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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 일본문화에 충격을 준 한국
yahoo 영어사전
impact [mpkt] 단어장에 추가 1.(…와의) 충돌(collision), 격돌[on, into, against]. 2.끼워넣다, 밀어넣다; (…에) 꽉 채우다[into, in]; …에 충돌하다; <미국> …에 영향[충격]을 주다. 3.(…와) 격돌하다, 세게 부딪치다[on, upon, against]; (…에) (강한) 영향을 주다[on, up .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Japan's hidden history
저자명 Covell Jon Carter 문서유형 단행본 발행처 Hollym 발행일 1993.01.01 청구기호 306.0953 C873k 발행국가 한국 발행언어 영어 서지링크 국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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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탄미 발견 함으로 시작됨
dna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것이 판명 됨으로서 농사 기술이 첨단 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됨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의견
1만 7천년전 것으로 추정.....................
제목: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저자(By): Dr. Jon Carter Covell & Alan Covell
출판사: Hollyn International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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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토쿄에서 아직까지 싫어하는 기색의 주제를 엄밀히 조사한다. .......
일본황실의 감추어진 비밀 몇 지지를 다루고 있다. 고고학 어법분석 기술과 일본고서를 이용하여 일본천황의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임을 밝히고 있다.
This book probes into subjects still frowned upon in Tokyo; it explores a few "skeletons in the imperial closet." A half century ago this subject brought authors to prison or death. Using tools such as archeology, stylistic analysis and Japan's 에스에이acred scriptures themselves, its imperial line is here traced back to Korean origins, its legitimacy established by an iron sword form Paekche (kept inaccessible at Iso-no-Kemi) with a gold inscription, which dates Japan's founding ruler from 369 A.D., rather than orthodoxy's 660 B.C.
probe [proub] 단어장에 추가 1.(…의) (엄밀한[철저한]) 조사, 정사(精査);<미국>(입법부 위원회에 의한 불법 행위•오직의) 적발 조사[into]. 2.…을 탐침으로 찾다, 시험하다; 정사(精査)하다, 탐사하다. 3.(탐침으로) 찾다, 검사하다; (…을) 엄밀히 조사[탐사]하다[into, for, at].
frown [fraun] 단어장에 추가 1.(…에) 눈살을 찌푸리다, 얼굴을 찡그리다[about, at]; (…에 대해) 싫은[언짢은] 얼굴을 하다[on, upon]. 2.눈살을 찌푸려 …을 표시하다. frowning [fruni] 단어장에 추가 1.눈살을 찌푸린, 찌푸린 얼굴의; 불쾌한, 기분 좋지 않은. CONTENTS
PREFACE INTRODUCTION: HORSERIDING NOMADS
PARTⅠ The "Horseriders" Arrive: Japan's Pre-History 1. The Land of Across 2. Ojin: Friend of Paekche 3. Nintoku: Divine Despot 4. Puyo's Rock Deiy
PARTⅡ Koreans and Japan's Historic Period 1. Asuka and Early Buddhism 2. Shotoku Taishi, "The Father of Japanese Buddhism" 3. korean Impact on Japan's Nara Epoch 4. Korean Influence on Later Japanese Art
APPENDIX
ABRIDGED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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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A(加耶)
The 에스에이d fate: the lost kingdom and the lost glory of the true history
Japan had no North Asian horse for combat before 4th century. From 4C, relics about North Asian horse suddenly have been dug out. Dr. Gari Ledyard, the professor of Columbia university, has asserted that the knights of Kaya cavalry race had conquered Japan and ruled the Japanese Islands from A.D.369 to 505 as a lineage of pure Korean blood. He's told that the imperial line was mixed but still is here traced back to Korean origins. In her books and articles, as Dr. Ledyard has asserted, Dr. Covell also had emphacized the part of Kaya(加耶 or 伽倻) kingdom strongly before she passed away. Because the cavalry units that disembarked on Japanese coast in 369 were from Kaya. In addtion, the relics from the Japanese emperors' tombs that look like mountains as the tombs of Kaya do were found a little because of a heavy flood even though Japanese government had tried to prohibit to dig out them. They were the 에스에이me as Kaya's.
Golden-Kaya(金官加耶 or 本加耶) was a rich city country like the Athens of Greece. Nowadays the capital city's name is Kim-hae(金海). We know the meaning of the name through the Chinese characters, <<The sea of iron and gold>>. In ancient age, Kim-hae was a marine country of cavalry race. Their steel manufacture skill was the best in the whole Asia, and they exported the irons every Asia countries including ancient Chinese many counties, ancient Korean many countries and even Indians knew about the land. The first queen of Kaya was a princess of India. Kaya was very famous. Kim-hae and Bu에스에이n(釜山), next to Kim-hae, are still being treated as the most important area for extending to the world, so there are the biggest international harbor in the whole Asia and a big international airport, although the cities are south-east end of Korea Peninsula and they are farthest cities from Seoul, the capital of Korea. They are the biggest intersection 비etween Pacific, the largest Ocean of Earth, and the Eurasian Continent, the hugest continent on Earth.
I'm just shameful. I'm a main line of Kaya kings' descendant, but I was not interested in my root even though strangers had been studying it. A fat lot I knew about my ancestors, I was proud of myself presumptuously because I thought I had a lot of knowledge of world histroy. And I'm di에스에이ppointed in both of Korean and Japanese governments' disregard and distortion. Korean government doesn't still even decide to include the history of Kaya as one of 'The age of four ancient countries', and Japanese government still prohibits to unearth the relics of the emperor's tombs because they already know the relics are all the 세임 as stuffs of Kaya and Paekche(百濟). In an ironic twist of fate, last two presidents of Korea are descendants of Kaya royal family, the incumbent president Noh is from Kim-hae(金海), and all the emperors of Japan are also descendants of Kaya. It is a 에스에이d fate of the lost kingdom and the lost glory of the true history.
Japan and Korea, they are making fun of their root they came from.
가야(加耶
잃어버린 왕국, 잃어버린 영광, 그 슬픈 운명
일본에는 4세기까지 북방에서 온 전투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4C부터 북방의 전투마와 관련된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컬럼비아대의 개리 레져드(Gari Ledyard) 교수는 가야의 기마족 기사들이 서기 369년 일본을 정복하고 그로부터 서기 505년까지 순수 한국인 혈통으로 일본열도를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505년부터 일본의 황실 혈통이 다른 가문과 섞이긴 하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근원이 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그보다 앞서 컬럼비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코벨(Covell) 교수 역시 그녀의 책을 통하여 레져드(Ledyard) 박사가 그러했 듯 가야왕국(加耶 혹은 伽倻)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369년에 일본 해안에 상륙한 기마부대가 가야에서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에서 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홍수로 인하여 가야의 무덤들과 마찬가지로 산과 같이 거대한 일본 고대 황실의 무덤 일부가 붕괴되면서 유물들이 일부 노출되었는데 그 것들은 가야의 유물과 같았다.
금관가야(金官加耶 혹은 本加耶)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같은 부유한 도시국가였다. 그 도읍이 오늘날의 김해(金海)이다. 우리는 한자를 통하여 그 이름의 의미가 <<철과 황금의 바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대에 김해는 기마민족이 다스리는 해상왕국이었다. 그들의 제철기술은 전 아시아에서 최고로 손꼽혔는데, 고대 중국의 여러 나라와 한국의 여러 나라들을 포함한 전 아시아에 그 철을 수출하였으며 심지어 멀리 떨어진 인도에까지 그 명성이 퍼져있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본가야 첫 번째 왕비인 허황옥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다. 가야는 그 정도로 유명한 나라였다. 김해와 그 옆에 바로 붙어있는 부산(釜山)은 여전히 세계로 뻗어나가는 전진기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한반도 동남쪽 구석에 있으면서도 한국에서 서울ㆍ경기지역 다음으로 큰 메트로폴리탄으로서 일찍부터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항만과 국제공항이 들어서 있었다. 김해는 지구에서 가장 큰 대양인 태평양의 바닷길과 지구에서 가장 큰 대륙판인 유라시아대륙의 길이 만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교차로이다.
나는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가야 왕들의 직계후손이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다른 나라의 학자들이 내 조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내 뿌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제에 세계역사에 대해 많이 안다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그리고 가야에 대한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의 무관심과 왜곡에 크게 실망하였다. 한국 정부는 아직도 고대삼국이 아닌 ‘사국시대’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 역시 여전히 고대 일본 황실의 무덤을 발굴하는 것을 막고 있다. 그들은 이미 무덤에서 가야와 백제(百濟)의 유물과 같은 것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야의 역사를 이렇게 짓밟고 있는 한국의 지난 두 정권의 대통령들이 가야왕실의 후손들이고 현재 노무현 대통령도 김해 출신이며, 일본의 모든 天皇(てんのう)들 역시 가야의 후손들이다. 이는 잃어버린 왕국과 영광, 버림받은 역사와 진실의 슬픈 운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정부는 지금 자신들의 뿌리를 스스로 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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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일본 고대사의 비밀과 백제문화 세계화
한 미국 학자의 고대 한·일 관계에 대한 저술은 흥미로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 사학자인 존 카터 코벨(1910-1996)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15세기 일본의 선화가 셋슈 연구’로 일본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일본 교토(京都)의 다이토쿠지(大德寺)에서 불교 미술을 연구한다. 1978년까지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주립대와 하와이대 등에서 한국미술사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1978년 돌연 서울로 발길을 돌린다. 일본문화의 근원으로서의 한국문화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본 황실은 부여족과 백제계가 지배
그의 저술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부여기마족과 왜’(김유역 옮김, 글을 읽다, 2006)와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김유경 옮김, 학고재, 1999). 코벨은 이 저작에서 지난 1300년간 일본이 은폐해온 일본문화의 뿌리는 바로 한국이라고 역설한다. 나아가 부여 기마족이 왜를 정벌해 일본을 세웠지만 일본은 지난 1300년간 역사를 왜곡, 날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놀라운 대목은 고대 천황부터 30대 천황까지 부여인들과 백제인들이 천황이었으며 결국 일본 황실은 순수 한국인 혈통에 의해 지배됐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 최대의 고분인 닌토쿠 왕릉(仁德王陵)에 주목한다. 닌토쿠 왕릉은 전장 486m로 일본의 고분 가운데 가장 크다. 닌토쿠 천황의 왕자 시절 스승은 왕인 박사다. 왕인 박사는 닌토쿠 왕자에게 한문과 시가를 가르쳤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닌토쿠 왕자의 천황 등극에도 왕인 박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역사학자 가운데 “닌토쿠 천황은 백제인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코벨은 닌토쿠천황이 묻힌 왕릉의 발굴이 중단된 것은 그가 백제 혈통이었기 때문이라고 의심한다. 이후 일본 정부는 고고 왕릉의 발굴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코벤은 설명한다.
일본의 백제계 유적과 유물들을 곰곰히 들여다 보면 코벨의 주장은 정설로서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본의 수 많은 국보급 유물들이 백제계라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 한·일 고대사 연구에서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칠지도(七支刀)와 일본의 국보인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 백제 제25대 무왕이 왜 왕실로 보내준 구다라관음(百濟觀音), 백제인 건축가들이 세운 세계 최대 금동불상 ‘비로자나대불’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다.
보다 상징적인 사건도 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지난 2001년 자신의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앞서 2004년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 마사히코(朝香誠彦) 왕자가 아키히토 일왕의 허락을 받아 백제 25대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지난 4월에는 백제 제26대 성왕의 제3왕자 임성태자(琳聖太子)의 45대 직계 후손인 오우치 기미오(大內公夫)씨가 부여 능산리 2호분(백제 성왕의 능으로 추정)을 찾아 제문을 올렸다.
코벨의 주장 뿐만 아니라 국내 일부 역사학자들은 성왕이 일본 천황을 겸임했다는 논거를 내놓기도 한다. 일본 고대 왕실의 족보인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에는 일본 제30대 비타쓰천황(敏達天皇)이 백제인 왕족임을 밝히고 있다. 비타쓰천황의 손자인 조메이천황(敍明天皇)은 현 나라현의 구다라강(百濟川) 강변에 구다라궁(百濟宮)과 구다라지(百濟寺)를 짓고 구다라궁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전하고 있다. 조메이천황의 아들인 덴지천황(天智天皇)은 백제 멸망 이후인 백제에 구원병을 파병한 당사자이다. 코벤은 이미 4세기 초에 부여족이 일본으로 진출했고 이어 369년에는 왜의 야마토를 정벌해 6세기 초까지 왕권을 장악했다고 말한다.
고대역사 왜곡은 군국주의의 영향
그러나 일본 내에서 한·일 고대사의 진실은 감춰지거나 왜곡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칠지도가 백제에 의해 일왕에게 헌상된 것이라는 주장은 일본 내 최근의 역사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칠지도의 중요한 명문(銘文)이 누군가에 의해 예리한 도구로 손상된 것을 애써 외면한다. 일본의 수 많은 백제계 국보급 유물에 대해서도 현지 안내책자들은 예외없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적고 있고 아예 백제의 영향에 대한 사실을 누락하고 있는 게 다반사다.
백제문화 세계화의 정점인 2010세계대백제전을 앞두고 “일본이 역사 왜곡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군국주의의 부활”이라는 Dr. Jon Carter Covell & Alan Covell 의 일침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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