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 인생(49)
(시)
동네 목욕탕 구내 이발소 박씨(1)
송현(시인)
나는 요즘도 동네 목욕탕에 다닌다.
목욕비 3천원도 마음에 들고
이발과 염색 다 해주고 만 이천원 받는 것도 마음에 든다.
우리 동네에 이런 목욕탕이 문 닫지 않고 있는 것이 참 좋다.
엔간한 손님들은 오래 전에 시설좋은 싸우나로 다 떨어져나갔고,
나 같은 촌놈들과 목욕비 아끼려는 가난한 사람들과 노인네들 때문에 문을 못 닫지 싶다.
나날이 치솟는 기름값을 당할 수가 없어
태양열 보일러로 바꾸는 공사 하느라고 한 달간 임시 휴업을 했다.
그 바람에 한 달간 나는 샤워만 하고 때 한번 제대로 못 밀어
내 등짝은 까칠까칠 해지고 내 머리카락은 많이 자랐고
흰머리가 많이 올라와 백발이 다 드러났다.
오늘 나는 목욕탕에 가자마자 벌거벗은채로 구내 이발소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이발소 박씨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그 동안 무슨 속상한 일이라도 있었냐고 물었더니
그 동안 중환자실에서 마누라 간호를 하였는데 지난 주에 죽어 장사를 지냈다고 했다.
이럴 때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삼가 조의를 표한다고 할 수도 없고,
입으로만 안됐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참 난감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바람에 분위기가 더 어두워졌다.
박씨는 신문지로 만든 턱받이 가운을 내게 씌워놓고
평소대로 구석에 돌아서서 염색약을 타기 시작했다.
동성제약에서 만든 대한민국 최초의 머리 염색약
대한민국 염색약 중에서 가장 싼 양귀비병을 따서
플라스틱 컵에 붓고 천천히 비눗물을 젖고 있는
박씨의 뒷모습이 한없이 처량해 보였다.
나는 박씨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박씨는 양귀비와 비눗물을 섞어 천천히 저으면서 혼자말처럼 말했다.
--바보같은 여자였습니다. 밤낮 나보고 술 많이 마시지 마라, 담배 많이 태우지 마라.
고기 많이 먹지 마라고 걱정하면서 자기 몸 망가지는 줄 몰랐고 자기 몸은 조금도 챙길 줄 몰랐던 바보같은 여자였습니다.
숨 거두는 직전까지 내 몸 걱정만 하였습니다. 나같은 놈 만나 일생동안 아둥바둥 고생만 하다가 갔습니다.
정작 죽어야 할 사람은 납니다. 내가 죽일 놈입니다.
박씨 어깨가 움찟 움찟 들썩이더니 마침내 짐승처럼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가 하려던 어떤 위로의 말도 다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눈물로 하는 것이다.
내 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200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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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목욕탕 구내 이발소 박씨(2)
송현(시인)
가을비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 오후에 동네 목욕탕에 갔다.
마누라 죽고 홀애비가 되어 그런지 그새 박씨가 많이 수척해보였다.
갑자기 내 마음이 우울 모드가 되어 고해성사 하듯 하나하나 벗었더니
마침내 한 많은 알몸이 되었다.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가 많아 그런지,
몸에 때가 많아 그런지
아니면 내 물건이 시원찮아 그런지 나는 알몸이면 언제나 부끄럽다.
수척한 박씨 얼굴이 마음에 걸려 탕에 들어가려다 말고
이발을 할까 거울을 보니 아직 할 때가 멀었다.
그러면 염색이라도 해야지 하고 다시 거울을 보니
그것도 아직 때가 멀었다.
털레털레 목용탕 안으로 들어갔다.
주말 오후라 그런지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군가 쓰다 버린 1회용 면도기를 주워서
뜨거운 물에 두어번 헹구고 면도를 하니
텁수룩했던 내 꼴이 영 딴 사람처럼 말끔해졌다.
내 마음도 1회용 면도기로 말끔하게 밀어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덕지덕지 때가 쩔은 내 마음을 싹 밀어버리고 태연하게 다니면
글쎄, 누가 알까.
그때 박씨가 발가벗고 들어왔다.
간이 청소를 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부탁도 안했는데, 다짜고짜 내 등을 밀기 시작했다.
그리움과 외로움이 켜켜이 쌓여 그런지
나 몰래 그리움과 외로움을 밀고 있었다.
내 등을 자기 등처럼 하염없이 밀고 있었다.
박씨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나는 몰랐고
내 눈에 눈물이 흐르는지 박씨도 몰랐다.(2008. 9. 20)
첫댓글 배우자가 얼마나 소중한지 저도 이제 조금 알것 같지만,
박씨 아저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납니다.
옆에 있을때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에 있어서의 배우자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 효용성을 떠나 같이 한 평생을 같이 걸어가줄수있는 사람이 내 옆에서 잔소리 해주는 남편과 부인외에
또 그 누가 그리 하겠습니까?
다시 한번 옆에서 연속극 보고 있는 남편 얼굴을 쳐다보게 되는군요.
아침 일찍 서둘러서 연화장에 갔습니다.
지난 9월 5일에 유명을 달리한 24세 청년의 마흔 아홉되는 날이라고 해서...
추모의 집은 처음 가보는지라 그리움에 짤막한 엽서를 써 가지고 가서 부스에 꽂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음료캔 두어개와 과자와 포를 올리고 박씨 눈에 눈물이 나듯
그러케 하염없이 .............
모두 모두 있을 때 잘하자구료.
안 그래도 아픈 남편 출장 보내고 마음이 좀 그런데....이 시 보니 울컥해요~~ㅇ
살다보면 너무 편해져서(?) 무관심해질때가 있는것 같아요
표현하지 않아도 내마음을 알것이라는 짐작으로 서로에게 소홀해지지는 않았는지
내눈에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지 않게 있을때 잘 챙겨주어야 겠어요..
울신랑 넘~잘해줘서...그래서...가끔은 어린아이처럼 삐뚤어지고 싶을때가 있어요.
반성합니다~~
잔잔한 싯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짠해집니다~마음이 젖어듭니다.
생에 제일 고귀한 선물 잘 챙기세요! 저도 선물 좀 다시 보아야겠어요*^^*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노랫말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