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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옆 포츠담)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계사 시간에 배웠거나 영화나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된, 일반명사화된 장소를 실제로 접했을 때의 감흥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라인강변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코블렌츠를 지나 본(Bonn)에 닿기 전에 만나는 초등학교때 영화로 본 ‘레마겐의 철교’, 프랑크푸르트에서 2시간여, 스트라스부르크에서는 한시간 정도 되는 곳에 있는 그 ‘마시노 선’의 거대한 마지노 요새, ‘지상최대의 작전’이나 ‘라이언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프랑스 북쪽 노르망디 해안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 그것들이다. 박제되었던 단어들이 살아 움직임을 깨닫는 순간이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을 보기 위해 외웠던, 그리고 우리나라의 독립과 관련해 종종 등장하는 ‘포츠담회담’이 열렸던 포츠담의 체칠리엔호프 궁(Cecilenhof)을 알고 난 후의 느낌이 특히 그러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듣고 그곳에 전시된 설명자료와 책자들을 읽고 난 후, 일상화된 단어 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이 숨어있는 것인가를 새삼 느꼈다. 포츠담은 베를린 남서쪽에 맟닿아 있는 도시로 베를린을 둘러싸고 있는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이다. 동서독으로 갈라져 있을 때는 동독에 속해 있었다. 베를린 남서쪽 끝단에서 하벨(Havel)강을 넘어서는 글리니케(Glienicke)철교를 지나면 바로 포츠담으로 이어진다. 이 다리는 냉전시대 동서진영간에 스파이 교환이 이루어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개라도 낀 날이면 옛 생각과 겹쳐 분위기는 한층 영화같다. 포츠담시내로 들어서 Ceclienhof라는 표지판을 보고 그리 넓지 않은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영국식 저택풍의 체칠리엔 궁이 나온다. 이 궁은 독일의 마지막 황태자 빌헬름을 위해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이름은 황태자비의 이름 Cecilie에서 따왔다고 한다. 응접실 등 공동공간 외에 방이 150여개나 된다고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독일이 통일(1990.10.3.)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3년 초, 첫 동독지역 여행길에 포츠담에 들렀다. 동독시절의 그림자가 그대로 남아서 도시의 분위기는 많이 어두웠다. 그때는 유명한 상수시(Sanssouci)궁만 보고 체칠리호프에는 가보질 못했다. 포츠담회담이야 기억하고 있었지만 열린 장소를 몰라서였다. 1999년 다시 포츠담을 방문했을 때야 체칠리엔호프에도 들렀다. 시내에서 들어가는 길 양옆 빌라풍의 좋은 집들은 통독 후 상당기간이 흘렀음에도 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낡은 모습이었다. 베를린이 한창 변하고 있던 때였으므로 머지않아 좋은 동네가 되겠구나 하고 일행들과 이야기했었다. 그리고 2011년 베를린 출장 길에 다시 체칠리엔호프를 찾았다. 회담장의 분위기를 한번 더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차편으로 갔던 이전과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베를린 시내에서 10분마다 있는 전철(S-Bahn)을 타고 40여분 걸려 포츠담중앙역에 내려서 전차, 버스를 갈아탔다. 연결편은 좋았다. 진입로 길가의 집들은 이제 말끔하게 좋은 주택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침 독일신문에 포츠담 부동산시장에 관해 특집기사가 났었다. 포츠담은 베를린에 가깝고 숲과 호수로 둘러싸인 이상적인 주거지여서 다른 동독 도시들과는 달리 인구가 계속 늘면서 주거공간이 부족해 집값, 집세가 급격히 올라 동독지역에서 가장 비싼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Handelsblatt, 2012.4.23.). <!--[if !supportEmptyParas]--> <!--[endif]--> (베를린은 너무 부서져서 포츠담으로) <!--[if !supportEmptyParas]--> <!--[endif]-->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에서의 전쟁이 끝났다. 미국, 소련, 영국 전승국 3국 수뇌는 1943년 테헤란,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에 이어 상징적으로 베를린에서 회담을 열기로 했다. 전후질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1945.7.17일부터 8.2일까지 오랫동안 열린 회담의 결과 전후 독일의 처리를 담은 포츠담협정(Potsdam agreement)이 조인되었다. 이 협정으로 독일은 오데르 나이스강 동쪽의 거대한 땅을 잃었다. 그리고 회담중인 7.26일에 아직 전쟁중이었던 일본에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선언(Potsdam declaration)을 채택했다. 포츠담협정에는 미국, 소련, 영국 수뇌가 서명했으며, 포츠담선언의 당사국은 전쟁 당사자인 미국, 영국, 중국이었다. 중국의 장개석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텔렉스교신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포츠담회담의 주 의제는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문제여서 현지에서의 설명자료는 거의 포츠담협정에 할애되어 있다. 당초 연합국은 상징적인 의미로 베를린에서 회담을 열고자 했다. 하지만 베를린은 너무 많이 파괴되어서 회담을 열만한 장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가까이에서 찾아낸 곳이 바로 이 체칠리엔호프궁이었다. 궁 자체도 회담장소로 적합했고 주변에서 협상단이 묵을 숙소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츠담회담의 공식명칭은 ‘3개 연합국의 베를린회담(Berlin Conference of the Three Allied Powers)'이지만 통칭으로 포츠담회담이라 불리게 되었다. <!--[if !supportEmptyParas]--> 피해를 덜 입었다고는 해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고 4월에 이곳을 점령한 소련군에 의해 내부 집기도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또 접근로도 보수가 필요해 미군, 소련군은 회담 개시에 앞서 궁 진입로, 회담장, 숙소로 쓰일 인근 지역의 주택들을 수리했다. 회담장의 지름 3.05미터짜리 원탁은 소련이 모스크바에서 만들어 왔고 3국 수뇌가 앉을 의자, 집기 등은 베를린 여러 궁전이나 저택에서 쓸만하게 남아있는 것들을 날라왔다. 그리고 소련은 궁 입구에 빨간 제라늄과 푸른 수국으로 별과 이를 둘러싼 원 모양을 만들었는데 이도 역사적 상징성으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회담에는 누가 참석했나) <!--[if !supportEmptyParas]--> 포츠담회담에 참석한 3국 수뇌는 미국의 트루만, 영국의 처칠과 애틀리, 소련의 스탈린이었다. 그리고 각국의 외무장관과 수행원들이 동행했다. 이들은 2주일여를 이곳에 머물면서 전후 질서를 논의했다. 그전에 열렸던 회담보다 기간이 길었고 그만큼 난항을 겪었음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4월 12일 루스벨트의 갑작스런 서거로 부통령이었던 트루만이 대통령이 되어 회담에 참석했다. 그는 7월 7일 선박편으로 미국을 떠나 15일 벨기에 앤트워프에 도착했는데 열흘간의 여정을 거쳐 오면서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처칠수상이 참석했는데 애틀리(C. Attlee) 야당 당수도 함께 왔다. 7월 3일에 영국에서 총선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회담 중간인 26일에나 발표되게 되어 있었다. 국가에 중대사를 다루는 일에 자국 정치의 지속성을 위해 필요하다는 영국측의 주장으로 같이 참석한 것이다. 애틀리는 옵저버 자격으로 회담에 참석했고 총선결과를 보기 위해 같이 귀국했다가 총선에서 진 처칠은 빠지고 그가 정식 대표로 28일 속개된 회담에 참석했다. 한편 당시 소련의 외무장관은 몰로토프(Molotov)였다. 화염병을 몰로토프 칵테일이라고도 부르는 연원이 된 그 인물이다.
<!--[endif]--> 각국 대표단들의 회담 준비 등을 위해 궁 내에 방이 배정되었다. 그 때 트루만, 처칠, 스탈린 등이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들은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회담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고 부속건물의 많은 방들은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궁 바로 옆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주변에 오래되고 큰 나무들이 많이 있다. 늦가을의 낙엽과 호숫가의 갈대가 아름다운 곳이다. 강대국 수뇌들이 모여 세계의 질서를 논하고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던 역사의 장, 평온한 풍경, 몰려오는 관광객들을 보며 역사를 생각할 수 있는 곳이다. <!--[if !supportEmptyParas]--> (참고자료) 현지 박물관에 배치된 설명자료 및 매점에서 판매하는 소책자* * Cecilienhof Palace * Cecilienhof Palace and the “Big Three” 미 국무부 http://history.state.gov/milestones/1937-1945/PotsdamCon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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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단숨에 읽었습니다. 가보지않았는데도 눈에선하게 그려지네요.유익한글 올려주셔서 카페를 더 자주 방문하고싶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