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9년 9월 7일(토)
[내용]
조선 후기 홍문관 교리를 역임하신 경기도 양근현(楊根縣-양평) 출신 조선후기 후기 문신 이복윤(李福潤. 1741~미상) 선생의 간찰 2매 이다. 괄로 한점 부분 얼룩이 있으나 보존 상태 양호하다. <크기> 43.8×31.3cm이다.
[참고]
이복윤(李福潤. 1741~미상)
조선 후기 문신으로, 자는 평중(平仲)‧ 신지(身之)이고. 본관은 경주(慶州)로, 경기도 양근현(楊根縣:現 양평) 출신이다.
부친은 이녹(李錄). ○조부: . ○증조부: 이정기(李禎基). ○외조부: 민규(閔珪) (驪興)이고, 1771년(영조 47) 식년시에 생원 3등 27위로 입격 한 후 , 1775년(영조 51) 정시 문과에서 병과 5위로 급제하였는데, 일부 시관(試官)과 과거에 응시한 사람이 국법을 어겼기 때문에 방목(榜目)이 삭제되어 합격자 전체가 취소되었다.
그러다가 성균관에서 실시한 인일제(人日製)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직부전시(直赴殿試)되었고, 1780년(정조 4) 식년시 문과에 다시 응시하여 병과 7위로 급제하였다. 1780년(정조 4) 3월에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임명되었고,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역임하였다. 1784년(정조 8) 8월에는 윤익동(尹翊東)‧ 홍문영(洪文泳)‧ 연동헌(延東憲) 등과 함께 이전에 삭제된 방목에 다시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1787년(정조 11) 12월에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임명되었고, 1792년(정조 16) 3월에는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이후 부안현감(扶安縣監)‧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