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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도 첫 방문과 2001년도의 중국탐방 기념 사진들을 묶어
기억하고 추억하려고 만든 영상물을 하늘호수 카페에 실으니
오래 추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창곡^&^
탐방문
북중 국경의 도문다리에서
팔달령의 만리장성에서
19960723-8일간의 중 국 자 유(배낭) 여 행
◦가족 당 준비물(한경복,빈일열,신영윤,김광태내외)
1.상비약 (정로환, 멀미약, 소화제, 진통제, 감기약, 바르는 모기약, 대일밴드... 등)
2.간식 및 점심(포, 초콜렛, 과자 등)
3.컵라면 10개(수저, 물컵 포함)
4.츄리닝, 우의
5.갈아입을 옷 2벌(반바지 준비)- 7~8월 평균 기온 : 24~27℃
6.샌들, 모자 선 그라스, 카메라 필름, 다용도 칼(수영복, 자외선 차단크림), 전자계산기
7.소주 PET 4홉 2병
8.칫솔, 치약, 비누(화장품 포함), 빗, 면도기(220V용만 가능)
9.보온물병(여행시 항상 휴대 가능한 것)
10.작은 배낭(여관에서 나갈 때 사용)
11.공동 경비 100,000(서울 왕복차표 포함)+1인 왕복 선표 199,000+비자수수료 25,000
12.동전100원짜리(2,000원 정도), 화투(한경복)
13.커피포트 코펠버너 (신영윤, 김광태)
14.김밥 2인분 이상
15.국제전화(데이콤) ☎108-858(교환) 직통: 00-82-53-621-2666(신영윤)
16.필기도구
17.수첩(여권-여권번호, 여권발행일, 발행지, 유효기간, 신용카드번호, 현지연락처, 대사관 등)
18.명함
19.화폐의 종류
지폐:元(위안)-100, 50, 10, 5, 1/角(쟈오)-5, 2, 1/分(펀)-2, 1
동전:元(위안)-1/角(쟈오)-5, 1/分(펀)-5, 2, 1
20.떡, 과일(복숭아, 자두)-신영윤
*물건구입- 중국에서의 물거 구입시 과일, 야채등은 수량기준이 아니고 무게 단위로 판매됨(1근=500g)
※총 여행 경비:2,581,800(1인당=258,180)
중 국 여 행 경 로 및 일 정
※ 여행경로
대구→인천→탕고우→천진/(2일차)
→북경→천단공원→ 오주대주점(야인촌)→민속박물관/(3일차)
→명13릉(정릉)→만리장성(팔달령)/(4일차)
→천안문광장→자금성(고궁)→왕부정거리→류리창거리/(5일차)
→이화원→고속터미널(조공구)→천진(온천호텔)→구불리파오츠/(6일차)
→인천→대구/(7일차)
※ 일 정
96. 7. 23(火)
◦04:20 발 통일호 승차(동대구 역)
◦08:20 영등포 역 도착
◦08:30 국철 승차(₩650)
◦09:20 인천 역 하차
◦09:30~10:00 역앞 등대식당 해장국 식사(45년간 영업)
역에서 국제선 터미널까지 택시1,000원임.
<우리는 택시기사에게 사기 당함. 연안여객 부두에 내려줌. 택시비 7,000원=왕복>
◦11:00~13:00 승선
<이정태님 단수여권으로 출국금지.(안타까움).우리의 정보와 준비부족이 가져다준 엄청난 손실임.>
◦14:25 출항(독크의 사정이 어려움)-우리일행은 3A 선실에 나란히 자리 잡음.
※천진 2호의 재원-무게: 12,023톤 /전장: 146m /선폭: 20.4m /속력: 22.79knots
정원(여객): 467명 /화물적재: 175t. 자동차 130대(흔들림 장치)
◦중국교포학생(양세열) 만나 정담을 나눔.캔 맥주(4)를 구입 가족 간 대화를 나눔.(선실 맥주₩1,000)
96. 7. 24(水)
◦05:00 기상.(밤에 굉장한 비가 쏟아짐.)
◦선상 샤워 실에서 샤워 후 묵상.
◦마음속의 춘산의 모습이 꽉 차 굉장히 무거움.
◦07:30~08:30 조반은 한 정식(₩2,000)으로 함.
◦14:00 천진 항에 도착(탕코우)
◦15:30 세관원 승선 후 하선.
◦16:30 우리를 싣고 갈 버스 미착으로 1시간여를 기다림.
◦18:00 천진 온천 반점(SPA PLAZA HOTEL) 1102호(VIP 실)에 투숙.
◦20:00~22:00 야외식당에서 손칼국수와 갈비로 푸짐하게 식사함.(김영년氏 제공)
<국수2,000(20元), 갈비1,000(10元) 정식 30元>
<notes>
春山이 마음에 걸리고 우리 일행의 상쾌한 마음이 항상 상승무드의 장애로 남아 빨리 잊자고 생각해도 안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어쨌든 즐거운 여행이 되고자 기도함.
저녁에는 金泳三 大統領이 LA에서 식사한 손칼국수와 돼지갈비로 넉넉한 식사를 김영년 차장께 제공받음. 박종찬 과장께 감사의 인사를 할 것을 다짐하고 내일 일정 수의 후 각자 방으로 향함.
96. 7. 25(木)
◦05:00 기상
◦06:00 check out 김영년氏가 준비한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 行.
◦07:30 코오롱 고속 승차(30元), 열차(20元정도)
◦09:10 북경 고속터미널(조공구). 터미널 부근에서 아침식사(만두와 누룽지죽)
◦터미널(조공구)에서 길 건너(육교건너)좌측 편→17路 行(0.5元)→(15분거리)天檀공원(내국인 0.5元)
→기년전(30元)→황궁후→남문.
◦남문→120번 버스(0.5元)→北京역 하차→特 2번 승차(2元)→오주대반점 行.(야인촌)
◦14:07 오주대 주점(continental grand hotel) 0539호실에 여장 풀다.
◦18:00 저녁식사(빈先生께서 가져온 쌀로 밥을 지어 포식함.)-0539호실에서 즐김
◦식후에 민속박물관 거리 산책 중 토마토가 약 20개 정도에 우리 돈으로 200원정도.
길거리에서 짚시처럼 앉자서 맛있게 그리고 즐겁게 포식함.
◦내일 일정을 짬. (택시로 가는 것 취소. 버스로 갈 것을 약속)
<notes>
중국글자를 읽지 못해 헤맴. 시내버스에 짐 값을 따로 받음. 민속 박물관(용인 민속촌 정도)을 시간이 늦어 껍질만 관람. 역시 사회주의 체제가 우리에게 주는 낮선 인상을 준다. 급한 것도, 늦는 것도, 되는 것도, 안되는 것이 없는 사회를 우리는 접하고, 우리들의 급한 속성을 내보일까 두려움도 있구나.
천단공원 기년전에서 우리는 내국인 행세를 하다가 발각되어 다시 표를 사는 촌극을 자아냄.
<배낭을 진다든가, 잘 차려입은 옷이 외국인임을 중국인은 눈치로 안다.>
96. 7. 26(金)
◦04:45 기상
◦05:30 택시 승차 (북경역 30元, 노란차 20元)
◦06:00 북경역 着. 역광장 서편<一日旅路>우리일행 日旅二路 버스. 黃海旅車(회사명)
왕복 八達領22元(八達領:10元, 明十三陵:8元)
◦06:35 發→ 明十三陵(정릉)-07:55
버스정류장에서 복숭아 1개당 1원 10元에 10개를 사서
지하 능 입장 전 광장에 앉아 빵과 구입한 복숭아로 아침식사.
◦지하궁전 입구에서 내국인 행세한다고 2팀으로 입장.
마침 매표소가 문을 열지 않아 그냥 입장하여 편안히 관람함.
◦지하궁전(10:00)→주차장 定陵(10:35)→八達領(11:05)
-定陵주차장에서 차 타기 전쟁을 방불케 하는 195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차 타기 모습임. 우리는 힘으로 차타기 경쟁에 익숙하여 쉽게 올라 앉아 팔달령을 향했다.
-장성에 오르는 사람은 각국인으로 인산인해이며 자동차 바다를 이루고 있음.
◦萬里長成(13:00~14:30)
-장성 관람을 위하여 장성입구에서 내국인 표(15元)를 사서 들어가다가 우리 내외만 다시 외국인 표 를 사다.(외국인=35元) 이유는 광장에서 동전(10원짜리)을 학생과 일반인들에게 나누어 준 혐의로 인 상을 노출시킴.
-장성의 높이 약 3m, 폭 3m 정도의 크기로 진시황의 무디고 우둔한 백성을 혹사한 고대 정치를 느낄 수 있음.(총길이: 약 6,400KM) 그러나 현재 우리는 장엄하고“달에서 내려다 보면 육안으로 보일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인간의 건조물” 장성에 올라 장래 장성보다 더 큰 한국인의 기개를 펴본다.
-장성 주차장에서 우리는 점심식사(장성 입장료의 절약된 관람료로 즐겁게 식사).
뷔페식(밥:10元, 반찬1개:10元 -8명이 반찬 4개시킴.)
◦장성(15:10)→16:50 五洲大酒店(소공공기차 200元에 대절)
-金광태先生 카메라 차에 놓고 급히 내려 잃어버리는 아쉬움을 안고 호텔로 향함.
◦저녁은 호텔 내 정통 중국식 식사 <짜장: 너무 짜고 여뭄> 기스면은 먹을 만함. 1人 26元정도.
<notes>
미안한 생각이지만 내국인으로 계속 행세하여 여행비를 절약 하리라 입장을 정리함.
(1쌍이라도 입장하면 좋음) 하루 16,000보정도 걸으니 덥고 칙칙해 탈진상태임.
96. 7. 27(土)
◦05:45 기상
◦06:15~08:00 아침식사(라면과 밥으로 식사)
◦09:00 호텔에서 특 2번 버스 타고 천안문 하차
09:40 천안문→천안문 광장→모주석 기념관→인민대회당→중국혁명박물관을 본 뒤 고궁(자금성) 관람 차 모임(모택동 사진앞)
◦11:00~13:00 고궁(자금성)관람. 20元(외국인 90元)
◦13:00 모택동 사진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각자 관람후 회동함(행동통일 약속을 위해 시간을 엄수)
◦13:30~14:50 全聚德오리구이店(베이징 카오야 본점)에서 점심. (오리 1마리 98元×3마리)
※오리국물 안 마시고 뼈 달라고 하면 준다. ☎(10)701-1379
◦15:00~16:00 王府井 대로(왕푸징) 거닐다.(북경 시 청사 맞은편 슈퍼에서 쌀사다. 24元)
◦17:00 前門에서 서쪽 건너 노사차관(경극과 차를 마시는 라이브 레스토랑)둘러봄. <경극시간-19:00>
◦17:20~20:00 琉璃廠(유리창: 골동품 거리) 거리 관광 후 돌아오는 길에 북한 사람이 경영하는(나중에 계산대에서 알게됨).한국식 요리집에 들러 냉면 먹음(8元). 냉면은 우리 쫄면 같은 것을 물에 넣음.
◦택시 흥정하여(20元) 귀가. (실제는 미터요금 30元정도임.)
◦21:00~24:00 북경의 마지막 밤 파티. 맥주 1box(70元), 수박 2통(15元)
<notes>
중국인에게는 모택동은 신화적인 人物. 모주석 기념관 참배객은 대구시민 다 모은 것 같았음. 고궁(자금성)의 지붕은 자기(황․청자)기와로 덮고, 황제가 다니는 길은 옥으로 용을 조각한 통로, 9900여 개의 방들, 황제가 거처하든 곳 그리고 집무실의 문고리와 장식품은 금으로 치장한 현란한 모습. 모습들이 시간의 아쉬움으로 남겨둔 채 다음 기회를 약속하고 우리들의 약속 장소로 발길을 돌림.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관람을 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 마지막 밤을 지냄.
96. 7. 28(日)
◦05:00 기상
◦07:00~08:00 쌀밥으로 식사(중국 쌀은 상당히 불음)
◦08:40~10:30 이화원 동문(택시 40元계약⇄30元)미터요금은 20元정도임.처음으로 더 비싼 요금을 냄.
-인공호수 곤명호의 흙으로 만든 만수산. 과연 서 태후는 여장부였는가?
- 2元(외국인45元)
◦11:20~12:00 0539호에서 샤워 후 check out -물값1800元 엄청 비싼 것-
◦12:00 特 2호 승차 前門 하차 점심 식사(만두와 야채, 밥)
◦14:00~14:40 前門 發 조공구 着
◦14:45~16:40 조공구 發 天津 着
◦(15~20분거리)노랑택시(10元) 天津溫泉飯店 着.김영년 차장으로부터 환영 받음. 902호실에 투숙.
◦18:30~20:50 拘不理包子店(구불리파오츠)에 예약된 곳에서 정통 만두 요리로 저녁식사(1人 75元)
=호텔에서 차 내어줌. ☎(022)730-2540
◦일대가 번화가로 야시장이 휘황찬란함. 시장보고 노랑택시(10元)로 귀가.
◦天津溫泉飯店 902호에서 天津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보냄.
<notes>
알고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안심이 되는지 모르겠구나. 나는 김영년氏로부터 나쁜방에서 큰방으로 그리고 이정태에게 선물할 그림까지 선물받고, 저녁식사, 탕코우(천진항)까지 승용차까지 환대에 감사드리며, 매사에 편의를 제공받아 고마움을 금치 못함. 이화원에서 한선생 內外 외국인으로 적발 다시 돌아서 입장하는 촌극을 보임.
96. 7. 29(月)
◦05:00 기상
◦06:30~07:10 남은 쌀로 식사 후 check out
◦08:10~09:10 김영연차장이 내어준 승용차로 탕코우(천진항)도착.
◦11:30 수속 끝난 후 승선(면세점 공부가주 30元)
◦13:00 출항(점심은 간식으로 떼움)
◦17:00~18:00 저녁은 선상식(₩4,000)
전취덕 오리구이 집에서 가지고온 소주 곁들여 고기덮밥으로 식사
◦피로엄습으로 녹초됨.
※한국학생의 정보
베이징의 숙소
-중화반점: 4인실-35元(1인), 도미트리-26元
-장소: 화평문→14번 버스정류장→야시야 하차(asia supermaket)
<notes>
색깔있는 가족들의 배낭 합동여행이었지만 잘 참고 힘든 여행길에 무리 없이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게 협조해 주신 분들께 늘 감사 드리며 우리를 이렇게 건강하게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며, 항상 웃음과 행운이 가득한 가정과 행복한 가정이 되시길 기원하면서....세계 속에서 떴떴하게 행동 할 수 있는 멋진 한국인의 긍지 가득한 가족이 될 수 있는 원동력을 갖을 수 있기를....
아울러 대아여행사(02-3442-4200)와 박종찬과장(02-514-6226)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96. 7. 30(火)
◦04:40 선상 기상
◦05:00 선내 샤워실에서 샤워하니 무거운 몸이 한결 가벼움.
◦07:30~08:30 선상식사(한정식₩2,000)
◦12:00 점심식사(남은 음식떨이)
◦13:00 인천외항에 예인선 안내로 정박
◦16:00~22 독크 통과 하선후 세관검색 후 가볍게 동 인천 역 착
◦16:40 대구행 차표 교환(19:00차표)
◦19:00 서울역에서 새마을호 승차(인천 ―→서울. 약1시간 소요= ₩900)
◦22:10 동대구 역 도착 후 가벼운 발길로 각자 집을 향함.
<notes>
8일간의 강행군의 긴 여정 중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부부들의 힘찬 발길 발길들이 퍽 행복하여 보였다. 이런 작은 행복들이 쌓이고 쌓여 남은 인생의 여정이 복되고 건강하게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작은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함께 건강하게 힘든 여행길에 참가한 팀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며 대아여행사의 박종찬님에도 감사를 드린다.
여행후기(배낭여행 중국대륙을 가다: 대공소식지 올린 글)
유난히 무덥고 찌는 듯한 여름의 폭염 속에 방학을 맞아 5부부 10명은 새벽 4시에 동 대구역에서 만나 부푼 마음을 안고 통일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08시50분 영등포역에 도착하여 10시경 인천항에 다달았다. 인천 갑문식 도크를 빠져나가 서해의 검푸른 파도를 헤치며 24시간의 여정을 지나 중국 관문인 제 3의 도시 천진 항에 닻을 내렸다. 우리와 같이한 천진2호는 12,036톤의 철선으로 승선인원 467명(승무원포함)으로 아마 일본에서 건조된 배인 듯 하다. 현지 기온 29℃의 후덥지근한 대륙성기후가 우리를 반겨 맞아 주는 듯 우리나라의 평년 여름기후와 흡사하여 별다른 부담은 없었다.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을 그대로 간직한 거대중국의 단면을 느끼면서 말로만 들은 중국대륙을 처음 보는 순간 우리는 입이 벌려서 닫지 못했다. 천진에서 북경까지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지는 장관은 푸르름인 옥수수와 채소밭과 논뿐으로 산이라곤 찾아 볼 수 없으며 우리들이 말하고 하던 지평선을 오늘에야 보고 만끽하는 구나 하는 심정으로 광활한 지평선의 녹색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북경에 도착하여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오주 대주점(오주호텔)에 갔다. 버스요금은 2원(우리돈으로 200원)이다. 중국어에 능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지도를 먼저 사서 지도로 버스번호를 알아서 물어서 가는 것이다. 지친 몸을 샤워로 피로를 풀고 호텔식당에서 짜장면을 시켜보았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짜장면을 본토에서 먹게되어 몹시도 우리들은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온 짜장 한 접시에 면은 큰 그릇에 나왔다. 우리는 신나게 그것을 섞어서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소금물에 절인 것 같은 맛. 정말 요절복통할 일은 그것을 차에 씻어서 먹었다는 웃지 못할 일이었다. 짜장면 값은 8원 찻값은 10원(100원)이었다. 우리는 절약하고 중국의 정서도 만끽하자던 우리의 생각은 결국 많은 돈을 씀으로서 막을 내렸다. 이튿날 일찍 만리장성을 찾았다 .북경(베이징)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75Km지점에서 명나라 때 축조된 것으로 이 장성은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조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규모는 동쪽 보하이만(발해)에서 서북쪽 산하이관(산해)까지 6,700Km길이로 험준한 산악지대에 지어진 인공성벽은 폭이 4열 기마병이 행진을 할 수 있는 넓이와 3m이상의 높이로 굽은 흙벽돌로 건조된 빠다링(팔달령)의 남판(오르기 힘든 곳)과 여판(오르기 쉬운 곳)을 고루 밟아보고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 전에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험준한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시공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했는지를 상상해 보았다. 당시 진시황은 30만명의 병사와 수많은 민간인 죄수들을 이 노역에 동원했다고 전하는데, 정말 진시황에 대한 많은 비화가 전해지고 있다. 북경을 떠나는 5일째 되던 날 오전 우리일행은 자희 태후의 욕망이 아직도 느껴진다는 이화원을 찾았다. 베이징(북경)북서쪽16Km지점에 위치한 290㎡(약90만평)의 베이징(북경)제1의 청나라 때 서 태후의 여름별장이라고 한다. 인공호수 곤명호와 곤명호를 만든 후 파낸 흙으로 축조한 인공산인 만수산이 후세 중국사에 큰 획을 그은 역사적 현장이다. 이 같은 별장을 짓는데 청나라 해군 확장을 위한 군자금 3,000만냥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유용하는 실정으로 청나라의 멸망을 더 빨리 재촉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대표적인 고대 중국의 문화 유적을 보고 진나라와 청나라의 영웅이란 진시황과 서태후의 장성건축과 공원건설은 백성을 기아나 토탄에 빠뜨리게 하지 않았나 생각하니 진정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미국 링컨대통령의 정치 철학이 새삼스레 떠오르는 구나. 그래 우리 모두가 깨어나 다음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조국 대한민국의 어떤 분야에서도 큰 기둥이 될 큰 재목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떳떳하고 노력하는 국민이 되길 다짐하며 서해의 검푸른 물과 맑고 푸른 하늘을 우러러보며 8일간의 중국여행은 서서히 인천항 도크에 들어서면서 넓고 광활한 중국 대륙보다 금수강산이란 조국의 하늘 아래서 숨을 쉬게 됨을 자랑스럽게 느끼고 ,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는다.
장백폭포에서
백두산 천문봉 정상에서
용경협 입구에서
용경협유람선상에서
용정중학교정에서 (윤동주님의 서시 기념비와 함께)
이화원 곤명호에서
백두산 천문봉 천지에서 만세
감격의 세레머니
용정중학교 윤동주님의 "서시" 기념비앞에서
천단공원에서
20010725-2차 중 국 여 행
※여행경로
(참가/이태훈,이한범,한경복,김이정,김영득,이정태,도광희,김호권,여상인,도광희,창곡.김찬내외분,김병열님/25명)
대구공항→심양→북경 / (1일차:7/25)
북경→명13릉(정릉)→만리장성(팔달령-케이블카이동)→용경협
→경극및서커스 / (2일차:7/26)
천단공원→천안문ㆍ자금성(고궁)→이화원→연길공항/(3일차:7/27)
연길→백두산(장백산)→천문봉→천지→비룡폭포(장백폭포)/(4일)
백두산→연길→용정(용정중학)→도문→연길공항→심양공항/(5일)
심양공항→부산공항→동대구/(7일차:7/30)
※여행일정
7/25
11:40 대구공항 출발(CJ 6074호)
13:35 심양공항 도착(중국시간-한국시간12:35). T/C 강 경양의 안내로 랜드호텔 휴식
23:20 심양공항발(CJ 6105호)
01:20~02:00 북경공항착 남민호씨안내로 화륜호텔 1318호에 안착
7/26
06:00~07:00 기상 및 조반
10:30 명13릉(만려황제릉=정릉)/45元
13:30 만리장성(팔달령-케이블카이동)/45元
16:30 용경협/85元
18:10~20:00 서커스 및 경극관람
22:30 저녁식사 및 휴식(화륜 호텔 1318호)
7/27
06:30~07:50 기상 및 조반
08:40 천단공원(원구단-회음벽-기년전)/35元
11:30 천안문-고궁(자금성)/60元
14:50 이화원(곤명호-장랑-금수산)/45元
20:00 북경공항 발(CJ 6152호)
21:40 연길공항 착 안성애씨의 안내로 여산호텔 218호에 휴식
7/28
05:00~06:30 기상 후 조반
07:10 백두산(안도현 백산)행
12:40 二道백화(백두산아래 첫동네).미인송(세계적 희귀 자생처)
15:10~15:40 백두산 천지도착(29번 찝차 승차 20분 후 천문봉 아래하차)
민족의 영지를 굽어보니 뭉쿨한 뜨거운 감동을 받다.
16:00 하산 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68m의 비룡(장백) 폭포를 관람 후 백산호텔로 향함
19:00 백산호텔 도착 저녁식사 후 464호에 여장을 풀었다.
7/29
06:00~07:00 기상 및 식사(백산 호텔 464호)
13:00 二道백화를 거처 연길을 지나 용정에 도착(용정,일송정,해란강) 해란강을 끼고 언덕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재배하는 사과배나무밭을 지나 용정에 도착(계단식 사과밭).
14:30 저항시인 윤동주님의 모교 용정중학(대성중학등 6개교가 통합한 학교)
저항시인 윤동주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나’의 서시를
적어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날- (41.11.20 윤동주)
15:20 동방 곰 낙원 (762마리 사육)
17:30 도문(입장료:5000원) 두만강 다리에서 중국과 북한을 넘나 ~18:10 드는 연출과 사진 촬영과 전망대에서 부르면 오고 갈 수 있 는 지척의 신작로(길)을 우리는 수많은 북한 동포들의 한숨 과 고통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22:10 ~23:10 연길공항발 심양(만주 봉천)행 CJ 6608호가 1시간연발.
〈어느 공항에도 찾아볼 수 없는 가방에 끈을 유상(2000원)으로 메어 카고로 보내는 공항임〉
24:40 심양공항 도착. T/C 강경양과 재회로 랜드호텔 1418호에서 여장을 품.
※백두산의 미인송(美人松)은 세계적인 희귀 소나무(일명 선비송)로 마 치 발레리나가 발을 쭉 뻗어 하늘로 도약하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금강산의 금강송도 일종의 미인송에 속함)
7/30 06:00~06:30 랜드호텔 기상 및 조반
07:10 ~07:20 랜드호텔 체크 아웃 및 심양 공항으로 이동
08:35 CJ6071호 부산행 항공기 탑승
11:50 김해공항 착(한국시간임). 입국 절차를 마치고 나오니,21세 기 관광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우리 일행은 한사 람도 낙오없이 무사히 동대구 역에서 내일을 약속하는 굳은 악수로 웃으면서 헤어졌다.
중국인의 순례지 만리 장성(명소의 느낌)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조 건축물”이라는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찾게 되면 그 동안 놀라움에 벌렸던 입이 더욱 벌어져 턱이 빠질 지경에 이르게 된다. 험한 산의 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성벽의 장엄한 곡선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본 사람만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북경에 가서 구경하게 되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빠따링(八達嶺) 장성이다. 그러나 북경에는 빠따링 이외에도 무텐위(慕田谷) 장성, 쓰마타이(司馬臺) 장성, 진산링(金山嶺) 장성이 있다.
무텐위 장성은 1986년에 개방된 곳으로 북경 시내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 80km 정도 떨어져 있다. 산악지역에 위치하여 아름답고 변화무쌍한 경관이 볼만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쓰마타이 장성은 시내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약 140km 떨어져 있는 해발 986m의 험준한 산악에 둘러싸인 곳으로 중국 특유의 농촌 풍경도 구경할 수 있다. 진산링 장성은 쓰마타이 장성의 서쪽 어깨에 붙어 있는데 경관이 수려해서 제2의 빠따링으로 불린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30만의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을 징발하여 대량의 벽돌을 쌓아 장성을 연결해 현재의 장성 원형를 만들었다. 그 길이가 1만여 리(당시의 1리는 약 400m)에 달해서 만리장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동쪽의 기점은 보하이만(渤海灣)에 면한 산하이관(山海關)이고 끝나는 지점은 실크로드의 입구인 자위관으로 총길이는 6천km이다.
앞서 말했듯이 만리장성을 수식하는 말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은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축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 규모는 상상하기 어렵다. 중국인은 과장이 심한 민족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의 길이는 실제로 1만리를 넘어 1만2천리나 된다.
현재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그 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은 오늘 찾아가는 빠따링 장성이다. 이곳에서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만리장성이 이어지는 이곳은 중국인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 일년 내내 붐비는 곳이다.
북경에서 70km떨어진 빠따링 주차장에 내려 산성에 오르면 정상을 오르내리는 관광객이 홍수를 이룬다. 물론 1만2천리 장성의 최고 정상은 아니다. 편의상 한 망대를 정상으로 정해놓았을 뿐이다
중국에서도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속담이 있다. 회교도들이 메카를 동경할 때의 바램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장성어귀에는 중국인들이 넘쳤다. 그 동안 북경의 명소를 다니면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가끔 눈에 뜨일 뿐이고 소란스러운 중국인만 빽빽하다.
빠따링 장성은 매표소 입구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이 여판(女坂)이고, 왼쪽이 남판(男坂)이다.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유는 왼쪽인 남판 쪽이 오르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계림의 축소판 용경협
팔달령에서 40분 정도 달렸을까, 평원을 가로막는 절벽 같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길 양옆에는 복숭아나무들이 열병(閱兵)하듯 늘어서 있다. 그 사이길로 담배 한 대 피울 시간을 달려가니 중국전통양식의 대문이 있는 광장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서 눈을 들어 산등성이를 보니 '용경협'(龍慶峽)이라는 거대한 글자가 한 눈에 들어 온다. 그리고 등소평 사후 중국의 지도자인 강택민(姜澤民)의 이름도 함께 있다.
이곳이 소문에 듣던 용경협인 것이다. 구이린(桂林)에 있는 순수 동양풍의 경치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는 '소계림'이라는 별명을 지닌 숨겨진 명소로 북경에서 열차로 33시간이나 가야 하는 구이린에 가지 않고도 계림의 절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명나라 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용경협은 수 천리 떨어져 있는 계림에 갈 수 없는 어느 황제를 위해 협곡을 막아 만들어 놓은 절경이라고 전해지는데 중국 정부가 근년에 들어 관광명소롤 개발한 곳이다. 그러나 아직 홍보가 덜 된 탓인지 외국인보다는 중국인들이 더 많이 찾고 있는 듯 하다.
협곡을 따라가는 모퉁이 길을 돌아 나가자 20층 높이의 거대한 댐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승천하는 두 마리 용으로 만든 돌기둥 문을 통과하자 용꼬리 부분에 설치해 놓은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대여섯번 에스컬레이터를 갈아타며 용 주둥아리 부분으로 빠져 나오자 석굴이 나타났고, 그 터널을 지나자 계림의 리강 같은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용경협의 유람선 여행은 배를 타고 8시간을 유람하는 계림의 리강 여행을 축소해 놓은 듯한데 지나는 절경도 리강에서 바라보는 기암기봉(奇巖寄峰)과 다를 바 없다. 강 한복판에서 멀리 바라보아야 하는 계림의 산수를 눈앞으로 끌어다 볼 수 있는 용경협의 산수가 오히려 흥미롭다.
용경협 선상 유람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절경 사이를 유유히 지나며 감탄을 연발하다보면 약속된 1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고 만다. 옆에서 설명하는 가이드의 말소리는 귀에 들어오지 않고 열심히 눈 사진만 찍다보면 처음 떠난 선착장 건너편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용경협 구경이 끝나지 않는다. '마환세계'(魔幻世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름에서 풍기듯이 으스스한 동굴에 들어서면 밀랍인형으로 만들어진 중국의 고전(古典)들이 눈요기 감을 제공한다. 약간 경사진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손오공과 삼장법사도 있고 금병매의 서문경도 염라대왕 앞에서 죄를 빌고 있다. 마음 약한 사람은 기절하기 딱 좋을만한 분위기이지만 이 동굴을 통과하지 않고는 용경협을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된다. 중국은 너른 땅이다. 따라서 단 며칠만의 여행으로 중국을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만리장성에 가면 반드시 용경협을 찾아가 보자. 그곳에 가면 수천리 떨어져 있는 계림의 절경도 한 시간만에 즐길 수 있는 보너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동행한 님들 모두모두 행복하시고 늘 멋진 꿈 이루소서
창곡,이태훈,이한범,한경복,김이정,김영득,이정태,도광희,김호권,여상인,도광희,김찬 내외와 김병열님 감사드리오며 건강하소서
여행후기/중국대륙과 한민족 영산 백두천지에 오르다.(010725~30)
1주일간의 남한 영토의 98배나 되는 거대 중국대륙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우선 중국 수도인 북경을 차래로 천단공원, 고궁(자금성9990칸),이화원,명13릉,만리장성,용경협...북경(베이징)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약 75Km지점에 명나라때 축조된 것으로서 장성은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공 건조물”이라고 말한다. 그 규모는 동쪽 보하이만(발해)에서 북쪽 산하이관(산해)까지 6,700Km길이로 험준한 산악지대에 지어진 인공성벽은 폭이 4열(약7M) 기마병의 행진을 할 수 있는 넓이와 3m가량의 높이로 굽은 흙 벽돌로 건조된 팔달경(빠따링)의 남판(오르기 힘든곳) 여판(오르기 쉬운곳)을 고루 밟아 보고 입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2,000년 전에는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를 험준한 계곡과 산악지대에서 시공한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감수했는지를 상상해 보았다. 당시 진시황은 30만 명의 병사와 수많은 민간인 죄수들을 이 노역에 동원했다고 전하는데 진시황에 대한 많은 비화가 이 장성에 녹아 전해지고 있다. 자금성(고궁 박물관)의 웅장함은 9990칸의 고궁이 중국의 규모를 알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천안문 광장, 유리창(琉璃廠)의 청대(靑代) 유물거리들, 지하 궁전(왕의 묘지)인 명 13 릉 등 옛 영화와 웅장함을 피부로 느끼고 , 오늘의 야시장에서 두 얼굴을 가진 중국을 보는 듯 찌든 얼굴의 삶의 모습, 북경 역의 집시형의 들끓는 인파들 등이 우리를 희망과 장래의 큰 비젼이 있는 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구나.
북경을 떠나는 5일째 되던 날 오전 우리 일행은 자희태후(서태후)의 욕망이 아직도 느껴진다는 이화원을 찾았다. 베이징(북경) 북서쪽 16Km지점에 위치한 290㎡(약90만평)의 북경(베이징) 제1의 청(나라)대 서태후의 여름별장이라고 한다. 인공호수 곤명호와 곤명호 만들기 위해 파낸 흙으로 이룬 인공산인 만수산이 후세 중국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적 현장이다. 이같은 별장을 짓는데 청나라 해군 확장을 위한 군자금 3,000만냥(천문학적인 돈)을 유용하는 실정으로 청나라의 멸망을 더 빨리 재촉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같은 대표적인 고대 중국의 문화유적을 보고 진나라와 청나라의 영웅이라는 진시황과 서태후의 무모한 장성건축과 공원 건설은 백성을 기아나 토탄에 빠뜨리게 하지 않았나 생각하니 진정 국가의 지도자는 국민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링컨 대통령의 정치철학이 새삼스레 떠오르는구나. 우리는 조국 대한민국의 맡은 분야에서도 국가와 민족이 필요로 하는 큰 재목 역할을 할 수 있는 떳떳하고 노력하는 국민이 되길 다짐하여 본다.
우리는 북경을 뒤로하고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장백산) 천지에 오르기를 다짐하고, 천지에 올라섰다. 한 민족의 정기 서린 영산 백두천지는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인 지주의 몫을 단단히 한 곳이라 생각된다. 길림성 안도현에 위치한 백두산(장백산.고구려 옛땅임 : 북간도)은 우리의 접근을 막는 듯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초대소에서 찝차로 20분 달려 천지 문턱(약 68m정도)에서 하차하여 혼자서 오르기 힘드는 광풍과 모래바람 세찬 빗줄기를 뚫고 나는 천지의 천문봉에 오르니 3~5분 정도마다 천지를 반쪽 쯤 여는 장관의 연출이 우리의 끈질긴 민족혼 앞에 하늘이 굴복하여 열어 보여주는 듯 하여 뭉클한 감동을 맛 보았다. 숱한 산과 바다를 섭렵하여 보았으나 지금 이 순간처럼 진한 감동을 느끼기는 처음이다. 20분간의 찝차로 오르는 좌우 양켠에는 끈질긴 민족의 혼처럼 형형 색색으로 피어있는 들국화 과의 인동초 꽃이 우리를 반겨주듯 천지는 남북통일이 되지 않는 반쪽만 우리에게 얼굴을 드러내는 듯 보여 주었다. 다음에는 꼭 하나된 조국의 국민으로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다.
한민족 영산인 백두산을 오른 후 우리 민족의 저항시인 윤동주님의 모교 대성중학(현재 용정중학)에 들러 님의 피끓는 열정과 민족혼에 깊은 감동을 받고 또한 짧은 삶의 스물아홉 나이의 님의 모습을 본 듯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구나. 여기의 님의 민족시를 적고 싶구나.
~~~저항시인 윤동주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나’의 서시를 적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헤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리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날- (41.11.20 윤동주)
시를 느끼고 읽음으로 나도 작은 애국자가 되어 이 교정에서 대한민국의 애국 시민임을 느끼고 돌아왔다.
우리의 국력을 키워 갈라진 반쪽을 이을 수 있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망되는구나 . 우리 다 같이 맡은 일에 열심히 하여 세계 최고의 장인이 되고, 자기분야의 제일인자가 되어 국력을 키워 갈라진 반쪽을 이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겠다는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구나. 우리 다함께 손에 손잡고 영을 넘어서릍 합창할 수 있는 날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자.
첫댓글 즐기고 추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