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럼-배여진의 인권 선언
HIV/AIDS 감염인에게도 “인권”이 있다
필자는 텔레비전을 즐겨보는 편이다. 요즘에는 두 드라마에 꽂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뉴하트>라는 드라마이다. 그러다 며칠 전, 이 드라마에 ‘절망’을 하게끔 한 내용이 있었으니 주인공 혜석(김민정)이 HIV/AIDS 감염으로 추정되는 환자의 피를 맞게 되는 장면이었다. 수술 중 환자의 혈관이 파열되어 피가 얼굴, 특히 눈에 튀는 바람에 HIV/AIDS에 감염될까봐 우려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필자를 절망케 한 장면은 피가 튀는 장면이 아니라, 그 환자가 HIV/AIDS 검사에서 양성반응을 보인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그에 대한 의사들의 행동이었다.
드라마에서는 그 환자가 성폭행 가해자였고, 성폭행 가해자라는 사실과 HIV/AIDS 양성반응 이라는 사실에 혜석(김민정)을 포함한 의사들은 경멸의 태도로 그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한 의사는 그 환자에게 채혈을 하는 과정에서 덜덜덜 떨며 장갑을 3겹이나 끼며 혹시나 피부접촉이 될까 무서워하며 피를 뽑았다. 나는 화가 났다. 왜 하필 HIV/AIDS 감염인으로 ‘성폭행 가해자’가 등장했는지, 그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는 도대체 무엇인지. 이 드라마에서는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HIV/AIDS감염인에 대한 공포와 혐오, 편견을 있는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다시 감염인들에 대한 편견을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어느 의사 한 명이 “HIV/AIDS는 피부접촉만으로 감염이 되는 게 아니야”라는 대사를 해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런 대사는커녕, 마치 HIV/AIDS는 성폭행 가해자처럼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사람이 감염되는 것 마냥 그려내고 있었다.
비단 드라마 <뉴하트>에서 드러내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은 에이즈가 일상생활에서 손만 대어도 전염이 되는 병인 줄 알고 있다. ‘에이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온 몸에 솟아나는 붉은 반점,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끔찍하게 죽어가는 모습, 동성애자…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은 언론이, 이 사회가 만들어 낸 이미지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언론에서 한 HIV/AIDS 감염인이 자살을 하면서 유서에 “나는 에이즈 환자이니, 시신을 치울 때 조심히 치우십시오”라고 쓰고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이는 감염인들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차별받고, 고립되어 있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HIV/AIDS 감염인들에 대한 정책이 ‘예방’에만 집중이 되어있는데, 오히려 이러한 정책은 감염인들의 권리를 제한하면서 에이즈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차별을 정당화 시키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완치제는 아직까지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현재 완치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치료제가 꾸준히 개발되어 있어서 관리만 제대로 하면 충분히 일상생활을 비감염인처럼 할 수 있는 병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치료제가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전 세계 곳곳에는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약’이 있지만,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횡포로 인해 어마어마하게 비싼 약값을 지불할 수 없는 대부분의 감염인들은 외롭게 죽어갈 뿐이다.(우리나라의 경우 다행히 치료제 전액을 감염인들에게 지원해주고 있다.) 결국 HIV/AIDS 감염인들이 죽음에 이르는 이유는 ‘병’ 때문이 아니라, 이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고, 초국적 자본의 횡포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즉, 진정한 ‘예방정책’은 감염인들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신문 1월 28일자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배여진(베로니카)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 http://cafe.daum.net/cchereandnow 배여진 200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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