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마부와 타투 하는 청년
십여 년 전, 필리핀 ‘따가이따이’로 여행을 갔었다. 분화구 초입에서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말을 타야했다. 내가 탄 말의 마부는 열두 살 된 어린소년이었다. 그는 부모를 여의고 동생 네 명에 조부모를 모시는 소년 가장이었다. 그 소년이 번 돈으로 일곱 식구가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1달러로 하루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고 여행객이 없는 날은 온종일 굶는다고 했었다. 귀국을 하고 오랫동안 그 소년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또다시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린마부를 떠올렸다. 첫 여행지를 ‘따가이따이’를 선택했다. 내 의식 속에는 그 소년을 볼 수 있으리라는 환영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구에서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이태 전에 태풍이 몰아쳤다고 한다.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분화구로 올라가는 산 전체가 피해를 입어서 아무도 근접 할 수 없었다. 그때 부서지고 피해 입은 건물과 논과 밭이 아직까지 복구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아쉬운 마음은 회색빛으로 낮게 깔렸다.
그곳에 가지 못한 아쉬움은 ‘피플스파크’ 전망대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따알 호수’는 온통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꼭 내 마음처럼 희붐하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철문은 녹이 슬어서 약간만 손이 닿아도 덕지덕지 붙은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이곳은 한때 우리나라보다 잘 살았던 필리핀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던 마르코스 대통령의 별장이다. 수십 년이 지난 별장은 이제 '몰락한 대통령'을 연상하듯 모든 것이 폐허로 남아 있다.
일층에는 기념품과 과일을 파는 아낙네가 각지 각국에서 온 이방인들을 맞았고 텅 빈 공터는 세월의 무게만큼 낡았다. 이층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니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휘파람을 부는가 하면 음악도 크게 틀어 놓고 관심을 보였다.
나는 한쪽 구석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빈 의자 하나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 앉아 확 트인 밖을 내다 봤다. 한참 그러고 있다가 시선을 건물 안쪽으로 옮기니 한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타투를 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 모습이 어린마부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 가보니 아니었다. 내 의식 속에 어린마부가 맴돌고 있었나보다. 필리핀의 까무잡잡하고 작은 체구의 생김새가 엇비슷하게 생겨서 나는 착각을 한 것이다.
청년의 모습은 남루했다. 짙은 초록색 긴팔 추리닝에 군청색의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은 모습은 추리하기까지 했다. 곱슬머리에 옆머리를 어정쩡하게 땋은 모습 또한 지저분하기까지 했으나 어딘가 예술적 기질을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청년 앞에 앉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반질거렸다. 청년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오른쪽으로 넘기고 왼쪽 어깨선과 팔뚝에 밑그림을 그렸다. 그 모습은 아주 진지했다. 나는 청년과 여자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림그리기에 몰두해 있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그 모습에 빠졌던 나는 그림을 완성한 청년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봤다. 너무나 아름다웠다. 여자의 어깨에 그려져 있던 몇 마리의 나비가 나풀거린다. 여자가 움직일 때마다 나비들은 주위를 맴돌면서 살아서 움직인다.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희붐하게 깔려있던 안개가 걷히는 듯 했다. 내 마음도 어느새 코발트빛 하늘이다. 그때 청년이 내게 왔다. 내 어깨에 그림을 그리겠냐고 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머금은 채 손사래를 쳤다.
청년의 할아버지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통치하던 시절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필리핀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부자였다고 한다. 그 나라의 3%로 부자가 좌지우지 한다니 할아버지가 어느 정도인지 어림짐작이 간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부정부패 속에서 청년의 할아버지는 장사 떼를 만났다. 그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땅을 사 모았고 집 구석구석의 금고에는 현금과 금괴로 가득 했다. 마르코스의 권력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면서 할아버지의 검은 돈과 권력도 서서히 몰락해갔다. 그러다가 청년의 아버지에게 넘겨졌던 얼마 되지 않던 재산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청년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빚잔치를 하고 결국 거리로 나 앉게 되면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청년은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가난한 화가를 만났다. 그때부터 그림에 관심을 가졌고 화가의 꿈을 키웠다. 다행이도 지금은 흩어졌던 가족이 함께 모여서 산다. 병들어 있는 아버지와 날품팔이로 몇 푼 벌어 오는 어머니 그리고 세 명의 동생과 근근이 먹고 살지만 가족과 부대끼며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단다. 그러면서 청년은 활짝 웃는다.
나는 먹고 살 만한데도 욕심의 군더더기가 엉겨서 행복하다는 소릴 안하고 산다. 십년 전에 만났던 어린 마부와 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화가 지망생 청년, 그들은 둘 다 하루 벌어 한 두 끼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산다. 그러면서도 티 없이 맑은 미소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깔려있다. 배낭여행을 마칠 때쯤 나는 마음 한 자락을 내려놓았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다시 마음에 덧칠해진 욕심의 군더더기가 돋아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만큼은 가족이 옆에 있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여행이었다.
첫댓글 따가이따가이 갔을 때 기억이 떠오릅나다.
허름한 슬리퍼에 낡은 옷. 먼지를 뒤집어쓴 마부의 모습. 참 마음이 짠했지요.
필리핀 여행하면서 내가 얼마나 부자인지 깨닫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선생님 작품 대하고 보니 반갑습니다.
김미숙 선생님의 글엔 늘 따스함이 넘쳐요.
저의 반협박?에 급히 쓰시느라 글이 좀 길어진듯해요
군더더기 좀 날리시면 선생님 닮은 깔끔~ 감동스러운 글 한편 나올겁니다^^
감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