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힘과 어머니의 지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강승숙(펌)

[오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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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힘과 어머니의 지혜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글 이호백/그림 이억배, 재미마주-


아이들 때문에 이미 보았던 그림책을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보게 되는 때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도 그 가운데 하나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한쪽에서는 우리 정서가 듬뿍 담긴 민화풍의 돋보이는 그림책이라고 칭찬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가부장적 색채가 강하다며 매운 비판을 했다. 솔직히 나는 처음 이 책을 볼 때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알에서 깨어나 닭이 되는 과정을 그려 보이는 것이 아이들한테 무슨 재미를 주겠는가, 저 보다 힘센 수탉한테 졌다고 흥청망청 술 마시는 모양이 뭐 좋다고 아이들한테 보여주는가, 힘이 세다고 암탉을 졸졸 따라다니게 그린 것은 여성을 낮추어 보는 일 아닌가 하며 말이 오가자 나도 그만 시들해져 내 방 책꽂이나 교실에 있던 이 책을 아이들한테 한동안 읽어주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민화에 대한 책을 보다가 이 책이 생각나서 다시 보았다. 무거운 듯한 색감과 달리 묘사가 아주 생동감 있었다. 전과 달리 암탉의 역할도 새롭게 보였다. 아이들한테 보여주었다. 속 표지의 달걀 한 개, 첫 화면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햇병아리를 보자 아이들은 한 마디씩 해댔다. "너무 작다!" 어쩌면 아이들은 봄날 나이든 아저씨가 학교 담장에 쪼그리고 앉아 파는 병아리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병아리는 달리기도 하고 싸우다 멍도 들면서 어느 날
힘차게 울어대는 멋진 수탉이 된다. 이 장면에 이르자 아이들이 서너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꼬끼요! 꼬끼요!"외친다. 2학년인 우리 반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음악을 들려주면 가끔 이렇게 몸으로 표현하려 든다.

이 장면을 보니 민화집에 나오는 봉황 생각이 났다. 수탉의 빛깔이나 꼬리, 목 아래 가지런한 닭 털 무늬가 민화 속 봉황을 닮았다. 차분하고 부드러운 정경은 시골 분위기를 잘 자아냈다. 닭 벼슬과 꼬리가 이루는 보색대비 때문에 한층 수탉이 강하고 기품있어 보인다. 정말 벌어진 수탉 주둥이에서 소리가 튀어나올 듯 하다. 아이들이 "꼬끼요"하고 소리를 내지를 만 하다.

수탉은 어느덧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 된다. 하지만 호기가 절정에 이른 이 때에도 수탉은 그리 거만해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익살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일이 어찌 쉬운가? 자기보다 힘센 수탉이 나타나자 싸움에 진 주인공은 자리를 내주고는 술로 세월을 보낸다. 말이 있었던 이 장면,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여기서 어렸을 때 동네 점방이 떠올랐다. 점방 한 쪽엔 대낮에도 늘 막걸리에 깍두기 한 접시 놓고 술을 마시던 어른들이 있었다. 그 피곤한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이들도 이 장면에서 아버지 생각이 났나보다.

"우리 아버지도요 나 사고로 다쳤을 때 술 많이 먹었어요."
"우리 아버지도 속상할 때 술 마시는데......"

이제 어둑한 화면 속 수탉은 산 능선 닮은 굽어진 등을 보이며 쓸쓸히 걷는다. 가장노릇을 잘 하는 아버지면 잘 하느라 힘들고 못하면 못해서 괴로웠던 수많은 아버지들이 겹쳐보인다. 하지만 암탉이 쓰러져 가는 수탉을 붙잡아 준다. 암탉은 수탉에게 삶은 한 세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듯 하다. 삶은 새벽이 되면 소리로 세상을 깨우고 묵묵히 식구를 돌보는 일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암탉이 그 지혜를 아는 까닭은 수탉이 힘 자랑을 하느라 돌보지 못했을 식솔들을 말없이 돌보았기 때문이리라.

(인천교사신문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