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제가 묵상하며 고민한 단상입니다. 한번 나눔을 가지고 싶습니다. 주제가 상당히 무거운 주제입니다. 최근 유튜브에서 평화방송에서 내놓은 자료와 다른 통계 자료 또 작년에 본 통계 자료와 최근 다른 종교 단체에서도 고민을 하는 문제 등 여러 복합적인 현안을 가지고 나름 분석한 내용입니다. 저는 전문적인 분석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읽을 수 있고 또 앞으로 그 추이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어서 공유를 하고 가톨릭 신자라면 앞으로 누구나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에 언급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이제 어느 정도는 코로나에서 많이 벗어난 시점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코로나가 신앙에 하나의 도전으로 다가왔고 가톨릭 2000년 역사에서 유례없는 경험을 한 게 사실입니다. 물론 중세 때 흑사병이 하나의 도전이 됐지만 흑사병과 비교하는 것은 좀 맞지 않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심각한 고민에 빠진 게 사실입니다. 가장 심각한 고민은 바로 신앙의 이탈이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고 고민하는 주제는 바로 신앙의 이탈과 함께 앞으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오늘도 미사 후에 지인인 형제님과 식사 후에 차를 마시면서 이웃 본당의 신부님께서 최근에 어떤 발언을 하셨는데 그 발언과 관련해서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평소 개인적으로 생각한 게 있는데 그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저 같은 일반 평신도가 이런 걱정을 하는 게 한편으로는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천주교를 사랑하는 마음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천주교의 미래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사실 앞으로 생존의 문제에 고민을 하는 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각 종교에서 데이터를 보면 신자가 이탈하는 게 극명하게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이탈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종교와 신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퇴색될 수 있습니다. 이점에서 또 역설적인 현상이 있습니다. 이럴수록 더 종교와 신을 찾으려고 하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이 있습니다. 이건 최근 100년 간의 전세계 유명한 가톨릭 수도원의 성소자의 데이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두 현상을 두고 하나로 표현을 하자면 이렇게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종교를 가지려고 희망하는 사람이 갈수록 점점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전체 가톨릭의 정서를 읽을 수는 없지만 한 13년 간 가톨릭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느낀 것을 바탕으로 보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비근한 예로 불교와 개신교 같은 경우는 사실 내부적으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안일하다는 것은 약간은 고민은 하는 것 같은데 불교와 개신교가 고민을 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일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볼 수 있는 확실한 자료가 있는데 여기서 공개적으로 밝히기가 좀 그렇습니다. 그건 지금 우리나라에서 인지도 있는 신부님이 유튜브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지만 지금 현제 세상 돌아가는 움직임을 봤을 땐 이런 현상이 일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서두에 이웃 본당 신부님이 언급하신 말씀 중에 앞으로는 성소자도 줄고 신자도 줄기 때문에 성당도 통폐합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해들었습니다. 사실 이 신부님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추세가 점점 현실화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도 단순히 정책만 가지고 대안을 마련하지 않습니다. 그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인구의 변화도 반영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앞으로 신앙과 종교생활도 인구의 변화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변화를 예측해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신부님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는데 신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단순히 표현해 걱정은 되지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때 가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식의 생각만 가지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코로나로 인해서 생긴 문제점을 통해 앞으로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할지에 대한 대비책을 장기적으로 수립하고 많은 분야의 전문가와 또 자료를 모아서 분석하고 충분히 대비를 하지 않으면 실제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났을 땐 그땐 이미 늦은 시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서 이미 경험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또 안전 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또 무감각하게 된 게 사실입니다. 사실 이와 같은 현실은 코로나가 우리 신앙에 위협적인 요소로 다가온 것과 비교하면 사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가를 평소 많이 고민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점에 대한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첫째는 앞으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종교와 신앙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가져올 수 있는 양극화가 어떻게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점입니다.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그 문제점을 수습할 때 우왕좌왕 갈팡질팡할 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위기의식과 함께 철저한 신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내실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당을 예를 든다면 막연하게 미사와 신심활동과 같은 것으로는 일부 신앙관이 좋은 사람에게는 신앙을 지킬 수 있는 약간의 보루가 될 수 있지만 신앙심도 신자마다 능력과 역량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적절한 재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위기의식을 가지는 것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위기의식 속에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해결책은 고민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획일적인 신앙에서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오랜 시간 교육을 한 사람 입장에서 비근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교육도 단순히 변화가 없는 반복적인 교육은 교육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걸 절실히 느낀 경험이 많이 있습니다. 분명한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신앙에 대입해 말씀드린다면 신앙에도 단조로운 신앙은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가하기 위해서는 그건 거국적인 의미에서 천주교의 대표기관에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의 미래가 위험할 수 있을 땐 과감한 내부개혁을 시도합니다. 기업의 생리를 종교에 전적으로 대입해 대처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을 십분 발휘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해서 초래되는 리스크가 그만큼 크기 때문에 그때 발생할 출혈을 미연에 방지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세상 문제는 설령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 대처를 해도 어느 정도는 회복을 할 수 있지만 신앙과 종교는 한 사람의 영혼이 달려 있기 때문에 그 출혈은 단순한 출혈이 아니라 한 영혼의 생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만큼 심각한 출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식해야 그나마 우리가 앞으로 신앙을 지키고 유지시킬 수 있는 방편이 될 수가 있을 겁니다. 이런 점을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지에 대한 방안도 많은 생각을 한 게 있지만 저는 일개 평신도이기 때문에 제가 분수도 모르고 나설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어쩌면 이게 넋두리일 수 있지만 이 넋두리가 앞으로 우리 가톨릭 신앙이 흔들리지 않고 타 종교에서는 고민을 해도 우리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또한 저의 이런 걱정이 기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천주교를 아끼는 마음에서 한 넋두리 아닌 넋두리라고 너그러이 이해를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