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아름답다
오세영
아름답구나
호수 루이스
에머랄드 색깔이라 하지만
어찌 보면 고려의 하늘색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이육사의 청포도색 같기도 한 너의
눈빛,
살포시 치켜뜬 자작나무 속눈썹 사이로
꿈꾸듯 흰 구름이 어리는구나.
태고의 만년설로 면사포를 해 두른 너 로키는
지구의 정결한 처녀,
내 오랫동안 이를 믿어왔거니
그 청옥한 눈매가
그 무구한 눈짓이
바로 병색임을 내 오늘 알았노라.
모든 독을 지닌 것은 아름다운 것,
모든 침묵하는 것은 신비로운 것,
산성비에 오염된 호수에서는
아무것도 살지 못한다.
결핵을 앓는 소녀가 아름다워지듯
아마존에서, 킬리만자로에서
폐를 앓는 지구는 더 아름답다.
박명한 미인처럼 아름답다.
오월
오세영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부신 초록으로 두 눈머는데
진한 향기로 숨막히는데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푸르디푸른 이 봄날,
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
가시를 품었습니다.
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자꾸만 손짓을 하고
슬픔
오세영
비 갠 후
창문을 열고 내다보면
먼 산은 가까이 다가서고
흐렸던 산색은 더욱 푸르다.
그렇지 않으랴,
한 줄기 시원한 소낙비가
더렵혀진 대기, 그 몽롱한 시야를
저렇게 말끔히 닦아 놨으니.
그러므로 알겠다.
하늘은 신(神)의 슬픈 눈동자,
왜 그는 이따금씩 울어서
그의 망막을
푸르게 닦아야 하는지를,
오늘도
눈이 흐린 나는
확실한 사랑을 얻기 위하여
이제
하나의 슬픔을 가져야겠다.
카페 게시글
우리들의 이야기
지구는 아름답다 - 오세영
김리테
추천 0
조회 11
25.02.12 10:47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