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메, 빈내오름, 큰바리메(2009.02.14 토)
어제는 태풍 같은 강풍이 불어 하늘길과 바닷길이 끊겨 육지 나들이에 차질을 가져 온 날이었다. 소식에 의하면, 들불축제장의 텐트 40동이 쓰러지고 찢겨 하루 일정이 취소되고 일부는 다음 날로 연기되었다고 하였다. 중국 북경에서 하루 일정을 시작 했어야 할 이어도님도 출국을 일주일 미루어졌다고 한다. 바람으로 정신없었지만, 금주 며칠 동안은 봄기운을 느낄 정도로 따듯한 날이 이어졌다.
약속 장소엔 뚜벅이님 내외, 선달님 내외, 이어도님, 하시장님, 사관님, 그리고 나 이렇게 여덟이 모였고 두 대의 아반떼에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평화로를 달리면서 차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강풍과 들불축제에 대한 것, 그리고 어린이 집 여교사 사건에 대한 것들이었다. 오늘은 들불 넣기엔 안성맞춤인 날씨가 될 것 같다는 예측들을 내 놓았지만, 저녁때 들불 행사에 참가 하겠다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 물론 주말 저녁 스케줄이 있겠지만, 그것 보담 들불 행사 후 귀가 길의 고생 스런 기억 때문이었다.
새별오름 앞을 지나며 행사장을 살폈더니 어제의 강풍 피해를 복구하노라 부지런히들 움직이는 모습들을 뒤로하며 화전동 입구 굴다리를 지나 왕이메 기슭에 연이어진 방목장 입구에 도착하여 등정하였다. 왕이메 등정 코스는 ‘정상 서쪽 능선길-굼부리-남쪽 능선길-수직굴-정상’으로 정하였다.
왕이메 정상 서쪽 능선을 따라 내려와 신비스런 굼부리 속으로 들어갔고, 굼부리 동쪽 사면의 복수초 군락지를 찾아 노란 복수초의 개화 정도를 살폈는데 아직 이곳은 일렀다. 한라수목원과 절물 쪽에는 경쟁적으로 피어나고 있어 몇 장을 디카에 담아 왔었다.
기온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곳이라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굼부리 서쪽 사면을 올랐다. 이곳은 아침 햇빛을 받는 곳이라 변산 바람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고 그 고운 모습을 사관과 함께 디카에 담았다.
능선에 올라 차 한잔의 휴식을 취한 후 수직동굴 두 군데를 거쳐 정상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넓은 굼부리와 주변 경관을 보며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정상에 서면 삼형제오름, 영실의 병풍바위, 그 너머로 한라산 정상을 볼 수 있으며 남쪽으로는 군산, 산방산까지 조망 할 수 있다.
왕이메는 주봉을 중심으로 등허리를 돌아가며 크고 작은 봉우리로 이어져 커다란 산체를 이루고 있으며, 산굼부리와 흡사한 깔데기형의 커다란 원형 분화구와 화구 주위에 자그마한 굼부리로 이루어진 복합형 화산체이다.
조천읍의 산굼부리가 한라산 동부산록의 대표적인 분화구라 한다면, 왕이메의 분화구는 한라산 서부산록을 대표할 수 있는 분화구로서 그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그 깊이는 101.4m 이다.
‘오름나그네(김종철)’에 의하면.
탐라국 삼신왕이 이곳에 와서 사흘동안 기도를 드렸다고 하여 오름 이름을 왕이메라 했다고 하며, 한자 표기로는 王伊岳(왕이악), 王伊山(왕이산), 王岳(왕악), 王臨岳(왕림악) 등으로 하고 있으며, 소가 누운 것처럼 낮게 퍼진 형태라 하여 臥牛岳(와우악) 또는 臥伊岳(와이악-와이오름)이라는 별칭도 붙여 졌다고 하였다.
화구에는 암메창 또는 베리창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움푹 팬 것(굼부리)을 山西(산서) 사람들은 보통 암메 또는 암메창이라고 부르며, '창'이란 밑바닥을, '암메'란 숫오름에 대한 암오름이라는 뜻이라 하고 있다.
왕이메 정상을 내려와 한라산 첫 마을로 알려 졌던 솔도(화전동)로 향하였다.
옛 어도초교 화전분교 앞에 주차하고‘옛 배움의 터’표지석을 살 펴 봤다.
솔도 학구민의 노력에 의해 1969년에 개교한 어도초교 화전분교는 1988년 폐교 할 때까지 1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화전 분고 맞은편 뚝이 있는 넓은 밭을 가로질러 빈내 오름을 올랐다.
빈네오름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두 봉우리가 남서쪽으로 침식되어 이루어진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다. 남사면은 가파르고, 서사면은 완만한 편이며 넝쿨성 가시 식물과 잡목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오름 이름은 오름 봉우리 바위가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한자 표기는 비녀釵(채)자와 비녀簪(잠)자를 써서 채악(釵岳) 또는 잠악(簪握)으로 표기하고 있다.
정상인 비녀 바위에서 간식을 하며 다음 행선지를 의논하였는데 나인브리지골프장으로 둘러쳐진 이돈이 오름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바리메로 정한 후 바위 아래 동굴을 보며 하산하였다.
큰바리메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등정 준비를 하며 변해 버린 오름 기슭 분위기에 한마디씩 하였다. 편리함에는 이이가 없으나 너무 자연환경을 해친 기분이 들어 씁쓸하였다. 주차장으로 정비된 이곳은 넓은 태역 밭(제주 잔디 밭)으로 양탄자를 밟는 것처럼 푹신하여 아이들이 뒹글며 놀기 좋은 곳이었고, 들꽃이 피어나는 꽃밭이었다. 이제는 분홍빛 타래난초의 고운 자태를 이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겠다고 투덜대며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올랐다.
오르막을 오르기가 힘이 들었다. 쉬며 오르다 보니 일행과 떨어져 혼자 정상에 도달하기 직전에 뚜벅이님께서 전화해 주셨다. 북쪽 봉우리에서 굼부리로 향하고 있다고 하였다.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돌고 있었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내리는 능선길에서 일행과 조우 하였는데, 들개가 있어 위험하니 혼자 가지 말고 뒤돌아 가자고 겁을 주신다. 혼자 갈려면 스틱을 들고 가라고 하며 챙겨 주는 배려가 고마웠다.
북쪽 낮은 봉우리에 도착하니 희고 우람하게 생긴 잡종개가 떡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엔 소름이 끼쳐 주저하였지만 내가 강하게 보여주어야 저놈이 도망갈 것이라 생각하며 다가 갔지만 녀석도 내 눈치를 살피고는 경계를 늦추는 자세라 안심하였다. 들개가 아니라 주인 잃은 놈이라 생각되었다. 이런 놈이 제 집을 찾아가지 않게 되면 들개가 되는 것이리라. 갈래길에서 일행을 만나 함께 하산하였다.
큰바리메는 원형분화구를 가진 오름으로 분화구를 에워싼 남과 북의 두 봉우리 중 남쪽 봉우리가 정상이고, 원형분화구의 깊이는 78m, 바닥 둘레는 130m 정도로 넓으며 물이 없다. 굼부리 바깥 둘레는 800여미터 쯤 된다.
‘오름나그네(김종철)’에 의하면,
산모양이 중이 사용하는 그릇인 바리때를 닮았다하여 발산(鉢山), 발이악(發伊岳)이라 표기하였고, 국립지리원 지도나 관광지도 등에서도 거의가 '발이오름'으로 표기되고 있다. 옛 문헌에는 발산(鉢山) 또는 발악(鉢岳)으로 되어있다고 하였다.
* 왕이메 : 표고 612.4m 비고 92m. 안덕면 광평리 산79번지
* 빈네오름 : 표고 658.6m 비고 93m. 애월읍 봉성리 산5-2번지
* 큰바리메 : 표고 763.4m 비고 213m . 애월읍 어음리 산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