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는 육체를 학대하면서 웃음을 준다. 그는 <덤 앤 더머>를 찍다 말고 뒤돌아 공중제비를 하면 재미있겠다며 매트 한 장만 깔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에서는 스스로 자기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며 자기가 자기 뺨을 때린다.
<에이스 벤추라>와 <덤 앤 더머>, <마스크>가 한꺼번에 개봉된 1994년. 짐 캐리(38)는 아버지를 묘지에 묻으면서 아버지 가슴 속에 종이 한 장을 함께 넣었다. 일을 얻지 못해 파산 상태에 이르렀던 7년 전 성공할 날을 상상하며 혼자 써 둔 1천만 달러 짜리 수표였다. 아버지가 죽기 4일 전 그는 아버지에게 <마스크 2>의 출연료로 1천만 달러를 받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프로젝트는 나중에 무산됐지만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캐리의 아버지는 불행히도 아들의 성공을 함께 기뻐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캐리의 아버지는 좌절한 색소폰 주자였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 받아도 항의 한 번 못 해 본 소심한 남자였다. 2년 뒤 짐 캐리는 <케이블 가이> 출연료로 2천만 달러를 받는 스타가 됐다.
피에로의 눈물
큼직한 이빨을 환히 드러낸 웃음으로 유명한 그는 팍팍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여백의 시간과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안식을 준다. <신부의 아버지>의 코미디 배우 스티브 마틴은 어느 날 캐리에게 전화를 걸어 "<에이스 벤추라>가 내 인생을 구했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고 뭘 먹을 수도 없을 만큼 우울증에 빠져 있을 때 이 영화를 보고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이 캐리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다. 캐리는 <멋진 인생>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평범한 소시민으로 등장해 어떤 영웅보다도 통쾌하게 희망을 얻어 낸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를 모델로 삼아 연기한다. 점잖은 스튜어트와 달리 스스로 자랑해 마지 않는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방귀 소리'로 객석을 휘저어 놓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캐리는 육체를 학대하면서 웃음을 준다. 그는 <덤 앤 더머>를 찍다 말고 뒤돌아 공중제비를 하면 재미있겠다며 매트 한 장만 깔고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에서는 스스로 자기 다리를 붙들고 늘어지며 자기가 자기 뺨을 때린다. 그가 만화 캐릭터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자유자재로 모양이 바뀌는 안면근육을 스크린에 들이대는 순간 관객은 모든 근심을 잊는다. 원맨쇼나 마찬가지인 그의 코미디 영화는 스토리가 필요 없다. 관객은 코미디 배우가 괴로워할 때 웃음을 얻고 주인공이 우연히 쟁취한 승리에 함께 기뻐하기 때문이다. '에스콰이어' 지는 온 몸을 던지는 캐리의 코미디는 평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코미디 뿐이 아니다. 팔다리를 돌돌 말며 입술을 비트는 <라이어 라이어>의 짐 캐리는 오래간 만에 시원한 배설을 끝낸 것 같은 쾌감을 준다. 설명할 수는 없어도 느끼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트루먼 쇼>의 짐 캐리는 설명하기 힘들게 애매한 감정을 싣는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모두 사기극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트루먼이 묘한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 볼 때 그곳에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게 된 비극적인 남자가 있다. 아내와 친구가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트루먼이 애써 평소 같은 미소를 보이려 할 때는 울지 않았는데도 물기가 배어 있다. 항문과 배설과 자학으로 똘똘 뭉친 코미디언 짐 캐리는 이처럼 종종 고통스런 드라마 연기의 가능성을 보인다. '에스콰이어' 지가 <에이스 벤추라>를 매우 다층적인 영화라고 평하는 것은 어린 아이 장난처럼 지저분한 유머와 세상 풍파를 겪은 어른의 흔적을 모두 발견하기 때문이다.
캐리는 실제로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가 처음 무대에 선 것은 열 다섯 살 때였다. 알코올중독자 부모에게서 태어난 어머니는 아프지 않은 때가 거의 없었고 착하기만 한 아버지는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열 네 살 때부터 부모 형제들과 함께 공장 청소부로 일한 캐리는 학교 공부를 따라갈 수 없어 일찍 학교를 그만 뒀다. 얼마 후에는 공장이 문을 닫아 캐리 가족은 자동차 한 대에 엉켜 살았다. 아버지가 마련해 준 노란색 폴리에스테르 양복을 입고 토론토 코미디 클럽 무대에 선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는 병약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거울을 보면서 연습한 코미디를 관객에게 보여 주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10대 소년은 코미디를 통해 분노를 발산하던 시절이었다. 20년이 지난 후에도 캐리는 '프리미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주 어둠과 공포에 대해 생각한다. 내 머리 속에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목마가 하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2천만 달러만큼의 무게
실패작이기는 하지만 캐리에게 가장 의미 있는 영화는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의 일대기를 그린 <달의 남자 Man on the moon>다. 84년 35세를 일기로 사망한 카우프먼은 악명높은 코미디언이었다. 그는 관객을 앉혀 놓고 끝도 없이 시를 읽는가 하면 여자 레슬링 선수를 연기하는 악취미를 과시하기도 했다. 캐리는 천의 얼굴을 가졌지만 그 자신마저도 진실한 모습을 알지 못했던 카우프먼을 당황스럽고 머뭇거리는 연기로 표현했다. 감독 밀로스 포먼은 에드워드 노튼과 케빈 스페이시를 제쳐 두고 캐리를 카우프먼으로 낙점했다. 캐리가 카우프먼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금기를 깨고 항문을 영화에 끌어 들인 최초의 배우라고 자부하는 캐리는 카우프먼과 연기 스타일이 비슷하다. 또 언젠가 캐리는 밤늦도록 깨어 있곤 한다고 털어 놓은 적이 있다. 그 순간만큼은 연기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카우프먼도 사람들이 자신을 항상 코미디언으로만 바라본다는 사실에 염증을 느꼈다. 하지만 캐리는 카우프먼과 달리 진정한 반역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순진한 바보 대신 <케이블 가이>에서 음울한 스토커가 되었을 때 캐리는 그를 보러 왔던 아이들이 극장에서 울어댔다는 부모들의 원성에 시달렸다. 캐리는 당황했고 곧바로 <라이어 라이어>의 착한 아빠가 됐다.
<배트맨과 로빈>에서 캐리와 함께 일한 감독 조엘 슈마허는 "나는 젊은 배우들이 스타가 된 뒤 변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캐리는 다르다. 그는 한 장면을 위해 하루 종일 집에서 연습한다"고 말한다.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의 패렐리 형제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찰리를 연기하기 위해 캐리는 몇 시간이고 혼자 호텔에 틀어 박혀 동작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그의 모습이 편하게만 비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동료 배우 제니퍼 틸리는 "캐리가 일하는 것을 보면 2천만 달러를 주어도 그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캐리는 대사 없이 스크린을 뛰어 다닌 프랑스 코미디언 자크 타티와 근엄하게 관객을 웃긴 무성 영화 시대의 전설 버스터 키튼에 비교된다. 그러나 그에게 2천만 달러를 지불하는 관객은 그가 착한 바보로 남기를 바란다. 그 선을 넘으면 캐리는 2천만 달러를 잃고 코미디 클럽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두 편의 진지한 드라마를 마친 그는 <미, 마이셀프 앤드 아이린>에서 다시 누구나 아는 짐 캐리의 연기를 보였다. 그는 웃음과 눈물을 모두 표현할 수 있지만 두 극단의 감정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남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