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모든 게 더 좋았다’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지만 어쩐지 우리는 그 말을 믿고 싶어진다. 그리고 테니스 팬들만큼 그 말을 믿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없다. 우드 라켓, 슬라이스 백핸드, 서브앤발리어, 심지어 1970년대의 불경스러운 악동들과 듬성듬성한 윔블던 잔디까지, 그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하다.

그러나 테니스 팬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는 접어두고 현재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프로 경기, 특히 남자부 프로 경기는 ‘비범한 시대’라 할 수 있는 시대의 한 가운데에 있다. 속출하는 서비스 에이스, 수시간 동안 계속되는 경기, 연승 행진, 채널슬램(롤랑가로스와 윔블던에서 연달아 우승하는 것), 메이저대회 ‘싹쓸이’ 등 몇 년 전에는 상상조차 못할 것 같던 일이 일상적인 일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현상이 남자 테니스가 춘추전국시대 양상을 보이던 2000년 초에 일어났다면 아무도 2명의 남자 선수가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23개의 메이저 대회 중 21개 대회 우승컵을 차지하고, 테니스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세계랭킹 1, 2위를 차지하게 될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중 1명은 16회의 그랜드슬램 우승 기록을 세우고 또 다른 1명은 클레이 코트에서 93경기 연승 기록을 세우리라는 것과, 두 선수 모두 각각 이전에 5명의 선수만이 이루었던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리라는 것을 그 누가 예측했겠는가.
2010 시즌을 빛낸 선수들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은 독특하고 전혀 다른 방식(페더러는 예술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나달은 열정적이고 힘이 넘치는 방식)으로 테니스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2010년에는 두 사람이 형성한 비범한 분위기가 파급력을 지니게 되었다.
세레나 윌리엄스는 28세인 지금도 여자 테니스 역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세레나는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각각 12회, 13회째 메이저 대회 타이틀을 따내며 빌리 진 킹이 세운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 기록을 앞질렀다. 그러나 이번 시즌, 우리로 하여금 가장 믿기지 않는 경기를 목격하게 한 선수들은 그다지 전설적이지 않은 선수들이었다.
존 이스너(미국)과 니콜라스 마위(프랑스)가 윔블던 2라운드에서 승부를 내는 데는 장장 3일이 걸렸다. 두 선수는 11시간 5분 동안 서로에게 서브를 날리며 183게임을 치렀다. 5세트는 역사상 그 어떤 경기보다 오래 경기가 진행됐다. 마위는(한 경기에서 이전의 어떤 선수보다 많은 포인트를 땄다. 마위 502포인트, 이스너 478포인트) 오랜 시간 동안 혈투를 벌였지만 패배했다.
나달의 부활
그 잊을 수 없는 11시간의 혈투를 제외하고 2010년 최고의 기삿거리는 라파엘 나달의 '부활'과 ‘테니스 황제 등극'이다. 나달은 2009년 개인적으로나 프로 선수로서 저조한 시기를 보내며 ATP 2009 시즌을 마무리했다. 이런저런 부상과 가족 문제를 겪은 후 참가한 런던 ATP 월드투어파이널에선 3전 전패를 해 탈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 3월 무렵, 만신창이가 된 경력에 소생의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달은 인디언웰스와 키 비스케인에서 준결승에 진출했으며, 5월에 열린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대회에서 대회 내내 상대 선수들을 가볍게 제압하며 11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결승전에서 마지막 포인트를 딴 나달은 코트에 쓰러지며 눈물을 보였다. 그는 우승 감각을 되찾았고 그것을 결코 놓칠 선수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US오픈까지 나달은 놀라운 성과를 쏟아내며 테니스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프랑스오픈에선 단 한 세트로 내주지 않고 패권을 탈환했으며, 윔블던 결승에선 토마스 베르디흐를 손쉽게 물리쳤으며, US오픈에선 서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단 한 세트만을 내준 채 우승컵을 차지했다.
전천후 플레이어로 거듭난 나달
나달만큼 꾸준하게 경기력 향상에 힘을 쏟는 톱플레이어는 보기 드물다. 유독 클레이코트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나달은 전천후 선수로 거듭났고, 믿음직스러운 발리어로 변신했으며, 서브를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무기로 향상시켰다. 게다가 십대 때부터의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무시무시한 승부욕과 총명함도 24세가 된 지금까지 여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나달이 제 2의 페더러가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말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페더러와 나달의 경쟁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우리는 카운트다운을 당하고 있는 이 선수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달에게 미래에 대해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그거야 더 두고 봐야죠?” 맞는 말이다. 더 두고 봐야 안다. 그리고 우리는 라파엘 나달을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비범한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글 스티븐 티그노어/USA테니스매거진 편집주간
첫댓글 개인적으론 Federer에 한 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