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일지[봉선동 제석산]
◎ 일자 : 2009. 7. 11. 토요일
◎ 장소 ; 제석산(광주 남구 봉선동)
◎ 참석 : 이경운, 이승우, 이철환, 장신 (4명)
◎ 번개산행
여름방학이다. 장마철이다. 좀 한가할 만도 한데, 마음만 바쁜 것인가. 7월 9일(목)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 참석차 서울에 갔다가 7월 10일(금) 아침에 광주에 내려오니, 이번 주말에는 광주에 있는 것이 좀 여유로울 것 같다.
장마철이라 비가 많이 온다. 작년에 내리지 않았던 양까지 한꺼번에 오는가 보다. 여기 저기 물난리 법석이다. 주말 오후부터 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서, 금요일 오후에서야 주말 오전 한나절 산행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신 교수에게 연락하니 OK이다. 급히 몇 사람에게 연락해 보니 일단 산행조가 짜인다. 번개산행이다.
◎ 제석산
봉선동에서 근 20년을 살았다. 대각사 뒷산이 있어 살기 좋은 동네이다. 애들이 어렸을 적엔 김밥과 휴대용 자리를 싸들고 더위를 식혔고, 언제부터인지 애들이 싫어하자 주로 혼자 수도 없이 많이 올랐던 산이다. 초창기 오솔길 같은 능선길이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신작로 마냥 넓어졌다. 산 주위로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서고, 등뼈에는 잘라 도로를 내며 큼직한 아치형 구름다리가 생겼고, 구명을 뚫어 터널까지 만들어졌다. 산이 신음한다. 웅장한 중장비의 칼끝에 놀란 산이 이제는 시도 때도 없는 자동차행렬과 산을 짓눌러 대는 인파에 시달린다. 그래도 소나무가 예전보다 울창해진 것을 보니 역시 산은 군자처럼 어른스럽기 만하다.
◎ 산행
토요일 아침 10시 정각. 우산을 준비하고 동아여고 정문 앞에 도착한다. 일행 모두가 약속시간에 정확하다.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지만 언제 쏟아질지 모를 정도로 일기가 험악하다. 가랑비가 내리는 듯 하기도 하고, “비가 와봐야 10분이면 하산하는데 뭘!” 장담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동아여고 정문 주차장에서 출발은 수십 년 된 잡목으로 우거져 그늘진 오솔길이다. 5분 만에 숭의중학교 담벼락이 나오고 쪽문이 보인다. 가랑비가 제법 굵어진다. 일행 모두 우산을 받쳐 든다. 잠시 나무계단 길을 오르면 제1차 쉼터이다.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지만, 무등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때문에 좋아하는 곳이다.
잠시 허리굴리기 기구를 타보고는 출발이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다. 믿을 수 없는 일기예보를 탓해보지만, 무슨 소용 있나?
5분 거리에 있는 정자에는 이미 비를 피해 있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또 쉬자고?” 이경운 교수의 물음에, 대답은 명쾌하다. “비가 쉬든지 우리가 쉬든지-”
우산 쓴 산보는 계속된다. 약수터에서 한 바가지씩 약수를 마시고 또다시 행군이다. 벼가 한창 자라는 논을 건너 꽃뫼(花山) 마을 뒷산으로 들어선다.
동아여고 뒷산은 광주 동구지역이고, 이곳은 광주 남구지역이다. 오랜만에 찾은 곳이지만 생소하지 않고 정겹기만 하다.
대각사에서 오른 길과 만나는 3거리에는 정자도 있다. “帝釋亭”이라는 간판도 붙어 있다. 일기가 좋았더라면 주말 산보 인파가 물결칠 텐데, 오늘은 사람 보기가 쉽지 않다. 장마빗 속에 산에 온 사람이 이상할 정도니까, 당연하겠지. 제석정에 두 분의 할머니가 누워서 오순도순 대화를 하다가 우릴 보고 일어나 삶아 온 감자와 참외를 건네준다. 85세라는 할머니, 우리 어머님과 동갑인데, 매우 건강하시다. 쬐끄만 배낭을 들쳐 메고 그냥 내달리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봉선동에서 주월동으로 건너는 구름다리를 건너 하산하기로 했다. 비가 너무 거세기 때문이다. 문성고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몇 년 사이 많이도 변했다. 새 아파트가 문성고 정문입구까지 파고 들어섰다. 살기 좋은 동네라고 막 지어대는가 보다.
쉬엄쉬엄 노닥거리다 보니 12시가 다 됐다. 점심은 해야지, 그래도 산행인데-.
장 교수님이 추천한 “황룡강 메기탕”집, 누추한 장소지만 메기탕 맛은 베리 굿이다.
2009. 7. 11. 이 철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