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디자이너 부부가 성북동 언덕에 개조한 집
삶의 질에 가치를 두는 현대인이 늘면서 내가 꿈꾸던 집을 직접 짓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주택은 단순한 거주가 아닌 삶의 가치를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부부의 신혼집, 성북동 2층 주택
한달 전에 결혼식을 올린 김건우(35)·임성민(32) 부부는 둘 다 디자이너다. 남편 김씨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남성 의류숍을 운영한다. 아내 임씨는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 디자인숍의 대표.
신혼집인 성북구 성북동의 2층 주택은 두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해외에서 오래 일한 남편 김씨는 지난 2010년 서울에 정착한 이후 줄곧 “아파트가 아닌 내 집을 짓고 살겠다”는 꿈을 꿔왔다. 꿈을 쫓아 수년간 주택 부지를 보러다녔다. 기왕 지을거면 전망이 좋은 곳, 도심과 가깝지만 한적한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지난 2013년 4월 성북동 주택가에서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경매에 나온 연면적 68평(226.75 ㎡)짜리 노후 주택을 발견했다. 김씨는 “발품을 팔아 여러 집을 다녔기 때문에 경매에 매물이 나왔을 때 한번 보고 이집이라고 결정했다”고 했다. 집이 자리잡고 있는 성북동 길상사 주변 주택가 시세는 평당 2000만원대.
디자이너 김건우·임성민 부부의 성북동 단독주택 리모델링
기왕 지을거면 전망이 좋은 곳, 도심과 가깝고 한적한 곳을 찾았다
디자인·설계에 5개월이 걸렸다. 2013년 9월부터 2014년 11월까지 1년 2개월간 공사를 했다. 기본 골조만 남기고 거의 다시 만들었다. 공사비는 4억5000여만원(부가세 미포함). 지하 1층은 주차장과 창고로 쓴다. 지상 1층과 2층은 각각 31평(104.83㎡)이다.
마당은 40~50평 정도 크기이지만 기울기가 들쭉날쭉하다. 성북동 주택가는 남쪽의 햇빛이 잘 들어오는 지역, 그 중에서도 편평한 마당이 있는 부지가 비싸다. 그러나 김씨가 매입한 주택은 경사가 심한 언덕에 있다. 그래서 들쭉날쭉한 마당에 흙을 덮고 그 위에 나무로 테라스를 만들었다. 경사진 땅을 반듯하게 만들어 쓰고 있는 것이다. 마당에 캠핑 의자를 두고 앉아 책을 읽거나 맥주를 마신다.
2층 테라스에서 바라본 마당
마당의 축대를 이용해 만든 작은 벤치/사진=무회건축
옆집과 마주하는 경계는 높은 축대다. 축대와 테라스를 활용해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를 만들었다. 기타 연주를 즐기는 김씨는 이 벤치를 가끔 무대로 쓴다. 이 벤치에 앉아서 기타를 치면 테라스에 있는 사람들은 청중이 되고, 축대는 공연장이 된다.
주방의 싱크대는 국내 맞춤가구 전문점 우림퍼니처가 수 개월에 걸쳐 제작한 제품이다. 스테인레스를 똑같은 크기로 잘라서 용접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디자이너 부부답게 조명과 가구도 까다롭게 골랐다. 사진은 덴마크 조명업체 루이폴센의 아티초크라이트.
김씨와 임씨 부부의 집은 길과 수평인 방향으로 길다. 위에서 보면 도로를 따라 길다랗다. 직사각형의 집 구조는 단순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으로 응접실 겸 주방이 나온다. 주방과 식당이 뚫려있어 주방에서 부부가 요리를 하면서 3미터 길이의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집 구조보다 가구와 디자인 소품들이 더 눈에 띈다. 주방 싱크대 문은 누가봐도 작품 수준이다. 맞춤가구 전문업체가 3개월 동안 스테인레스를 동일한 크기로 일일이 잘라 스테인레스 판에 다시 용접하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 없는 스타일의 주방가구를 만들어보자는 건축주와 우리 생각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주방 천장에는 창호살을 연상케하는 나무로 만든 구조물이 있다. 이 집을 설계·수리한 무회건축이 직접 손으로 짠 것이다. 구조물에 숨겨놓은 조명이 은은하게 흘러나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낸다.
단단하게 생긴 주방 테이블은 이탈리아의 유명 가구회사 제품이다. 집안 곳곳에는 가죽으로 만든 트레이(물건을 수납하는데 쓰이는 납작한 쟁반)가 놓여있다. 아내 임씨가 직접 만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꽃을 생각나게 하는 조명이 늘어뜨러져 있다. 유명 덴마크 조명회사의 제품이다.
2층 거실에는 조명이 없다. 낮에는 햇빛이 있어 밝지만 저녁에는 어둡다.
부부의 침실에는 침대 1개와 작은 조명 1개만 달랑 놓여있다. 김건우씨는 '잠만 자는 곳이라 생각해 조명을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저녁시간대에 마당에서 바라본 집. 아직 집 안에 가구를 들이기 전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무회건축
주택 2층 야외. 저녁시간대에 마당에서 바라본 집. /사진=무회건축
마당에서 바라본 주택 공사 전(위)와 공사 후(아래) 모습. /사진=무회건축, 이덕훈
2층은 침실과 옷방, 그리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거실이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조명을 켜달라고 했더니 “조명이 없다”고 한다. 김씨는 “침실은 정말 잠만 자는 공간이라서 작은 스탠드 하나만 뒀다”며 “거실도 햇빛이 들어오면 들어오는대로, 어두워지면 어두운대로 생활한다”고 했다. 201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