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고양이로다 /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香氣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금성> 3호(1924. 5)
한국시의 모더니즘의 출발은 이장희의 시부터라고 볼 수 있다. 1924년에 발표된 이 시는 서구의 모더니즘' 시운동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자생적 모더니즘의 경향을 띠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감상적 낭만시가 주조主調를 이루던 1920년대 초에 주정主情을 제거하고, 신선한 감각과 이미지로 생동감 있는 봄의 이미지를 고양이를 통해 날카롭게 그렸다는 사실은 오늘날 보아도 놀랄 일이다. 물론 이 시는 문명 비판이나 내면 의식의 깊이까지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완벽한 구조적 통일성과 즉물적卽物的이고 감각적인 표현은 당시 시단에서 하나의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고양이의 각 신체 부분의 특성과 봄의 이미지를 대입시켜 제목과 같이 <봄은 고양이로다>라는 완벽한 시의 구조를 이루어내고 있다. 한편 시의 각 연을 '~도다, ~아라'의 영탄적 어미로 끝맺어 각운의 음악적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