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0일 청림회(1)
오늘 하실 부분이··· 지난 시간에 <화성유품>이 끝나고 처음 <오백제자수기품>부터 들어갔습니다. 그 전에 1, 2, 3, 4편이 끝나고 제5, 다섯 번째 문단, 다섯 번째 문단 째다 되겠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강의를 하시는 것이라서 금세 또 망각하기가 쉽고. 또 강의가··· 유인물이라든지 집중적으로 준비된 강의가 아니다보니까 늘 즉흥적인 강의다 보니까 참 이렇게 깊이 있고 심도 있는 강의가 되지 못해서 늘 송구스럽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요번에는 하루라도 어제는 좀 해 볼까 싶었더니 사실 몇 페이지, 몰라가지고 못 봤습니다. 조근 전에 제가 한 1 시간 전에, 4,50분 전에 수업 범위를 아는··· 금방 와서 잠시 한, 5분 10분 훑어 봤습니다마는. 이렇게 너무 가볍게 자꾸 대처해 가지고 정성스럽게 공부하시는 분들께 예의가 아닌데. 참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자. <오백제자수기품>이라고 명명이 돼 있는데. 오백이라는 뜻과 수기라는 뜻을 지난 시간에 대충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수기라고 하는 것은. 다시 말하면 우리가 각 사람마다 법명(法名)을 받게 되고 또 불명(佛名)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는데.
이름이. 우리가 어릴 때 지내다 보며는 오래 살아라고 이름을, 남에게 시기질투 안 받는 이름을 지어주듯이. 또 중생으로 못난 이름으로 살까 싶어 가지고 또 부처님을 닮아가는 그 이름을, 부처님 냄새가 나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불명(佛名)이나 법명(法名), 이래서 당래에 부처를 기약하는 이름을 줘 가지고, 뭐랄까 정진력이 떨어지고 신심이 떨어지는 사람을, 중생을 일깨워서 북돋아 주기 때문에 수기를 주고. 또 불명을 준다고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오백제자 품> 중에서. 그 다섯 번째 문단에. 첫 번째부터 언급했던 이가 누구였습니까? 부루나 존자였죠.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은 각기 그 특성이 있다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바가 있고. 특히 부루나는 설법 제일입니다. 설법제일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 우리가 매일 예불을 드리고. 하루에 여섯 번, 예불을 드리지 않습니까? 육시에 예불을 드리는데. 요즘은 이제 줄여서 삼시에 예불을 드리기도 하고. 또 이제 줄여서 사시에 한 번이라도, 꼭 경배를 하기도 하고 하는데.
부처님께 예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덕을 존경하고 찬탄하는 것[禮佛者 敬佛之德也]이고. 또 염불을 하는 것은 부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히 여기는 것[念佛者 感佛之恩也]이다, 라는 옛 말들이 있습니다.
그래 여기, 설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을 원만하게 충만하게. 이 사바국토에 내지는 불국토,를 정토화시키는 뭐랄까. 시원점이 설법으로부터 시작되잖습니까? 그래서 설법은 부처님의 원력을 충족하게 하는 것이다, 만족하게 하는 것이다[說法者 滿佛之願也]고 하는 그런 ‘팔일성해탈문(八溢聖解脫門)’에 나오는. 영명지각연수 선사의 ‘팔일성해탈문’에 보면 설법에 대한 내용을 그렇게 설명을 해 놨습니다.
참선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경계를 통달하는 것[參禪者 合佛之心也]이고. 또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마음을 증득하는 것[得悟者 證佛之道也]이다, 하는 얘기가 있고.
이 설법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원력을 원만구족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사바세계는 이 설법을 통하지 않으며는 서로 주고 받는 말. ‘말씀 설[說]’자(字). 말로, 말씀으로써 말로써 음성으로써 가르침의 바탕을 삼는다. 사바세계는 음성교체(音聲敎体)로 돼 있기 때문에 설법이 사실은 상~당히 중요하고. <금강경>, <화엄경> 어떠한 경전 할 것 없이 모~든 경전에. <법화경>도 마찬가지요. 끝에 가며는 ‘유통분’이라고 있어서 이 경전을 널리널리 유통시켜라고 하는 일부분이 항상, 부처님의 발원으로 이렇게 마지막 구절의 경전에 다 실려 있습니다.
자. 그 중에서 <수기품> 중에서 설법에 대해서 오늘 다섯 번째, 부루나 존자, 이 대목부터 들어가겠습니다.
(5번부터 6번까지 읽으시고)
5.
汝等(여등)은 勿謂富樓那(물위부루나)가 但能護持 助宣我法(단능호지 조선아법)이니
그대들은 물위(勿謂). ‘~라고 말하지 말아라.’ 부루나가 다만 능히 호지(護持). 아법(我法)을 펴는 것을 돕는다고만 하지 말지니.
亦於過去 九十億諸佛所(역어과거 구십억 제불소)에
또한 과거에 90억의. 참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 처소에서
護持助宣 佛之正法(호지조선 불지정법)호대
불교의. 부처님의 정법을 호지(護持)하고 조선(助宣)했다. 호지(護持)라고 하는 거는 뭡니까? 보호임지(保護任持)라, 이런 말이죠. 잘 보호하고 실천했다. 줄이면 뭐, 호법(護法)이라 이러면 간단하겠네요.
조선(助宣)이라고 하는 것은 ‘도울 조[助]’자(字), ‘펼칠 선[宣]’자(字). 펼치는 것을 자~!알 도와줬다, 이 말이죠.
또 뭡니까? 정법을 그렇게 자알 하되
於彼說法人中(어피설법인중)에 亦最第一(역최제일)이며
설법하는 사람들 가운데에. 저 설법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또한 가장, 제일이었다. 최제일이며. ‘가장 최[最]’자(字) ‘으뜸 최[最]’자(字). 제일이었으며.
又於諸佛 所說空法(우어제불 소설공법)에 明了通達(명료통달)하며
또한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공법(空法). 공법(空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불법문중(佛法門中)을 다른 말로 불문(佛門)이라고 하고. 불문(佛門)을 공문(空門)이라고도 합니다. ‘빌 공[空]’자(字). 공문(空門)이라고도 이렇게 하는데. 공(空)이라고 하는 것은 중도지견에서 바라볼 때 인연법이 모두 공하기 때문에 이제 공법(空法)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불법(佛法)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 스님들을 공문(空門)의 제자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아. 기억이 아삼~아삼··· 기인(幾人)이 득도공문리(得道空門裏)어늘. 이런 대목이, <초발심자경문>에 나오는 대목이 있죠. 기인(幾人)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공문(空門)에서 득도를 하였는가, 이런 대목이 있어요. 그 때도 공문(空門)이라. 공법(空法)이라. 똑같은 말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소설(所說)하신 바 공법(空法)에서 명료하게 통달한다. 이런데서 우리가 보며는 거의 다 늘 자주 듣는 얘기지만 진공묘유가 다~ 나오고 있죠. 통달하며.
得四無礙智(득사무애지)하야
또한 4무애지를 얻어서. 4가지의 장애됨이 없는 지혜. 지혜라. 4무애지라고 그러면 법무애지, 의무애지, 사무애지, 또 변무애지. 변설무애자재, 하는 대목 있잖아요? 그걸 굳이 얘기하기 위해서 4무애지를 얘기해 놓은 거죠.
常能審諦(상능심체)하며
상능심제가 아니라 ‘諦 체’자로 고치셔야 돼요. 우리 <법화경> 책에 자꾸 ‘諦 제’자로 나왔는데. <금강경>도 보다 보며는 여금체청(汝今諦聽)하라, 이래야 되는데. 여금제청하라, 가 아니고.
‘자세할 체[諦]’자(字). 아주 자세~하게. 여기는 심체(審諦)라고 하면. 심판본다 할 때 심잔[審]데. ‘알 심[審]’자(字)예요. 자세히 안다. 항상 능히 심체(審諦)하며. 잘 판단할 줄 안다, 이거야. 그래서 항상 심체(審諦)하며.
고집멸도 하고 사성제(四聖諦) 할 때, 이 ‘諦 제’자가 ‘진리, 제’자(字)로 쓰일 때도 있지요.
淸淨說法(청정설법)호대 無有疑惑(무유의혹)하며
그리고 아주 청정하게 설법하되. 설법 자체가 깨~끗했는가 봐요. 오늘부터 좀 조심해야 되겠네, 저도··· 의혹이 없으며. 몇 분이나 갈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일단은 처음부터 조금 조심해서 가야지 (웃음) 요러다 이제 살큼 흥분하면 이제 마악, 거친 언어가 막 쏟아지는 거예요. 벌써부터 쏟아지기 시작했어···
具足菩薩神通之力(구족보살신통지력)하며
보살의 신통지력을 구족하며. 누가 그렇단 말씀이예요? 부루나 존자가 그렇단 말입니다.
隨其壽命(수기수명)하야 常修梵行(상수범행)일새
그 수명을 따라서 항상 범행을 닦을 새. 처음부터 끝까지. 항시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어릴 때나 연세 들 때나 어떤 환경과 어떤 조건에 처하더라도 항상 범행(梵行). ‘깨끗할 범[梵]’자(字). ‘범어사 범[梵]’자(字). 깨~끗한. 범행(梵行)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청정행이거든요.
그것을 통달한 자만이 명료한 자만이 갈 수 있는 길이 사실은 범행(梵行)이고 그것이 바라밀행이라고도 얘기를, 우리가 하죠.
彼佛世人(피불세인)이
저 부처님 세상의 사람들이
咸皆謂之 實是聲聞(함개위지 실시성문)이라 하나니
모두 다 함께. ‘함께 함[咸]’자(字). ‘모두 개[皆]’자(字). 함께 그를 이르되. 위지(謂之). ‘말하기를’, 이 말이죠. 진실로, 참, 부처님법문을 들은 부처님다운, 깨달은 제자라, 성문이라 하더니.
6.
而 富樓那(이 부루나)가 以斯方便(이사방편)으로
그러나 부루나는 이사방편(以斯方便)으로. 이 ‘사[斯]’자(字)는 대명사로서 ‘이것’, 이런 뜻이예요. 영어로 this, 이렇게··· 이러한 방편으로써. 이 때 ‘써 이[以]’자(字)는 영어로 by에 해당하겠죠. ‘~으로.’ 벌써 나왔다 나왔어 골치 아픈 소리 나온다 아이구 참 내···
부루나가 방편으로서
饒益無量 百千衆生(요익무량 백천중생)하며
무량한 백천중생. 참 한량없는 중생들을 요익하게 하며. 요익하며
又化無量 阿僧祗人(우화무량 아승지인)하야 令立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립아뇩다라삼먁삼보리)언만은
또한 화(化). 아승지인. 헤아릴 수 없는 숱한 사람들을 교화하여 어디에 똑바로 서게 합니까? ‘하여금 영[令]’자(字). 사역동사로서 ‘~하게 한다’, 이런 말 이죠. ~하게 한다. 서게 한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서게 한다. 서게 한다, 이 말은 중심을 딱 잡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해서 발심을 일으킨다, 이런 말씀이 되겠습니다. 발보리심하게 했건마는
爲淨佛土故(위정불토고)로 常作佛事(상작불사)하야 敎化衆生(교화중생)하나니라
그러나 또 뭡니까? ‘위爲 ~ 고故’는 앞뒤로 붙어서 ‘~위한 까닭으로, ~때문이다.’ 이렇게 새기면 되겠습니다. 불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항상 불사를 지어서 중생을 교화하나니라.
(7번 8번 읽으심)
7.
諸比丘(제비구)야!
모든 비구야!
富樓那(부루나)는 亦於七佛說法人中(역어칠불 설법인중)에 而得第一(이득제일)이며
부루나는 또한 7불의 설법인중에 그 얻은 바가 제일이며. 과거에도 가장 뛰어났고. 또 뭡니까?
今於我所說法人中(금어아소설법인중)에 亦爲第一(역위제일)이며
지금 나의 처소에 설법하는 사람 중에도 최제일이며
여기서 이제 과거현재미래 중에 부루나가 설법제일이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는 대목들이 되겠습니다.
於賢劫中(어현겁중)과
현겁(賢劫)이라고. 그 다음에 이제 어현겁중(於賢劫中)에라는 것은.
과거 세상에는 상징적으로 부처님이 천불의 부처님이 출세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겁 중에도 천불이 세상에 나온다고 하지요. 또 미래겁 중에도 천불이 세상에 나오니까 그걸 갖다가 <법화경>이라든지 <아함경>을 근거로 해 가지고 <직지사>나 어디 가면 보면, 뭐가 있습니까? 3천불전이 있죠. 거기다 조금 욕심 붙여 가지고 만불전도 하기도 하고.
쪼끔만 이자 붙여 가지고 <봉림사> 겉은 데는 가면 3천3백 불전, 부처님 처소를 모시기도 하는데. 그 3천불의 모불(母佛)은 우리 저~기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53불이 되는 것이고. 그 53불이라고 하는 것은. 선재 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서 나섰는데 낱낱이, 인인이 부처 아닌 사람이 없다, 이런 의미로 53불을 모시는 예가 왕왕 있고. 그 53불의 또 모불(母佛)이라고 한다고 하며는 모태는 과거 7불로 이렇게 볼 수가 있고.
그 과거 7불의 스승은 바로 문수보살이고
그래서 여기가 문수원이고. (웃음) 7불 조사.
그래 문수가 왜, 문수가 과거 7불의 스승이 되는가 하니.
과거 7불은 모두 반야지혜에서 나왔으니까
지혜제일 문수보살해서 대승사리 문수보살이 바로 과거 7불의 스승이 되고.
7불에서 53불이. 또 선재 동자가 53선지식을 찾아 나설 때 발한 마음이 뭡니까?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원만하게 체득하기 위해서 53선지식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인격화 하면 바로 불(佛)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걸 갖다가 법리화 하면. 법의 이치를 보며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 다시 말하면 무상정등정각이 되지마는.
그것을 또 사람으로, 인격화 하며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곧 누굽니까?
부처가 되는 거예요.
사람으로 치며는 왕이라고 하며는, 왕이 가진 것은 왕권이잖아요? 왕의 권력을 따진다며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되고. 왕의 권력이라든지 이런 것이 인격화되면 또 사람이 되는 거예요, 왕이 되는 거예요. 그런 거하고 똑같은데. 여기서 7불이니, 과거, 현겁이니... 또 현겁을, 현재 현겁을 ‘어질 현[賢]’자(字) 써서 현겁(賢劫)이라고 하고. 과거의 겁은 장엄겁(莊嚴劫)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과거는 장엄겁(莊嚴劫). 과거 장엄겁(過去 莊嚴劫)에 천불이 출세하고. 현재의 현겁(賢劫)에 천불이 출세하고. 미래의 겁의 이름을 뭐라고 하냐며는 ‘별 성[星]’자(字) ‘잘 숙[宿]’자(字). 그런데 ‘별자리 수[宿]’자(字)로 읽어야 되지 성숙겁(星宿劫)이라고 하면 안 되고 성수겁(星宿劫). 미래 성수겁(未來 星宿劫)에 천불이 출세를 하게 되지요.
그 중에서도 지금 여기에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뭐냐 이러며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처럼 과거현재미래. 앞으로 전무후무하게 미증유로 설법제일은 부루나다, 이렇게 얘기하고자 과거의 부처님이나 현재의 부처님이나 모든 세상에. 그러면 지옥아귀축생, 거기는 불법이 잘 없으니까 불법 설하는 가운데서도 제1등이 될라하면 그거도 참 힘든 일이잖아요, 그죠?
일단 서울대 들어가서 전체 수석 하는 게 더 힘들 듯이. 그러니까 과거에도 1등, 현재에도 1등, 그 누구예요? 부루나라고. 아주 부루나를 극히 끌어올려 가지고 최고의 칭찬으로 몰고 갑니다. 부루나를 칭찬으로 몰고 간다는 것은 가만히 상징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슨 의미가 담겨 있겠습니까? 부처님의 법을 설법하는 사람은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이다는 얘기를 도출해 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죠? 그리 속인다고 우리가 속을 사람도 없고. 사악, 한번 따라가 봅시다, 어떻게 되는지.
설법을 하는 목적은 또 어디 있습니까? 모든 사람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정확하게 발심을 해서 나아가게 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아,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원력이고. 그 원력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 설법이구나···, 이렇게도 짐작할 수가 있겠습니다.
현겁이라고 하는 것, 현재 현겁,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當來諸佛說法人中(당래제불 설법인중)에 亦復第一(역부제일)하야 而皆護持助宣佛法(이개호지 조선불법)하며
당래제불, 이렇게 하는 것도 당래. 미래 성수겁(未來 星宿劫)을 이제 얘기하는 거죠.
亦於未來(역어미래)에 護持助宣 無量無邊 諸佛之法(호지조선 무량무변 제불지법)하사
거기도 미래 천불의 부처님이 오는데. 그 설법인중에서도 또한 다시 또다시 모두다 호지(護持)해서 조선불법(助宣佛法)한다.
불법(佛法)을 펼치는 것을 도우며 또한 모든 부처님의 법을. 한량없는 무량무변한, 모든 부처님의 법을 호지(護持)하고 조선(助宣)하여. 뭐라하까. 그리하고 넘어갑시다.
자기가 스스로 안으로 자알··· 무량무변한 부처님 법을 지니는 것도 상당히 영리해야 되고 명료하고 통달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얘기죠. 겨우 10개 가르쳐 줘 놓으면 1개 기억하는 사람이 부지기순데. 부루나는 모~두 다 기억하고 전체를 다··· 또 그걸 가지고
敎化饒益無量衆生(교화요익 무량중생)하야 令立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립아뇩다라삼먁삼보리)언만은
사람이 각기. 중생의 근기와 욕망과 성품이 제각각인데 거기에 맞춰 가지고 눈높이로 설법한다는 것은 상당히 영리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모두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서게 하건마는.
8.
爲淨佛土故(위정불토고)로 常勤精進(상근정진)하며
그것은 뭐냐? 불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며. 아주 세밀하게··· 밤이고 낮이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것처럼. 열매가 맺었다 하더라도 나날이 익어 가는 것처럼 그렇게 물샐 틈 없이 조금씩~조금씩 좁쌀만큼 익어 가지고 결국··· 요즘 감이 많이 익잖아요? 단 맛이 배이듯이 그렇게 상근정진하며.
敎化衆生(교화중생)하야 漸漸具足菩薩之道(점점구족보살지도)하나니라
중생을 교화하야 점점구족한다. 무엇을? 보살의 도. 보살지도(菩薩之道)를. 보살의 길을. 보살의 도를 점점 구족한다.
(9번에서 15번까지 읽으심)
9.
過 無量阿僧祗劫(과 무량아승지겁)하야
무량아승지겁을 지나서.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고 무량아승지겁을 지나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깨친다는 말이 참 외람되는 말이기도 하고
또 그렇지마는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깨치는 것은 쉽습니다.
돈오하는 거는 너무~나 쉽게 돼 있죠. 깨치는 거는 쉬운 일이예요. 그러니까 돈오하는 것을, 깨치는 이런 부분들을 설명해 놓을 때는 주로 사마타로 가지고 얘기를 하고. 닦는 부분. 방금 점점구족보살지도(漸漸具足菩薩之道)한다, 이런 부분들은 삼마제를 가지고 주욱 얘기를 해 놓습니다, 경전에.
여러분들께서 좀 이해 안 가셔도 한 번만 스쳐도 그냥 들어 놓으십시오.
자, 저를 한 번 보실까요.
불교는. 다 아시는 얘긴데. 3단계로, 길게 나누면 4단계로 나누게 되고. 줄이면 3단계로 나눕니다. 3단계로 나누는데. 수행하는 방법을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처음에는 오(悟), 라고 해서 깨달음을 얘기합니다.
그 다음에 깨닫고 나며는 닦아야 됩니다.
고걸 수(修)라고 합니다. ‘닦을 수[修]’자(字).
닦다가 보며는 얻어지는 게 있는데 그걸 증득한다 해서 증(證)이라고 합니다.
모든 경전이 오수증(悟修證)으로 이렇게 형성이 돼 있습니다.
다른 말로 이제. 처음에 이제 믿게 되죠. 신(信). 깨달음일 때. 해(解). 행(行). 신해행증(信解行證). 이렇게 나오는 거 있잖아요?
해행이 바로 알고 행하고 회향하고 실천하고··· 그러니까 뭐라고 하냐며는.
처음에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여기 나오는 것처럼 입(入)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 다른 말로 하며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세웠다고 하는 말은 발(發)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이런 말씀입니다. <금강경>에는 발(發)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나오죠? <화엄경>에도 발(發)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나오죠?
우리 <법화경>에서는 입(入)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나왔지마는 말씀은 다 똑같은 말이라고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깨닫는가? 하냐며는
이치를 깨닫는 겁니다, 이치를.
이치를 깨닫는다는 거죠.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처음에 이치를 깨닫기 전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같이 섞여서 이치를 깨닫게 되면서 같이 섞이는 대목이
믿음입니다, 믿음.
제가 요즘 저 밑에 ‘문수선원’에서 강의한 대목이 <능엄경>이고. <능엄경>에 ‘칠대부분(??)에 들어간다’ 그 부분을 설명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묘진여성이라고 하는 이런 대목에서 진짜 우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대해서. 그걸 다른 말로는 진여자성이라 하고 자성청정이라 하고 뭐, 반야진공이라고··· 별 얘기를 다 합니다. 다 하는데. 그 중에. 강의를 주욱 들으신 분도 계시고 안 들으신 분도 계신데 그, 좋은 말씀이 있어서 한번 제가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무얼 가지고 비유를 해야 좀 쉬울까요?
여기서 여러분들, 강의를 들어오시던 걸 가지고 하죠··· 저쪽에서는 이걸 가지고 했습니다. 휴대폰을 가지고 했습니다.
휴대폰, 함 줘 보십시오. 전화를 함 걸어보죠.
주십시오. 그래야 집중이 되고.
제가 서울에서 뮤지컬 보러 가니까 어떤 데는. 이 경실이가 넌센슨[넌센스]가 할 때 수녀들··· 관중, 객석에서 나와 가지고 스님은 어디서 왔어요, 해 가지고 혼났네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웃음) 이렇게 객석과 무대가 같이 호흡을 해야 돼···
제가 전화를 해 보겠습니다. 박현숙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 보겠습니다.
여보세요.
예.
전화기를 들고 말하셔야지 들고 말하셔야 아주 실감이 나는 거예요. (웃음)
여보세요.
예. 꼭 국민학생들 깡통가지고 장난치는 거처럼····실 달아 가지고
들어 보세요. 여보세요.
예.
제 목소리가 여기 있습니까 거기 있습니까?
아래 수업 했죠? 예. 어딨습니까?
있잖아, 어딨어요? 여보세요.
여기 있네··· (웃음)거기 들립디까? 거기도 있었어요?
이거 신기한데··· 그러면 제가 미국까지 전화해 봅니다.
여보세요, 이러면 동시에 미국 사람, 지금 듣고 있습니다.
영국으로 했어요. 여보세요, 이러면 영국에도 듣고 있어요, 지금.
그러면 제 목소리가 영국에 있나요, 여기 있나요?
자아. 우리가 귀로 이근(耳根)으로. 성진(聲塵)으로 소리로. 또 거기서 일어나는 이식(耳識)으로. 제6육식, 오구의식 중에 하나, 5식이죠 사실. 오식이는 자라서 그 오신통이 되거든요. 육신통이 열린다, 이러면 의식이 끊어져서 누진통이 되거든요. 그런데 오식이가 오신통이 되는데 제가 여보세요 하고 제가 이렇게이렇게··· 참 복잡한데 줄여서 하고 근본, 줄여서 얘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여보세요, 이랬는데. 영국에서 분명히 들었는데 우리는 흔히 생각하길 어떻습니까? 내가 들었으니까 여기서. 요만큼 들렸다, 저만큼 들렸다, 이렇게 소릴 합니다마는.
이 허공에도 있고 여기도 있고 소리는 꽉 차 있지마는.
여기 있는 것을 소리라고 하며는 안 됩니다. 그죠, 그렇지 않습니까?
똑똑히 내한테 들린 것만 해 가지고 해야 되는데
그러면 내가 듣는 것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느냐면
지량(??)이라고 합니다, 지량.
내가 알고 헤아릴 수 있는 분상이잖아요?
예? 지량이라고 하는데
고걸 가지고 여러분들께서는 내가 아는 바의 마음, 헤아릴 수 있는 마음 느낄 수 있고 판단 할 수 있는
측탁하고 계산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자기가 지금 분별할 수 있는 의식을, 현전의식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이렇게 해 버리니까
본래의 진여자성 청정의 광대무변한 세계를 볼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이렇게 애기해 보면 그렇게 콱 막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우리는 잘났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 거는, 모른다는 거 아니까 잘났는데
대부분 그런 걸 물어 보며는?
자기가 막혀 있는 줄 모릅니다.
그러니까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참 비참한 일이잖아요? 제가 알아봤자 별 거도 없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부처님은
모르는 그것을 알아버렸으니까 위대하다고 볼 수가 있고.
저는
모르는 것을 아니까 좀 많이 모자라지요.
그러니까 뭐, 모르고 있는 것을 아는 거나
모르고 있는 것을 모르는 거나 비슷비슷해요. (웃음)
여전히 모르는 것을 몰라도 중생이고
모르는 것을 알아도 중생이고.
모르는 걸 아는 분들은?
부처님이고. 오직 부처님만이 위대한 거예요, 그러니까.
대충 짐작이 가십니까?
근데 고러하게 형성돼 있는 거기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야 되는데 거기 믿음이 확실하지 않는 거는
전부다 업식에 흔들려 가지고 자기의 아집 쪽으로 끌어댕겨서
보통 이제까지 살아온 업식의 훈습에 따라서 살아갑니다.
고러면. 고게 이제 형성이 따악. 믿음이. 저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확신을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자성청정에 대해서는 확신을 하고. 거기에 대해서 부처님처럼 깨달음이 아니고 그 이치에 대해서는 아··· 맞다!고 확신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그걸 갖다가 깨달았다고, 하는 거라, 일단은. 해오(解)悟)라고 얘기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이치를 믿기도 하고, 그런 때문에 이 산중에 살 수가 있어요.
그 뭐, 다른 걸 부가해 가지고 꾸미지를 않애도.
그 다음에 고걸 이제 실천하는 덕목이
오(悟), 수(修)가 됩니다.
이 수(修)라고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없앨 수가 없습니다.
방금 나왔는데 점점구족(漸漸具足)하고. 보살지도를 점점구족[漸漸具足 菩薩之道(점점구족 보살지도)]한다고 나와 있어요. 점점구족한다, 이게 이제 수(修)에 해당하는 얘긴데. 우리 많이 들어 본 얘기 있었죠? 돈오돈수, 돈오점수. 이렇게 많이 들어보셨잖아요?
근데 지금 <법화경> 여기서는 성철 스님 얘기하고 정말 극명하게 대비되도록 돈오점수를 얘기해 놨네요. <화엄경>에도 돈오점수를 얘기해 놨네요. 사람에게는. 조금 영리한 사람은 돈오돈수가 될 수가 있고. 돈오돈수가 될 수 있지마는. 부처님이 열심히 수행하고. 거기 대해서 이치를 믿고 거기 대해서 노력하고자 했던 그런 점들이 설파해 놓은 얘기를 갖다가 이치로 깨닫는 거는 굉장히 쉽습니다. 왜냐하면 앞 사람이 이미 루트를 다 개발해 놓은 것이라서 그, 따라 가는 것은 상당히 쉽습니다.
첫 개척자가 좀 상당히 힘들었겠죠. 우리는 요렇게 뭐 <법화경>이라든지 다른 경전을 통해서 로프도 준비돼 있고 뭐 이렇게 링크도 준비돼 있고 뭐 다~ 중간중간에 루트가 돼 있기 때문에 쉬워요. 쉬운데. 그걸 이제 먼저 믿고 알고 행하고 회향하고. 회향하는 것까지 다 나왔어요, 어떻게 회향하는가, 까지.
회향하는 것도 또한 뭡니까?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기 위한 한, 방편으로 얘길 다 잡아 놨죠. 그게 이제 아까 한 대목만, 한 문단만 읽어 보더라도 신해행증(信解行證)이 확실히 여기 갖춰 져 있습니다. 다른 말로는 오수증(悟修證)이 여기 다 갖춰져 있고 교리행과(敎理行果)가 다 갖춰 져 있습니다.
깨닫기는 쉬운데. 이즉돈오(理卽頓悟)라. 이치는 바로 깨달을 수 있다, 이거야. 누구든지. 여기 여러분들 정도의 학식과, 또 안목을 갖추고 계신 분들이라며는 불교의 이치에 대해서 깨치는 것은 굉장히 쉽습니다.
다시 한 번 “능엄”의 얘기를 가지고 또 한번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 여기 돋보기가 있습니다, 이게 돋보깁니다. 이게 돋보긴데. 이게 태양입니다. 돋보기와 태양과 여기 이제 짚을 모아 놨든지 이렇게 불쏘시개 할만한 거를, 종이라든지, 뭐 있습니다. 촛점을 정확하게 아래위로 따악 눌러서 맞춰 가지고 여기서 돋보기 가지고 한 일점을 쏘면 여기 불이 옵니다, 그죠? 불이 나지요?
그럼 불은 여기 있었습니까, 요기 있습니까, 저기 있습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꽉 차 있습니까?
태양에 불이 있었죠. 그래, 태양에 불이 있었으니까, 태양이 불이니까 태양이 내려 쬐면 이 돋보기 뿐만 아니고 사람도 다, 타버려야 돼 (웃음)
태양이 아무리 지가 불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돋보기를 빌리지 않으며는 여기에 불 붙을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럼 태양은 아닌 거 같다.
그럼 여기 자체에 불이 있었겠지요? 그럼 지 혼자 불 붙어야지. 태양이나 돋보기 빌릴 필요가? 없지요.
자, 여기 하나 비춰 가지고 여기 들어 왔을 때 요렇게 인연에 하나씩 불길이 일어났다. 그럼 요런 것은 지량??이라고 합니다. 소지량??. 그래 고걸 가지고 사람들은 방금처럼 태양에 있다하고 어떤 사람은 돋보기에 불을 가지고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여기에, 나무나 땔감, 있잖아요? 거기에 또 불이 존재한다고 하지마는.
불은 거기뿐만 아니라 천하만변에, 무량무변하게 존재하지마는
인연을 따라서 일어나고
인연을 따라서 소멸이 됩니다.
제 목소리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 여러분들은 낱낱이 여기서 목소리 떠억 내고 나며는 이렇게 들리지마는 옆에서 귀로 듣는 거 놔두고 스피커 몇 개씩 이렇게 간다, 이러며는 여기에 스피커를 만개 갖다 놓으며는 만 개의 음성이 더 퍼진다고 해서 제 목소리가 그렇게 늘어난 것은 아니거든요. 아 그것은 이치는. 원래는 꽉~ 차 있는데. 그게 이제 자기한테 와서 느끼는 업식의 분량만큼 오는 걸, 그걸 가지고 사람들, 실법이라고 하지마는 제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고.
시방으로 아래위로 앞뒤로··· 내 말이 이렇게 앞으로만 나갔다고 다 그렇게 인식을 하고 하지마는. 사람 보고 말해라···, 이러잖아요? 보고 말하든지 안 보고 말하든지 저는 가끔씩 49재 지내다 돌아서서 염불하잖아요? 내가 돌아서든지 앉든지 뭐 염불하는 거는 똑같지 뭐··· 그렇잖아요?
뒤에도 들리고 앞에도 들리고 과거현재미래 전부 관통하는 이런 상태를 이렇게 느끼게 됩니다. 그런 상태를 느끼려고 하며는 자꾸 고요쪽으로 자기를 밀어 붙여야 되는데.
여기서 다른 얘기 하다가 불교의 근원적인, 원론적인 얘기를, 공부하는 쪽으로 잡아서 관심쪽으로 잡아서 얘기했습니다마는. 우리가 실체적으로 알고 있는. 저를 판단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 목소리를 보고 판단하는 사람 행동으로 판단하는 사람 많지마는
정~말 저의 자성청정, 묘진여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희한하죠.
그러나 누구나 다 봤습니다.
행동과 말과 주고받는 모든 것이 묘진여성이 아닌 것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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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아침 온 천지가 청명 청량합니다 _()()()_
고맙습니다 ()()()
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 _()()()_
<爲淨佛土故로 常作佛事하야 敎化衆生하나니라..불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항상 불사를 지어서 중생을 교화하느니라..> <爲淨佛土故로 常勤精進하며..불토를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며..>가을햇살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가을햇살님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