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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가 기원인 미국의 포퓰러 음악. |
설명
살사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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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기원설
살사의 시작이 쿠바에서 발생되었다는 설은 여러 가지 근거로 인하여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듯 하다. 백인, 흑인, 그리고 혼혈의 전체적 인구구성의 복합적 영향을 민족 정체성의 기반으로 했던 쿠바는 이들 각각의 민족적 동질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음악장르가 창조적으로 융합되어 'son' 이라는 음악적 특징을 발생시켰으며, 이는 곧 쿠바에서뿐만이 아니라 스페인어권의 카리브해 전역 문화권에 영향을 미쳤다. 발생 처음 몇 십년동안은 동쿠바에서 기원한 'son'은 점차로 스페인에서 파생된 전통과 아프로-쿠반의 두 요소들이 혼합되어 1920년이래 지금까지 전해져왔고, 대부분의 살사 음악(쿠바에서는 son 또는 guaracha라고 불리워진다.)이 이 패턴을 따르고 있다. 이 즈음 1940년대 쿠바에서 발생된 또 하나의 창조물은 '맘보'라고 할 수 있다. 맘보는 아프로-쿠반 리듬에 스윙과 재즈로부터의 빅밴드 형식이 결합된 형태이고, 쿠바의 밴드 리더로서 멕시코와 그밖의 섬 전역에서 대부분의 여생을 보냈던 'Perez Prado'의 초창기화에서 시작하여 1950년대 맘보형식에 'son'을 결합하여 뉴욕에서 성황을 이루게 했던 Beny More의 활약과 더불어 맘보밴드는 멕시코와 미국 뉴욕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이루어내는데 기여했다. 이와함께 쿠바 음악이 섬 밖으로 널리 퍼져 1960년대 살사붐을 여는데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 푸에르토리코 기원설
1800년대 초기이래로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쿠바의 danz, son, guarancha, rumba, bolero같은 다양한 쿠바의 음악스타일을 채택하였고, 고유의 다이나믹한 포크 뮤직과 대중적인 뮤직에 영향을 주면서 푸에르토리코인들의 음악적 문화의 풍요로움에 커다란 부분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쿠바음악의 영향을 받아 새롭게 창조해낸 seis, bomba, plena 등의 장르는 푸에르토리코의 음악적 고유한 특성을 부각시켰고, 1920년대에 이들의 음악은 문화적 요소를 포함한 이민경험을 바탕으로 뉴욕시티의 중요한 생산물이 되어왔다. 그 결과 푸에르토리코 문화는 단지 그들만의 문화가 아닌, 오히려 뉴욕 및 북미 문화 전체에서 녹아있는 흑인 및 기타 라틴 문화와 중복되어 있는'Newyorican'문화와 불가분의 관계가 되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푸에르토리코보다 뉴욕에 더 많은 살사 밴드가 있다. 라틴의 기원으로서 더 많은 근거를 가지고 있는 쿠바는 공산주의 택하는 한편, 미국령이었던 푸에르토리코에서의 보다 자유로운 활동은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들에 의하여 살사가 보급되고 전파되는데 그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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