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홋가이도(북해도) 3박 4일 여행기 2010년 7월 1일 - 4일
*7월 1일 목요일 - 첫째 날
2010년 7월 1일 목요일에 3박 4일 일정으로 일본 홋가이도 여행길에 올랐다. 아침 5시 10분에 수원에서 출발하는 버스로 인천공항으로 갔다. 1시간이 소요되었다. 안개가 끼인 아침이었지만 인천대교를 지나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여행 중에 인천대교에서 공항행 버스 사고로 12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9시에 출발하여 일본 아사히가와로 가는 아시아나 전세기에 올랐다. 동행하게 된 매부와 누나 덕택에 좌석이 비지니스석으로 배정되어 편한 좌석에 앉아 가게 되었다. 돌아 올 때도 그랬다.
약 2시간 반 정도 지나 아사히가와 공항에 도착했다. 국제선 공항이 아니고 국제선은 전세기만 왕래할 수 있는 조그만한 공항이었다. 공항 통과에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함께 여행하게 되는 29명을 비로서 만났다. 8쌍의 부부들과 13명의 여자구룹이 함께하는 여행이었다. 일본 전문 가이드가 출발에서 돌아 올 때까지 함께하며 일행을 안내해 주었다.
일본 공항에서부터 비가 내렸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우산을 필요로 했다.
홋가이도는 일본에서 여름이면 가장 좋은 관광지로 무덥지 않고 공기가 깨끗한 대자연이 좋으며 휴양지로 각광 받는 곳이라 했다.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라고 한다. 공항에 천천히 착륙하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야에는 반듯반듯 잘 정리된 들판이 질서정연하고 깨끗하게 보였다. 지상에서 버스로 달리면서 바라보이는 들판 역시 심어진 농작물들이 모두 반듯반듯 줄이 맞춰져 있고 흐트러진 곳은 단 한군데도 눈에 띠지 않했다. 일본인들의 성격을 짐작케 했다.
북해도는 우리나라 남한에서 강원도를 뺀 만큼의 넓은 면적에 인구는 600만 정도로 적은 수가 사는 곳이라 한다. 북해도의 중심지인 삿포로 인구가 200만이라 하니 다른 지역에서는 사람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북해도를 다니면서 구경하기 어려운 것, 네 가지가 있는데 사람, 십자가, 무덤, 한국차라고 가이드가 말하기도 했다. 4일동안 다니면서 정말로 십자가 구경을 못했다. 기독교에서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인은 모두 지옥의 자식들이 되는 것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랑의 하나님이 전부 다 지옥의 자식이 되게 하겠는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더 기독교인다운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는가? 다원론적인 구원론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일본에는 유교가 정착되지 않아서 우리와 윤리도덕에 차이가 있다고도 한다. 노인 지정 자리에는 젊은이들이 절대로 앉지 않지만 지정자리가 아니면 노인에게 자리 양보 같은 것이 없다고 한다. 사촌끼리 연애하는 것도 보통이라고 한다. 유교사상에 젖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도 많을 것 같다.
우리는 먼저 비에이 언덕길을 가면서 넓은 푸른 초원을 많이 보았다. 가족나무, CF에 등장한 나무 등 이름이 붙은 나무 몇 개를 지나치면서 보았다. 일본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무근처에서 사진들을 찍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맨 먼저 버스에서 내린 곳은 후라노에 있는 팜 도미타(FARM TOMITA)라는 라벤더 농장이었다. 보라색의 라벤더 꽃이 많은 농장으로 라벤더 향수를 제조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농장이라고 했다. 라벤더 외에도 사루비아 등 여러 가지 꽃들이 잘 정리된 꽃밭에 많이 있었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어서 많이 돌아 볼 수가 없었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허브농장을 연상케 했고 유명한만큼 규모가 큰 것 같지는 않했다.
농장 구경을 마치고 약 3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노보리베츠 온천지역을 향해 달렸다. 넒은 푸른 들판에 이어서 산악지대를 지나갔다. 우리나라의 강원도가 연상되었다. 어쩌면 강원도를 크게 확장해 놓은 지역이라 해도 될 것 같았다. 대부분 2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4차선의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했다. 우리와는 대조가 되는 초라한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도 있었다. 자동차가 드물게 지나가고 도로변에는 잡초만 있을 뿐 우리같이 꽃길을 조성한 것 같은 곳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들에 많은 작물이 심겨져 있지만 비닐하우스 같은 것이 없다. 거의 자연농사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파트도 없었다. 공장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넓은 땅에 소수가 사는 지역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청정지역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 가졌고 그 상태를 잘 유지하는 것 같았다. 북해도는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다. 눈이 오면 도로가 어디인지 분간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도로를 알려주는 아래로 향하는 화살표 막대기를 도로 위, 양 쪽에 계속 비치하고 있다. 좌우의 화살표 막대기가 도로의 폭을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먼 거리를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일본과 북해도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북해도에서 많이 생산되는 작물은 감자, 옥수수, 오이, 가지, 아스파라가스, 담배 등이고 과일은 메론이 유명하며, 라벤더 때문에 보라색이 대표색이라 한다. 원래는 탄광지역이었으나 1868년 명치유신 때부터 죄수와 징용되어 온 조선인들을 동원해서 개발을 시작했기에 그 역사가 짧은 편이라 한다. 북해도의 원주민으로 아이누족이 있었으나 대부분 소멸되고 현재 5,000여명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북해도의 지명은 아이누족의 언어로 된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북해도는 동해와 태평양, 그리고 오호츠크해의 삼면바다로 둘러쌓여 있어서 해산물도 풍성하다고 한다. 북해도에서 먹을거리는 게, 맥주, 라면, 아이스크림 치즈 등의 유제품이 좋다고 한다. 초코렛 등 과자도 맛이 좋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절대로 먹을거리를 가지고 나쁜 짓은 아니 하기에 모든 식품은 믿고 먹으면 된다고 한다. 일본인들의 특징은 아프기 전에 대비를 잘 하는 점이라 한다. 아파서 병원에 가져다 줄 돈을 아프기 전에 예방으로 사용하기에 음식을 좋은 것으로 섭취하고 깨끗하게 생산하며 식품이 상품화되기까지에는 여러 단계의 검사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은 국물문화이지만 일본은 건더기 문화로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하는 민족으로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병원수가 많지 않은 것을 눈여겨보라고 한다.
섬나라의 기질은 대륙적인 기질과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착하고 정이 많으며 축소지향형 기질이라고 한다.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작은 것을 가까이 보며, 거리에는 소형차가 많고 질서를 중요시 한다. 같은 색 같은 모양의 제복을 많이 착용하고, 같이 음식을 먹고도 와리깡(각자 계산)을 한다.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여 번돈을 여행가서 좋은 것 먹고 자신을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쓴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일이 없고 남은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녀들은 모두 독립시킨다고 한다. 한국이 가족이기주의인데 비해 일본은 철저하게 개인주의 사회라 한다. 관광지에서 깃발을 앞세우고 다니는 것도 일본인들이다. 대표적인 섬 기질은 실리주의, 실용주의라 한다.
노보리베츠 입구에는 도깨비가 커다란 방망이로 마을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피부병에 걸려 고생하는 여자를 염라대왕이 낫게 해 주었더니 여자가 염라대왕 만나기를 소원하므로 일년에 한번 도깨비가 되어 나타나 주었다는 전설과 함께 도깨비가 노보리베츠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노보리베츠는 조그만한 온천마을이다. 우리나라의 부곡온천의 초창기 모습이 연상되었다. 호텔위주의 마을이다. 온천장이 있는 호텔에 들어서니 유황냄새가 가득하다. 우선 방 배정을 받아 짐을 풀고 뷔페식 식사를 한 후 마을 길을 산책했다. 도깨비 불꽃축제가 15분간 있다고 해서 나갔는데 늦게 나가서 위치를 찾지 못해 못 보고 건물 사이에 커다란 염라대왕상이 있고 시간에 맞춰 지옥심판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구경했다. 얼굴과 양손이 움직이며 무섭게 심판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거리에는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이 많았고 서양인은 눈에 띠지 않았다. 산책에서 돌아와 커다란 온천탕에 가서 온천욕을 즐겼다. 유황온천인 탓으로 물이 흐렸다. 온천탕은 24시간 개방이어서 저녁과 새벽에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일본체험의 한 방법으로 호텔방에 비치된 일본 옷 유까다를 입어 보았다. 유까다 차림으로 식당, 거리 산책, 온천탕 출입을 하는 것이 편리하고 좋았다. 내의를 안 입어도 되고 몸 전체를 감싸는 두루마기 같은 옷을 허리에 끈만 묶으면 되는 간단한 옷이어서 입고 벗고 하기도 쉽고 편리했다. 호텔마다 방에 비치해 놓아서 저녁시간에 많이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