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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한글 번역 및 해석의 현황과 특징*
강경구 동의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국문초록
?금강경?은 조계종의 소의경전이자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불교서적이기도 하다. 그 중요성을 증명하듯 현재 한국에는 그에 대한 번역 및 해설서가 100종 가깝게 출판되어 있다. 그만큼 해석의 경향도 다양한데
전체적으로 고찰해본 결과 한국의 ?금강경? 해석에는 전통주석의 계승, 수행 및 생활체험의 반영, 서구적 관점의 적용, 범어원전의 연구 등에 기초한 경향들이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각각의 해석서들은
첫째, 인도와 중국의 전통주석을 계승한 해석의 경향인데, 그 핵심은 실체론의 부정, 차별상에 대한 부정, 이기적 자만심에 대한 경고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의 주석가들은 이러한 전통주석을 적극 참고하여 경전의 이해와 해석을 시도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백용성, 김월운, 해안,이제열, 석진오, 김용옥, 김윤수 등의 경우를 들고 이를 분석하였다.
둘째, 수행 및 생활 체험을 반영한 해석의 경향을 있는데 冶父, 臨濟 등에서 시작된 언어를 초월한 해석은 한국에서 두 가지로 나뉘어 나타난다. 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논리적 차원에 머문 경우로 김기추와 효림의 예가 그 하나이고, 장편대론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문자를 떠난 차원에서 경전의 뜻을 해석하고자 한 경우로 김태완의 예가 다른 하나이다.
셋째, 서구의 철학, 종교, 과학 등의 관점을 적용한 해석의 경향이 있다. 절대자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불교와 기독교는 상반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경향은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종교 상호간의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시도라 할 수 있다.
넷째, 복원된 범어 원전과 인도 철학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해석의 경향을 살펴보았다. 이기영의 소개로 시작된 범어 원전에 대한 관심은 이후 김용옥 등의 작업에 의해 심화되었고, 각묵과 전재성에 이르러 구체성과 충실성을 갖춘 범어 원전의 번역과 해석이 나타나게 되었다.
주제어: ?금강경? 해석, 전통주석의 계승, 수행 및 생활체험의 반영, 서구적 관점의 적용, 범어원전의 연구
Ⅰ. 서론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동시에 한국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불교 경전의 하나로 중시되고 있는 ?금강경?은 가장 활발하게 한글 번역 및 해석 작업이 이루어진 경전이다. 최초의 한글 번역은 세조 10년(1664) 간경도감
다만 이 연구는 경전의 원래 텍스트적 의미를 복원하는데 큰 의미를 두고자 하지는 않는다. 한글본 ?금강경?은 결국 한국불교의 실천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하면서도 진지한 모색의 결과이며, 서로 상이한 문화들 간에 이루어진 대화의 결과물들이다.
번역의 과정에서 원전이 어떻게 손상없이 전달되는가 보다 그것이 어떻게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확보하게 되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번역학 연구의 주된 관심사이기도 하였다.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1728)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금강경? 한글 번역 및 해석의 경향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편의상 四相에 대한 번역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자 한다.
1) 오규소라이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번역론에 대해서는 마루야마 마사오 등 저, 임성모 역, ?번역과 일본의 근대?(서울: 이산, 2000), 30~38쪽 참조.
Ⅱ. 전통주석을 계승한 해석
四相에 대해 인도와 중국의 주석가들이 내놓은 견해는 대체로 다음의 3가지로 대별된다. 논의의 편의상 我相만 살펴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첫째, 실체가 없는 것을 있다고 고집하는 태도라 보는 견해인데 世親, 無着 등 인도의 대부분의 주석가들과 그들을 학습한 중국의 僧肇(晋)등 많은 주석가들이 이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상이라 하는 것은 오음의 차별을 보고 그 하나하나의 요소가 나라고 망녕되게 집착하는 것’2)이라 한 世親의 설명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여러 측면에서 그것이 ?금강경?의 최초 종지였음에 분명하다. 2) 我相者?五?差?,一一?是我,如是妄取,是名我相. 天?造.流支?, ?金?般若波?蜜???
둘째, 제도의 주체인 깨달은 자와 제도의 대상을 분별하는 태도를 我相이라 보는 견해인데, 慧能 등에서 비롯되어 하나의 뚜렷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我-人-衆生-壽者의 4개의 단어배치와 무관하지 않고, 그 중 특히 我-人이 ‘나와 남’이라는 대립적 뜻을 형성하는 데에서 영향받은 바 큰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慧能은 다음과 같이 해설한 바 있다.
"수행인에게도 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주체와 대상이 있어 중생들을 가벼이 여기며 오만한 것을 我相이라 하고, 계를 지키는데 자부심을 가져 파계한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人相이다. 삼도의 힘든 것을 싫어하고 천상세계에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며, 긴 수명을 사랑하여 복업을 부지런히 닦으면서 모든 집착을 잊지 않는 것이 壽者相이다."3) 3) 修行人亦有四相, 心有能所,?慢?生,名我相。 恃持戒,?破戒者,名人相。 ?三?苦,愿生?天,是?生相。 心??年,而勤修福?,??不忘,是?者相。 唐.慧能, ?金?般若波?蜜?口??
혜능의 이 해석은 중국의 천인합일 사상이나 겸손을 요체로 하는 도덕주의적 사유에 적극 부합하는 바 있어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채용된다. 특히 李文會(明)나 韓岩(明) 등은 혜능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 써서 자신의 견해를 대신하기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이 절대적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실체가 있을 때 비로소 어떤 구분이 가능해지지 때문이다.
셋째, 나를 위주로 생각하는 자기 본위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라는 설명이 그것인데 慧能(唐), 陳雄(明), 韓岩(明), 石成金(淸) 등이 그 대표적 예가 된다. 石成金의 해석을 보자.
"세상에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루 종일 갈무리하면서 명예를 다투고 이익을 취하면서 자기 한 몸만을 생각하고, 또 자손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모두 我相이다. 사람들의 권세와 이익을 보면 끝없이 그것을 잡으려 하고, 남들의 위축되고 미약한 것을 보게 되면 끝없이 화내고 억압하고자 하며,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고, 남이 구하면 인색하게 구는 일이 모두 人相이다. 형상과 느낌, 생각과 행동 등이 화합된 것이 이 몸이라 생각하면서 탐진치와 애착에 빠져 신령스런 원천에 골몰하는 것이 중생상이다. 향을 사루며 장수를 축원하고 현재의 복전을 구하면서 약을 만들고 연단을 하면서 장생불로를 바라는 것이 壽者相이다.4) 4) 世?未有一人不自?其身者,?日??,?名?利,?一身?,又?子??,皆是我相也。 ?人?利,攀援不已;?人萎弱,嗔?不已,嫉人之有,吝人之求,皆是人相也。 色受想行,?其和合,?嗔痴?,汨??源,此?生相也。 焚香?祝,?求?在福田,???丹,希??生不老,此?者相也。 ?.石成金, ?金??石注?
이 해석이 독자들에게 읽힐 때에는 四相이 없는 보살은 이기심, 질투심, 인색함, 탐진치 등에 빠지지 않는 존재라는 의미만이 전달된다. 이 것은 분별, 혹은 차별하지 않는다는 해석에 비해 한층 도덕화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전통 주석가들의 주석이 ?금강경? 한글번역에 어떻게 계승되어 나타나고 있는가? 이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한글번역에 대한 ?金剛經五家解?5)의 영향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강경오가해?
5) 圭峰宗蜜, 六祖慧能, 傅大士, 冶父道川, 豫章宗鏡의 관점을 담은 다섯 책을 하나로 묶은 것으로 중국에서 전해진 경로는 확실하지 않으나 函虛得通(1376~1433)이 이를 교정편집하고 說誼를 붙인 뒤 우리나라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여 왔다. 6) 세조 때 간행은 동활자본이었다 하며, 이를 저본으로 이후 雲興寺板(1482), 深源寺板(1525), 廣興寺板(1530), 身安寺板(1537), 同願寺板(1569), 龍腹寺板(1632), 釋王寺板(1634), 雲住寺板(1635), 雲興寺板(1679), 鳳岩寺板(1701)이 있었고, 근대에 들어서 五臺山板(1937)이 출판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김운학, ?신역금강경오가해?(서울: 현암사, 1980), 18~19 참조. 7) 현재까지 번역된 서적을 예시해보면 무비 역해, ?금강경오가해?(서울: 불광출판부, 1992), 김운학 역주, ?신역금강경오가해?(서울: 현암사, 1980), 청봉청운,?금강경오가해?(서울: 경서원, 2005), 이인혜, ?금강경오가해설의?(서울: 도피안사,2009), 편집부, ?금강경오가해?(서울: 불광, 1992), 김재영, ?금강경오가해?(서울:무간수, 2005) 등이 있다.
한글 번역 및 해석의 대표적인 예로 먼저 백용성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이와 관련된 백용성의 해석을 我相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자.
"나라는 상(相)이니 나 개인을 근본으로 하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오온(五蘊)이 화합하여 조직된 것을 실아(實我)가 있다고 하고 또 내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며, 증득한 것을 집착하여 잊지 않고 이를 인정하여 나라고 하는 것이다. " 8) 8) 백용성, ?상역과해 금강경?(서울: 정토법당), 27쪽.
여기에서 백용성은 我相과 관련하여 최소 3가지의 의견을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첫째, 나를 위주로 생각하는 자기본위적 태도, 둘째, 오온이 화합하여 조직된 것을 實我가 있다고 하고 또 내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는 태도, 셋째, 증득한 것을 잊지 않고 이를 인정하여 나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위에 언급한 전통 주석가의 해석을 모두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 주석가들의 해석을 모두 접한 입장에서 어느 한가지만을 취하고 다른 것을 버리기에는 아까운 바가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한국의 많은 주석가들이 백용성 해석의 일부, 혹은 전체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그것은 중국의 논서들, 특히 ?금강경오가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김월운의 해석도 백용성과 흡사하여 두 가지의 의견을 함께 제시한다. 즉 四相을 실체가 있다는 고집으로 보는 견해와 나와 남을 가르는 태도로 보는 견해가 나란히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김월운은 백용성에 비해 보다 설득적이며, 단순한 나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논리적으로 엮고자 하고 있다. ‘실체에 대한 집착’과 ‘분별의 관념’을 연결하고자 한 다음의 문장을 보자.
"이상의 네 가지는 비록 넷이 있으나 결국 나가 있다는 생각 하나로 공통되나니 나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 너를 의식하게 되고, 나와 너가 갈릴 때에 절대한 참 이치는 보지 못하고 뒤바뀐 생각에 빠지게 된다."9) 9) 김월운, ?금강반야바라밀경강화?, 100쪽.
‘나가 있다는 생각’은 나에게 불변하는 초월적 실체가 있다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한문에서는 이 초월적 실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實我10), 神我11), 自體我12), 혹은 定實神我13) 등의 용어로 표현한 주석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我로 표현하였다. 당연히 ‘나가 없다’는 명제는 無我로 표현하는 것이 관례였다. 김월운의 해석은 이 無我를 우리 말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한문이나 한글 모두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나가 없다’로 ‘나의 실체가 없다’는 뜻을 전달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명확하게 존재하는 현실의 나는 그러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독해과정에 일정한 질문과 설명의 단계14)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나의 실체가 없다’는 해석은 뒤의 3상에 대해 ‘마찬가지로 사람의 실체가 없다……’ 등의 해석으로 이어지지만, 이렇게 ‘나가 없다’는 해석은 자동적으로 ‘그러므로 너가 없다.……’ 등의 해석으로 넘어가게 된다. 한문의 경우에도 인도 주석가들의 해석에 묶이지 않는 시점15)이 되면 이를 ‘동체자비가 없는 문제’16), ‘분별심의 문제’17) 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월운의 해석은 이를 계승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10) 僧肇(晋)나 智? 등 최초의 주석가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이를 임시로 빌려온 이름(假名)과 실체로서의 나(實我) 등으로 표현하였다. 但?假名我耳,非?我也。?金?般若波?蜜?注?(晋.僧肇) 11) 外道?有神我,死此生彼,?游六道,故名?者也. ?金?般若疏?(唐.吉藏)
박건주18)는 월운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여 실체와 차별의 문제로 이를 해석하면서도 이를 차별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고 판정한다. 나아가 ?圓覺經略疏?를 인용하여 수행의 단계별로 나타나는 착각과 관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컨대 ‘아상은 열반의 이(理)에 대해 마음에서 증(證)한 바가 있어 그 증한 바를 집착하여 잊지 않고는 이를 아(我)로 오인함을 말한다’19)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나의 존재와 나의 소유를 실체로 착각하는 문제로 귀결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18) 박건주, ?금강경?(서울: 운주사, 2001) 19) 박건주, ?금강경?(서울: 운주사, 2001), 43쪽.
다음으로 해안은 위에서 살펴본 백용성의 관점 중 하나인 자기본위적 생각20)을 글자도 바꾸지 않고 옮기고 있다. 이제열21)은 4상의 해석에 위의 전통적 관점들을 각기 다르게 적용한다. 즉 아상에 대해서는 실체의 문제로, 인상과 중생상에 대해서는 차별의 문제로, 수자상에 대해서는 자기본위적 집착의 문제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석진오는 자신이 채택한 전통 주석의 출처를 밝히면서 사상을 삼세오온의 차별을 관하는 집착이라는 세친의 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20) 아상은 나라는 상이니, 나 개인을 근본으로 하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인상은 내가 아닌 남이라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중생상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일체 생각과 일체 행동이요, 수자상은 청정열반을 즐기어 잊지 못하고 영원히 거기에 주하려는 상이다. 해안, ?금강반야바라밀경?(서울:불서보급사, 1965, 40쪽.
"아(我)라는 것은 일괄하여 삼세오온의 차별을 관하는 집착이고, 과거의 아가 서로 계속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斷)하지 않고 오는 것을 중생상이라 이름하며, 현재의 명근(命根)이 과거에 단멸하여 뒤에 육도(六道)에 태어난다고 보는 것을 수자상이라 이름한다."22) 22) 慈恩대사의 贊述을 인용된 世親의 설을 재인용하면서 그 설을 그대로 수용하고있다. 석진오, ?금강경연구?(서울: 출판시대, 1999), 87쪽 참조.
나아가 여기에 命子相은 人相을 말한다는 慈恩의 말을 인용하고 있어, 그가 慈恩의 ?金剛般若經贊述?을 통해 世親의 설을 접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지안은 전통적 주석 중에서 실체를 고집하는 생각과 자기본 예컨대 四相을 설명하면서 ‘모든 것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아상)’, ‘인간 우월에서 오는 반생명적인 행위(인상)’, ‘식물계와 동물계를 대립시켜 생명의 의미를 동물의 범주 안에서만 부여하는 일(중생상)’, ‘몸이 살아 있을 때만 생명이고 삶이라고 고집하는 소견(수자상)’23)이라고 보는 등 환경론적 관점에서 보고자 한 것이 그것이다. 23) 지안, ?금강경 바로 읽기?(서울: 조계종출판사, 2010), 44쪽 참조.
김용옥은 四相에 대해 ‘역대의 해석이 구구 분분, 도무지 종잡을 수없다’24)면서 전통적 논의를 정리하고, 인도철학에 대한 개관을 통해 그 원전적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을 피력하고 있는데, 인도 철학에 대한 개관과 주석자의 독특한 관점 피력에 대해서는 별도로 마련될 장에서 논의될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전통적 관점의 정리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전통적 관점을 ‘보살에게는 어떠한 경우도 我라고 하는 실체가 있어서는 아니된다. 我가 있으면 보살이 아니다’는 말로 요약한다. 24) 김용옥, ?금강경강해?(서울: 통나무, 1999), 180~185쪽 참조.
?금강경?의 다양한 번역 및 해석서 중에서 김윤수의 경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금강경?의 이해에 있어서 세친 등 권위적 논사들의 해석에 기반함은 물론 번역본간의 상호비교와 범어 원문의 대조25) 작 25) 그는 범어 원전은 전재성 역주본과 각묵의 ?금강경역해?를 참고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김윤수, ?반야심경ㆍ금강경 읽기?(서울: 마고북스, 2005), 289쪽 참조.
"‘아상이란 오온과는 별개인 존재’로서의 나라는 개념, ‘인상이란 재생하면서 새로운 삶을 연속시키는’ 영혼이라는 개념, ‘중생상은 오온과는 별개인’ 존재로서의 생명체라는 개념, ‘수자상은 잉태되어 죽을 때까지
따옴표로 표시된 부분은 충실하게 전통 주해를 종합한 것이고, 밑줄부분은 현대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이로써 전통 주석을 계승하면서 현대적 용어로 이해를 쉽게 하려는 저자의 시도가 일정부분 성취된 셈이다. *밑줄 = 적색
이상 살펴본 바와 같이 전통주석을 참고한 한국의 해석에는 대체로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견해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주된 특징으로 들 수 있겠다. 이를 통해 각기 해석의 중점이 다르면서도 기본적으로 四相의 본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여기에 반산26)의 경우는 인도논사들의 해석전통만을 받아 실체에 대한 부정에서 4상이 나오게 되었다는 해석으로 돌아간다. 그는 의도적으로 인도논사들의 설만을 참고하고자 하였던 듯 하고, 스스로도 무착과 세친의 해석을 충실하게 옮기고자 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또 반산은 집필작업상의 이러한 성격들을 고려하여 자신의 책의 성격을 ‘편저’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26) 반산 편저, ?재미있는 금강경강의?(부산: 부다가야, 2006)
Ⅲ. 수행 및 생활 체험을 반영한 해석
?금강경?의 진리를 선적 체험에 바탕하여 풀이하고자 한 시도가 한 흐름으로 발견되는데 그 전형적인 예는 중국의 冶父頌에서 찾을 수 있다. 四相의 대목과 관련하여 冶父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땅에 발딛고 섰으며, 코는 세로로 눈은 옆으로 붙었다’27)고 해석하고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27) 頂天立地, 鼻直眼橫. 永?皇帝(明), ?金??百家集注大成?
"당당한 큰 길, 밝고 분명하여, 28) 堂堂大道,赫赫分明, 人人本具,???成, 祗因差一念,?出万般形. 永?皇帝(明), ?金??百家集注大成?
있는 그대로 밝게 드러난 이치를 보지 못하여 뭇 중생 및 四相이 생겨남을 말하고 있다고 여겨지거니와 臨濟 역시 ‘펼쳐진 산하대지, 때맞추어 열리는 겹겹의 누각들’29)이라는 게송으로 경전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치를 설명하고 있다. 29) 一一山河无隔碍,重重?????. 永?皇帝(明), ?金??百家集注大成?
한국의 경우 이렇게 완전히 문자를 버린 해석의 예는 드물지만 게송의 형태를 취한 예로 백봉 김기추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그는 먼저 중국의 도덕주의적 해석전통에 기댄 견해30)를 내놓은 뒤 이를 다시 게송의 형태로 노래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30) 아상을 立身揚名을 추구하는 사념행위로, 인상을 사리분별에 의한 사념행위로,중생상을 口正心邪에 의한 사념행위로, 그리고 수자상을 불생불멸의 열반지를 얻었다는 사념행위로 해석하였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혜능과 韓岩(明) 등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韓岩(明)의 ?金?般若波?蜜??注?와 慧能(唐)의 ?金?般若波?蜜?口?? 참조.
"구류중생 얼로얻어 윤회바다 떠도는고 31) 백봉김기추, ?금강경강송?(부산: 보림선원, 1965), 54쪽.
게송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冶父의 그것에 비해 훨씬 논리적인 차원으로 내려와 있다. 이와 유사한 것이 다음과 같은 효림의 시이다.
"스스로 마음을 비운다, 비운다 하면서도/ 돌아보면 남아있는 자존심/ 문득 고개들고 쳐다보니/ 초겨울 하늘/ 32) 효림, ?금강경읽기?(서울:새싹, 2009), 55쪽.
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역시 논리적인 차원에 내려와 있어 그의 착안점이 논리적 설득에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문자에 묶이지 않고 자신의 선적체험에 바탕한 해석의 예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김태완이 그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는 사상을 글자의 뜻에 따라 해석한 뒤 다시 여기에서 말에 묶이지 않는 차원, 즉 ‘이 하나’를 아는 입장에서 재해석하는 경로를 취한다. 그것은 장편대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결국 ‘이 하나’로 돌아오게 되므로, 동일한 말을 반복하면서도 확고한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四相과 관련된 김태완의 선적 해석을 보자.
"(잠시 말없이 있음) 지금은 말이 없습니다. 다시,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잠시 말없이 있음) 이제 말이 끊겼죠, 또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을 할 때나 말이 끊어질 때나 한결같음이 있지요? 이 한 33) 김태완, ?선으로 읽는 금강경?(서울: 고요아침, 2004), 72쪽.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해석의 경우, 전통적 주석을 참고하는 일 없이 글자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김태완 역시 壽子相을 해석하면서 ‘壽子는 漢字대로 하면 나이 많은 長老라는 말이지만, 중생과 대비시켜 聖者라고 해도 무방하다’34)고 한 바 있다. 이는 구마라집 역본이 4가지 相으로 요약하면서 아상-인상, 중생상-수자상이 상호 대비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 해석에 속한다. 사라지지 않는 영혼에 대한 관념이라는 원래의 뜻과는 대단히 먼 뜻이기는 하지만 차별상에 대한 부정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설득력을 갖고 있는 해석이기도 하다. 34) 김태완, ?선으로 읽는 금강경?(서울: 고요아침, 2004), 66쪽.
다음으로 생활의 체험에 바탕한 해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생활체험은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사회의 바람직한 구성원이 될 것인가 하는 길을 제시하는 것에 핵심이 맞추어져 있다. 앞에서 시를 인용한 효림의 경우도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약으로 四相을 제시35)하고 있다. 36) 무비의 경전해석은 현대에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지, 그것이 현대인들의 삶에 어떤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에 주안점을 두고 행해진다. ?법화경? 해석과정에서 도출해낸 人佛사상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다.
정천구도 그러하다. 그는 四相의 문제를 일반적 생활체험에 바탕하여 몸뚱이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것을 유지하려는 아상, 이런 자기를 보호하려니까 사람, 즉 남이라는 분별을 하는 것을 인상, 자기를 주장하다 생기는 우월의식, 혹은 집단의식을 중생상, 생각과 경험에 바탕하여 스스로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수자장이 생긴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의식상의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보다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한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점이 있다.
무비는 자신의 수행체험과 생활체험을 종합하여 四相에 대한 현대적인 해석36)을 내놓고자 한다. 그는 四相과 관련하여 아상을 자만의식, 인상을 차별의식, 배타의식, 중생상을 열등의식, 수자상을 한계의식으로 풀었다. 이렇게 4가지 상을 모두 현대적 심리 용어로 바꾸어 이해를 쉽게 했다. 또 그 4가지 편견의식 중에서 아상이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보아 이것을 미세번뇌로 규정하고, 나머지 3개의 상을 거친 번뇌로 나누는37)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무비의 해석은 항상 심오한 불교진리의 현실적 활용에 착안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36) 무비의 경전해석은 현대에 어떻게 수용될 수 있는지, 그것이 현대인들의 삶에 어떤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에 주안점을 두고 행해진다. ?법화경? 해석과정에서 도출해낸 人佛사상이 그 대표적인 것이라 하겠다. 37) 무비, ?금강경강의?(서울: 불광출판부, 1994), 37~40쪽 참조.
Ⅳ. 서구적 ? 현대적 관점을 적용한 해석
서구의 철학이나 종교(기독교), 그리고 학문적 관점을 바로 ?금강경?의 해석에 적용한 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이현주 목사로서 그는 明 朱?의 ?金剛般若婆羅密多經集註?에 실린 제가의 해석 중 비교
"결국 다시금, 아상이 문제다. 내가 나인 줄로 알고 있는 나. 그것이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예수님도 당신을 따르려면 누구든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죽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아상을 38) 이현주,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서울: 샨티, 2001), 36쪽.
四相(아상)을 없애는 일을 절대자에게 나아가기 위한 자기부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절대자를 상정했다는 점에서 그것은 四相의 부정, 혹은 ?금강경?의 철학이 처하고 있던 역사적 컨텍스트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경향이 있다. 四相의 부정은 아트만 등을 절대적 존재, 혹은 궁극적 실체를 상정하고 그에 대한 귀의와 헌신을 통한 합일을 지고의 과제로 삼았던 당대 인도의 종교적 지향을 겨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버리고 절대자를 따르라는 기독교의 교리로 四相의 문제를 해석하는 일은 실천적 차원에서 일정한 대중성을 확보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절대자에 대한 귀의를 종교의 본질로 이해하는 관념이 사회적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김원수는 이에 비해 더욱 실천적인 측면에서 ?금강경?의 四相을 해석하여 相을 버리는 일이 구원자인 부처님--그리스도의 다른 이름으로서--에게 이르는 길이라 보았다.
"우리는 언제인가 제 정신 잃어버리고/ 부처님 곁을 떠나 한량없이 고생했네.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 힘써 부처님께 드리고 아상 소멸하여/ 제 정신 찾고 참 나를 발견하네./ 제 정신 찾고 보니/ 중생과 부처 다르지 않고/ 세속의 길 열반의 길 달리 알고/ 그리스도교 불교 다르다 본 것/ 다 꿈꾼 듯 착각임을 확실히 알겠네/ 아상이 소멸한 곳 부처님이 계신 곳/ 무상함이 본래 없고 영원함이 함께 하며/ 모든 괴로움 사라지고 즐거움이 충만하며/ 길이길이 행복하여 극락세계 이룩하며/ 무지 모두 사라지고 밝은 지혜 충만하네.39) 39) 김원수, ?크리스챤과 함께 읽는 금강경?(서울: 공경원, 2005), 288쪽.
불교에서는 斷滅相과 常見을 정견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위에서 언급한 바 무상함을 극복하고 영원함에 이른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常見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자 하나님을 신봉하는 크리스챤 40) 김원수, ?크리스챤과 함께 읽는 금강경?(서울: 공경원, 2005), 56쪽.
한편 남다른 종교적 실천과 학문적 모색을 보여 주었던 다석 정영모의 해석은 여러 측면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상대세계를 벗어나 절대세계에 이르는 것을 종교의 본질로 보았다. 상대세계를 넘어서서 참다운 자아에 이를 때 절대세계와 하나가 되어 생사를 넘어서는 참다운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금강경?의 종취라 보았던 것이다. 그는 종교다원주의의 선구자라 할 만 하지만, 절대세계를 상정했다는 점, 열반의 세계를 ‘니르바나님’의 인격체로 표현했다는 등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四相과 관련하여 전통적 해석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내용들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모든 부정적인 것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我에서 비롯된다는 동양적 사유방식41)과 眞我, 自性 등
41) 滅私奉公, 存天理滅人慾의 방식으로 개인적 자아의 발현은 부정되고 억압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이 인격적 성장을 밝히는 지표로 이해되어왔던 중국의 사정을 이해하는데 구체적 실례를 들 필요는 없으리라.
"참된 나는 온 누리를 꿰뚫어서 모르는 것이 없고 못하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한 지혜 자리다. 이러한 지혜를 갖추고 있으니 일체 경계에 주착하지 않는 여여부동한 존재가 엄연히 있는 것이다."42) 42) 강 만성 강론, 장상목 편저, ?금강반야바라밀경강론?(서울: 부다가야, 2009), 101쪽.
‘엄연히 존재하는 여여부동한 존재’는 전지전능한 절대자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절대적 존재, 영원한 주체를 부정하는 것이 ?금강경?의 종지임은 위에서 살펴본 바 있다. 그래서 일부 주석가들은 이러한 경
43) 특히 참선하는 이들 가운데서 많은 이들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참선이나 수행에 대해서는 고뇌하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우빠니샤드의 아류적인 곳에 빠져 자성불, 참나, 견성, 자성청정심, 내 부처 등을 설하고 그것을 체득하기 위해서 몰입하면서 아뜨만을 거듭거듭 찬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아라 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설하신 것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그들은 아뜨만을 역설하는 전도사로 변해버렸다. 각묵, ?금강경역해?(서울: 불광출판부, 1991), 82쪽. 44) 강경구, ?직역과 의역의 대화? ?중국인문과학?(제41집), 317~344 참조.
한편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답게 경전의 교리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 역시 드물지 않게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가 이시우의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인데 그는 우주의 안정된 이완상태와 四相을 정신적 깨달음이 아니라 집단의 안정된 이완상태로 보는 것이 그의 해석45)의 핵심이다. 이처럼 불교적 진리와 과학적 발견을 비유적 관계, 혹은 동일한 것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현대불교의 한 조류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하여 서양에서도 다양한 시도46)들이 있었고, 한국에서도 성철47) 등에 의한 적극적 시도가 있었다. 원래 과학과 불교의 연결은 서구 과학계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45) 四相에 대한 이시우의 해석은 이시우, ?천문학자가 풀어낸 금강경의 비밀?(서울: 도피안사, 2004), 35~38쪽 참조.
현대 심리학및 과학적 발견을 적용한 황의현의 四相에 대한 해석도 그 한 예에 해당한다. 그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막 태어난 갓난 아이는 자기와 자기 아닌 일체사물에 대한 구별이 없는 상태에 있는데 자라면서 나와 나 아닌 것을 나누어 구별해서 이원적인 대립구조 속에서 인식하고 사량분별하기 때문에 번뇌가 생기는 것이라 보았다. 나아가 자아의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님을 다음과 같은 예를 통해 논증하고자 한다.
"현대과학 차원에서도 PET-fMRI를 이용해서 뇌속을 분자차원에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의 기능은 모듈단위로 분리되어 있으며, 수직적으로 통합(integrate)된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수평적으로 기능적 48) 황의현, ?과학과 불교의 만남?(서울: 하늘북, 2006), 104~105쪽.
황의현은 자아의식의 실체가 없음을 논증하기 위해 이러한 과학적 발견의 예를 들고 있다. 비슷한 차원에서 고목49)은 전체적으로 ?금강경?의 진리와 현대과학의 소통성에 바탕하여 경전을 해석하고 있어 주목할 49) 고목, ?금강경최상승해?(밀양출판사, 2010)
이처럼 현대과학의 새로운 발견과 ?금강경?의 진리를 동일시하는 해석은 두 가지의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를 통해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차원이 형성된다. 익숙하게 미끄러지기만 하던 구절
한편 서양철학의 용어를 빌어 그 이해를 돕고자 하는 시도도 자주 발견된다. 일례로 정천구는 동굴의 우상을 아상과 유사한 것으로, 종족의 우상을 인상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자 한 바50) 있다. 같은 차원에서 그는 四相의 문제를 편견, 혹은 선입관, 왜곡된 표상, 우상 등 인간을 오류에 빠지게 만드는 마음의 나쁜 습관이라고 총괄하기도 한다. 이렇게 서양철학의 개념을 빌어 四相을 해석하면 그것이 쉽게 이해되는 장점이 있는 반면 그 개념이 축소 또는 왜곡됨으로써 결정적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한 오해를 막기 위해 정천구는 영원불멸의 眞我를 상정하던 바라문교의 교설에 대한 부정으로 我相의 부정이 나오게 되었다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50) 정천구, ?금강경공부하기?(서울: 혜명, 2006), 58~59쪽 참조.
Ⅴ. 범어 원전 및 인도철학에 바탕한 해석
경전의 번역과 해석에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절대 과제가 제시된다. ?금강경?의 경우에 있어서도 현대인에게 쉽게 이해되는 번역과 해석이 요구되었음은 물론이다. 이 과정에서 한문문장의 다의성에
사실 이것은 새로운 경향인 것처럼 보이지만 ?금강경?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가장 두드러진 흐름의 하나였다. 그 출발점에 이기영 등의 작업이 있다. 그는 ?금강경?의 산스크리트어본과 漢譯본을 대조번역함51)으로써 텍스트의 漢譯 과정에서 어떤 변용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었다.
51) 그것은 이기영의 작업이라기보다는 스스로 밝힌 바와 같이 나까무라 하지메(中村元)의 선행작업을 기초로 편역한 것이다. 이기영 번역ㆍ해설, ?반야심경ㆍ금강경?(서울:한국불교연구원, 1978), 134쪽. 52) 无着, ?金?般若??, 天?, ?金?般若波?蜜???
"개체라는 생각: 그 원어는 ‘지바(jiva)’로서 원래 ‘생명’을 의미하는데, 인도 사상에서는 ‘개체’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산스끄리뜨어본 역해)53) 53) 이기영, ?반야심경ㆍ금강경?(서울:한국불교연구원, 1978), 363쪽.
"수자상(壽子相): 운명론적인 집착을 가리킨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길고 짧던 간에 일정한 목숨을 받았다’라는 숙명론적인 집착을 말한다."(구라라집본 역해)54) 54) 이기영, ?반야심경ㆍ금강경?(서울:한국불교연구원, 1978), 393쪽.
산스끄리뜨어본에 대한 역해는 말할 것도 없이 인도철학사의 기술을 빌어온 것이고, 漢譯본에 대한 주석은 ?金剛經纂要刊定記?55)의 것을 따온 것이다. 수자상이 ‘지바(jiva)'의 번역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은 55) 長水沙門 子璿이 기록하고, 圭峰宗密이 疏를 단 이 책은 ?금강경? 이해의 핵심을 짚고 있어 중시되어 왔고, 한국에는 연관의 번역으로 출판되어 있다. 연관역, ?금강경간정기?(서울: 선우도량 출판부, 1996) 참조.
이후 최명순은 산스끄리뜨어본과 콘즈(conz) 영역본의 중요성을 인정하여 자신의 책56)에 부록으로 싣기는 하였으나 참고한 흔적은 없어 보인다. 56) 최명순, ?금강경강론?(서울: 백산출판사, 1995)
?금강경? 이해에 있어서 산스끄리뜨어본 및 인도철학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널리 공감대를 확보한 것은 김용옥에 이르러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도철학에 대한 서양의 연구성과를 널리 참고하여 ?금강경?의 본래 뜻을 되살리고자 하였다. 四相에 대해서도 학문적 근거에 바탕하여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이해되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위에 이기영의 고찰에서도 예로 든 壽子相의 설명만 보아도 그 해석의 성격이 짐작된다.
"지바(jiva)는 불교와 동시대에 興起한 자아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지바(jiva) 혹은 지바아트만(命我)은 존재의 순수영혼으로 설정된 것이었다. 모든 생명에는 이 순수영혼인 지바가 실체로서 존재하 57) 김용옥, ?금강경강해?(서울: 통나무, 1999), 182쪽.
김용옥의 이와 같은 작업과 비슷한 시기에 한국 학자들과 종교적 실천가들 사이에 漢譯본에 우선하는 범본의 가치에 주목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58)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각묵과 전재성이 된다.
58) 물론 빨리어 경전, 산스끄리뜨어 경전에 대한 관심이 김용옥으로 인해 일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시기 이미 활성을 중심으로 한 논의와 작업들이 있었으며, 범본 번연의 진정한 출발을 알린 각묵이나 전재성의 개인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59) 각묵, ?금강경역해?(서울: 불광출판부, 2001)
"영혼이라는 산냐(jiva-samjna): 지와는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구마라집은 壽子로 현장은 命子로 옮겼다. 이 단어는 특히 자이나교에서 생사를 초월해 있는 존재로서 인정하는 개념이다. 자이나교의 60) 각묵, ?금강경역해?(서울: 불광출판부, 2001), 83쪽.
설명이 극히 구체적일 뿐만 아니라 한문 경전까지 고려하여 구마라집과 현장의 번역을 범본과 대조하여 제시하고 있다. 각묵은 또한 이러한 범본 ?금강경?의 번역작업에 기반하여 한국 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61) 각묵, 위의 책, 82쪽.
이에 비해 전재성은 범본에 기초하여 한국어 역해본을 낸 뒤, 다시 범본에 해당하는 한역본(구마라집본과 현장본), 티베트본의 원문을 각주에 제시하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장을 달리하여 범본 번역본을 제시한 壽子相과 人相에 대한 설명을 보자.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고, 이것이 나의 자아이다’라는 말은 자아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를 잘 보여준다.그래서 역자는……③잉태되어 죽을 때까지만 유기체내에서 통일적인 힘 62) 전재성, ?금강경?(서울: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3), 61쪽.
그의 말대로 빠알리 초기경전의 핵심을 빌어 四相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전재성의 개인적 해석은 모두 각주로 처리되어 있으므로 그의 책에서 각주는 본문보다 중요하고 더 공이 들어간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영원하다’라는 자아 불멸론적 견해(아상), ‘마음과 몸만이 궁극적인 개체이다’라는 개아 단멸론적 견해(인상), ‘나는 운명적으로 이미 정해진 생명체이다’라는 존재 숙명론적 견해(중생상), ‘나의 영혼이 본래는 청정했는데 미세한 업력으로 더럽혀졌기에 고행으로 영혼을 깨끗하게해서 이 세계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리라’라는 영혼 불멸론적 견해 "(수자상) 63) 63) 법산, ?금강경?(서울: 운주사, 2010), 126쪽.
따옴표(‘ ’) 부분은 인도 철학에서 따온 것이고, 밑줄 부분은 스스로 만들어낸 현대적 용어이다. 이를 통해 정확한 설명과 쉬운 이해를 함께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四相과 관련된 당시 인도 철학과 종교의 지형도64)를 제시하여 그 철학사적ㆍ종교사적 위치를 밝히고 있다.
64) 브라만의 아트만, 順世派의 유물론, 邪命派의 숙명론, 자이나교의 영혼관 등에 대한 부정에서 四相이 설해졌음을 밝히면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법산, ?금강경?(서울: 운주사, 2010), 127~132쪽 참조.
Ⅵ. 결 론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결과 전통주석을 계승한 번역ㆍ해석, 개인의 수행 및 생활체험을 반영한 해석, 서구적ㆍ현대적 관점에 의한 해석, 범어 원전 및 인도철학에 바탕한 해석의 경향이 각기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각각의 해석서들은 이러한 경향을 2~3가지씩 공유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각각의 경향에 나타난 특징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전통주석을 계승한 해석과 관련하여 고찰은 내용을 요약하면다음과 같다. 인도와 중국의 전통주석의 핵심은 실체론의 부정, 차별상에 대한 부정, 이기적 자만심에 대한 경고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의 주석가들은 이러한 전통주석을 적극 참고하여 경전의 이해와 해석을 시도하였는데, 대표적인 예로 백용성, 김월운, 해안, 이제열, 석진오, 김용옥,김윤수 등의 경우를 들고 이를 분석하였다.
둘째, 수행 및 생활 체험을 반영한 해석의 경향을 살펴 보았다. 冶父,臨濟 등의 선시적 해석은 한국에서 두 가지로 나뉘어 나타난다. 첫째,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논리를 버리지 않은 경우로 김기추와 효림의 예가 이에 속한다. 둘째, 장편대론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문자를 떠난 차원에서 경전의 뜻을 해석하고자 한 경우로 김태완의 예가 이에 속한다. 생활체험을 반영한 해석으로 무비 등의 예를 들었는데, 특히 무비는 자신의 수행체험과 생활체험을 종합하여 심오한 불교진리의 현실적 활용에 착안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서구의 철학, 종교, 과학 등의 관점을 적용한 해석의 경향을 살펴보았다. 절대자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 불교와 기독교는 상반되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주, 김원수, 정영모 등은 ?금강경?의 교리를 기독교의 절대자에 대한 귀의와 동일한 것으로 보고자 하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종교 상호간의 소통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시도라 할 수있다. 비슷한 차원에서 과학적 관점, 서구 철학의 관점, 심리학적 견해 등에 바탕한 해석들이 뚜렷한 경향을 형성하고 있음을 살펴 보았다.
넷째, 복원된 범어 원전과 인도 철학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해석의 경향을 살펴보았다. 이기영의 소개로 시작된 범어 원전에 대한 관심은 이후 김용옥 등의 작업에 의해 심화되었고, 각묵과 전재성에 이르러 구체성과 충실성을 갖춘 범어 원전의 번역과 해석이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구체적 작업에 힘입어 뛰어난 가독성과 계발성을 갖춘 법산 등의 해석서들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용성 진종, ?상역과해 금강경?(서울: 정토법당, 1974) 이현주 지음, ?기독교인이 읽는 금강경?(서울: 샨티, 2006) 김태완, ?禪으로 읽는 金剛經?(서울: 고요아침, 2004) 우학, ?금강경 핵심강의?(서울: 좋은인연, 1998) 평양 사회과학원 민족고전연구소고려대장경 연구소 출판부, ?팔만대장경선역본13 :금강경 외 ?(서울: 고려대장경 연구소 출판부, 2001) 唐 知恩, ?金?般若?依天?菩???略?秦本??? 太?, ?金?般若波?蜜????
<Abstract>
Current status and characteristics of Korean translation and analysis of Diamond Stura
Kang, Kyong-Koo(Dongeuil Univ.) The Diamond Stura is the scripture of the Jogye Order and the most widely read Buddhist book. It is demonstrated by the fact that more than 100 kinds of translation and analysis have been published in Korea. By so much, the trends of the analysis are diverse, and this study see the diversity not as an error from translation but a result of cultural regeneration of meaning. The overall consideration of the Diamond Stura analysis has revealed that the analysis of the Diamond Stura is based on the succession of traditional annotations, reflection of training and experience, application of western views, and the study of Sanskrit scripture. Furthermore, each analysis book shares 2~3 of these trends. The summary of the characteristics is as follows.
The first is the analysis that succeeds the traditional annotations of India and China. The focus of this analysis is the denial of discrimination, and the warning against selfish pride. Korean annotators have attempted to understand and analysis the scriptures by actively referring to such traditiona annotations. The leading examples include Baek Yong-sung, Hae An, Lee Jae-yeul, Seok Jin-ho, Kim Yong-ok, Kim Yoon-su. Second, the analysis trend reflecting training and experience can be divided into two types in Korea which are beyond the languages originating from 冶父(Yefu), 臨濟(Lin Ji). One is the trend where it takes up the type of poem but remained in logical dimensions, whose example is Kim Gi-chyu and Hyo Rim. The other is the example of Kim Tae-wan taking up the form of a long work, but analyzed the meaning of scriptures beyond the text. The third analysis is one that applies the philosophy, religion, and science of the western view. In view of the absolute entity, Buddhism and Christianity are on the contrary. Despite various problems of such trend, it is a valuable trial as it seeks the interactive communication among religions. The fourth is the analysis trend that bases on the restored Sanskrit scriptures and Indian philosophy. The interest in the Sanskrit scriptures triggered by the introduction of Lee Gi-young have further accelerated by the work of Kim Yong-ok, and have been succeeded by Kak Mook and Jeon Jae-sung. By the time, a more concrete and loyal-to-original Sanskrit scripture translation and analysis have emerged.
Key words: Diamond Stura analysis, succession of traditional annotations, training and experience reflection, western view reflection, study of Sanskrit scriptures.
투고일 : 2010. 10. 14. 심사일 : 2010. 11. 20. 게재결정일 : 201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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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