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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제 度도
9. 침묵 (최종회)
영찬이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다. 그가 도연 스님의 동정을 재섭 부부에게 전했다.
“이사장 스님께서는 NYU 종교 철학과에 등록을 하셨습니다. 한국의 유명대학 영문과 출신이시기 때문에 영어로 공부하는데 따른 문제는 전혀 없고, 박사학위를 획득할 때까지 공부는 계속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낳은 다음 함께 키우는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공부를 하는 자유만은 만끽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런 식의 삶도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한 여자의 희생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그레이스 그라비우스만은 도연 스님을 생각할 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가 물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나요?”
“남처사를 비롯한 여러 신도님들이 도와주고 있어서 경제적으로는 곤란을 겪지 않는 줄 압니다.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는 적잖게 고민을 하고 계십니다.”
그레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왜요?”
“이사장 스님은 우리 젠센터를 많은 미국인 불자들이 찾아 올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지만 현재는 교포 불자들이나 찾아오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거든요.”
“그런 것이 도연 스님의 고민이라면 제가 그것을 해결해 드려야 지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며칠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레이스 그라비우스는 인터내셔널 젠센터의 활성화 방안을 놓고 생각을 거듭하였다. 마침내 하나의 그림이 그려졌고, 영찬과의 회동을 통해 그것을 밝혔다.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나 링컨 센터 중에 하나를 임대한 다음 인터내셔널 젠센터 주체로 큰스님께서 법문을 하시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어요.”
“좋은 생각입니다만 장소 섭외가 가능할까요?”
“알아보면 길이 있을 거에요. 법문을 텔레비전을 통해 미전역으로 생중계하면 홍보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방송국도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곳이니까 그에 따른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면 응하지 않겠어요?”
“큰스님의 원력으로 볼 때 법문을 하시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미국의 방송국에서 스님의 법문을 중계한 전례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과연 편성이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기독교 재단에서는 빌리 그레함이나 지미 스와거트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목사를 내세워 텔레비전 매체를 통한 부흥회를 개최하고 있어요. 불교라고 못할 리 없어요. 제가 법문 장소를 섭외하고 그것을 중계할 방송사를 선정하는 문제를 해결해 볼 테니 제 생각을 스님들께 말씀드려 보세요.”
“그렇게만 되면 몰려오는 미국인들을 다 수용하지 못할 만큼 젠센터가 활성화 될 수 있을 겁니다.”
영찬의 전언(傳言)을 들은 혜원 스님께서 확인하듯 반문했다.
“내가 법문을 하고 그것을 텔레비전을 통해 미전역으로 중계하겠다?”
“그렇습니다.”
“그거 아주 잘된 일이오.”
“미국 전역에서 법문을 시청하게 될 것입니다. 백악관에서도 볼 것이고, 목사들도 스님 말씀을 듣고 한 수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옳지. 그게 내가 바라던 바야.”
도연 스님도 한마디 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비용이 많이 들 텐데요.”
“돈은 쓰자고 버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 동안에 지켜보니 지원이는 이렇게 멋진 일에는 서슴없이 돈을 쓸 줄 알더구나. 섭이가 사람은 제대로 만난 것 같으니 도연이도 이를 시기하지 말고 축하해 주어야 할 것이니라.”
“큰스님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영찬이 화제를 바꾸었다.
“행사를 아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할 줄 압니다. 통역도 정해야 할 것 같고……”
그 말을 들은 혜원 스님이 말했다.
“통역은 도연이가 해라.”
“스님, 제가 어떻게 스님의 법문을 미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통역을 해요?”
“영어 못하느냐?”
“말은 할 줄 알지만 스님의 사상을 전할 수준은 못돼요.”
“스님인 네가 해야 한다. 나는 네가 누구보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던 도연 스님은 혜원 스님이 기어이 통역을 하라고 하자 진땀이 났다. 그러나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사전에 큰스님께서 하실 말씀을 알려 주시면 철저하게 준비했다가 행사에 임해 보겠어요.”
메디슨 스퀘어 가든이나 링컨 센터는 적어도 일 년 전에 대관 계약이 완료된다. 그렇지만 그레이스는 별 어려움 없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하루 저녁 임대하는데 성공했다. 대관료를 비싸게 주기로 하고 새치기를 한 것이 아니라 행운이 따라준 결과였다. 일 년 전에 임대를 신청했던 회사 중에서 사용 취소 통보를 해온 곳이 한군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계방송사는 NBC로 결정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미 최대의 보험제국인 트레블러스 사의 도움이 컸다. 그레이스는 트레블러스의 체어맨인 어머니 데브라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방송사에서는 연간 수억 달러의 광고비를 쏟아 붓고 있는 큰손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트래블러스 사에서는 다른 회사의 광고를 사절하고 오직 그레이스 그리비우스 소유의 플로리다 썬키스트 회사만을 파트너로 선정하여 모든 비용을 제공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양가가 없어 보이는 한국에서 온 스님의 법문을 중계해 달라는 요구도 파격이었고, 막대한 비용을 두 회사에서 전담하겠다는 것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광고 효과와는 상관없이 두 회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행사라고 판단한 방송사에서는 노련한 A급 방송요원들을 투입시키는 성의를 보여 주었다.
스님의 법문을 방송한 전례가 없어서 과연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제기 되었지만 중계팀은 새로운 시도이기에 오히려 좋은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다음 시청률을 끓어 올리기 위한 작전에 돌입하였다. 그들은 혹시 밑그림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따라 부처님 탄신일을 기념하는 봉축행사및 한국의 전통 사찰에서 행하는 각종 불교예식에 관련된 필름과 불교음악과 효과음 같은 것을 확보했다. 여명 속에서 진행되는 도량석과 범종 소리에 이은 새벽예불 올리는 장면, 목어(木魚)·운판(雲板)·법고(法鼓)·범종(梵鍾) 등 4가지 의물이 등장하는 불교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한 중계팀에서는 그 다음으로 프로그램 홍보를 위한 자체 광고 필름 제작에 심혈을 기우렸다.
한국의 깊은 산중 어둠에 쌓여있는 사찰에서 아침 종소리가 울리는 장면에다, 뉴욕의 인터내셔널 젠센터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혜원 스님의 모습을 찍은 필름을 더블 익스포즈로 처리하여 제작한 프로그램 홍보용 필름이 행사 며칠 전에 방영 되었을 때, 그것은 일단 미국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일차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 되었다. 입장권 매진이 그것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젠센터 측에서는 입장금 수익의 전액을 굶주리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을 돕는 기금으로 사용한다고 공표했었다. 그것이 혜원 스님의 뜻이었다. 행사일이 다가오면서 가장 몸이 단 것은 도연 스님이었다. 아무래도 큰스님의 법문을 정확하게 영어로 통역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큰스님은 무슨 말씀을 하실 지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해주지 않고 있었다.
혜원 스님은 영찬에게 이런 것을 물은 적이 있었다.
“소설가 선생이 보기에 미국 사회가 병이 들었다고 생각하오, 안 그렇다고 생각하오?”
“어느 사회인들 병들지 않은 곳이 있을까만 미국의 사회병리 현상은 심각합니다.”
“어떤 점이 그렇소?”
“우선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물질을 숭상합니다. 상대적으로 정신적인 가치가 위축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입니다.”
“물질로는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는데……”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폭력과 마약과 성이 제약을 받지 않고 날뛰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신이 아니라 물질을 숭상한데 따른 부작용일 것이야.”
“게다가 미국은 달러를 앞세워서 전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를테면 미국의 속국(屬國)이 아니오?”
“그런 셈입니다. 옛날에는 중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에게 지배당했는데, 이제는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처님법이 위대한 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만유(萬有)가 평등하다는데 있지. 그것을 깨우쳐 주어야 할 것이야.”
“미국이 앞장서서 창조해낸 물질문명은 인류에게 이기를 제공해 준 것과 똑같은 량의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도 묵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옆에서 두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도연은 혜원 큰스님께서 결국 미국이 병들어 있다는 것과 그것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법을 받아 드리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말씀을 하실 것으로 예견했다. 그에 따른 준비를 했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그녀는 영찬에게 부탁했다.
“주선생님이 저와 같이 통역을 했으면 좋겠어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주선생님이 보충해 주세요. 미국 전역으로 방송이 된다는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죠.”
두 사람은 숙의(熟議)를 거듭한 결과 메인 통역은 도연 스님이 하되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혹 그녀가 막혀서 보충할 필요를 느끼면 영찬이 나선다는 전제하에 두 사람이 통역 석에 같이 서기로 합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아주 적절한 조처가 되었다.
이윽고 혜원 스님께서 미국인들을 상대로 법문을 하는 날이 되었다. 행사장인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방청석에는 빈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교포 불자들의 성원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미국인들이 몰려 온 것은 NBC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유수 일간지의 종교담당 기자들도 대거 참석하여 취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로열 석에 앉아 있는 데브라에게서 특별 종교행사의 텔레비전 중계에 따른 메인 스폰을 담당했던 트레블러스 사의 체어맨다운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복덩어리인 에드윈을 안고 있는 데브라는 인자한 미국 할머니일 뿐이었다. 그 옆에 그레이스와 재섭의 자리가 배치되었고, 재홍 내외, 도상 스님, 남편과 재회를 한 후 화사해진 은혜의 얼굴 등이 보였다.
이윽고 텔레비전 방송국의 프로그램 디렉터가 카메라맨들에게 스텐바이를 주문했다. 타이틀백에 이은 광고 방송이 전파를 타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나면서 법상(法床)에 올라 입정을 취하고 있는 혜원 스님의 모습이 미국의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 화면에 잡히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통역 석에 서있는 도연 스님과 영찬을 비추고, 로열 석의 귀빈들과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차 있는 방청석을 한 바퀴 돌아서, 다시 혜원 스님에게 고정 되었다.
시청자들은 동양의 한국에서 온 고승(高僧)이 빌리 그레함이나 지미 스워거트와는 다른 무슨 말인가를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대부분이 크리스천인 미국인들은 그런 세계적인 전도사들의 말에 감동하여 같이 눈물을 흘리거나 찬송가를 열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그런 것에 얼마쯤 식상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눈을 부릅뜬 채 정면을 주시하고 있던 늙은 중은 눈 뚜껑을 닫았다. 지그시 감고 있다가 뜨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뜨고 있다가 지그시 감는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행동의 변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곧 늙은 중이 입을 열 것이라는 기대를 갖도록 하였다 그래서 방청객들도 시청자들도 혜원 스님을 행해 시선을 집중 시켰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입이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마이크가 고장이 나서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늙은 중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방청객들을 보고 있는 것도 같았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것도 같았다. 어쩌면 그 아무 것도 보지를 않고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큰스님이 선정(禪定)에 들었다는 것을 알아본 제자 도상과 시봉인 경세 스님이 제일 먼저 놀라움을 표했다. 지금 이 중차대한 시간에 입을 다물고 선정에 들면 어쩌자는 것일까. 혜원 스님이 입을 열지 않자 가장 당황한 사람은 중계 팀의 진행 책임자였다. 화면에 입을 다물고 있는 스님의 얼굴만 비치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꼭 무슨 사기극에 휘말려 든 느낌이었다. 토요일 저녁 9시 정각에 중계는 시작 된 것이었다. 8시 프라임 타임 뉴스가 방영된 직후 뉴스 앵커들은 곧이어 한국에서 온 최고의 불교 지도자가 미국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테니 기대하라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황금 같은 시간대를 할당받은 스님은 갑자기 입이 얼어붙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긴장했기 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군중들 사이에서 소요가 일었다. 시청자들은 무엇인가 중대한 착오가 생겼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로열 석에 앉아있는 은혜와 그레이스도 일순 당황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데브라는 잠들어 있는 애드윈과 그레이스와 단상의 늙은 중을 번갈아 쳐다보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재섭은 좀 달랐다. 그는 침묵하고 있는 사부(師父)의 모습을 지켜보며 벼락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만은 침묵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통역 석에 서있던 도연 스님과 영찬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스님께서 말을 할 줄 몰라서 침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침묵하는 진의(眞意)를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로 두 사람도 재섭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달마 선사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올 때 무엇을 가지고 왔었던가. 무(無)였다. 혜원 스님께서도 미국으로 오기 전에 무를 가지고 갈 것이라는 말씀을 했었다. 무란 무엇인가.
영찬은 마이크를 끄고 도연 스님과 잠시 숙의했다. 이대로 스님이 침묵하고 있는 모습만 방영되도록 버려 둘 수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큰스님이 침묵을 하고 있는 이유를 대담형식을 통해 방청객과 시청자들에게 설명해 주기로 합의했다.
마이크를 켠 도연이 영어로 침착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굿 이브닝 애브리 원. 지금 법상에 앉아 계신 큰스님의 모습을 대하며 저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왔던 달마라는 선사(禪師)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영찬이 그 말을 이었다.
“달마 선사가 오기 이전에 불교는 이미 중국에 전파되어 있었습니다. 양나라 무제 같은 이는 열렬한 불교 신자로써 수많은 절과 탑을 축조하는 불사를 단행했고, 자비를 통한 공덕을 지은 것으로 말해도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 양무제로서는 인도에서 고승이 도래했다는 말을 듣고 만나 보기를 청했어요. 자신의 공덕이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인지 인준을 받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달마는 양무제에게 대왕은 아무 공덕을 쌓은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양무제의 공덕은 달마가 생각하는 무루공덕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양무제는 달마가 지금까지 전래된 바 없는 신비한 경전이나 불조(佛祖)로부터 내려온 정법안장의 묘법을 가지고 서래(西來)했으리라 기대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달마는 거기에 대해서도 ‘무’라고만 답했다고 합니다. 양무제는 자신이 온 심혈을 기우려 공덕을 쌓았음에도 그것이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인 양 무라고 평하고, 가져 온 것도 무라고만 말하는 달마에게 크게 노하고 말았지요.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리로 여긴 것입니다. 무제에게 쫒긴 달마는 숭산의 소림사로 잠적하여 침묵의 벽관을 고수하면서 법기(法器)가 출현하기를 7년이나 기다렸다고 합니다.”
“달마의 침묵은 어떤 웅변보다도 깊은 뜻이 내재해 있었던 것입니다. 불교를 기복신앙으로만 받아 드려 공덕을 지어도 대가를 원하며, 극락왕생 같은 것만을 탐하는 풍조 속에서는 스스로의 정진에 의해서만 깨닫고,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 불교의 선(禪)이 발붙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지요. 그의 선사상은 조용한 것이었지만 불교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 혁명과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강(講)을 통해 전파한 것이 아니라 벽관하고 앉아서 침묵으로 이룩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의 침묵은 어떤 웅변보다 더 웅변적인 것이었지요.”
“우리는 지금 큰스님께서 달마와 똑같은 의미에서 침묵을 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여기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그런 대담은 방청객이나 시청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두 사람의 추측일 뿐이었다. 그런 말이 방송되었는데도 혜원 스님께서 여전히 침묵을 하고 있자 사람들은 조금씩 싫증을 내기 시작했다. 사기를 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던 시청자 중에는 채널을 돌려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채널을 돌렸다가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큰스님이 침묵하고 있는데 대하여 강한 의혹을 느꼈기 때문에 다시 되돌렸다.
중계방송의 프로그램 디렉터는 사전에 준비했던 부처님과 한국의 사찰과 불교 예식 장면 같은 것을 침묵하고 있는 혜원 스님의 배경에다 깔았다. 그는 단지 화면의 지루함을 커버해 주기 위해 순간적인 아이디어로 편집을 한 것이지만 그렇게 하고 나니 아주 훌륭한 그림이 되었다. 잔잔한 명상음악이 화면의 지루함을 해소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해 주었다.
다시 도연 스님과 영찬이 대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도연 스님이 말했다.
“유마경의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에는 여러 보살들이 불이(不二)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 다음 문수보살이 유마거사에게 불이에 대하여 한 말씀 해줄 것을 청하게 되지요. 그러나 그 질문을 받은 유마는 입을 다문 채 그저 잠자코 있을 뿐이었어요. 그의 침묵은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이었을까요?”
“우리 큰스님의 침묵과 같은 것인가요?”
“불이란 말로써 나타내 보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보살들은 언어를 사용하여 여러 모양으로 불이를 설명해 보이려고 했지만 그것은 진실의 핵심에 완전히 접근된 표현이 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일부에 대한 언급은 전체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이 아니었어요.”
“유마는 마음도 말도 끊어진 경계에 들어서 침묵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실을 결코 말로써 표현할 수 없기에 침묵으로 대신한 것이고, 진실 자체를 꿰뚫어 전체를 파악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침묵이며, 그러기에 그의 침묵은 어떤 매개로도 완전하게 전달하지 못할, 진실 바로 그 자체를 드러내 보인 것이었어요. 그것이 바로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소멸(心行所滅}의 경지라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유마의 침묵은 만뢰(萬雷)와도 같은 것이었어요. 그 자리에 있던 보살들은 그 벼락같은 위력을 가진 침묵에 의하여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는 무생법인(無生法印)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도연 스님과 영찬은 재섭이 생각했던 사부의 침묵에 대하여 아주 근접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사부의 침묵은 바로 달마의 침묵이었고, 유마의 침묵이었다.
말이나 경전이나 기도로 전수해 줄 수 없는 불이를 침묵으로 심인(心印)하려는 달마의 전교(傳敎) 방식은 확실히 조용하면서도 거대한 불교의 일대 혁신이었다. 마침내 기복신앙을 지향하고 있는 불교의 피폐상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는 일단의 구도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양무제는 불사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여러 폐단을 초래하고 말았다. 절과 탑을 짓기 위하여 끊임없이 사역 동원령을 내리니 우선 백성들은 생업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민초들은 도탄에 빠져 있는데 기득권층과 또한 그들과 손을 잡고 있는 승려들은 호사(好事)의 극치를 누리고 있었다.
국정이 극도로 문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달마의 선종만이 불교의 진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싹트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될 것을 미리 내다본 달마는 서두르지 않고 침묵하고 앉아 때가 되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달마법을 전수받게 되는 2조 혜가가 출현하게 되었다.
혜가 스님이 달마 조사에게 물었다.
--제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이에 달마가 말씀하셨다.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 오너라. 그리하면 내가 편안케 해주리라.
--아무리 찾아도 불안한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느니라.
달마 대사가 혜가에게 인가를 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안으로 종법을 전해서 깨우쳤음을 증명하고, 겉으로 금란가사를 전하여 종지를 정한다. 후세 사람들이 무엇으로 법을 증득하였느냐고 의심을 하면 그대가 나로부터 받은 금란가사를 보이고 내가 전해 주는 전법송으로 증명을 삼아 교화하는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하여라. 내가 서쪽으로 떠난 지 2백년 뒤에는 금란가사를 전하여 종지를 전하는 일은 그치게 될 것이며, 자연 불법은 항하(恒河)의 모래알처럼 두루 퍼져 도를 깨닫는 사람이 천만이 넘으리라. 그대는 아직 깨닫지 못한 이를 가벼이 여기지 말라. 한 생각을 돌이키면 본래 깨달은 것과 같으니라.
혜가의 법통을 이은 사람은 3조 승찬이며, 정법안장은 승찬에서 4조 도신으로 이어졌다. 5조는 홍인이며, 6조가 혜능이다. 홍인이 혜능에게 종지를 내릴 때가 달마 조사께서 서쪽으로 다시 돌아간 지 2백년이 되는 무렵이었다. 과연 이때가 되자 달마 조사가 주창한 선종은 중국 전역에 깊이 뿌리를 내려 도도히 흐르는 양쯔강 같고, 태산준령과도 같은 법맥(法脈)을 형성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홍인은 혜능에게 의발을 부촉하면서 달마 조사의 뜻을 받들어 더 이상 정법안장의 상징물을 전하는 것을 중지하도록 일렀다.
선종의 뿌리는 이제 무엇으로도 뽑을 수 없을 만큼 깊이 내렸고 아직 불법을 만나지 못해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생각을 돌이키면 깨달은 것과 같아지는 선풍이 진작된 것이었다. 그 선풍이 해동(海東)으로 전파되어 오늘의 한국 조계종단을 형성한 것이었다.
이제 혜원 스님은 달마가 했던 방법 그대로를 통해 미국에 선종(禪宗)의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하실 생각이란 말인가.
도연 스님이 결론을 내렸다.
“큰스님의 침묵은 바로 달마의 침묵이며, 유마의 침묵이라고 판단됩니다.”
도연 스님의 법랍(法臘)은 짧았지만 출가 이전에 이미 불자로써 불교에 대하여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영찬의 말을 막힘없이 받을 수가 있었다. 영찬 또한 불자 소설가로써 어느 스님 못지않게 불교를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돼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전 조율을 거치지 않았지만 막힘없이 대담을 나눌 수가 있었다.
혜원 스님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침묵을 하고 있는 의미는 도연 스님과 영찬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아주 훌륭하게 전달이 된 셈이었다. 그런 식으로 커버를 하고 보니 사전에 각본을 짰던 것보다 더 훌륭한 프로그램이 되었다.
그리고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영찬은 말했다.
“큰스님께서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 스님께서는 미국의 대통령과 미국인들이 남의 고통을 내 몸의 것으로 알아서 동체대비를 구현하신 부처님의 사상을 이해한다면 세계에 평화를 가져오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도연 스님이 덧붙였다.
“부처님은 만유가 한 생명이라고 하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말 못하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부처님 법을 받아 드리면 환경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인종문제가 해결될 것이며, 인류가 구원됩니다.”
“말은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지만 어떤 예리한 칼보다도 더 깊은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여 사람들을 기망하거나 남을 비방하여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에게는 구업(口業)을 짓는 것이 중생적 삶입니다.”
“불법은 말을 통해 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써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을 앞세우는 사람의 병통을 큰스님께서는 뼈에 사무치도록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저는 일찍이 이처럼 절절하고 애정이 듬뿍 어려 있는 향기 높은 법문을 대한 적이 없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 자리에 같이 하신 방청객들 여러분! 여러분들께서는 말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 많이 하는 것의 병폐를, 남을 기망하거나 비난 하는 말이 불러오는 업을 친절하게 가르침 받고 계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말만 다스릴 줄 알면 여러분들은 이미 깨달음의 절반은 이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나중에 맨해튼 27가에 있는 인터내셔널 젠선터를 방문해서 깨우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윽고 혜원 스님께서는 선정에서 깨어나시며 죽비를 세 번 쳤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법상을 내려왔다. 누군가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자 메디슨 스퀘어 가든은 천둥번개가 치는 것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혜원 스님은 침묵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어떤 웅변보다 더 강력한 감동과 의문을 던져 주었다. 방송국에서는 처음 당황했었지만 노련한 중계 요원들의 화면 합성과 영찬과 도연 스님의 즉석 대담이 곁들여 지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으로 확인 되자 대만족을 표했다. 각 신문의 종교담당 기자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혜원 스님의 침묵에 대하여, 그들 나름대로 이해한 침묵의 의미를 기사화하였다. 그로부터 인터내셔널 젠센터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끝>
성원을 보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해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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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설이 아닌 실제의 상황이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소설 시작부터 지금껏 함께 했는데 막상 끝이라니 서운합니다.그동안의 스님늬 노고에 수고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다음 더 좋은 작품을 기대한다는 말씀도 함께 드리고 싶습니다.목감기 빨리 나으셔요~~~
큰스님께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설법하는 것이 라스트 씬이었군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의표를 찌르는 결말입니다. 침묵이 우뢰소리보다 더 큰 사자후일 줄은 몰랐습니다. 말을 함으로써 만드는 모든 폐단을 더는 저지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스님의 연재소설 읽는 것이 하루의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는데 이젠 무슨 낙으로 살까 싶습니다. 빠른 기간내에 새로운 글을 가지고 돌아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그 동안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마지막편은 정신집중이 되지 않아 오늘 제대로 읽었습니다.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역시 마지막은 기대했던바로 해피앤드네요..소설이지만,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을 그 안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스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혜원스님은 법문 하시기전에 이미 아셨던가 봅니다. 도연스님과 영찬이 스님의 침묵을 이처럼 감동스럽게 잘 이끌어 갈 수 있음을 .... 재섭, 도연스님, 그레이스 이 세사람의 관계는 큰 사랑이 없으면 감히 이룰수 없는 경지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둘이 아닌 하나임을 느낍니다. 그동안의 스님의 노고에 큰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