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을 바라보고 한가로운 가운데 늘 긴장감이 감돌았던 철원땅. 그곳엔 근대의 역사유적이 곳곳에 위치하고 있다.
철원 노동당사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철원제일감리교회도 그중 한 곳으로 근대문화유산 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철원제일교회는 장로교 선교사인 웰번에 의해 설립되었고
이후 1907년 감리교로 편입된 교회로 현재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은 1936년 보리스라는 설계사가
설계한 건물로 3층 러시아풍의 석조건물로 준공되었다.
1년여에 걸쳐 1937년 교회의 봉헌식을 갖게된 교회로 철원지역의 신앙중심지가 된다.
철원애국단을 조직한 박연서목사.
교회가 세워질 당시는 일제강점기의 기간으로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던시기다.
강원도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가장 먼저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이 이곳 철원땅이었다.
대표적으로 1919년 3월의 철원읍 만세운동으로 철원읍교회 박연서목사를 중심으로 교회의 청년들이
가담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항일단체인 '철원애국단'을 조직하기도 한 곳이다.
1939년 철원제일교회로 부임한 강종근목사.
강종근목사는 인근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존경과 신임을 받고 있어 일본경찰의 요주대상으로 지목되고 있었다.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사상법 예비 검속령'에 의해 일본경찰에 구속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을 받게 된다.
하지만 모진고문으로 인해 1942년 6월 3일 세브란스 병원에서 눈을 감고만다.
한국전쟁으로 피로 물든 철원제일감리교회.
광복후 한국전쟁이 벌어졌다. 철원지방의 기독청년들은 철원제일교회를 중심으로 반공투쟁을 벌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때엔 인민군들은 교회를 병원처럼 사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교회의 지하실에서는 철원지역의 양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철원제일감리교회는 2002년 근대문화유산 23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무너져버린 교회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신앙의 터였기 때문보다는 3.1운동의 역사성을 지니고 한국전쟁당시
기독청년들의 반공투쟁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그 형체는 이미 폐허가 되었으나 오늘도 잊혀져가는 역사를 간직한채
기독인들에게 무언의 의미를 전하고 있는 곳이다.

교회의 건물은 일본에서 공부하던 '보리스'에 의해 설계되어 1년의 공사기간을 거쳐 준공되었다.

화강암기둥과 바닥의 타일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고 있다.

교회본당의 기둥이었을까. 주춧돌만이 남아 그 흔적을 보여준고 있다
초창기 교회에서는 목숨걸고 지켜야 할 신앙의 지조가 있었다.


6.25전쟁으로 무너져버린 철원제일감리교회. 신사참배를 거절하여 순교한 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한다.

인민군은 전쟁이 치열할때면 이곳을 인민군 병동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지하실에서는 지역의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이 저질러졌던 곳으로 당시의 철원지역 주민들에겐 신앙과 함께 고통의 장소로 인식되었던 것은 아닐까싶다.

무너져버린 교회. 건물에서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된 흔적도 볼 수 있다.

보리스에 의해 건축되어진 철원감리교회의 조감도 모습이다. 순수한 신앙의 산실로 자리하여
철원지역 기독청년들을 이끌어왔던 모습은 현재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엔 역사의 아픔만을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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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