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단가는 창자가 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하여 부르는 짧은 노래라고 설명한바 있다. 단가 중에 많이 부르는 호남 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호남 가는 신재효가 지은 호남 일대의 지명에 따른 풍경 등을 엮어 나가는 내용의 노래다. 백년에 한사람 나올까 말까하는 호남의 명창 임방울이 일제 강점기에 쑥대머리와 함께 불러 취입한 음반이 10만장 이상 팔렸다고 해서 유명한 곡이다.
호남이 판소리의 고장이고 보니 호남사람들이 많이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도 판소리를 배울 때 처음 사철 가 다음에 호남 가를 배웠다.
판소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도 판소리라고 하면 ‘쑥대머리’ 나 ‘함평천지’라고 한다. 호남가의 첫마디가 함평천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제목이 함평천지 인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사람에 대해 국악 보에는 이서구(李書九 1754~1825)가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다른 고을처럼 제 고장에 대한 노래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여 지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재효(申在孝) 계통에서는 申의 작품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작사는 이서구가 하고 판소리계의 불세출의 인물 신재효가 작곡한 것이 아닌가 싶다.
호남 가의 가사는 전라남북도 제주도 삼도의 54개의 지명으로 되어있다. 그 고을들을 왜 그 순서로 나열을 했으며 무슨 뜻인지 알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장세영(張世榮)님의 해설을 보자.
咸平천지 늙은 몸이 光州고향을 보려하고 濟州어선 빌려 타고 海南으로 건너갈 제. <다함께 평안한 세상에 이 늙은 몸이 빛고을 고향을 보려고 지나가는 고깃배 빌려 타고 바다 남쪽으로 건너가는데>
興陽의 돋은 해는 寶城에 비쳐있고 高山의 아침안개 靈岩을 둘러있네. <고흥 땅에서 솟아오른 해가 보배로운 성을 비추고 있고 높은 산 아침안개는 신령스런 큰 바위를 둘러있네>
泰仁 하신 우리성군 예악을 長興 하니 삼태육경의 順天심이요 방백수령의 鎭安 현이라. <너무나 인자하신 우리네 임금께서 학문을 크게 일으키시니 삼정승과 육판서가 하늘에 순응하고 팔도 감사는 고을마다 잘 다스려 편안케 하네>
高敞성에 높이앉아 羅州풍경 바라보니 만장雲峰은 높이 솟아 층층한 益山이요. <높고도 높은 재에 높이 앉아 비단같이 아름다운 고을 경치를 내려다보니 구름위에 솟은 봉우리는 겹겹이 쌓이고 또 쌓여 있고>
백리潭陽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萬頃인데 龍潭의 맑은 물은 이 아니 龍安 처며 綾州의 붉은 꽃은 곳곳마다 錦山인가. <백리나 되는 양지쪽 연못에서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수많은 이랑을 이루고 있는데 용담 못 맑은 물에서 어찌 용이 편히 쉬지 않겠으며 아름다운 비단무늬 같은 마을에 핀 붉은 꽃들은 곳곳마다 아름다운 산을 이루고 있네.>
南原에 봄이 들어 각색화초 茂長하니 나무 나무 任實이요 가지가지 玉果 로다. <남녘으로부터 봄이 들어 여러 가지 색깔의 꽃과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니 나무마다 열매가 맺히고 가지마다 구슬 같은 과일이로다.>
풍속은 和順이요 인심은 咸悅 인데 이초는 茂朱하고 서기는 靈光이라. <풍류와 생활은 평화롭고 순하며 사람들의 마음은 기뻐 들떠있는데 불로초처럼 특이한 풀은 붉도록 무성하고 상서로운 기운은 신비롭게 빛나는 구나>
昌平한 좋은 세상 務安을 일삼으니 사농공상 樂安이요 부자형제 同福이라. <나라가 번창하고 잘 다스러져 좋은 이 세상에 평안함을 애써 누리니 선비, 농민, 장인, 상인 모든 백성이 어우러져 즐겁게들 살아감이요 또한 부자, 형제 모두 함께 복을 받음이라>
康津의 상고선은 珍島로 건거 갈 제 金溝의 금을 일어 쌓인게 金堤로다. <평화스런 나루터에서 장사배가 보배로운 섬으로 건너 갈 적에 금 캐는 도랑에서 금을 일구어 쌓다보니 금으로 된 둑이 되었다>
농사하는 沃溝백성 臨陂상의 둘러 입고 井邑의 정전법은 납세인심 淳昌이요. <비옥한 땅의 백성들이 띠풀로 만든 도롱이 옷 둘러 입고 농사를 지을지언정 네모처럼 반듯한 고을의 세법이 공평하니 세금 내는 사람들의 마음이 순박하여 흐뭇하네.>
古阜청청 양유색은 光陽춘색이 팔도에 왔네. <푸르고 푸른 고향언덕의 버들가지 때깔처럼 밝고도 따스한 봄빛이 우리나라를 찾아왔네.>
谷城에 숨은 선비 求禮도 하려니와 興德을 일삼으니 扶安제가 이 아니냐. <골짜기 깊은 성에 숨은 선비도 예절을 지키려함은 물론이요 애써 덕을 쌓으려 노력하니 이것이 곧 집안을 다스려 평안 코져 힘쓰는 일이라 아니하겠는가.>
우리 호남의 굳은 法聖 全州백성 거느리고 長城을 멀리 쌓고 長水를 돌아들어 礪山 석에 칼을 갈아 南平루에 꽂았으니 대장부의 할 일이 이외에 또 있으랴 할 일을 하면서 놀아보세.
<우리 호남사람의 굳은 준법정신은 이 나라 모든 고을 백성의 귀감이 되네. 긴 성을 멀리 쌓고 긴 강물을 돌아들어 산처럼 큰 숫돌에 칼을 갈아 남쪽 너른들에 우뚝선 누각에 내리 꽂았으니 포부 큰 사나이의 할 일이 이밖에 또 있는가.>
이 호남 가를 어떤 소리꾼은 40번 지명 臨陂 까지 만 부르고 끝내기도 한다. 그러면 나의 고향인 구례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전주가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호남 가는 54개 지명이 다 들어간 가사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내 고향이고 살고 있는 곳이 아닐지라도 전북도청 소재지인 전주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은 제대로 호남가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만일 호남가 작사를 한다면 “완산 골 늙은 몸이 求禮고향을 보려하고 전라선 열차타고 춘향 골 南原을 지나 갈 제 ㆍㆍㆍㆍㆍㆍ” 라고 해야겠다.
성웅 이순신 장군은 “국가군저(國家軍儲) 개고호남(皆靠湖南)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야(是無國家也)” <우리나라 군비는 다 호남을 의존하고 있는데, 만일 호남이 없어진다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이다>고 하였다.
호남에서 나서 살고 있는 것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러니 우리 호남사람들은 누구나 판소리 ‘호남가’를 힘차게 부를 줄 알았으면 좋겠다. 얼씨구! 좋다!
▽ 이수홍 프로필
- 판소리 연구가(고수로 활동) - 행촌수필문학회회원 - 인삼공사 체험수기 최우수상(2006) - 완도 고수대회 일반부 최우수상(2006)
- 대한문학 수필 등단 (2007) - 경정 정년퇴임(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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