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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여울 8집을 읽고..
엄동지하에 코로나로 인한 집콕생활로 무료할 즈음, 동인지 (시여울8집)을
받아서 읽고 나름 감상평을 써 봤습니다.
여기에 올리는 동인들의 시 1편은 동인들의 대표작은 아니고
제가 읽고 공감하는 부분을 써 봤으니까 작가와 의도가 다르더라도 그냥
재미로 봐주시기 바랍니다. (한인석)
회상
신혼의 단칸방 앞을 지키던 꽃같던 너
꽃잎, 낙엽, 첫눈 까지도
너는 가만 두질 않았지
언제나 내 앞에서 길을 열어주던 너
남루해진 일상의 잔재들
울며 웃으며
다독다독 쓸어준것이
어언 30년
이제 빛바랜 반토막이 되어
헐렁하게 닳아버린 몸뚱이
세월의 이랑이랑에
비밀을 숨겨놓고
아직도 베란다 한쪽을 지키고 있는
삼색 나이롱 몽당 빗자루
<<30년이 넘은 빗자루에 얽힌 사연을 한편의 시로 잘 풀어내었습니다.
특히 ‘언제나 내 앞에서 길을 내어주던 너’ 라는 시어를 첫 연에 장착함으로써
이 시는 희망을 얘기 하고 있습니다.
일상의 잔재들을 다독이며 정리해 주면서 비록 자신은 ‘헐렁하게 닳아버린 몸뚱이’가
되고 있다는 의미로 환치 시킴으로써 시인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말해 주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또한 아직도 반토막이 된 몽당빗자루를 버리지 못하고 베란다 모퉁이에 세워두고
있는 것은 지나온 삶의 애환과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녹아있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바람, 그리고 그리움
엄마는 에어컨 바람이 싫단다.
몇 해 전 매형이 놔드린 에어컨은
엉거주춤 자리만 지킨 지 오래다.
냉장고 바람 쐰 음식들도 싫단다.
자식들이 사 나르는 맛난 것들은
건천에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엄마는 그리운 게다
먹을 것 귀하던 시절에
다래끼랑 호미랑 동무 삼아
냉이 캐며 맞던 가난의 바람을
밭두렁 호박 따다 얇게 썰어
개울가 널찍한 바위 위에 펼쳐둔
호박꼬자리 만들어주던 고마운 바람을
햇볕 좋은 날 안방 건넌방서 떼어내
풀칠한 창호지 새 옷 입혀 세워둔
격자문 솔솔 말려주던 가을바람을
한겨울 빨래터 방망이로 혼쭐내
바지랑대 파수꾼 세워 널어둔
오남매 헤진 옷 다독이던 홧바람을
<<시골집에 가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에어컨이 많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찬 바람을 싫어하지요. 저도 찬 것이 싫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 시에서는 강제로 만들어 내는 에어컨의 찬바람과 시절의 풍류와 자연이 주는
자연풍,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바람을 잘 비유한 시입니다.
‘엄마는 그리운게다’ 라고 결론부터 내려놓고 바람에 대한 그리움을 풀어가는
기법이 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마지막 연에서는 어머니의 어려웠던 시절을
상기시키며 울컥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만다라
할머니가 그렸던 만다라
색칠도 다 못한 만다라
가슴속에 묻힌 아름다운 색
세상과의 이별을 위해
예쁘게 그리고 싶었던 만다라
창살 없는 창가에서
푸른 하늘 보며
붓다를 찾아가는
작은 새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불화로 알고 있는 만다라를 할머니가 그리다가 색칠도
못다 하고 세상을 뜨신 사연이 있는 시입니다.
‘가슴속에 묻힌 아름다운 색’ 이라는 시어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창살 없는 창가란? 얽히고설켜서 아옹다옹 살아가는 삶의 전쟁터에서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나선 길을 말함입니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부처를 향한 위대한 여정을 찾아가는 표현은 시의 본질을
잘 살린 함축미 있는 소품의 불교시로서 깔끔하고 깨끗합니다>>.
마중
대문 없는 집
마당에 들어서면
수돗가 둥그런 바가지
똑똑 물방울 받으며 누웠다.
오랜 먼지 뒤집어 쓴
평상 위 대바구니
속없이 허허 웃는다.
나즈막한 어둠 속 틈 사이 불어 온 바람
내 옷자락에 흔들흔들 옮겨지면
댓돌 위 가지런히 신발 벗고
툇마루에 팔베개 하고 누우면
“그래, 어여와라. 잘왔다.”
온 몸에 퍼지는 어머니 소리
익을 만큼 익은 마당 감나무 소리
<<대문없는 빈집에 들어서는 허허로운 마음이 들면서 외로움이 왈칵 몰려오는 듯합니다.
수돗가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을 소리에도 귀가 기울여지고 아무렇게나 바람에
흔들리는 대바구니가 웃는 모습이 더 그렇습니다.
종장에서는 하루의 피로를 벗고 팔베개로 누워 어머니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연상하며
위로를 받는, 마치 감나무가 마중을 나온 것으로 은유시켜 마무리한 기법이 시를 더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다.>>
봉숭아 꽃물
우연히 지나던 골목에서
탐스러운 봉숭아꽃
가던 길 멈추었네
아니야!
일부러 찾아 헤맨 거라고
외갓집 장독대 옆에 수줍게 피어 있던 꽃
채송화 분꽃 맨드라미 금송화
그리워지는 것은 나이탓일까
봉숭아꽃 한 움큼 따서
열 손가락에 물을 들였지
내가 나에게
꽁꽁 매어주던 엄마의 마음
손톱에 봉숭아 꽃물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는 말을 믿었지
동여맨 손톱이 아파
잠을 설치고 깨어보면
이불에 빨강 물을 들였지
지금도
하루에도 몇 번씩
꽃물 든 손톱을 보고 있네
<<길가 골목에서 우연히 만난 봉숭아를 보고 그 옛날 외할머니댁이 생각나 한순간
눈치 볼 것 없이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은 아직
마음이 젊다는 것입니다.
이시에서 엄마가 해주었던 추억을 꺼내 내가 나에게 그 추억을 물들이게 됩니다.
‘첫눈 올 때까지...’ 그 말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손톱꽃물들이기,
자다가 이불에까지 꽃물을 들여놓은 헤프닝..
시인의 아름답게 익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오월이 오면 들려오는 소리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봄이 익어가느라
속삭이듯
평화로운 일상이 숨쉬고
예쁜 꽃들이 이야기 하던
그 날 그때
가슴을 찢는 절규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금속성 소리에 맥없이 쓰러지던
그때 그 순간
바람을 뚫고 지나가는
긴박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갈구하고
자유를 지키려는 의지의 거리에
주먹밥을 건네며
포기하지 말라는 민주의 힘이
총구 앞에서 항거하며
붉은 꽃잎으로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오랜 침묵이 흐르고
40년이란 세월 앞에 서서
오래된 거울 속으로 들어가
그 때를 들여다봅니다.
그 아픈 상처가 반복되는
일이 생긴다 해도
결코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민주는 결코 그냥 오지 않음을
고향을 잃어버린 가슴에
언제쯤에나
봄꽃을 피워 볼 수 있을는지
서러웠던 오월이 오면
들려오는 소리 있습니다.
그 때의 옳은 행동은
아름답게 남을 선한 몸부림이었다고....
평화가 오롯하게
숨 쉬는 거리를 원한다는.....
<<5.18 광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옵니다.
지금도 가끔 TV에서 나오는 그때의 화면을 볼 때면 괜한 울분이 치밀기도 합니다.
시인은 아마도 5월을 잊지 못하고 환청처럼 들려오는 소리에 아직도 가슴 아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4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고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는 상처를 어루만지며
헌법 제1조1항의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를 상기시켜 주는군요.
급박한 상황에서도 주먹밥을 나누며 마음을 다독이던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는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시입니다.>>
빵
빵집 앞을 지날 때면
나는 왜 이렇게 빵이 좋을까요 하던
정모씨가 생각난다
그가 생각 나는 날
이스트를 넣고
반죽을 한다
그럼 숙성 시간이 필요하지
나도
지금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용히 부풀어 오르고 있다
<<빵이라는 사물을 통해 숙성이라는 자기성찰을 이끌어낸 깔끔한 단시입니다.
정모씨가 누군지는 몰라도 시인에게는 시은詩恩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인 자신도 숙성의 시간을 보내며 조용히 부풀어 오르고 있다는 적절한 은유를 통해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구수한 빵 냄새가 나는
시입니다.>>
상사화 (꽃무릇)
35년 전 선운사 가던 길에
범상치 않던 한포기 풀을
가슴두근이며 몰래 화분에 심었다가
지금의 삶의 터로 옮기고 나니
다홍의 고운 꽃을 피웠는데
황홀한 고귀함에 넋을 잃게 만든다
포기 나누기 하여 보기좋은 곳에 심고는
애를 졸였던지
아가 다루듯이 물과 정성으로 돌봤더니
초가을 인디안 썸머처럼
화단에 유독 돋보인다
여덟송이 꽃기둥 한송이 꽃 되어
다닥다닥 꽃무리를 만들고
꽃잎은 발끝까지 발랑누워
꽃술의 아름다운 끼를 발산한다
그러다가 꽃은 지고 뭉텅뭉텅 난처럼 가는 잎들은
만나지 못한 짝을
엄동설한에 혹, 님이 못 찾을까
푸른 잎으로 기다리고 기다린다
<<35년 전에 슬쩍 입양해온 풀 한 포기가 이렇게 번성하였군요.
고향 떠나 살아온 그들도 살려고 기후에 적응하고 추위에 견디고 모진 고생을
하였을 것입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식물도 살려는 의지와 생명력으로 자손을 퍼트리려는 힘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잎과 꽃을 동시에 볼 수 없는 꽃무릇, 그래서 상사화라고 하기도 하는 아름답고
외로운 꽃의 입양기를 잘 읽었습니다.>>
내 마음의 끝자락
고향에 갈 때마다 먼저
초등학교의 추억을 들러서 간다
그리로 향할 때 순간 머뭇거려진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지나갈 것인가
속도를 높혀 잽싸게 빠져 나갈 것인가
줄였는지 높혔는지도 모르게 지나쳤는데
어느덧 차는 언덕을 오르고 있고
자꾸만 나도 덩달아 숨이 차오른다
이름표를 붙힌 교문 옆에 차를 세워두고
청설모가 오르내리던 소나무 산책길
걷다가 운동장을 지나 교정 뒷뜰로 간다
빨간 지붕에 하얀 목련꽃이 그려져 있다
장의자에 앉아 짤박한 못에 잠긴 하늘을 본다
구름 사이로 그리움이 어른거리다 흔들린다
자세히 바라보려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
너의 체취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무의자 바닥을 여기저기 더듬어본다
네가 앉았다 간 그 자리가 아직 따뜻하다
제빠르게 일어나 너의 뒤를 쫒아간다
거리마다 네가 남긴 향기가 가득하다
막다른 골목 끝에서 이는 바람
그 속에서 내 마음은 언제나
끝없이 맴돌고 있다
<<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은 고향 입구만 들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합니다.
‘빨간 지붕에 하얀 목련꽃이 그려져 있다’ 라는 시어를 보고 지붕을 배경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한 장의 그림을 상상하게 합니다.
여기서 시인이 말하는 너는 누구일까요?
시인 자신일 것 같지만 또 다른 첫사랑의 그 아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막다른 골목 끝에 이는 바람 속에서 마음이 언제나 맴돌고 있다’라는 종장에서
시인이 그리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은유로 표현하고 있어 가슴이 뭉클해 옵니다.>>
옥수수 따는 여인
땅바닥 펄썩 주저앉은
한숨 섞는 여인
알찬 토생이 골라
꼼꼼히 입은 녹색 겉옷을 주욱 찢어
고쟁이 벗기고
단속곳 벗기고
속속곳 벗기고
다리속곳 내리고
숭숭 돋아난 터라구
다듬어 내리는 손길
뽀얀 찰진 살
돈벌이 간 야속한 서방님
들 너머 눈 빠지는 두멧길
목 메여
앙가슴 쓰러 내리다
생수절 허벅지 문신색이다
뽑아내는 정선 아리랑
팔월의 뙤약볕은 잔인했다
<<옥수수는 여름에 먹는 맛 난 간식이며 때에 따라서는 구황 주식이기도 하지요.
저도 언젠가 ‘송이 따는 여인’이라는 성시를 쓴 적이 있는데 시인도 옥수수를
가지고 성적 이미지를 적절히 가미시켜 재미있게 풀어내었습니다.
남편은 돈 벌러 외지로 나가고 혼자서 농사를 짓고 있는 한 여인의 고달픔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시에서 그 옛날 어머니들의 애달픔이 묻어납니다.
옥수수 껍질을 벗기는 과정을 맛깔스럽게 표현하여 독자가 궁금증을
불러일으켜 순식간에 읽어내려갈 수 있게 하였지요.
제목을 미리 알려주지 말고 마지막 연에 장착했더라면 더 리얼하고 재미있게
읽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와 술빵
빛 바랜 가을
계절은 바람을 부르고
한가위 전날 밤
둥근 달은 태양처럼 환히 비추이고
엄마는
맨드라미 검은 참깨 실대추 얹은
술빵을 가마 솥 가득
밤 늦도록 귀뚜라미 소리를
동무 삼아 쪄내고 계셨다
술빵은 엄마의 구멍 뚫린 마음처럼
부풀어 오르고
꼬마는 꼬박꼬박 졸면서도
엄마 옆에 붙어앉아
속 눈썹 사이로 꿈을 꾸었었지
달 밤의 코스모스는 하늘하늘
멀리서 간혹 개 짖는 소리
바람 냄새가 좋아
막연한 설레임으로
들떴었던 기억
추석때 느껴지던 그 기분 좋은
서늘함
지금은 없다
엄마도 없다
<<어릴 적 추석과 설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던 설렘은 최고의 선물이었지요.
명절을 앞두고 음식 장만을 하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누구나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기도 하였지요.
‘술빵은 엄마의 구멍 뚫린 마음처럼 부풀어 오르고’ 라는 시어에서 시인은 아마도
어려웠던 시절에 많이 먹이려고 했던 엄마의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보며
‘기분 좋은 서늘함’ 에서는 그때의 추억과 현실을 환치시키며 엄마가 안 계신 현실로
돌아와 시를 슬프고 가슴 짠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멈춰진 시간 속 풍경
고요하다
액자 속 사진처럼 창 밖 풍경이
사각 틀 속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숨을 멈췄다
태엽이 풀렸나보다
머릿속이 하얀 여자가
멈춰진 시간 속 풍경으로 들어간다
삶의 알갱이들이
납작하게 엎드려있다
고요한 저녁, 무상의 시간이
혼탁한 영혼, 들끓는 세상을 밀어 낸다
정제된 마음이다
갑자기
우듬지 끝, 작은 새 한 마리
시간을 깨우며 날아간다
참았던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든다
비가 눈물방울처럼 떨어질 무렵
여자는
시간 속을 빠져 나오고
밀려오는 저녁 어스름
된장찌개 속에서 끓고 있다
<<정신건강에 좋은 방법의 하나가 멍때리기 라고 합니다.
어느 한가한 오후 저녁이 오기 전 무상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한 여인을 통해
시인은 잡다한 일상을 사각 틀 속 공기청정기에 집어넣고 깨끗한 마음으로
걸러내고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멈춰져 있는 정적, 마치 사진 같은 느낌에서 명상에
잠겨 있다가 결국은 일상으로 돌아와 된장찌개를 끓이는, 체험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는 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든 혼탁한 것들을 덮어버린 깨끗한 숫눈을 보는 것 같은 시입니다.>>
그대라는 시간 속에서
차가운 비가 내리죠
녹슨 시간들은 초라하게 빛을 잃고
그저 숨 쉴 뿐 아무것도 아니죠
차가운 빗속에서 그대는 봄이었던가요
따스한 햇살처럼 다가왔어요
그림자처럼 내곁에 머물러 주세요
초라한 빛속에서 그대는 미소였던가요
얼어붙은 눈물을 지워주네요
하얀 목련꽃 웃음을 그려주세요
나는 그대라는 봄 속에서 잠이 들어요
나는 그대라는 미소 속에서 꿈을 꾸어요
가슴에 더해지는 그대의 시간 속에서
나는 고운 빛이 되어가죠
<<그대라는 화자를 통해서 하고 싶고, 얻고 싶고, 받고 싶은, 모든 꿈 꾸는 소망을
표현하면서 위로받고 싶어 하는 의지가 담겨있는 시입니다.
그대가 사람이든 사물이든 계절이든 그대는 자신에게 있어서는 희망이며 함께 가야 할
존재로 읽히고 있을 정도로 어쩌면 달콤한 사랑 시 같은 그대를 통해서 자신이 변해가는
과정을 예쁘게 그린 그림 같습니다.
그대는 ‘봄이었던가요’ 그대는 ‘미소였던가요’ 라는 의문형으로 시의 감칠맛을 더하고
있는 시입니다.>>
뒷모습
서쪽으로 걸었다
매일 한 칸씩 서쪽으로 더 가까이
현관에 늘 있던 남자 구두가 사라졌다
정말 가버린 것일까?
눈을 감았다
같은 밥을 먹고
같은 방을 쓰고
같은 꿈을 꾸었던
그 사람이 떠났다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서른이 갓 넘었을 적에
나는 어머니가 되었고
그 사람은 아버지가 되었다
지루한 일상의 탈출이었을까?
까닭도 사연도
풀어진 회색 물감처럼 적막하다
그것은 바람이었는데…….
서쪽을 보다가
서쪽으로 걷다가
서쪽으로 사라져간다
붉어지다가 멍들다가 노랗게 삭다가 달 속으로 들어가는 노을을 보다가
그 사람을 안고 있는 내 뒷모습을 보았다
우리는 모두 매일 한 칸씩 서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진리를 바탕으로 서쪽으로 간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풀어진 회색 물감처럼 적막하다’ 라는 시어를 볼 때 지나온 세월이 한순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바람처럼, 또는 잘못 그린 그림을 지워버린 것 같은 사연이 베여있습니다.
종장에 ‘붉어지다가 멍들다가 노랗게 삭다가 달 속으로 들어가는’ 이라는 시어에서
사랑, 고민, 이별이라는 시의 모든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화자의 뒷모습에서 아직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마음 짠한 시입니다.>>
포도나무를 심다
포근한 햇살은 마음도 포슬포슬하게 해
도시의 사람들은 추억을 말하지
나의 살던 고향엔 청포도 나무가 있었지
무늬는 한 가지 늘 동그라미 패턴
호통을 치던 아버지가 동글동글 해지네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이 동글동글 웃네
막내에겐 언제나 동글동글 사랑만 주던 아버지
심술궂은 봄비가 코끝을 때리고 간 뒤
다시 또 남자는 말하지, 중앙동 은행 뒷골목
내가 살던 집엔 청포도 주렁주렁 열렸었다고
<<청포도 나무는 왠지 신선하고 청아한 느낌을 줍니다.
이 시도 소품이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시입니다.
익지도 않은 청포도를 따 먹다가 아버지의 호통을 듣고도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내딸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합니다.
종장에서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납니다.
남편인지 아들인지는 모르지만 둘만의 대화 속에서 포도알에 담긴 동글동글한
밀당의 사랑을 스캔하고 갑니다.>>
출입금지
오리가
물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세수를 하고 스킨로션을 바르고
마지막으로 햇빛을 바랐다
바람 가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고 깃털을 흔든다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서 일거다
발아래
오이만한 물고기가 유유히 지나가지만
기분 좋은 오늘은 그냥 배가 부르다
<<여기 자화상 같은 또 한편의 단시를 봅니다.
늘 일상에 쫓겨 사는 시인 자신을 오리로 환치시킨 비유법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싶은 잠재의식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지만
기류가 흐르는 대로 세월 가는 대로 따라갈 뿐, 컨디션이 좋은 날은 그냥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엄마 같은 기분을
표현한 시인데, 물고기를 왜 오이에 비교했는지 궁금해지는 시입니다.>>
밤바다
이제 그만
잠잠할 때도 되었건만
술렁이는 언어들은 잠도 없다.
남 몰래 무엇을 먹고 무었을 품었는지
숨 자락마다 거짓을 토해 놓는다
분명 부질없음을 알고서도
욕심을 부른 게지
거짓이 뱃가죽을 건드릴 때마다
갯바위만 멍이 든다
시퍼렇게
<<시인이 창작 작업을 하면서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오늘 시를 멋지게 써 놓고 내일 보면 또 무언가 2% 부족한 것 같은 헐렁한 느낌을
우리는 공감할 것입니다.
시인은 밤바다에 홀로 떠서 파도 같은 언어들과 밤새워 싸우며 시작을 하면서
욕심이라는 절체절명의 화두를 발견하고 이를 성찰합니다.
서두에서 이제 그만 잠을 자라고 하면서 종장에서는 상처 입은 마음을 다독이고 있습니다.>>
날고 싶은 앵무새
저 아프리카 대륙 고도 어디쯤에서
갈고 닦고 몸 만들었다
조상 덕에 얻은 금빛 깃에
반지르르한 머리 깃을 달고
뱁새들의 우상이 되었다
퇴화된 날개로 불린 배 뒤뚱거리며
군중 앞에 서면, 남을 위해 산다고
기계음을 뱉어내고 있다
단음의 지껄임, 날 수 있다고
지껄이고 또 지껄이고
-나는 바담풍, 너는 바람풍-
금빛이 그리도 좋을까
선을 이어갈 때마다 숙이고 굽히고
영혼 없는 앵무새가 되어가고 있다
엎드려라 납작 엎드려라
발치에 귀를 대고 들어라
그러면
날 수도 있겠다
<<앵무새를 통해 정치인을 풍자한 풍자시입니다.
‘조상 덕에 얻은 금빛 깃’은 부모 잘 만난 금수저를 연상하며 ‘나는 바담풍 너는 바람풍’
이라는 시어는 옛 서당 훈장이 말하는 풍자어로 나는 못 하면서 너는 잘하라는 그들,
금뱃지를 위해선 내로남불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비유한 것입니다.
종장에서 납작 엎드리라고 한 것은 3선, 4선 중견 정치인이 되면서 더욱더 초심을
거울삼아 국민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면 금뱃지를 또 달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아파트 지옥
아파트가 섬이 된 적이 있었다
밤이면 발길이 끊어졌고 철문은 열릴 줄 몰랐다.
아파트는 섬이 될 수 없었다.
철문 두드리는 소리가 커져가고
원치않는 개짖는 소리를 감상해야만 했고
화장실 배관을 타고 싸우는 소리들이 오갔으며
휘청대는 계단에 화풀이를 했고
서로의 갈 길을 막아선 주차차량들로 매일 포위되었기에.
섬엔 내가 없지만
아파트엔 한 몸이 된
보이지 않는 공격을 쉼없이 막아가며
가로등에서 날아오는 불빛 소리에도
잠 못 드는 내가 살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들의 로망은 전원주택에 살며 풍요로운 자연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인이 아파트를 도시 한복판에 떠 있는 섬이자 지옥으로까지 표현한 것은
원치 않운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주권상실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적응하며 살다 보면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인 줄 알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종장에서 ‘보이지 않는 공격을 쉼 없이 막아가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사는
도시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는 시입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코로나시대를 전기로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되면 좋겠지요.
그리고 회장 되심을 축하드리며 오랜경험을 바탕으로 모임을 잘 이끌어갈 것이라 기대됩니다.
시여울 8집 감상평을 읽으면서
동인지에 실린 내 작품을 다시 보게 되며 신중하게 올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동인들의 시 공감 하면서 몇번씩 잘 읽었습니다
시인의 이름이 없어 더욱 잼있게^^
슬기로운 집콕 생활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시가 일단 활자화 되서 발표가되면 떠난 자식이라 생각하면됩니다.
그래서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야하는 신중을 기해야겠지요. 슬기로운 집콕생활, 건강도 잘챙기세요~
한시인님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한편한편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하구요~~
올 한해는 시여울님들 모두 시심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뜨거워지는 신축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날도춥고 집에 있다보니까 재미로 써봤어요.
시인님 말처럼 올해엔 작품의 질도 높이고 창작의 열기가 뜨거웠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일년을 삼켜버린 아후 삶에 많은 변화가 오는 듯합니다. 그간 오랜 칩거로 인해 집에서 온라인을 통한 영화보기, 음악감상, 유튜브 검색, 지난 드라마 몰아보기, 명강연 듣기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되네요 시여울 8집은 코로나가 만든 역사적 산물이 되었네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시평을 해주신 한 시인님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개기가 되어 언택트 시대에도 변함없이 정기회를 갖고 동인들의 작품이 발표되고 별도의 게시판을 활용하여 월평, 분기평을 통해 진일보하는 시여울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서로 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속에서 감동과 울림을 성취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도 멋지지 않을까요?
서로의 작품을 합평한 것이 2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시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렵고도 쉬운 시창작, 우리는 여기서 기쁨과 성취감을 얻고 있지요.
시평 잘 읽었습니다
시는 많은 이론을 떠나서
독자가 쉽게 감동으로 받아들이는 시가
명시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평론 입에 맞추다 보면 독자는 짜증 내지요
시여울 많이 발전 했지요 그런데 가끔 어디서
본듯한 시가 올라 올 때가 있어요
제가 착각 할 수도 있지만
시여울, 코로나 잘 이겨내고 다시 만날 날 기다립시다
세상이 왜이래.. 일단멈춤에 서있는것 같은 세상, 일상의 의욕마저도 꺾어버리고 있는것같아 안타깝습니다.
시평이라고까지 말씀하시니 부끄럽습니다.
그냥 감상평이라고 해주세요.
오늘의 위기를 참고, 견디고, 이겨내다보면 빼앗긴 일상은 다시 돌아 올겁니다.
한시인님! 감상평 잘읽었습니다.
많이 읽기도 해야하고 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텐데 대단하십니다.
(저는 아무리 많이 읽어도, 시간을 아무리 많이 들이더라도 이렇게 멋진 감상평을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편, 한편 다시 읽으면서 한시인님의 평과 함께 시를 더 깊이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한시인님의 감상평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올해도 건필 하시고요, 좋은 일들만 있으시길 빕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 그저 긍정적으로 바라본 소감일 뿐입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수도 있겠지요.. 이놈의 코로나때문에 양시인님 얼굴뵌지도 꽤된것 같습니다.
좋은날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