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원 입법계품(59)
음력으로 10월 보름인데 사찰에서는 전통적으로 겨울 결제에 들어가는 날입니다. 상당히··· 사찰에서는 의미 있는 날로,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4월 보름이 여름 결제날이고 또 10월 보름이 겨울 결제날이고, 그렇게 해서 결제를 하면 3개월 동안 특별 정진을 하는 걸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전국 사찰에서 다~, 뭐, 큰 사찰이든 작은 사찰이든, 대중이 많든 적든 간에, 다 결제식을 하는 거죠. 일반 신도님들도 어떤 불교적인 생활이라고 할까, 또 불교적인 의식이 제대로 갖춰지며는 그런 결제는 스님들이 하는 결제라 하더라도, 그 결제 의식에는 참석하는 게 바람직해요. 그렇게 하면 마음이 좀, 아무래도 가다듬어진다고요. 가서, ‘아! 오늘부터 석 달 동안은 나도, 뭔가, 기도를 하겠다.’ 아니면 ‘특별히 염불을 하겠다.’ 아니면 ‘경전을 외우겠다.’ 아니면 ‘뭐, 외우는 건 아니라하더라도 <금강경>을 하루에 한 번씩 독송하겠다.’ 이런 계획을 딱, 세워서 한 철 동안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면, ‘사경을, 하루에 1시간씩, 내가 경(經)을 쓰겠다.’ 아니면 ‘1시간씩 좌선을 하겠다.’ 요런 계획을 딱, 세워 가지고 한 철 동안, 3개월 동안 살아보며는 그것대로 굉장히 의미가 있고 뭔가 보람을 느끼게 되요.
그래서 해제했다. 이러면 뭔가 모르게 아주 큰일을 이룬 것 같이 흐뭇하고 어떤 성취감 같은 것, 이런 것을 느끼게 되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생각이라든지 생활 습관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불교적으로 되는데는 전통 불교의 의식, 또는 행사, 이런 것들을 잘, 습득을 하는 게 바람직한데. 그 중에서도 결제·해제, 이것은 사실 수행 생활하는 스님들에게는 초파일 같은 것보다도 더 무게 있게, 더 소중하게 생각을 하는 게 결제·해제예요. 초파일은 부처님 생일이다 보니까 하나의 명절로 지내지마는. 본래 결제·해제를 사실은 더 중요하게 여겼어요. 그런 것들도 상식적으로 알아 두고. 가능하면 참석하는 게 좋습니다. <범어사(梵漁寺)>는 요즘 보니까, 보살선방이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많은 신도님들이 참석을 하셨더라구요.
(11) 眉出帝釋(미출제석)
오늘은 <화엄경> 99쪽, 하단에 11번, 미출제석(眉出帝釋)이라. 눈썹에서, 미간(眉間)이라고 그렇게 돼 있는데. 미간(眉間)에서 제석천(帝釋天). 제천(帝天), 제석천(帝釋天) 또는 제석(帝釋), 이런 표현을 하는데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하는 불교에서 말하는 일종의 하늘 이름이예요. 거기 왕은 제석천왕(帝釋天王)이고 말하자면 우리나라, 나라를. 고조선 나라를 연 것이 석제환인(釋帝桓因), 그러죠. 그 이란 게 바로 제석(帝釋)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제석천(帝釋天)이 말하자면, 미간(眉間)에서 나온다.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제석천(帝釋天)은 옛날부터 부처님을 수호하고 불법(佛法) 믿는 사람을 수호하고 특히, 수행자(修行者)를 보호한다. 수행자(修行者)를 특별히 보살핀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修行)하는 사문에게는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 그런 말이 있어요. 제석천(帝釋天)이 말하자면 옷과 먹을 것을 제공해준다, 그런 말이예요. 제석천(帝釋天)이 옷과 먹을 것을 제공해준다. 그러면서 제천(帝天)이라고 해서 이제, 모든 하늘, 이렇게도 이제 볼 수가 있는데 특히 제석(帝釋)을 그렇게 가리킵니다.
옛날에 순진한 어떤 젊은 스님이 그 말을 노스님에게서 듣고 아, 수행(修行)하는 사문에게는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야. 그 말 잘, 해요, 불교에서는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고, 제석천(帝釋天)이 다~ 의식(衣食)을 제공해 주는데 의식(衣食) 문제 때문에 시간 뺏기거나 그걸 걱정할 필요 없다.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도, 뭐, 먹고 입는 것 가지고 수행하는 사람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런 뜻에서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라는 말을 잘 해요. ‘줄 여[與]’자(字) 의식(衣食)을 준다, 옷과 밥을 준다, 이런 말인데. 그래 아주 순진한 젊은 스님이 그 말 듣고는 아, 그렇다며는 공부만 해야 되겠다고. 대중처에서 이렇게 사니까 뭐, 소임 봐야 되고, 뭐 공양주도 해야 되고, 다른 일, 밖에 나가서도 일도 해야 되고, 여러 가지 일도 많고 하니까,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생각을 하니까 자기 혼자 아무 것도 안 하고 산중 깊이 바위굴 속에 들어가 가지고 공부할 거라고, 그래,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고 했는데 뭘 걱정하겠냐고 그러면서 저기 산중에 들어갔어요. 들어가서 바위굴 속에 앉아가지고 이제, 자기 딴에는 참선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하루를 해도 누가 밥 갖다 주는 사람이 없고.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고 했는데 이틀 해도 갖다 주는 사람이 없고. 3일 해도 갖다 주는 사람이 없고. 아, 1주일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아무도 밥 갖다 주는 사람이 없는 거야. 그래, 1주일 지나니까 배는 고프고 죽을 지경인거야. 화도 나고, 내려갈라니까 내려갈 힘도 없고. 그래도 자기가 믿는 것은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 해서 제석(帝釋)을 믿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굴 속에서 나와 가지고 “제석(帝釋)아! 제석(帝釋)아! 제석(帝釋)이 어디 갔느냐···”고 막, 고함을 쳤어요. 그동안 열심히 공부 했는데 왜 여태 밥도 안 갖다 주나, 이거야. 아, 어른 스님 말씀이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고 했다는데 왜 안 갖다 주냐, 이거야. 배가 고파 죽겠는데. “제석(帝釋)아! 제석(帝釋)아!” 고함을 지르고 있으니까 저 밑에서 누가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 그래 용기를 내어서 또, “제석(帝釋)아! 제석(帝釋)아! 어디 갔냐···”고 그렇게 하는데 아, 사람 소리가 차츰차츰 가까워 오는데 어떤 나무꾼이 하나 떠억, 올라오는 거야. 아, 스님이 날 불렀나, 이거야. 내가 제석(帝釋)을 불렀지, 니 따위 나무꾼을 부른 줄 아냐, 그러니까 아, 내가 제석(帝釋)이라는 거야.
그 나무꾼 이름이 마침 제석(帝釋)이었어. 아, 제석(帝釋)이든 뭐든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니까 뭐, 먹을 것을 달라고 하니까. 마침 밥을 싸 가지고 나무하러 왔는데 도시락을 미처 먹지 않은 상태라. 그래서 어쨌든 배고픈 사람에게 먼저 주고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는 이 스님이 아주 순진하고, 젊고, 너무 순진해 가지고는 노스님들의 그런 말씀을 듣고는 그렇게 와서 공부를 하는 중이라고 그런데 내가 오늘까지 1주일이 넘도록, 굶었다고 그래서 내가 나가서 고함을 쳤는데 마침, 자네가 와서 이렇게 밥을 줘서 어쨌든 먹기는 잘 얻어먹었노라고. 그러고는 굴속에 들어가서 또 공부하는 거야. 그래, 이 제석(帝釋)이라는 청년은 그 말을 듣고는 대충 마, 나무 한 짐 해 가지고는 마을에 내려가 가지고 그런 이야기를 한 거야. 어떤 스님이 그 말을 듣고는 그 말은 믿고는 와서, 아~무 준비도 없이 와서 그렇게 1주일간 굶으면서 공부만 했는데 또 저렇게 들어갔다고.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그만 자기들이 짜 가지고 하루에 한번씩 공양을 올리고 또 뭐, 먹을 것·입을 것·덮을 것, 이런 걸 준비해 가지고 공부를 하도록 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어요. 그래서 그 스님은 공부 성취를 그래도, “제천(帝天)이 여의식(與衣食)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대~로 믿고는 공부를 아주 크게 성취해서 도인(道人)이 됐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절에는 전해 내려와요.
그 실지인 모양이라. 제석천(帝釋天)이 의식(衣食)을 준다는 게, 사실은 모양이야. 어떨 땐 사람을 통해서 그렇게 전달되지, 뭐, 엉뚱하게 사람 모습도 아닌, 이상한 모습으로 그렇게 제석천(帝釋天)이라, 하면서 왔을 리는 없을 거거든요, 결국은. 어쨌든 사람의 형상을 통해서 그렇게, 전달됐다, 이렇게 이해를 하는 게 바람직해요. 기독교 같은, 요즘 신학자들, 신(神)을 믿지도 않지마는 그 사람들도 안 믿어요, 잘. 실재한다고 하는··· 공식적으로 한지가 벌써 오래죠. 오늘 신문에도, 동아일보 신문에도 보니까. 자기들 신도들 제사 못 지내게 한 데 대해서 내가 크게 참회한다고. 발표를 신문에 났더라구요. 사죄한다고··· 신문에 이만하게. 동아일보, 가서 보세요, 오늘. 사죄한다고 ··· 오늘 신문에. 왜 조상들 제사를 못 지내게, 천주교 믿는 사람들 못 지내게 했느냐. 자기들, 잘못 했다는 거야, 알고 보니까. 그, 사죄한다고 ··· 크게 오늘 신문에. 금년에 3월달에는 교황이 또 참회를 했잖아요, 알죠? 그거는. 너무나도 유명한. “지구는 돈다.” 라는 말 했다가 사형까지 처한 그런 일들이 많잖아요. 자기들 율법하고 어긋난다고 사형에 처하고, 그랬거든요. 그래, 교리가 옛날 사람들은 아무리 뭐라고 뭐라고 해도 아무래도 무지했으니까 그런 교리를 내세워놓고는 어긋나면, 사형까지 사정없이 취하고, 그랬어요. 그, 신(神)은 있든 없든 믿는 거하고 조상 제사지내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고 우리나라 신도들은 제사 못 지내거든요. 아직도 신교(新敎) 쪽에서는 제사 못 지내요. 카톨릭, 구교(舊敎)가 오히려 훨씬 너그러워요. 구교(舊敎)가 훨씬 마음이 너그럽다고요. 신교(新敎), 개신교(改新敎)에서는 오히려 더 개신교(改新敎)라 하면서 오히려 더 딱딱하고, 그걸 용납을 더 안 하는 거라. 교황청에서 금년 3월에 크~게, 아주 전세계적으로 자기들 율법 때문에 바른 이치를, 바른 진리를 왜곡시켰다. 그래 가지고 큰 죄를 많이 저질렀다. 그래서 크게 교황의 이름으로 사죄를 하고, 참회를 했고. 오늘 신문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그건 이제 전체 교황, 천주교하고는 관계가 없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그 문제를, 자기들이 들어오면서 못 지내게 했거든요. 카톨릭에서는 못 지내게 해 놓으니까, 못 지내게 한 데 대해서 사죄한다고, 크게 사죄한다고 신문에 났어요. 그게 정식 사과문이, 미리 기자들이 그걸 알아가지고 낸 거고. 정식 사과를 대대적으로 한답니다, 며칠 후에.
그러니까 사람이 한번, 옳지 아니한 것도 믿기 시작하며는 그렇게 큰~ 문제를 저질러요. 그 뭐, 제사지내는 것하고 종교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건데. 우리가 제사지낸다고 부처님 안 믿는 것 아니고. 부처님 믿는다고 제사 못 지내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불교는 참, 그런 데에, 너무 어떻게 보며는, 줏대가 없을 정도로, 포용력이 그리 넓어 가지고 불교 신도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잘 하는데. 그렇게 안돼요. 다 그냥, 곧이곧대로 그렇게 믿는, 그런 상황이 있습니다.
여기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하는 것이 실지로 그런 하늘이 있든 없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말하자면, 어떤 상징적인 의미이지마는 그러나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던져 주는 교훈들, 이게 이제 중요한 거죠. 전번에 ‘만[卍]’자(字)이야기를 했고. ‘만[卍]’자(字) 메달을, 목걸이를 하면 좋다, 그런 이야기도 했고, 그런데. 요즘 또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라는 사람은 독일 신문에 난 걸, 독일 가 있는, 한 ??이라고, 불교 조각하는 사람이 신문을 복사해서 보내왔어요. 그 사람 사진, 리처드 기어가 단주를 끼고 다니는 것을 유행을 시켜 가지고서 기독교인이고 뭐고, 다 끼고 다닌다는 거야. (웃음) 그래, 신문에 난 거, 그 신문을 복사해서 나한테 보내왔어. 어떤 사람이··· 나는 잘 모르는 사람인데 나를 아는가봐. 그래서 유럽에서 이렇게, 단주 끼는 게 유행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그래 우리는 ‘만[卍]’자(字) 목걸이는 바람직하다. 그리고 부처님의 상호 중에 만자상(卍字相)하고 백호상(白毫相)이 있는데. 백호상(白毫相)을 최고로 쳐요, 사실은. 뭐, 최고다·최하다, 그런 표현은 없지마는 그래도 그 백호상(白毫相)을 중요하게,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더라고요. 여기 보면 종기미간백호상중(從其眉間白毫相中)하야. 그, 흰 털이야, 사실은. 우리가 흰 털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를 박는데. 어떤 사람들은 점이 딱, 그 자리에 나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도. 부처님의 상호를 너무 좋아하고 늘 연상을 하고, 그러다 보니까 그, 부처님 같이 백호(白毫)는 안 나고 까만 점이 딱, 난 사람들, 몇이 봤어요. 예전데 동대 총장하고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백 성욱 총장이라고, 백 성욱씨. 그 분은 얼굴도 부처님 얼굴 같이 생겼어요, 잘~ 났어요. 돌아가신지 오래 됐는데 여기 부산도 뭐, <금강경 독송회> 만들어 가지고 야단하지요? 지금도 있죠? 그 분은 딱! 하여튼, 부처님 백호상(白毫相) 있는 그 자리에, 검은 점이 딱, 났어요. 그, 사진 찍어 놓으면 불상(佛像) 같애, 그 분은. 저기 이 승만 대통령 때 장관도 지내고 남산을 그냥, 냅다 깎아 가지고 학교를 막 세우니까, 이 승만 대통령이 건너다 보고는 누가 저 남산을 깎냐고? 남산 중턱에 있잖아요, 동국대학교가. 누가 저 남산을 함부로 깎냐?고 하니까 백 성욱, 그 사람이 깎는다고. 그러니까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거야. 그런 정도로 그 사람이 힘이 좋았어요, 그 당시에. <대승기신론>, 사교(四敎)에서 공부하는 <기신론> 번역해 가지고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그랬어요, 그 분이. 그 분이 제가 본 사람 중에서는 백호상(白毫相) 하는데, 딱 부처님 백호상(白毫相) 같이, 그렇게 검은 점이 났더라고요. 그래, 자기는 전생에 금강산 중이니, 뭐,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워낙 과거 생에 부처님 상호를 연모하고 닮고 싶은 마음이 강해 놓으니까 그 얼굴 모습이라든지, 백호상(白毫相)까지도, 점이지마는, 그렇게 닮았더라고요.
여기 보면 흰 털이, 본래 흰 털이예요. 부처님 이마에 그, 흰 털인데. 그 상호가 딱 좋다는 것입니다. 상호 중에서는 뛰어난 상으로 보통 부처님 32상(相) 80종호(種好) 중에서 제일로 친다, 그랬어요. 그래서 스님들 공부하는 <치문(緇門)>에 보며는 백호광일분공덕(白毫光一分功德)도 受用不盡(수용부진)이라, 이런 것도 있어요. 부처님의 많은 호상(好相), 좋은 모습 가운데서 백호상(白毫相)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공덕만 갖고도 부처님 제자들이 세세생생 다 써도, 다 못 쓴다. 다 못 쓴다, 그런 말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까, 젊은 수행자가. 1주일동안 굶어도 누가 밥 갖다 주는 사람이 없는데 결국 제석(帝釋)이라는 사람이 밥을 갖다 줬다는데. 그것하고도 맥락이 통해요. 일분공덕(一分功德), 백호상(白毫相)이 가지고 있는 그, 공덕. 뭐, 우리가 귀가 잘 생겼으면 뭐 어떻다 그러고, 코가 잘 생겼으면 뭐 어떻다 그러고··· 자기의 어떤, 복력하고 상호하고 연관시켜서 해석을 하잖습니까? 그래서 부처님의 백호상(白毫相), 여기 나오는 백호상(白毫相), 그 공덕은 우리가 먹고 쓰고 하는, 우리가 물질적으로 먹고 쓰고 하는 그런 문제에 대해서 부처님의 제자들은 뭐, 아무리 수천 년 흘러가면서도 부처님의 백호상(白毫相), 그 공덕 하나만 가지고도 부처님 제자들이 수천, 수만 년 동안 먹고 쓰고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만치, 그 공덕이 크다, 라고 하는 그런 표현이 있습니다.
從其眉間白毫相中하야 出無數百千億帝釋하니
종기미간백호상중 출무수백천억제석
그,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으로부터 무수한, 백천억이나 되는 제석천(帝釋天)이 나왔다. 나와 가지고는
皆於境界에 而得自在하며
개어경계 이득자재
모든 경계에, 자기가 걸어가든, 앉든, 눕든, 또 어떤 사물을 보든, 하는 그런 일상생활 속에서 전부 자유자재함을 얻었다.
摩尼寶珠로 繫其頂上하며
마니보주 계기정상
그리고 마니보주(摩尼寶珠)로서. 마니주가 역시 보배 구슬이고 보배 구슬이 마니주고, 그래요. 마니 보배 구슬로서 그 정상(頂上)에다, 이마 위에다가 떠억, 이제 묶었다. ‘계[繫]’자(字)는 ‘묶었다’. 그런데 이마위에다가 올려놓은 마니 구슬, 이건 이제 옛날에 왕들이나 하나씩 가지고 있어요. 아~주, 보배 구슬 중에서도 최고로 값진 보배 구슬을 왕이라고 하는 상징적인 뜻에서, 그 구슬을 상투에다가, 상투 제일 위에다가 묶는데. 그걸 다음 왕에게나 풀어서 물려준다고요, 다음 왕에게··· 세자에게다가 이제, 물려주고··· 그것이 이제, 부처님 법이 전해질 때, 가사하고 발우하고 전하듯이 그렇게, 왕들은 전하듯이 그렇게 하는데. 말하자면 정상(頂上)에 묶여있는 그, 마니보주(摩尼寶珠)다, 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 분들은, 제석천왕(帝釋天王)들이니까 이 들은 다, 그런 것을 이마 위에 달고 있으며
光照一切諸天宮殿하며
광조일체제천궁전
그 광명이 일체 모든 하늘 궁전들을 환히 비추며
震動一切須彌山王하며
진동일체수미산왕
또 일체 수미산왕을 진동한다. 큰~ 산들을 진동하고.
覺悟一切諸天大衆하며
각오일체제천대중
일체 모든 하늘 대중들을 각오(覺悟), 깨닫게 한다. 깨우친다, 이거죠. 하며.
歎福德力하며
탄복덕력
복덕의 힘을 찬탄하고
說智慧力하며 生其樂力하며
설지혜력 생기락력
지혜의 힘을 설하고. 그 지혜의 힘을 내고
持其志力하며
지기지력
또 뜻의 힘을 가지고.
淨其念力하며
정기염력
생각의 힘, 생각의 힘을 훌륭하게, 청정하게 하며
堅其所發菩提心力하며
견기소발보리심력
또 발한 바의 보리심의 힘을 견고하게 한다. 우리가 발보리심(發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 그러죠. 보리심 발한 것, 보리심 낸 것을 더욱 견고하게 한다. 한번 마음 냈다고, 그것이 계속 있는 게 아니예요. 어떤 마음이든지. 뭐, 공부하겠다, 하는 마음도 그렇고. 뭐, 100일간 기도하겠다는 마음도 그렇고. 그건 계속 있는 게 아니라고요.
오늘이 음력 며칠이더라? 낼 모레가 15일인가, 되요? 15일쯤 되면, 이제 저기 <관음전> 앞에 한~창, 지금 뭐, 대단치도 않애 밤낮없이 기도소리가 우렁차다가 15일 딱, 고비되면 그만 팍. 그냥··· (웃음) 하이고, 이제 할 일 다 했다, 하고 그냥 그 뿐이라. 근데 여기 보며는 계속 견고하게 해야 된다. 자기가 무슨 발심을 한 번 했으면, 무엇에 발심을 했든지. 마음 내는 게, 발심이라. 뭐, 경전 공부하러 다니든지 기도하러 다니든지 그렇게 한 번 마음을 냈으면, 그걸 자꾸 견고하게 만들어 가야 되요. 견고하게 만들어 가야 되는데 한 번, 그런 마음을 냈다고 해서 그게 계속 되는 게 아닙니다. 금방 또 사라져 버리고 사라져 버리고 하거든요. 그래, 꾸준~히, 자기 하나의 생활로 되도록, 그렇게 견고한 마음을, 기도를 하든, 뭘 하든, 그렇게 견고한 마음을 갖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래 참, 가만~이. 날짜 한, 100일 기점으로 해서, 100일 다 되어갈 때까지 대웅전에, 관음전 주변에 사람 숫자 불어나는 거, 기도하는 음성, 소리의 높이, 이걸 다 가만히 앉아서 체크를 해 보며는 참 재밌어요. (웃음) 요즘은 굉장해요, 이제. 15일이 며칠 안 남았잖아요, 이제. 수요일 날인가, 그런데. 지금 하여튼, 제일 아주, 열기가 고조될 때로 고조돼 있는 그런 상태죠. 그래, 뭐, 어차피 우리가 다, 누구나 그렇긴 한데. 그게 이제, 꾸준~한, 그런 마음자세가 참 바람직한데 그게 참, 어렵긴 어려운가 봐요. 살면서 인간관계라든지, 자기 공부 문제라든지, 자기 개발의 문제라든지, 이런 것들을 꾸준~히, 꾸준~히 하는 거, 그게 발심인데. 발심을 자꾸자꾸 굳혀가야 된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讚樂見佛하야 令除世欲하며
찬락견불 영제세욕
부처님 뵙는 거, 좋아하는 것을 찬탄한다. 찬(讚). 부처님 보기를 좋아하는 거, 그거를 찬탄해야 되거든요. 또 그래서. 아, 부처님 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세속에 대한 욕망이 별로 없지요. 더 재밌는데, 뭘··· 절에 쫓아다니고 기도하고 경전 공부하고 부처님 법문(法門) 듣고 부처님 쳐다보기만 해도 아, 기분이 좋으니까. 그러니까 다른 데에 대한 마음은, 그만 시들하고. 뭐, 애들이 하는 짓 같이 보이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래서 영제세욕(令除世欲). 세상 욕심을 다 제거하게 된다.
讚樂聞法하야
찬락문법
또. 법 듣기를 좋아하는 것을 찬탄해. 법 듣기를 좋아하는 거. 그, 공부하기 좋아하는 거죠. <화엄경> 같은 이런 대경(大經), 경전 중에 최고, 최상의 대승 경전인, 이 경전 듣기를 좋아하는 것을 찬탄해서
令厭世境하며
영염세경
세상 경계. 저기는 세상 욕심, 했는데 여기는 세상 경계를 싫어하게 한다. 그래서 맛의 차원이 각각 다르니까. 이런 것을 좋아하다 보면 이런 것을 좋아하다 보면 뭐, 다른 맛은 시시하게 여겨진다는 거죠.
讚樂觀智하야
찬락관지
그리고 관찰하는 지혜를 좋아하는 것을 찬탄해. 요건 이제, 하나의 명상. 관지(觀智)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명상. 관법(觀法), 뭐, 이런 것이 되겠어요. 어떤 이치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치, 세상 이치를 세상 돌아가는 이치, 인생에 대한 이치, 이런 것을 다~ 이렇게 관조를 해 가지고서 차악, 비춰봐 가지고서 그게 하나의 삶의 지혜가 생기는 거죠. 그게 관집[觀智]니다. 그, 그런 것을 좋아하는 것을 찬탄해 가지고서
令絶世染하며
영절세염
여기 세염(世染)이라. 아까 세욕(世欲), 세경(世境), 말이 달라서 그렇지 역시 비슷비슷하죠. 세상에 물드는 것을 끊는다, 그랬어요. 요건 이제, 관지(觀智)를 좋아한다. 그, 관(觀)하는 지혜. 사실은 우리가 부처님한테 배운다·경전에서 배운다·누구에게 듣는다, 하는 것보다도. 쪼~끔만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며는. 여기, 관지(觀智), 관집[觀智]니다. 여기, 명상, 아니며는 사색. 이런 것이 다 관지(觀智)에 해당되는 건데. 생각하는 습관을 조금만 길르며는 우리가 살아온 경험 속에서 별별 깨달음을 다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거. 자기 경험 속에서도 깨닫고·옆 사람의 경험 속에서도 깨닫고. 무슨 신문 지상에서, 세상 돌아가는 데서도 깨닫고··· 깨달을 일이 뭐, 천만 가지가 넘어요, 천만 가지··· 깨달을 자리는. 근데 관지(觀智)가 부족해. 우리는 그냥, 얼른 ‘아, 그랬는가?’ 하고는 넘겨 버리고. 뭐, 신문에 나도 ‘그런가?’ 넘겨 버리고. 자기가 겪고도, 금방 그렇게 뼈아프게 겪고도 금방 또 넘겨 버리는 거야, 그냥. 무심코 넘겨 버려. 거기에, 큰 깨달음. 마음 깊이에 새길 수 있는 깨달음을 얻어야, 거기에 무슨 실패를 했든. 뭐, 사업에 실패를 했든지 아니면 무슨 가슴 아픈 일이 있었든지. 그것이 헛것이 되지 않습니다. 거기에 대한 깊은 사색을 통해서 마음속에 깨달음을 얻어야 그 값을 빼는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자기 마음속에 새기지를 못하고 그냥 흘려 버리며는 그건 그냥 헛수고가 되는 거죠. 눈물을 흘려도 헛눈물, 흘린 게 되는 것입니다. 그, 잘 생각하면 헛눈물이 아니거든요? 훨씬 더, 큰 소득을, 자기의 어떤 마음이 넓어지는 큰 소득을 이룰 수가 있는데 그래, 이 관지(觀智)라는 게 참 중요한 거예요.
부처님을 보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해? 법을 듣고. 그 다음에는 생각하는 거죠. 그 다음에는 자기 마음속에, 어떤 들은 것에 대한 생각, 자기 경험에서 대한 생각, 몸으로 부딪친 데 대한 생각··· 그런 것을 가만~히 사색을 해 보며는, 명상을 해 보며는 거기에 대한 큰 깨달음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제일 큰 스승이 자기 자신이거든요, 결국은. 자기 경험 보다 더, 자기에게 충격을 주는, 그리고 감동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옆에 사람이 어떤 일을 경험했다, 하는 것. “아, 안 됐다, 안 됐다.”, 하고 “아!, 나도 조심해야지.” 그러지마는 자기의 경험한 거 하고 비교하면, 이건 뭐, 백분의 일, 천분의 일도 안 돼요. 자기 가슴 속에 와 박히는 것이. 자기가 경험한 건 자기 가슴 속에 제일 잘 박히잖아요? 그럼 그거보다 큰, 교훈은 없어요. 자기 경험보다 더 좋은 스승과 가르침은 없다, 이걸 늘 우리가 명심을 해야 됩니다. 자기가 경험하고서도 깨닫지 못하면, 뭐, 옆에 사람 경험한 것, 옆에 사람 말한 게, 무슨 소용 있겠어요? 아무 소용이 없죠. 그래, 자기 경험에서 깨달아야 된다는 거죠. 그럴려면 관지(觀智)가 필요합니다. 관찰하는 지혜. 사색하고 명상하는 어떤, 습관, 이게 필요하죠.
止修羅戰하고
지수라전
그 다음에. 아수라의 전쟁을 그친다. 세상의 물듦을 끊어 버려 가지고. 세상에 물들게 되면 할 수없이 싸워야 돼. 아수라처럼 싸워야 돼. 그건 투쟁심이죠. 그래서 <천수경>에도 “아약향수라(我若向修羅), 악심자조복(惡心自調伏).” 그런 말 있죠? 내가 만약에 수라의 세계에 향할 때. 내 마음속으로부터 투쟁하고 싶은, 누구하고 다퉈야 될 그런 상황이 있을 때. 그건 결국은 악심(惡心)이거든. 악한 마음이거든. 그런 그, 다투고자 하고, 투쟁하고자 하는, 그런 악한 마음이 저절로 조복된다. 그래,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치를 통해서 그렇게 저절로··· 뭐, 부처님, 부처님하고 자꾸 부처님을 생각함으로 해서 되는 방법도 있어요. 우리가 “관세음보살” 부르며는 어느 정도, 그런 투쟁의 마음, 악심(惡心)은 조복이 되죠.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이치를 아는 거예요. 관지(觀智)를 통해서 이치를 아는 것. 그건 “관세음보살”보다 더 우선 하는 거예요. 아, 우리 일은 이치가 이렇게 돼 있기 때문에 그 이치를 알고 보니까 아무 것도 투쟁할 게 없는 거야. “관세음보살” 부르는 것은 눌러 놓는 거야. 덮어 놓는 것입니다. 투쟁하고 싶은 마음을 덮어 놓아서 안 나오는 것이고. 이치를 관해 가지고서 안 나오는 것은 아예 뿌리째 뽑혀 버리는 거야. ‘아, 내가 이치를 몰라 가지고서 다툴려고 했고 화가 났었고 따질려고 했었는데 아니다,’ 이거야. 그러면 오히려 미안하고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져 버리죠.
그래서 우리 마음의 어떤 문제를 다스리는데 “관세음보살”부르고 염불해 가지고 막, 이렇게 덮어 두고 내 마음을 달래는 그런 방법도 있겠지마는. 그거보다 더 좋은 방법은 이치를 관하는 것. 이치를 잘 살펴 가지고 확실하게 내가 납득해 버리는 거, 이해해 버리는 거. 이게 제일 좋은 방법이예요.
그건 일종의 깨달음과 같습니다.
斷煩惱諍하며
단번뇌쟁
수라의 전쟁을 그치고 번뇌의 다툼을 끊어 버리며
滅怖死心하고
멸포사심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소멸한다.
發降魔願하며
발항마원
그리고 마구니를 항복받고자 하는 그런 원을 내며
興立正法須彌山王하고
흥립정법수미산왕
또 정법(正法)의 수미산왕을 흥립(興立). 세운다, 이거야. 세운다. 정법(正法)의 수미산. 바른 이치죠. 정법(正法)이란 게 뭡니까? 바른 이치. 바른 이치에 대한 바른 가르침. 그게 워낙 거대하고 크고 힘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징적으로 수미산왕(須彌山王)이다, 그랬어요. 산 중에서도 제일 큰 수미산. 수미산과 같은 바른 법, 바른 가르침에 대한 것을 말하자면 탁, 내 마음속에 세워 놓는다. 흥립(興立). 세워 놓는다, 이거지.
成辦衆生 一切事業하야
성판중생 일체사업
그래서 중생들의 일체 사업. 내 중생으로부터 이웃 중생에 이르기까지 일체 사업을 성판(成辦)한다. 중생의 주변에,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성판(成辦)이라고 하는 것은 다 이룬다, 성취시킨다, 이 말이여.
如是所作이 周徧法界하니라
여시소작 주변법계
이와 같이 하는 일들이 법계(法界)에 가득히 널려 있다.
(12) 額出梵王(액출범왕)
그 다음에 액출범왕(額出梵王)이라. 이마에서 범왕(梵王)이 나온다, 범천왕(梵天王)이 나온다, 그랬어요. 요, 미간(眉間), 그 다음에 이마. 차츰차츰 올라가죠. 얼굴. 얼굴에서도 눈. 눈에서 다시 미간(眉間). 미간(眉間)에서 다시 이마. 이마에서 다시 머리. 머리에서 다시 저~ 위에, 요 ‘이마 액[額]’은 요, 반짝거리는 이마를, 이걸 ‘이마 액[額]’이라 그러고. (12)번이고.
그 다음에 두(頭)는 바로 위에, 이마 위에 머리카락이 있기 시작하는 거기가 두(頭)고.
그 다음에 제일 위에 정상(頂上)을, 여기 정상육계상(頂上肉繫相)이라 해서, ‘이마 정[頂]’그걸 (14)번 ‘정[頂]’자(字)는 제일 꼭대기 부분을 ‘정[頂]’이라 그래요. 그걸 잘 알아야 되요. ‘정[頂]’ 그 다음에 내려와서 ‘두[頭]’ 그 다음에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이 없는 데를 ‘액[額]’. ‘이마 액[額]’. 근데 우리말로는 ‘이마 액[額]’, ‘이마 정[頂]’, 그렇게 써요. ‘액[額]’과 ‘정[頂]’은 그 부위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액출범왕(額出梵王)이라는 것은 바로 눈썹, 미간(眉間)을 이야기했으니까 미간(眉間) 바로 위에 반짝거리는··· 이게 이제, 이마가 넓으며는 소견이 넓다. 여자가 또, 이마가 너무 넓고 반듯~하고, 좀 튀어 나오고 그러며는 관상학적으로 남자가 해야 할 일을 여자 쪽이 많이 차지하고 한다, 그런 말이 있는데 요즘 여자들 보면 이마가 대개 그래요. 옛날 여자들 이마가 그랬으면 아주 못쓸 이마라고, 남자를 능가할, 집에서 가만있어야 할 그런 시대에 남자를 능가하는 그런 입장이다, 해 가지고 안 좋은데. 지금은 그렇게 해야 또 좋은 거야. 여자들 활동을 많이 하는 시대니까. 아주, 이마가 깨~끗하고 반듯~하고 잘 생긴 이마들, 있죠? 이 부분이 잘 생긴 이마. 그런 사람들, 그런 여자들 보면 꼭 뭐, 한가닥 하더라고요. 그게 관상학적으로 그런 게 있습니다. 그 부분이 ‘액[額]’이예요. 액출범왕(額出梵王)이라. 이마에서 범왕(梵王)이 나온다. 올라갈수록 더 이제··· 그 다음에는 보살, 그 위에는 여래까지 나온다고, 이렇게 돼 있습니다.
<화엄경>은 우리가. 사사무애(事事無礙)의 도리를 나타내는 그런 내용이기 때문에. 이마에서 범왕(梵王)이 나올 수도 있고 머리에서 보살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정상(頂上)에서 여래가 나올 수도 있고. <화엄경>에서 말하는 사사무애(事事無礙)의 경지에서 보며는 그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액면으로만 보며는 이상하게 들리지마는 그래서 제가 처음에는 어떤, 사사무애(事事無礙)의 이치보다는 상징적은 뜻으로 보는 게 바람직하다, 라고 그렇게 이해를 시켰습니다마는.
從其額上하야 出無數百千億梵天하니
종기액상 출무수백천억범천
그 액상으로부터. 이마 위로무터 무수백천억 범천(梵天). 범천왕(梵天王)이 나온다. 범천(梵天)들이 나오니. 요건 이제 우리 <범어사(梵漁寺)> 할 때의 ‘범[梵]’자(字)죠. <범어사(梵漁寺)>는 저~기저, 금정(金井)에, 금빛 나는 물에 바위가 샘처럼 돼 있어요. 그, 쪼그마한데. 거기에 범천(梵天)의 고기[漁]가 내려와서 놀았다. 그래 가지고 범어(梵漁), 그래요. ‘범천 범[梵]’자(字) ‘고기 어[漁]’자(字). 이 지상(地上)에는 없는, 그런 특별한 고기였다, 하는 이야기죠. 그리고 범패(梵唄)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이 범천(梵天)의 소리다, 인간의 소리가 아니다, 그래 가지고 범패(梵唄), 그래요. 불교의 음악, 전통 불교 음악을 이렇게 범패(梵唄), 그렇게 말하죠. 그걸 이제 범음(梵音). ‘소리 음[音]’자(字), 그렇습니다. 불교에서 잘 쓰는 말이죠.
色相端嚴하야 世間無比하며
색상단엄 세간무비
그 사람들의 모습이. 범천(梵天)의 모습이 아주 단정하고 장엄이 잘 되어 있다, 이거야. 세간에 비교할 데가 없으며
威儀寂靜하고
위의적정
또 위의(威儀)가 적정(寂靜)해. 위의(威儀)가 아주 고요해. 뭐, 혼란스럽고 나부대고 점잖치 못하고 그런 게 아니고 아주 적정(寂靜)하다는 말은 아주 조용~하고 행동거지가 무게 있다는 거죠.
言音美妙하며
언음미묘
그리고 언음(言音)이 미묘(美妙)라. 여기 보십시오. 음성이, 언음(言音)이 미묘(美妙)하다, 그랬죠. 이런 표현이 딴 데는 없는데. 범천(梵天)은 본래, 그 소리가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그래서 언음(言音)이 미묘(美妙)하다.
勸佛說法하고
권불설법
그래서 부처님에게 설법하는 것을 권하는 거야. 누가 뭘 권할 때도, 그 얼굴도 좀 괜찮게 생기고, 음성도 좀 좋고. 또 말하며는 남에게 호감도 주고, 하는 그런 사람이 대표로 가서 청해야 되요. 그런 사람이 대표로 가서 청해야지 아무나, 그 대표로 가서 청하면 안 된다고요. 가능하면 그 모임에서, “아이구 저 사람이 가며는 덕이 있어서···” 말 잘한다고 가는 거, 절대 아닙니다. 저~얼대 말, 매끈하게 잘한다고 상대가 감동하는 게 절대 아니예요. 상대가 감동할만한 그런 사람이 있어, 보며는. 그런 사람을 보내야 되는 거죠. 그래, 그런 것들도 살펴서 이제, 해야 돼.
이왕이며는 음성이 좋으며는 상대방이 훨씬, 더 잘 감동을 하죠. 어떤 사람들 보며는 앞에서 빤빤하게 잘 설친다고 “네가 가서 해라.” 이러거든요?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그 일은. 딱, 그 일 따라서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빨리빨리 설치는 사람은, 다른 심부름, 뭐, 장 보고 이런 거는 잘해도. 어디 그, 사람관계에서 교섭하는 거는 안 돼요, 그런 사람들은. 사람 교섭하는 데는 어리숙~하고, 말도 잘 못하고 그저 의사전달을 겨우~ 할 수 있는 정도, 어눌하면서도 그러면, 진실하고. 그러면서 진실하고 정성스러운 사람. 이런 사람. 저기 저, 우리 도반 중에서 고성 옥천사 주지 스님이 있는데 그 스님은 우리 도반 중에서 제일로 인기가 좋아. 근데 말은 제일 못 해. 잘 쏙아, 또. 알고 쏙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고 쏙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도대체 그 사람 깊이를 잴 수가 없어, 우리가. 쏙여 보며는, 그냥 쏙아요. 쏙는데, ‘저 사람, 알고 쏙는 것 같지···’ 싶어요, 어떨 때는. 그래도 그냥 넘어가, 모른~ 척 하고 그냥 넘어가.
그런데 고성, 군의 군수가 지역의 국회의원하고 저 중앙의 건설분위 이런 데 가 가지고 불평을 막 하는 거야. 군민이 필요한 돈을 그렇게 신청을 했는데 안 된다, 그러고. 일개 사찰에서 신청하며는 막, 내려 보내는 거야, 몇 억씩 막, 내려 보내주는 거야. 박물관도 짓고··· 그래, 암자 짓는다고 신청해 놨는데 돈이 내려왔다는 거야. 뒤에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그 스님이 가서 이야기를 하며는 말로 설명을 못 해 가지고 그 사람들이 서류를 다 보고는 자기들이 설명을 해 준다는 거야. (웃음) “스님! 이런 일 아닙니까?”하고 이렇게 이야길 한다는 거야. “아, 그, 그런 것 같다고···” 이렇게 하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저 스님을 도와줄까, 싶다네. 어떻게 하면 저 스님을 도와줄까, 싶어 가지고··· 그래요, 사람이··· 그렇다고요. 그 뭐, 똑똑한 척 설치는 사람치고 제대로 일을 이뤄내는 사람, 없어요. 그 스님 보면 그래서 참 존경스럽고. 사람들, 도반들에게도 존경받고. 좋아라 해요, 어쨌든 좋아라하고. 그리고 복 지을 기회만 있으면, 도반들 모여서 복 지을 기회만 있으면 꼭 먼저 복을 지어 버려, 가만 보며는. 뭐, 식사비도 언제 그 사람이 냈는지도 모르게, 늘 보면 그 사람이 내 놓고. 그만한, 그런 힘이 되지만 누가 힘이 안 돼서 안 내는 사람, 없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마음을 쓰더라구요. 그러니까 국회의원이고 장관이고 만나보면, 어떻게 하면 저 스님을 도와줄까? 그 연구 한다는 거야. 도와주고 싶은 연구를 한다는 거야. 그러니까 복을 짓고 덕을 닦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나,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부처님에게 설법하기를 권하는 것. 어디 가서 권할 때는 좀 유의를 해야 되는 거예요.
歎佛功德하야
탄불공덕
부처님의 공덕을 또 찬탄하고
令諸菩薩로 悉皆歡喜하며
영제보살 실개환희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모두 기쁘게 기쁘게, 그렇게 해 준다.
能辦衆生의 無量事業하야
능판중생 무량사업
그래서 중생들의 한량없는 일들. 중생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일마다, 일마다 모두 다 원만성취되게 ‘판[辦]’자(字)가 이게, 성판(成辦)이라고 아까 저기 있었는데. 성취되게 한다. 이루어 지게 해서
普徧一切十方世界하니라
보변일체시방세계
이렇게 하는 것을 어느 한 지역에만 하는 게 아니라 일체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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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관지(觀智)--관찰하는 지혜를 통해서 이치를 알고, 세상에 물드는 것을 끊고, 별별 께달음을 다 얻을 수도 있다. 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가을햇살님, 덕분에 잘 읽고 공부 잘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
堅其所發菩提心力하며.. [발한 바의 보리심의 힘을 더욱 견고하게 하며]...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 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햇살님,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事事無碍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우리 마음의 어떤 문제를 다스리는데 "관세음 보살" 염불해 가지고 덮어두고 마음을 달래는 방법도 있지만 더좋은 방법은 이치를 관해서 이치를 잘 살펴서 내가 납득을 해 버리는 것 이해해 버리는 것 이것이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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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智 관찰하는 지혜. 사색하고 명상하는 어떤, 습관,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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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이치를 관찰해서 해결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
-관세음 보살를 부르는 것은 임시로 눌러 놓는 것
--관찰하는 지혜 觀智가 필요하다
-부처님 가르침,세상 이치,인생의 이치를 관찰해서 지혜를 얻는 것
미간에서는 무수한 제석천왕이 나왔다
이마에서 무수한 범천왕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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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입법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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