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29일 밤 11시10분 국회 법사위, 신민당 박한상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9시10분까지 장장 10시간 동안 질의했다.
3선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서다. 그의 발언 중에 속기사 60여명이 동원됐고, 공화당 의원들은 회의장에서 잠을 잤다.
우리 의정사에서 의사진행방해의 최장기록이다.
성공 기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운 5시간19분이다.
1964년 당시 초선인 DJ는 한일회담에서 공화당 정권이 1억3천만달러를 수수했다고 폭로한
동료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 표결을 저지하기 위해 책을 읽어가며 반대 발언을 했다.
(국회보 2008년 12월 호)
의사진행방해를 뜻하는 필리버스터(filibuster)는
해적 또는 약탈자를 뜻하는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르'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1841년 미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은행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차례로 장광설을 펼친 것이 시초로 꼽힌다.
최장기록은 1957년 민권법에 반대하기 위해 24시간18분 동안 마이크를 잡은 스트롬 서몬드 상원의원이다.
필리버스터는 영국 프랑스 등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일본 의회에는 시간끌기인 우보(牛步)전술이 있다.
우리 국회는 1973년 폐지됐으며, 발언시간을 15분 내로 제한하고 있다.
필리버스터의 남용도 문제가 없지 않다.
그래서 미 상원은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필리버스터를 자동 종결시키는
클로처(clouture)제도를 두고 있다.
민주당 5선의 박상천 의원이 15년 만에 국회 대정부질문에 나서 '타협형 국회법' 개정을 제안하면서
필리버스터 도입을 주장했다.
이미 한나라당 홍준표,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도 필리버스터의 필요성을 역설한 터다.
모두가 '난장판 국회'를 막자는 취지다. 공감대와 공론화가 이뤄진 만큼 여야는 '당략'을 접고 논의에 들어가면 어떨까.
다수결 원칙을 세우고 소수의견도 존중하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김상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