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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역사관(3조)
기독교 세계관
디자인학과 20032834 남현우
회 화 과 20073376 박향미
경 영 학 과 20101488 박형준
▻ 서론
역사철학에 대한 정의는 너무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한권의 책에 다 분석하고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G.M. Young)은 이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수 많은 역사철학이 존재한다. 그 모든 것은 인류 역사에 아직도 해명된 논쟁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적으며 여전히 대부분의 논쟁이 불완전하게 알려져 있다는 사실 그리고 타당한 추론을 내리기 위한 자료가 없다는 사실에 의해 파괴되어야 하리라" 그리고 또한 역사에 대한 공정한 객관성을 가지고 정의하는 것도 역사가의 능력의 밖의 일임을 미국의 사학자 베커는 표현하고 있다. "객관적이 되고자 하는 의지 조차도 그 자체가 빈번히 열정으로 변하고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사실을 창조해 내는 하나의 목적 의식이다.". 일반적인 역사관과 기독교 역사관과의 관계를 비교 검토하므로 기독교인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확립하고자 한다.
▻▻ 비기독교사관의 발전과 유형들
1.역사의 정의
역사는 과거에 있어서의 인간의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그 대상은 직접 우리들이 지각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기록문서, 즉 사료를 매개로 하여 인식된다. 사료는 문헌사료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남은 모든 것이 사료이다. 역사는 인간의 자기인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자신을 아는 일일 것이다. 이 말은 자기의 개인적인 특수성을 아는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본질을 안다는 의미이며,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를 아는 것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은 이를 시도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가능성을 아는 유일한 길잡이는 과거에 있어서 인간이 무엇을 해왔는가라는 점에 있다. 따라서 역사의 가치는 인간이 무엇을 해왔는가, 그리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역사관의 정의
역사관은 간단하게 정의하면 '역사의 발전 법칙에 대한 체계적인 견해' 로, 사관이라고도 하며 다양한 역사관이 존재한다. 역사관은 역사가의 역사에 대한 이해, 해석원리, 가치관, 관념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역사관은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상과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역사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관은 역사연구에 의해 확인되고, 발전하게 된다.
3.역사관의 종류
동양에는 이러한 역사관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서양의 경우 역사관은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겪는다. 고대에는 순환사관, 중세에는 종교사관, 르네상스 이후 근대에는 앞 시대와는 달리 헤겔과 마르크스 등 많은 사관이 등장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학보다는 인간을 중시했기 때문에 종교사관에서 벗어나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렇듯 사회상에 따라 역사관은 달라질 수 있다. 또한 19세기 이후 서양의 영향을 받은 동양 또한 여러 사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1)순환론적 역사관
신화가 역사를 대신 했을 때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과거에도 같은 유형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역사를 회전하는 바퀴로 보았다. 예를 들어 모든 인류의 역사는 탄생-성장-발전-소멸의 단계를 계절 주기처럼 반복한다. 이는 농업사회에서 역사를 자연의 일부로 이해하는 형태였다.
베빙톤(David Bebbington)은 순환적인 역사관을 논하면서 그리스, 로마 철학들의 견해와 역사가들의 견해를 구분하여 순환사관에 대한 정의를 시도했다. 그의 주장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은 인도나 중국같은 동양의 순환론에 익숙해 있었다는 것이다. 역사의 순환론적인 이해는 고대 철학자들이 가진 역사 개념의 근간이었다. 주기적인 파괴와 재생의 과정에 대한 신념은 또한 스토아학파의 원색적인 교리형태로 계승되었다.
2)진보론적 사관
진보적인 사관은 역사에 하나님의 개입을 몰아내었던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에서 부터 일어났다. 히브리적 기독교사관의 세속화 형태하고 볼 수 있어서 최종의 시한을 향해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직선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발전되어 왔다는 것이며 미래에도 발전되어 간다는 개념으로, 동일 혹은 유사한 과정을 밟아 역사가 흥하고 쇠퇴하는 순환개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역사는 발전한다는 사상이다. 그것은 기술이나 물질적인 조건의 발전 뿐만 아니라, 지적 도덕적 면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보사관에서는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없다. 역사는 자체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스스로 더욱 밝은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스스로 성인이 되어가는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성인이 되어가는 역사 속의 인간들은 스스로 더 큰 자유를 얻게 되는 역사의 주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3) 역사주의적 사관진보사관과 마찬가지로 18세기에 대두된 역사주의의 중심은 문화가 역사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상이다. 이것은 역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집단의 관습과 신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와 분리시켜서 역사를 해석할 수 없다. 이 사상은 프랑스와 영국에서 일어난 진보사관에 대한 반대극복의 개념이었다. 역사주의는 역사가 직선적인 아니라 역사의 중심은 각 민족이 각자 가지고 있는 특유의 문화를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것이다.
4)마르크스주의 사관
마르크스주의 사관은 유물론적 역사관으로 역사의 과정은 노동자들의 기본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진행된다는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이란 용어는 엥겔스에 의해 시작되었고, 이 말은 물질적인 조건이 인간의 역사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물적인 것만 만족시킨다면 역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된다고 보았다. 여기에 도덕적인 판단 가치등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도덕론은 노동자에 대한 계급억압의 수단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가 완전히 도래하기 전에는 역사에 있어서 도덕적인 판단은 비객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 진리에 대한 부정론에 이르렀고, 역사평가에 있어서 도덕적인 기준은 남기지 아니했다. 역사진보의 특징은 생산의 달성정도에 의해 측정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절대정신은 존재하지 아니했고 이는 서양기독교의 신인식을 유배시켰다.
5)관념론
흔히 실제의 일을 고려하지 않고 머리 속에서만 생각하며 여러 가지로 주장하는 것을 관념론이라고 하는데, 철학에는 세계관과 인식론이라는 두 연구 분야가 있으나 이러한 분야에서 마음·정신 또는 의식과 자연·물질과의 관계가 논의되고 있다. 이 경우 마음·정신·의식 쪽에 중점을 두고서 철학설을 주장하는 것이 관념론이다. 그래서 세계관으로는 마치 종교에서 신이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하듯이 정신에 의해 세계가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관념론은 마음·정신이 세계를 형성하는 기초라 하여 유심론이라든가 비물질론이라고도 한다. 또한 사물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세계는 의식에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환영설이라고도 한다.
6)실증주의
감각 경험과 실증적 검증에 기반을 둔 것만이 확실한 지식이라고 보는 인식론적 관점이자 과학 철학이다. 실증주의적 접근법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서구 사상사에서 논의가 되풀이되던 주제였고, 19세기 초에 콩트에 이르러 이 개념이 발전하였다. 콩트는 계몽주의 사상가에게서 비롯된 과학 철학의 접근법을 취하여 과학적 방법이 사상사에서 형이상학을 대체한다고 보았으며, 과학의 이론과 관찰이 서로 의지한다고 보았다. 사회학의 실증주의는 나중에 에밀 뒤르켐이 사회 조사의 기초로 확대하였다. 20세기 초 논리 실증주의가 빈에서 발흥하여 영미권 철학과 해석적 전통의 주류를 차지하였다. 논리 실증주의는 형이상학적 추론을 버리고, 진술과 명제를 순수한 논리로 환원하였다.
7)한국의 역사관(식민사관, 민족사학)
-식민사관은 일제강점기 한국인에 대한 통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일제에 의해 정책적 · 조직적으로 조작된 역사관을 말한다. 대체로, 한민족을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 지배되어 왔고 스스로 자립할 능력이 없는 정체된 민족으로 부각시켜 일본의 한국 병합을 정당화하였다. 종종 민족사관과 대비되는 말로서 인식된다.
-민족사학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에 대항하여 한민족의 우수성과 자율 주체적인 발전을 강조하고 민족사의 기원을 밝힌 국사학의 한 이념으로서 운동적 성격이 강하다.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 역사관으로서의 성격과 함께 국수주의 재야사학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근대적인 국민 개념에 입각한 역사관으로 신채호 이래 독립운동기의 학자들과 20세기 중반 군사정권의 조국근대화 시기에 국민 만들기에 동원된 학자들로 양분할 수 있다.
▻▻▻ 기독교적인 역사관
1.기독교 역사의 정의
역사를 해석하는 기독교적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의 전개과정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 또는 역사학이란 학문에 기독교적 관점을 부여하는 의미이다. 생소한 관점으로 보일지도 모르고, 또한 이런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여기서 이러한 관점이 과연 타당한 관점인가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현대 기독교 역사관
베빙톤은 기독교적인 사관의 3가지 전제론적 신념을 말하고 있다. a. 하나님이 직접 역사에 관여한다는 사실,
b. 역사를 일직선으로 이끈다는 것,
c. 역사는 계획된 종점으로 행한다는 것이었다.
1)구속사관
성서에서 증언된 하느님의 모든 행위의 역사로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 18세기에 만들어졌고 19세기에 사용되었다. 이 신학자들은 F.E.슐라이어마허가 신학을 종교적 감정에 근거해서 세우려고 시도한 것을 거부하고, 성서적·역사적 계시의 우위성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구속사라는 말은 아주 반대되는 2가지 신학적 견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① K.바르트와 그의 추종자들은 이 말을 성사의 사건들, 즉 성육신과 구원 등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하였는데, 이러한 사건들은 초역사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세속적 역사로는 접근할 수 없으며, 단지 신앙으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이들 신학자들이 복음서에 기록된 사건들의 역사성 문제를 아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게 하였으며, 역사적인 실증주의의 압력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이 견해에 대한 비판자들은 일종의 20세기의 그리스도 가현설로 간주했다.
②계시와 구원의 전체 역사는 현실역사의 실제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는 바로 이 현실역사의 중심이며 정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신약의 모든 개개의 요소가 다양성으로부터 선재에서 재림에 이르는 그리스도 사건의 일관된 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고 본다. 이 견해는 성서에 기록된 증거들에 의미를 주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라는 것이며, 신앙은 성서에 기록된 역사적 내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행위를 증거함이다.
2)섭리사관
대상 29:11~12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사하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서 속사하오니 주는 높의사 만유의 머리심이니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사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기독교 역사관이란 단 지 역사가 신의 섭리에 의하여 인도 된다는 것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인류의 삶 속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이다. 피조세계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하느님이 주권적인 섭리 하에 일어나고 있다.
3)목적론적 사관
롬 11:36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감이라”
이 목적론적 사관은 히브리인의 역사 이해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창조에서 종말에 이르는 시간적 연속에 대한 성경의 계시는 뚜렷한 역사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사상의 형태로 발전되었는데 이것은 기독교적 이념의 세속화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역사란 하나님이 설정하신 목표를 향한 진보의 과정으로 믿기 때문에 역사에서의 의미를 찾는데 이것은 인간의 타락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 결론
기독교적 역사관은 창조와 진행과 종말이라는 삼각 관계 속에서 시작과 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사람들의 통속적인 개념인 역사라는 표현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세속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이원화하지 하니 아니하고, 타락한 후에 파생된 기현상이며 타락 이전에는 이러한 구분이 없이 전체의 창조역사가 하나님의 나라였다. 하나님의 구속은 기독교적 역사관의 중심을 이루며 피조세계와 인간의 모든 영역 미치는 구원의 사역이었다. 기독교적 역사관에는 이런 의미에서 이원론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은 분명히 환상적이고 피안적인 소망에서만 그것의 시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현 역사 속에서도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총체적인 기독교적인 하나님 나라의 사관을 외면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구속의 의미를 많은 사람들이 극히 좁은 의미로 이해해 왔다. 속죄의 개념을 개인의 영혼에만 제한 시켰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인류 역사의 전부를 구속하는 사역이었다. 기독교적인 사관은 바로 이러한 총체적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섭리하시는 하나님 나라 회복의 역사이다
◈참고문헌◈
- 기독교문화연구원「기독교 세계관」, 글누리, 2007.
- <역사관의 유형들>, 데이빗 배빙턴, IVP, 1997
- 위키백과사전 http://ko.wikipedia.org/
-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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