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시대(王時代, B.C 2205~B.C 770):
계천우세왈왕(繼天于世曰王)
왕(王)이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세상을 다스려 나가던 시대이다.
우(禹)가 석주(石柱)로 구년 홍수를 막아내는 것을 보고 순(舜)은 천하를 우(禹)에게 물려주었다.
우왕(禹王)의 이름은 문명(文明)이며, 요임금 시대에 치수를 맡았던 곤(鯤)의 아들이고 전욱(顓頊)의 후손이다.
요임금 때 대홍수가 나서 산봉우리까지 물바다를 이루게 되자 요임금은 물을 다스릴 사람을 찾게 되었다. 사악(四岳:요임금 당시 관직명)이 곤(鯤)을 추천 하여 치수를 담당케 하였으나 도리어 막히어 다스리지 못하였다.
이때 요임금은 자신의 뒤를 이어 천하를 다스릴 순(舜)을 찾아 왕권을 이양하였다.
그런데 왕권(王權)을 이어받은 순(舜)은 곤(鯤)을 익산(翊山)으로 귀양을 보내 죽게 하였다. 그러자 우(禹)는 부친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치수를 맡고자 하므로 순(舜)은 우를 기용하여 치수를 맡게 하니 그는 전심전력을 다하여 외지에 거처하며 치수 기간 8년 동안 3번이나 그 집 앞을 지났으나 한 번도 집에 들르지 않았다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9주(州)에 9개의 수로를 내었으며 9도(道)를 통하게 하였다.
또한 아홉 개의 큰 호수에 제방을 쌓았으며 큰 산 9개를 뚫었다. 이것을 순에게 고하자 순은 그의 사업을 칭찬하며 말하길 “땅이 평(平)*하고 하늘이 이루어지니 육부(六府)*와 삼사(三事)*가1)진실로 잘 다스려져서 만세토록 길이 의지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대의 공이라” 하며 천하를 그에게 넘겼다.
우왕(禹王)은 하(夏)나라를 세우고 왕위(王位)를 아들 ‘계’에게 물려주었는데, 이를 계기로 아들 ‘계’는 하왕조(夏王朝, B.C 2183~B.C 1752)를 세습 왕조체제로 바꾸었다. 이후 하왕조는 계속 이어지다가 걸(桀)왕에 이르러 폭정을 폈기에 탕(湯)이 하왕조(夏王朝)를 멸하였다.
우(禹)에게 계승된 천하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욕심은 늘어가고 도덕은 줄어들어 하왕조(夏王朝) 17대 걸왕(桀王)에 이르러 매희라는 절세미녀에게 빠져 폭정을 일삼으니 탕왕(湯王)이 명재상(名宰相) 이윤(伊尹)의 도움으로 걸왕(桀王)을 멸하고 무너진 왕도(王道)를 다시 세웠다.
사략(史略)에 따르면 “은왕(殷王) 성탕(成湯)의 성은 자(子)씨이고 이름은 이(履)이다. 그 선조는 설(挈)이라는 사람인데, 제곡(帝嚳)의 아들이다. 탕은 처음에 ‘박’이라는 땅에 도읍을 정하고 사람을 보내어 이윤(伊尹)을 신(莘)의 땅에서 초빙하여 폐백을 가지고 그를 걸(桀)에게 다섯 번이나 나아가게 하였으나 한 번도 기용(起用)하지 않았다. 걸은 탐욕하고 포악하여 나라가 크게 붕괴되었으므로 이윤은 탕의 재상이 되어 탕을 도와 걸을 토벌하여 남소(南巢)에서 추방하니 제후들이 탕을 높여 왕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탕왕(湯王)이 무너진 도를 다시 세웠으나 이 또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인간의 욕심에 편승하고 도리를 잃어가더니 은왕조 30대 주왕에 이르자 주왕은 절세미인 달기에게 빠져 연못을 파고 술을 부어놓고 배를 띄워 노닐며 마셨으며 나무숲에 고기를 걸어놓고 먹었다 한다.[주지육림(酒池肉林)]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과중하게 하니 백성들의 원성(怨聲)이 온 나라에 가득 찼다 한다.
이에 충신이 나아가 간언하면 불에 달구어진 구리기둥 위를 걷게 하여 숯불 위에 떨어져 죽게 하는 포락지형(炮烙之刑)을 행하니 제후들이 모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무왕이 목야의 싸움에서 은나라 주왕을 멸망시키고 주 왕조를 세우고 아버지를 문왕(文王)으로 추존(追尊)하였다.
문왕(文王)은 주(周)왕조의 기초를 닦은 성군(聖君)으로 성은 희(姬), 이름은 창(昌)이다. 문왕(文王)은 성덕(聖德)이 있어서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귀복하니 천하의 3분의 2에 달하는 땅을 차지하였다.
문왕은 강태공을 만나 그의 도움을 받아 덕치(德治)에 힘을 다하였으며 주역(周易)을 내어 영대(靈臺)를 짓고, 신명(神明)을 땅에 봉(封)하고 지존시대 (地尊時代)를 열었다.
탕왕(湯王, B.C 1783~B.C 1754)이 걸왕(桀王)을 멸하고 은왕조(殷王朝)를 세워 무너졌던 왕도(王道)를 다시 세웠을 때가 우왕(禹王)으로부터 422년 이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또 탕(湯)에 의해 세워졌던 은왕조는 주왕(紂王)에 이르러 폭정을 일삼아 백성이 피폐하고 민심이 떠났기에 주(周)나라 문왕(文王, B.C 1099~B.C 1050)이 은(殷)을 멸망시키고 주(周)나라를 세우니 탕왕으로부터 684년 이후의 일이다.
우왕(禹王)으로부터 탕왕(湯王)에 이르기까지가 1회기(513년)에 해당하며, 탕왕(湯王)으로부터 문왕(文王)에 이르기까지가 1회기(513년)에 해당하므로 1회기마다 성인(聖人)이 내려 무너졌던 도(道)를 다시 세웠던 것이다.
이때는 요ㆍ순ㆍ우왕 시대에 널리 펼쳐졌던 도덕정치는 점차 무너지고, 인간의 욕망과 타락의 양상이 점점 드러났던 시기였다. 이와 같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며 도(道)는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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