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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흔든 화혼, 판위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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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2005-01-21 18:12] |
한국에 나혜석이 있고 멕시코에 프리다 칼로가 있다면, 중국에는 판위량(潘玉良·1895∼1977)이 있다. 그녀의 사연은 장이모 감독이 제작하고 궁리가 주연한 영화 <화혼>을 통해서도 알려졌다. 프랑스와 일본과의 전쟁에서 연거푸 무릎을 꿇은 전족(纏足)의 나라에서 좋은 서양문물만 골라서 배우자는 기치를 든 개혁파의 꿈도 백일몽으로 끝나버린 암울한 시절, 조실부모하고 가난에 찌들어 살던 판위량은 열네살 나이에 누각으로 팔려가 기생이 된다. 여기서부터 드라마틱한 인생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판위량은 혁명당의 회원이며 관리로 부임한 판찬화와 사랑에 빠져 그의 첩이 되고 문학과 예술에 눈을 뜬다. 더욱이 그 인연으로 공산당 총서기 추천을 받아 상하이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파리와 로마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모교의 교수가 된다. 귀국 뒤 ‘중국 최고의 서양화가’로도 뽑히지만 창기였던 과거로 인한 수모가 계속되면서 자신은 물론 남편이자 후견인이었던 판찬화마저 위기에 빠지자, 다시 파리로 건너가 화혼을 불사른다. 그리고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1920년 미술대학에 들어간 이후 판위량이 끊임없이 추구한 작품의 소재는 ‘여체’다. 판위량에게 벌거벗은 여성의 몸은 소유와 굴복을 초월하는 자유의 표상으로, 춘화에나 등장하던 누드를 예술로 고집했던 그녀의 집착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자 폐쇄적인 중국 사회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거하는 반역으로 평가된다. 그녀의 작품 <나녀>(裸女)는 처음 출품됐을 때부터 상하이 학교와 화단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탐하는 그녀의 시선엔 남성 화가들이 대상화해온 여체의 미학이 다분하다. 그것과 일치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어중간한 경계에 서서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상태는 그녀의 시선뿐 아니라 손끝의 움직임에서도 느낄 수 있다. 판위량의 수많은 작품에는 세잔과 고흐와 고갱, 마네와 모네와 마티스까지 인상주의 화가들의 필치가 두루 묻어 있다. 거기에 동양화의 터치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수능란한 그녀의 솜씨 앞에서 나는 문득 식민지 백성의 ‘재간’을 보는 듯한 착잡함을 떨칠 수 없다. 파리를 좌우로 가르는 센강 왼편에, 전세계에서 몰려온 여성 예술가들이 1920년대부터 게토를 형성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소멸되기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채로운 문화적 실험을 벌였던 역사 밖 에피소드가 책으로 묶여 <파리는 여자였다>란 제목으로 나와 주목을 받았다. 그 시기 센강 주변을 배회했을 것임이 틀림없는 판위량과 나혜석의 흔적을 고대했지만,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아직 식민주의와 인종주의가 무언지조차 성찰하지 않던 시대의 유색인 여자로 살았던 까닭이리라. |
문학예술]‘화혼 판위량’…누드화속 외침 “나는 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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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4-10-01 17:11] |
《중국 중진 작가 스난(石楠)은 빈농의 딸로 태어나 공장 노동자로 20년 동안 일했다. 그가 작가로 비약한 것은 나이 마흔 되던 해인 1982년 펴낸 작품 ‘판위량’ 때문이었다. 비천한 창기에서 세계적 여성 화가로 탈바꿈해 불꽃처럼 살다 간 중국 여성 판위량(潘玉良·1895∼1977)을 그린 전기 소설이다. 이 작품은 청명문학상을 받고, 연극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1995년에는 황수친(黃蜀芹) 감독 궁리(鞏리) 주연의 영화 ‘화혼(畵魂)’으로도 만들어졌다. 스난은 이후 역작들을 발표하면서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 안후이(安徽)성 작가협회 부주석으로 발돋움한다.》 스난에게 도약의 발판을 만들어 준 판위량은 중국 여성 화가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됐다. 판위량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열네 살에 외삼촌 손에 이끌려 창기가 된다. 그녀의 첫 손님은 일본 유학생 출신의 혁명당인 동맹회 회원이자 세관 간부로 부임해 온 판짠화(潘贊化)였다. 판짠화는 그녀에게 까닭 모를 사랑을 느끼고 첩으로 받아들인 후 문학과 예술에 걸쳐 지적(知的)인 세례를 준다. 판위량은 그의 성(姓)을 받아들이고, 그의 친구이자 중국 공산당 총서기인 천두슈(陳獨秀)의 추천으로 상하이(上海) 미술전문학교에서 공부한 후 파리와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한다. 귀국 후에는 모교의 교수가 되고 ‘중국 최고 서양화가’로도 뽑히지만 주변에서 과거 창기였다면서 손가락질하고 모함하는 수모를 당한다.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자 후견인인 판짠화마저 위기에 빠지자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파리로 돌아가 남은 화혼을 불사른다. 그녀는 서양 수채화와 같은 안료로 선명하되 온화한 색감,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는 선(線)을 화폭에 담았다. 이 화풍이 특히 돋보인 것은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한 동양의 여체를 그릴 때였다. 판위량은 목욕탕에 가서도 여체를 그리다가 타박을 받는데 결국 자기 몸을 그리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풍만한 가슴, 백옥같이 부드러운 살결, 균형 잡힌 매끈한 다리가 거울에 비쳤다. 완성된 그림에서는 피부의 탄력과 혈관을 흐르는 혈액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 작품 ‘나녀(裸女)’가 출품되자 학교를 뒤흔들었다.” 1920년대 당시 춘화에서나 볼 수 있던 누드를 두려움 없이 고집하는 그녀의 선택에는 사회적 속박에 대한 반역성이 담겨 있다. 자신이 천출(賤出)이며, 노비나 다름없는 첩의 신분임을 잊고 위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신의 몸이었던 것이다. 드라마틱한 예술인생을 살다 간 여성화가로 미국의 조지아 오키프,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 우리나라의 나혜석을 떠올릴 수 있다. 판위량의 경우 화혼을 키운 상처가 신분사회의 강한 계급적 압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반향이 크다. 잔인한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화폭에서 무아지경을 찾으며, 인생의 화룡점정을 이뤄 가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스난은 주관성을 절제한 간명한 문장으로 한 예술인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전기적 차원에서 복원했으며, 담백한 서술이 오히려 강한 여운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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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저자 | 스난
스난 중국작가협회 전국위원회 위원, 안휘성 작가협회 부주석.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나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20여 년을 보냈다. 나이 마흔에 이 책 『판위량전』으로 청명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에는 장편 전기소설 『한류寒柳』『비구니 암자에서 붉은 카펫으로 걸어 나오다』『류해속전』『장헌수전』 『서수문전』『백년풍류』 등이 있고, 문집으로는 『스난 여류작가 시리즈』(전3권) 『스난 여류작가 소설선』이 있다. 중편 소설집으로는 『만청晩晴』『아녀자 버리기』 등 문학상을 받은 작품만 10여 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