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은 장번리를 제외하고는 오지라고 말할 곳은 거의 없다. 다른 시골에 비하면 촌스럽기는 해도 취재진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도로가 많이 발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여군은 각 마을 입구마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들이 서 있어, 이곳이 역사가 깊은 지역임을 대변하고 있었다.
공주에서 청양을 지나 은산면 소재지를 가기 전에 긴 다리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해서 약 2km 하천을 따라가면 왼쪽으로 은산면 장번리, 직진하면 청양군 용두리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 표지판에서 2㎞정도 들어가면 장번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또한 용두리 하천을 따라 직진해 가도 좌측으로 밤나무가 무성하며 우측으로는 약간의 들판이 펼쳐 있어 사냥터로 좋은 편이다. 이곳은 하천을 경계로 한쪽은 청양이고 한쪽은 부여로 나뉜다. 여기서 청양군 쪽으로 장평면 죽림리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이곳도 30여 호가 살고 있으며 넓은 들판이 있으므로 사냥터로 꽤나 우수한 편이다.
장번리는 범마을, 안골, 장자울 등의 소부락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2㎞ 들어가서 우측이 범마을이고 직진하면 장자울이다. 장자울에서 직진하면 오번리가 나오고 이곳을 지나 은산면 소재지로도 갈 수 있다. 범마을은 보름날 나무를 쌓고 불을 태우는 '동아제'를, 장자울은 돌을 쌓아놓고 소원을 비는 '탑제' 행사를 벌이는 마을이기도 하다.
장번리 입구에서 경운기를 고치고 있는 김형근(27세)씨 형제를 만났다. 그 동안 오지를 돌아다니며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젊은 청년이었다. 김씨는 "겨울철에 사냥꾼들이 자주 찾아오는 편이다"라면서 "겨울철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냥에 동행이 가능하다"고 매우 호의적인 자세로 말을 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젊은 나이에 농사를 지으면서도 어떤 불만보다는 자신의 삶에 만족해 하고 땅의 순수함에 감사할 줄 아는 청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노력과 꿈을 허사로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꿩·토끼·비둘기 등의 유해조수였다. 김씨는 "콩을 심고 있으면 꿩·비둘기가 뒤를 따라 다니며 파 먹고 있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라며 웃으면서 말을 했지만, 그의 웃음 속에 드리워진 그늘은 피해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장번리를 둘러싸고 있는 야산에는 임도(林道)가 길게 나 있다. 그 길이가 5㎞는 족히 되고도 남을 만큼 긴데 여기서는 공기총으로 사냥을 많이 한다는 게 김씨 형제들의 전언이다.
그들에 따르면 요즘에도 밤에는 써치라이트를 켜고 사냥을 다닌다고 할만큼 이곳은 야생동물이 풍부하다. 김씨의 동생은 "사냥꾼들에게 너무 많이 잡아가지 말라고 그래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