하려하지 않는다.
그나마 자신의 일상에서 석가와 예수의 믿음을 실현하는 이들도
‘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는 류의 주장으로,
사회적 현실에 아랑곳 하지 않고 ‘나만 온전히 깨여나면 된다’는
관점을 정당화 시킨다.
이들은 자신이 ‘해탈’ ‘영생의 길’에 들어설 기회를 얻었음이
그 전대인들의 ‘사회적 노력’의 성취 결과인지를 파악하여,
‘후대’의 해탈과 영생을 위한 ‘사회적 지반’을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필요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의 온전한 ‘해탈’과 ‘구원’을 위해서 충실히 노력할 뿐이다.
물론 이들이 세상의 문제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해탈’과 ‘구원’을 추구하는 삶만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런 사회적 성과를 발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앎’과 ‘생활’이 주위사람들에게 상당한 정화작용을
일으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는 힘으로 승화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역사상 '해탈'하고 '구원'받았던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그에 아랑곳 않고 세상이 계속 혼란스러웠던 것은
인간의 삶의 한 단면이 혼란이기 때문인 이유도 있지만,
그리 '해탈'하고 '구원'받았던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감소시키는데 자신들의 해안과 통찰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도 크다.
쉽게 말하자면 그들의 이해와 통찰이 ‘대중소비사회’에 저항해
‘인류’를 해방시키는 힘으로 작용하지 않고,
그 개인의 해방만으로 그친다는 것이다.
정리해보자면
대부분의 불교/기독교인들은 ‘일상의 부조리와 부정을 강화’하는 삶을 살고 있고,
극소수만이 올바른 자기 낮춤과 비움의 길을 터득했으며,
그 중에서 다시 극소수만이 이러한 분위기의
사회적 확대(결국 자아의 확대)를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보령시
보령은 인구 11만의 지역으로 행정구역/지명이 몇 차례 변해왔다.
1986년에 보령군 ‘대천읍’이 ‘대천시’로 승격되어 보령군으로부터 분리 되었다.
이러다가 1995년에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되면서 다시 ‘보령시’로 개명되었다.
[ 5000 보령의 지정학적 위치 ]
보령 8경으로는 대천해수욕장, 무창포 바닷길, 성주산휴양림, 보령호, 오서산, 외연열도,
오천항, 월전죽도를 꼽는다.
특히나 폭 100m 길이 3.5km의 길이의 대천해수욕장은 동양에서
유일한 패각분 모래(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모래로 변한 것)라고 하는데,
모래질도 그렇고 모래사장의 규모도 그렇고
서해안 제일의 해수욕장이라는 홍보는 괜한 것이 아닌 듯 하다.
(대천해수욕장의 명성은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확인한 바 있다.
더위가 한풀 꺽인 8월 하순의 어느 날.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장항선 열차를 타고 내려오려고 하는데,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열차에 사람들이 가득 매워져 있는 것이다.
서서가기 힘들어서 낑낑 거리고 있는데,
(보령)대천역에 기차가 멈추자 열차에 두 사람만 빼고 모두 내리는 것이다. ㅠㅜ )
기타 보령의 문화제는 성주산 자연휴양림을 끼고 있는 ‘성주사지’,
오천충청수영성(오천항 일대를 살필수 있는 망루),
조선 초기에 축성한 남포읍성의 남포관아문,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묘소,
보령성곽 보령관아문 등이 있단다.
[ 4400 보령 시청 전경 ]
[ 4500 보령 시가 전경 - 멀리 중간에 솟은 귤색 구조물은 동대교(한내돌다리)]
[ 4600 대천천 전경 - 앞의 작은 다리는 잠수교 ]
10월 12일
서천에서 보령으로 넘어오는 길에 힘을 많이 소비한 이유로
저녁에 배가 워낙 고프기도 하고, 단백질 보충도 해줘야 할 듯 해서,
큰 맘 먹고 고기집으로 향했다. 삼겹살 2인분 먹고 누릉지 하나 시켜 먹었더니
14,000이다.
ㅠㅜ 내가 미쳤지...
식사를 하고 주변의 가까운 야영지로 대천초등학교를 찾아가는데
마침 그 바로 앞에 성당이 하나 눈에 띈다.
여지껏 거쳐 왔던 성당에서는 하나 같이 묵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었다.
그래서 기대를 가득 안고 성당을 을 향한다.
사무실에 불은 켜져 있는데, 사람은 안 보인다.
언듯 보니 주차장에 볼일 보고 돌아오는 이가 관계자인 듯 하다.
사정얘기하면서 하루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신부님 허락 좀 받아야겠으니 뵈야겠다고 말씀 올리니, 안 계신단다.
보통 좀 관심 있는 분들은 선 조치 하고 후 보고를 하시는데,
이분은 안계신다는 말씀으로 말을 맺는다.
말씀드리는데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가는 그 모습에
왠지 내가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신부님 언제 오시냐’고 물으니 모르신단다.
하지만 뜻밖에 ‘이렇게 추운데 텐트 치고 주무시면 안될텐데요.’라고 말씀 하신다.
그의 입으로부터 나온 한 문장은 떠돌이 나그네의 아픔을 정확히 짚어낸 ‘명문’이었다.
추위에 떨며 노숙할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자신의 권한으로 우선 조치하여 자리를 내 주려는 것인가?
그래서 살짝 떠본다.
‘안잘 수 없으니 텐트라고 치고 자는 것이죠’ 라는 말로.
이에 대해서 ‘잘 자리가 없으면 봐드려야죠’라는 반응이 있으면
만사형통일 것이기에 내심 기대해본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그냥 ‘핏’ 웃고 만다.
그것으로 끝이다.
어쩐지 들어올 때부터 ‘뽑아 놓은 대문’ 보고 심상치 않았었다.
[ 4700 최근 울타리 개방 작업으로 뽑힌 성당정문 ]
천주교 성당은 여느 교회와는 달리 규모가 크기 때문에 주변
울타리가 쳐져있는 것은 예사였지만, 대문이 있는 성당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곳 성당은 (근래 제거작업을 통해서 개방해 놓은 상태지만) 얼마 전까지는
그리 대문이 있었던 ‘독특한’ 성당구조였던 것이다.
하여간 이렇게 길가는 나그네에게 텐트 칠 주차장자리
한평 제공하지 못하는 교회(성당)을 접할 때는
‘누구에게라도 차별 없이 팔을 벌리고 있는 공중화장실이
바로 현대사회에 온전히 신성이 존재하는 곳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거듭 확신하게 된다.
내가 리어커에 관하나 싣고 다니면서 그 속에서 자던지 해야지원...
성당과 교회에 스며든 자본적 가치의 차이(2)
(‘성당과 교회에 스며든 자본적 가치의 차이라는 글의 요약성’ 글)
교회에 비해서 성당은 길을 떠도는 나그네에게 상당한 휴식처가 되곤 한다.
이러한 성당의 일반적인 수용성과 개방성은 여느 교회의 폐쇄성과는 비견되는 모습이다.
(앞서 일지를 살펴본 분들은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박대가 있었는지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과거 ‘성당과 교회에 스며든 자본적 가치의 차이’라는 글에서 이야기 했듯이,
그 각기의 종파가 자본을 받아들여 온 나름의 역사적인 차이에 기인한다.
즉, 현대의 기독교는 루터의 ‘종교개혁’과 ‘청교도윤리’에
기반한 역사성을 그 조직 안에 삼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종교개혁과 청교도 윤리 자체가 ‘친자본적’ ‘자본추구적’인 성향을 띈다.
독일 종교학자인 루터의 종교개혁은 국가 자본의 집적을
위해서 로마교황청으로 빠져나가는 성당의 헌금을 유출하지
못하게끔 교황권에 저항했던 독일국민들의 ‘배불리 잘 먹고
잘사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독일국왕과 독일의 자본가, 독일의 국민들 모두는
성당에서 내는 헌금이 로마교황청으로 흘러들어가 버리는 현실을 개탄했는데,
이는 과거 철저한 봉건질서하에서 정치적,
군사적인 영향력을 로마교황청이 미쳤을 때는 수용할만한 것이었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각기의 지역성과 민족성까지 나눠지고
봉건제가 서서히 무너지며 중앙집권화된 ‘왕정’이 시작되면서,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상업자본의 형성을 통한
‘국부창출’(자본의확대)의지가 고취되면서 교황권의 통제에 대해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실은 루터의 종교개혁이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자본가’ ‘권력자’ ‘신흥종교가’들의
‘권력의 재편성’의 다름이 아니다.
이는 ‘자본-권력’ 추종적인 성향을 가진 루터의 행적을 통해서 살필 수 있다.
루터는 과거 ‘위클리프’ ‘후스’ 등의 종교개혁가들이 귀족의
권력과 특권을 위협하며, 평등주의의 교리를 설파했음으로 인해서
당국의 반발을 사서 처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귀족과 자본가들을 비호하고 대변하면서,
생존권을 부르짖으며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을
‘목졸라 죽이고, 찔러죽여야..’ 축복을 받는다고 지주들에게 조언했을 정도였다.
(남아있는 문서는 고스란히 루터의 포악함을 고증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오히려 농민과 힘없는 약자의
억압과 착취를 고조하면서, 독일국왕과 독일의 자본가들의 절대적 지지하에
추진되었던 것이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이었던 것이다.
루터는 아무런 위협과 공포 없이 자신의 집무실에서
95개조 반박문을 기획하고 제작하여,
낯익은 사람들과의 정겨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광장을 가로질러 성당대문에 못 박은 것이다.
물론 로마교황청의 ‘저주’를 받아야하는 끔찍한 형벌?을 루터는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교황청의 군사력은 독일까지 뻗어져서
루터를 단죄할 만한 힘을 쏟아낼 수 없었기에
루터는 물리적 제약을 받을 걱정조차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무런 서사와 극적인 장면 연출 없이 진행된 이 별 볼일 없는
‘종교개혁’의 의미가 엄청난 ‘파장’으로 역사속에 기록되는 것은
이를 계기로 유럽 각국의 ‘국부’ 유출에 대한 저항이 시작되고
이에 따라 각국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이 본 궤도에 올랐기 때문이다.
차츰 흔들리고 있던 봉건제를 온전히 무너트리는 뇌관역할을 했던 이 종교개혁이
형성된 ‘상업자본’을 바탕으로 중앙집권화 된 '절대왕정‘시대를 여는
열쇄 역할을 한 것은 극히 지당한 역사의 수순이었다.
절대왕정시기의 각국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갖기 위한 경쟁을 위해서
총칼과 대포로 무장하게 되는데, 힘없는 나라 쳐들어가서
맥없이 잘 살고 있는 사람들 쫓아내고 ‘식민지를 개척했다’고
깃발을 꼿는 모양과 그 이후로 서로 간에 식민지를 빼앗기 위한
식민지 전쟁, 세계 1차대전, 2차대전, 6.25, 월남전, 이라크전,
앞으로의 생태계 붕괴와 인류의 파국은 하나로 꿰어지는 일련의 사안들이다.
이는 인간이 채우고 나누고 공존하려는 길을 찾아내지 못하고,
본격적으로 자본과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무장하기 시작한 종교개혁기 전 후반의
‘욕망의 구체화’ 노력이 도미노화되면서 빚어 낸 ‘인련의 참상’인 것이다.
이렇게 그 종교(기독교)의 기원이 된 사건(종교개혁)이
‘자본과 권력의 집중화’에 쏠려 있는 터이다보니 그 역사의 액기스를 이어받은
한국의 기독교계 대표들은 (루터가 그리했던 것 처럼)
힘없는 농민, 노동자, 약자는 대변하지 않고, 힘 있는 세력에만
달라붙어서 전두환정권 찬양만찬회 등을 열고,
제국주의의 침략(이라크전쟁)에 환호하고,
(어려운 이웃은 돌보지 않거나, 구색만 맞추기로 돌보면서)헌금을 있는 대로
긁어모아 성당건축에 집중하는 것으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의 허고 헌 날의 발광 자체가 16세기 이후로 쌓여온
그들의 ‘자본’과 ‘권력’에 대한 추종성향의 현현이다.
국내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거의 하나같이
‘횡령’ ‘목사직세습’ ‘여자문제’ ‘비율리적인 사업확장’ 등의 모습을 보이며
지탄받는 것 역시 그러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 꼴이 이 모양으로 돌아가지만, 신도들이 오히려 그러한
목사들을 비호하고 찬양하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그 ‘신도’들의 머릿속에 들어 찬 ‘자본과 권력’에 대한 지향성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 행하시면서 그리 하라고 이르신 ‘비움과 낮춤, 공유, 사랑’이 아닌,
‘자본’ ‘권력’ ‘축복’ ‘영생’ 에 대한 욕심이 들어차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오너(목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포착 자체를 할 수 없는 것이고
그 오너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홍위병이기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 오너의 권력은 자신의 것이기도 할 것이기에...
이렇게 기독교계 일반이 자본의 논리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장사치 수준으로 전락하다보니,
길가는 나그네를 거지취급하면서 박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것도 내 놓을 것도 없는 나그네에게 그들이 뭐하로 잠자리를 내주겠는가?
더군다나 교회 내에는 훔쳐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항시 쌔콤장치 해 놔야 함에야
어찌 떠돌이 나그네를 함부로 교회에 두겠는가?
(물론 개별적으로 훌륭한 믿음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도 많다.)
반면 ‘성당’은 그나마 길가는 거지 대해서 관대하다.
이 역시 역사적인 괘적을 가지고 있다.
카톨릭이 루터에게 두들겨 맞은 이유 중의 하나가
면죄부 팔아먹는 이유에 있었던 만큼,
비록 성직자들은 그리 부당한 방법으로 굶주리는 농민의 돈까지 갈취해서
쌓아서 차곡차곡 성당에 쌓아 놓기는 했지만,
그들은 ‘교리적’으로 ‘돈은 부정한 것’이고, ‘과도한 재산’을 비판했으며,
‘돈놀이’(이자놀이/은행업무) 등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격하고
그리한 당사자들을 파문까지 시킬 지경이었다.
물론 본인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신도들에게 강조하는 것 자체가 어패가 있지만,
하여간 이는 교리로 굳어지고 설교 중에 신도들에게 강조되었다.
이렇게 카톨릭(천주교)은 개신교와는 상당히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가 있다 보니 국내의 천주교 교단에서
자본과 권력자들에 ‘노골적’으로 편 붙어서 전쟁찬성 집회나
지역의 환경 파괴적 개발사업 등의 추진에 앞장서는 경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하여간 이러한 교단의 교리와 원칙의 흔적은 수백년의 역사를 관통해
나그네의 피부에 전해지는데, 앞서 말했듯이 대부분의 교회가
박대로 일관하는 것과는 달리 천주교 성당은 나그네에게
부족함 없이 그 자리를 열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뭐 예외는 항상 있다.
10월 12일 야영
성당에서 야영할 계획이 실패하고,
투덜대며 대천초등학교 뒷 구석으로 들어간다.
울타리 너머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언덕길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해야 했고,
물에 젖은 자갈과 흙, 씨멘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하루 묵어가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 5200 대천초등하교 뒷 구석 야영텐트 전경 -
바로 뒤편으로 아파트 단지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 5300 텐트 안에서 누워 뻗어서... 왼쪽 아랫부분은 둥글이 발.
오른쪽 세워진 것은 배낭 - 늘상 밤마다 이 어둠 안에서
텐트 벽만 바라보고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신’해야 함에
점점 소심해지는 듯 하다. ㅠㅜ ]
10월 13일, 14일
보령에 도착한 날이 금요일 저녁이었고, 토, 일요일이 이어져서
캠페인은 못하고 도서관에서 죽치고 앉아서
이런 저런 자료를 정리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도중에 옆에 있던 귀여운 꼬마애 하나가 사탕을 먹으면서 책을 보고 있길래
‘하나만 달라’니 성큼 봉지에서 한 알 빼서 준다.
더불어 아이가 사탕봉지를 뒤적이다가 떨어진 사탕이
‘떼구르르’ 굴러서 책상 반대쪽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는데,
이를 공중에서 받아서 내 입속에 집어넣었다.
개 같은 반사신경에 의한 나의 영웅적 행위는 어차피 땅에 떨어져 못 먹을 위기에 처한
사탕을 구해내고 지구자원의 낭비를 막아냈기에
꼬마 녀석도 그 사탕을 내 입에 넣는 것에 별 이의가 없어 보였다.
[ 5350 별 이의 없어 하는 표정? 을 보이는 아이.
ㅠㅜ 사실은 ‘뭔 저런 이상한 아저씨가 있어?’라는 표정으로
주변 아이들이 나에게 눈총을 줬었다.
내 원참 서러워서~~~. 사탕 한 봉지 사먹어야지 원... ]
타 도서관에 비해서 도서관 예지회 회원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다채로운 풍경이 눈에띈다.
그중 ‘어머니’라는 시가 눈에 확 꼿힌다.
[ 5400 시 - 어머니 ]
14일 저녁 야영
12일은 성당 옆 대천초등학교에서 뒤편에서 그렇게 묵고,
13일은 대천중학교 자전거 주차장 자리에 숨어들어갔는데,
다음날 아침에 수위아저씨에게 걸린 이유로ㅠㅡ
14일 저녁은 한내초교 뒤편에 자리를 깔았다.
날씨가 점차 추워지기 시작해서 텐트치고 누워있을 때도
침낭을 덮어야 할 실정이었다.
그 전까지는 침낭을 좀 덮고 자는 것으로도 온기가 유지되었는데,
15일 새벽부터는 침낭 속에 쏙 들어가야만 했다.
[ 5999 텐트 안에서 밥 해먹기 - 바람 불고 추울 때는 텐트 안에서 취사를 하곤 한다.
라면 봉지는 배낭 안에서 하도 많이 눌리워져서 봉지가 라면 면발에 타이즈같이
딱 달라 붙었다. ]
14일 밤에 텐트를 치고 난 9시경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 6000 한내초교 뒤편 텐트친 정경 -
앞쪽으로 유치원건물과 옆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다 ]
건물 뒤편에 숙직실 불도 켜져 있겠다. 조명도 없겠다 해서
아무도 찾지 않을 줄 알고 이곳에 텐트를 친 것인데...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린다.
고등학생쯤으로 들리는 너덧의 목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과자봉지 뜯는 소리와 라이터 켜고, 술 먹는 소리도 들린다.
‘주의’를 주기 위해서 출동을 한다.
그런데 고등학생들인 줄 알았는데 대학생이란다.
뭐라 할 말을 잃는다.
고등학생이라면 ‘청소년 보호법’ 등을 들어서
음주, 흡연행위에 더불어 야간 고성방가에 대해 뭐라고 할만도 하지만,
대학생들이 학교 구석에서 술먹고 담배 테운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그냥 ‘잘 먹고 잘 치우고 가라’고만 당부한다.
한 시간 반쯤 환담이 이어지는 것 같더니, 갑자기 여기저기서 토하는 소리가 들린다.
‘웩~’ 하는 소리와 ‘주르르~’ 먹은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중의 한명은 ‘이렇게 술 먹고 나서는 쏟아내야
다음날에 덜고생한다’고 친구들에게 조언한다.
그리고는 옆의 친구에게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 넣어서
토하게 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이를 교습 받은 친구는 ‘잘~’ 토해낸다.
그 아까운 것을 조금씩 아껴 먹으면 될 일이지,
왜 그렇게 한 번에 많이 먹고 다 쏟아 내버리는 것여~~~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웩웩~ 거리는 소리...바닥에 물컹한 점액질이 쏟는 소리가
10여분 천지를 흔들어대더니만,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치웠을리는 없는데? 그냥 버리고 가는 것인가?
발동된 정의감은 텐트 문을 열고 나가 이를 확인하게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먹고 난 것들은 고스란히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그들은 운동장 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서둘러 그 중의 하나를 잡아 세우고 단호하게 말한다.
‘경찰에 신고해서 과태로물게 해줄까요. 먹은 것 치우고 갈래요’
이들은 깜빡 잊었다며 죄송함을 연발하면서 자리로 돌아와서
봉지에 먹은 것을 담아갔다.
하여간 저항하지 않고 성의 있게 청소하는 모습이
고마워서 함께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댔다.
다음날 아침 수돗가 옆에서 발견했던 한뭉텡이의
토사물을 어둠이 숨겨놓지만 않았어도
그것까지 긁어가라고 했을 것이다.
[ 대천초등학교 활동 ]
전날 야영을 했던 곳에서 10여분을 부지런히 걸어서 대천초등학교 앞에 선다.
[ 6100 대천초등학교 전경 ]
학생들이 1600이니 가져온 스티커 2천장 중에서 3분의 2는 나눠줄 수 있으리라.
[ 6200 사열된 사티커 / 배낭 뒤는 스티커 박스
- 배낭 짊어지고 저것까지 들고 다녀야하는 노고 ㅠㅜ ]
아이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것에 대한 걱정을 상당히 했는데,
아이들이 등교하는 방향이 너무 분산된 이유로 1600명의 학생의 학교에서
한 시간 동안 400여장이나 나눠줬던 듯 하다.
관심 갖고 종류별로 받아가는 아이도 그리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여간 별 사안 없이 활동이 끝났다. 정말 메너리즘에 빠졌다. ㅠㅜ
저녁 야영
저녁에 야영을 하려고 시 외곽의 한 초등학교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캠페인 하면 보령에서의 일정이 마무리 되리라.
초등학교를 향하는 길은 산 고개를 넘고 넘는 길이었다.
[ 6300 6400 X 학교 가는 길~ ]
운동장 한구석을 삥 돌다 보니 건물 뒤편에 수돗가에 아늑한 공간이 보이는 것이다.
‘적’? 들의 눈에도 발각도 될리 없겠다.
오랜만에 사람들 등살에 스트레스 받지 않을 듯 하여 흥겨운 마음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텐트를 쳤다.
[ 6500 X 초등학교 야영장 전경 ]
앗~ 그런데 텐트를 치고 위를 올려다보니 교실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들이 야근을 하는 듯 했다.
[ 6600 텐트친 바로 윗 편에 불켜진 교실 -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ㅠㅜ]
그래도 선생님에게 걸리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 있으랴?
설마 앞쪽의 넓은 길 놔두고 뒤편 골목 쪽으로 나가시랴.
하지만 설마 그랬다. 뒤편 골목으로 퇴근하시는 선생님에게 발각되었다.
참으로 난처한 순간이었다. 텐트를 치는 중에나 걸렸으면 ‘별 무리 없는 철수가 가능했지만,
짐은 짐대로 다 펴 놓았고, 밥 해 먹으려고 쌀까지 물 부어서 불리는 상황이라,
퇴거조치가 이뤄지면 참으로 곤욕스러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선생님의 심기를 불편치 않게 해드리기 위해서
‘말씀도 드리지 않고 무단으로 텐트를 친 상황’을 조근조근 말씀 드렸다.
짐을 가지고 떠돌면서 한 시간 앞에 어디에 발이 닿아 있을 줄 알 수 없는
떠돌이 나그네의 입장에서 사전에 말씀 드리지 못했음에 대한 사죄의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사정 얘기를 하고 주민증을 복사하고 각서까지 쓰고 하루 묵을 수 있기를
말씀드렸는데, 선생님도 사정을 많이 봐주시려는 눈치셨다.
교무실로 들어가신 후에 주민증을 앞뒤로 복사한 후에
학교 내에 묵게 해주는 것이 자신의 권한이 아닌지라 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절차를 거치셨다.
한참 교장선생님과 전화를 하시면서 상황을 조율하는 과정은 머리에
식은 땀을 흘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화를 마치신 후에 선생님은 운동장으로 이끄신다.
현재 텐트를 친 뒤쪽은 지나는 사람들이 놀랄 수 있음으로 운동장 한쪽에 텐트를 치라고.
ㅠㅜ
선생님들이 성의를 가지고 나름대로 편의를 봐주신 조치이기는 하지만,
운동장에서 텐트를 치라는 것은 퇴거조치와 다름이 없었다.
사람이 없는 구석에 텐트를 쳐도 가끔 지나는 사람들이 들춰보고, 옆에서 웅성거리며,
할일 없는 녀석들이 돌까지 집어던지고 한다.
그렇기에 트랙을 돌면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중고생들이 한쪽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끝없이 귀를 간질일 운동장 안에는 사실상 잠자기 위해서 텐트 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단체로 대여섯 동의 텐트를 치고 서로 위안이 될 무리들이 있을 경우에는 또 몰라도
혼자 활동하는 것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실질적으로 ‘퇴학’ 당한 상황이기에 주민증 사본을 선생님으로부터 다시 받아서
공손히 인사드리고 텐트로 되돌아 왔다.
눈앞에 펼쳐진 산더미 같은 짐을 다시 다 정리해서
‘어딘지 모를 새로운 야영지’를 찾아서 떠나야 했다.
짜증이 갑자기 밀려오려고 했지만, 누구 잘못이리요.
‘이성적’으로는 그리 여기고 있음에도 뭔가 울컥 울컥 올라오려고 하기에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아베마리아’를 콧소리로 흥얼거린다.
나를 바로 잡아주소서~~~
[ 6700 짐을 다시 다 챙겨서... ]
짐을 싸들고 나와서 학교 앞에 서니 막막하다.
이 밤중에 다시 어디로 가야하는가...
30여분 정도를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대남초등학교 구석으로 들어가 텐트를 펼쳤다.
[ 6800 대남초등학교 야영 전경 ]
철수 중에 엎그러질 뻔 했던 물에 불릴 쌀 냄비를 버너위에 올려놓고
밥을 하며 20여분쯤 지날 때였나?
통로편이 어수선해진다.
여고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다.
뭔가 불길한 기운이 지난 후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바닥에 뭔가 ‘툭’ 내팽개쳐지는 소리...
서로 간에 욕하는 소리...
공중에 뭔가가 휘둘러지고, 둔탁하게 ‘퍽~’ 하는 소리.
1분 정도 지켜보고 있다가 텐트에서 나서 녀석들에게 다가간다.
‘방범대원’을 사칭해서. ^^‘
한무리의 학생들은 누군가 어른이 다가오는 모습을 확인하고
슬그머니 운동장쪽으로 나선다.
남아 있던 두들겨 맞은 학생은 키가 훨씬 작은 아이였다.
그래서 삥 뜯긴 것인지, 아니면 언니에게 ‘교육’받은 것인지를 확인하려 묻는데,
맞은 학생은 긴장하고 당황해서 뭘 어찌해야할지 모르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상황을 매듭지으려는 모습이 언듯 보여졌다.
때린 아이까지를 포함한 예닐곱명의 여고생들이 모여 있는 곳에
그 학생을 데리고 가서 대면 질의를 한다.
우선은 일방적으로 때린 아이에게 문제를 제기하면서
‘왜 그렇게 힘없는 아이를 때리냐?’고 다그쳤더니,
‘재가 먼저 야리쟎아요’ 하는 것이다.
상황을 종합해 봤더니 흠씬 두들겨 맞은 애가
먼저 시비를 걸었던 부분이 없지 않았던 듯 했다.
어쨋튼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닌 듯 해서
‘서로 위하고 사랑해 줄 시간에 주먹질에 발길질이 왠말이냐’(누가한 말이더라?) 는
말을 한마디 남기고 텐트로 돌아왔다.
저녁 내내 이래저래 심난한 일을 당해서인지 꿈자리도 뒤숭숭했다.
[ 대남초등학교 활동 ]
짐을 정리해서 학교 앞에 선다.
[ 6900 대남초등학교 전경 ]
이곳 학교에서의 활동 중에는 충남지역 활동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한분이
떨어진 스티커를 들고 오셔서 문제를 제기한다.
하지만 조근 조근 말씀 드리니 더 이상 제지하시지 않으신다.
청소하는 아이들이 주운 것도 있었지만, 스티커를 버리는 아이들은 거의 없어보였다.
교실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다시 종류별로 가져 가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초반부터 관심을 많이 갖고 ‘종류별로 가져갈 수 있냐’고 적극적으로 물어왔던 한 아이는
활동 끝나고 스티커를 담아가려는 무렵
다시 나타나서 친구들에게 스티커를 종류별로 주고 싶다고 하길래
몇 뭉텡이 쥐어줬다.
2007. 10. 16일 충청남도 보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