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VT1300CS 시승기
지난 겨울 국내에 출시되었던 VT1300CX는 혼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의외의 바이크였을 것이다. CX는 전형적인 차퍼스타일로 스티어링 헤드가 솟아있는 하이넥 스타일에 롱 로우 차체를 지닌 바이크였다. 대량생산을 하는 메이커가, 그것도 혼다가 이런 스타일의 바이크를 만들어 낸 것에 많은 사람들이 의아했다. 하지만 혼다는 어떤 메이커보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회사다. 얼마 전에는 DTC라는 듀얼트랜스미션을 만들어 VFR1200F를 출시했고, HFT라는 오토트랜스미션의 DN-01을 발매했다. 하지만 이건 첨단 기술을 발표한 것이었다. 차퍼는 망치로 두들기며 수작업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혼다가 만들어낸 차퍼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차퍼는 자르다는 뜻을 가진 Chop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 ‘어떤 바이크다’라고 정의하기가 어려울 만큼 다양한 군소 메이커들이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바이크다. 또 유행에 따라 스타일이 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크루저 스타일의 바이크를 이용해서 잘라내고 붙인다. 그러다보니 퍼포먼스나 운동성능 같은 것 보다는 보이기 위한, 자신의 개성을 뽐내기 위한 외관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VT1300CX 출시 얼마 후, VT1300의 새로운 모델들이 발표되었다. 수랭 V트윈엔진이나 듀얼 머플러, 샤프트 드라이브 시스템, ABS브레이크 같은 기능적인 면은 동일하다. 하지만 휠 사이즈, 핸들, 펜더와 프레임을 달리해 각각의 개성 있는 시리즈가 된 것. 로우넥 프레임에 광폭 타이어와 딥 펜더를 장착한 레트로 모델인 CR, 스포티한 롱 로우 차체의 도시형 모델인 CS가 전형적인 차퍼인 CX와 함께 VT1300시리즈를 이룬다. 그중 오늘 시승한 바이크는 가장 스포티한 컨셉을 가진 VT1300CS이다.
역시 혼다답다. 혼다의 자동차나 바이크나 그 이름이 주는 신뢰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게 되더라도 실망을 주는 경우가 없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크루저 스타일을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사실 경험도 적다. 그럼에도 혼다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VT1300CS는 VT시리즈의 도심형 콘셉트이다. VT는 혼다 크루저들의 코드네임으로 쉐도우를 비롯한 많은 크루저들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쉐도우 시리즈는 바이크 입문자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었고 2006년 혼다코리아의 최다 판매기종이기도 했다. 재패니즈크루저라고 부르는 일본 4대 메이커만 만들어낸 크루저들은 이젠 비교할 대상이 마땅치 않을 시점까지 발전했다. 이제 어떤 것이 오리지널이라는 지루한 논쟁이나 자존심은 필요 없다. 그냥 하나의 장르로써 완성도를 보면 그만이다.
크루저의 특징인 V트윈 엔진이 만들어내는 고동감은 오리지널이라는 바이크마저도 인젝션으로 바뀌며 예전의 필링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 필링이라는 것은 무척이나 주관적이다. 카뷰레터 시절의 바이크가 진짜였다고는 하지만 그 모델을 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인젝션의 고동감에도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낮게 깔린 시트가 어색했지만 시동을 걸자 온 몸으로 퍼지는 엔진 고동 때문에 어디든지 달리고픈 충동이 일어난다. 클러치를 잡고 기어를 변경했다. 클러치 레버는 버릇대로 두 손가락으로 조작해도 어려움 없다. 기어가 들어가는 느낌은 단단하다. 인치 그립은 내 손이 조금 작은 편이라 두텁게 느껴졌지만 끝까지 감으며 클러치를 놓자 샤프트 드라이브가 170사이즈의 리어 휠을 간단하게 움직이게 한다.
차례로 기어를 올려 5단으로 고정하고 스로틀 끝까지 당기며 크루징을 시작했다. 시속 120km 정도에 다다르자 고동감과 속도감이 최고조에 다다른다. 어차피 출력보다는 엔진 필링과 크루징을 즐기는 바이크라 더 이상 속도를 올려볼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어디든 가도 즐거울 것 같다.
예상외로 주행풍이 괴롭지 않다. 바람을 안고 달리는 포지션이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엉덩이를 받쳐주는 시트가 푹신해 몸이 뒤로 밀리지 않아 좋다. 앞으로 뻗은 스탭이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익숙해진다. 아래쪽에서 울려오는 엔진의 외침에 비로써 알게 되었다. 크루저를 타는 이유를 말이다.
심장을 울리는 고동감과 듬직하게 움직이는 차체는 높은 속도가 아니라도 충분히 즐겁다. 포지션도 편하고 다루기도 쉽다. 원래 크루저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다. 특히 이런 빅 트윈은 무거운 클러치에 제멋대로인 핸들링에 서너 박자 느린 엔진반응으로 시내에서 폼 잡을 때 말고는 쓸데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CS를 타고 있는 동안은 이제 크루저라는 사실보다는 ‘역시 바이크는 재밌구나’라는 생각뿐이다.
CS는 아니, VT시리즈는 모두 타기 쉽다. 차퍼나, 크루저의 전통적인 외관을 충분히 따르고 있지만 그들에게 부족했던 주행능력까지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다. 급 커브에선 그다지 즐겁지 않지만 다른 크루저였다면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문득 수랭식인가를 확인했다. 프레임 사이에 숨겨진 라디에이터를 확인하고 나서야 수랭인것을 믿을 수 있었다. 공랭의 필링도 좋지만 잘 다듬어진 수랭식이 출력이나, 내구성 등 모든 면에서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수랭식이 아니면 엄격한 환경규제를 통과하기 어렵다. 하지만 디자인상으론 공랭식이 더 매력적이다. 이점에선 적당히 날이 선 냉각핀과 효율적인 라디에이터가 둘 다 있어 만족스럽다.
수랭식 협각 52도의 V트윈 엔진은 배기량 1312cc를 자랑한다. 혼다의 인젝션 방식인 PGM-FI로 최적의 혼합비를 엔진에 공급한다. 2750rpm에서 나오는 10.5kgm의 토크는 클러치를 연결시키는 순간 모든 힘이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때문에 어떤 회전수에서도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 출력은 4250rpm에서 54마력이다. 크루저에게는 충분한 출력이다.
컴바인 ABS 브레이크는 크고 무겁고 힘센 CS를 잘 멈추고 안전하기까지 하다는 장점까지 추가시켜 준다. 프론트에 335mm, 리어에 296mm 디스크 브레이크는 연동 기능과 ABS시스템으로 스포츠 바이크 못지않은 풀 브레이킹도 가능하다.
리어 서스펜션이 외부로 드러나 있지 않은 하드 테일이지만 모노 서스펜션의 승차감은 매우 좋다. 초기하중도 조절이 가능하고 감쇄력 조정기능이 있어 체중에 맞게 조절이 가능하다. 노면이 안 좋은 곳을 달리다보면 리어가 조금 튀는 느낌이 있지만 1805mm의 긴 휠베이스다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빨리 달리고 코너에서 단단하게 잡아줘야 할 바이크가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
VT시리즈는 전형적인 혼다가 만든 바이크다. 친절한 혼다는 커스텀 바이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커스텀 베이스를 선물한 셈이다. 디자인과 성능,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다면 VT시리즈를 통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순정 그대로 탈 것이다. 커스텀의 끝은 순정이다. 풀 튜닝 했다가 순정으로 되돌렸다고 치면 비용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시간도 절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헤드라이트는 날렵하고 긴 탄두형상으로 프론트 포크 사이에 위치하며 뒤로 솟아 내려간 핸들 바가 넉넉한 포지션을 만들어낸다.
6포트 캘리퍼에 싱글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은 전후 연동에 ABS가 장착되어 있다. 크루저치고 프론트 브레이크만으로 제동을 할 수 있는 기종은 드물다.
로우넥 프레임은 헤드라이트와 연료탱크를 정렬시켜준다. 외부로 쉽게 드러나 있는 프레임이 커스텀 바이크라는 것을 나타내며 차후 오너의 취향을 배려해 여지를 남겨두었다.
넓은 핸들 바는 장거리 크루징에 유용하며 넓은 폭을 지닌 타입이다. 순정상태로도 부족함 없지만 순정 상태로 타는 오너는 없을 것 같다.
단촐한 계기반에는 km와 mph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오일점검, 수온, 연료 잔량 등의 표시와 ABS작동 램프가 돋보인다.
혼다가 전부터 VT시리즈에 적용하고 있는 핸들 부분. 크롬으로 통일을 하긴 했으나 어차피 이대로 탈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신설계 파츠를 넣을 필요 없었을 것이다.
차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V트윈엔진은 이그니션 키와 미션케이스, 샤프트 커버와 함께 크롬 도금되어 당당한 자태를 뽐낸다.
에어필터 커버와 매니폴더 마저 크롬으로 무장했다. 거울처럼 반짝거리게 유지하려고 타는 시간보다 세차하는 시간이 더 많이 든다는 크루저 라이더들이 이해가 간다.
앞으로 뻗는 포워드 스탭으로 한국사양은 북미사양에 비해 뒤쪽으로 20mm 이동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 평균 신장이면 부족함 없을 것.
얼핏 보면 공랭식 같지만 프레임 사이에 숨어있는 라디에이터를 발견할 수 있다. 공랭의 필링을 고집하는 사람이라도 눈을 가리고 있다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수랭 V트윈도 좋은 필링을 가지고 있다.
170사이즈의 타이어는 경쾌한 운동성을 보여준다. 샤프트 드라이브는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되어 있다. 요즘 보기 드문 헬멧 고리가 친절하게 달려있다.
4포트 복동식 리어 캘리퍼는 CS의 주된 제동력을 책임지고 있다. 전후 연동으로 리어만 잡아도 안정적인 제동이 가능하고 한계점이 높은 ABS브레이크는 강력한 주행을 가능하게 한다.
트윈머플러는 커스텀 머플러가 필요 없을 만큼 아름답고 충분한 소리를 내준다. 요즘 바이크답지 않게 발열도 적어 한여름에도 즐거울 수 있을 것이다.
일체형 시트로 탠덤용 스탭도 마련되어 있지만 타고 싶지는 않다. 이것도 백레스트를 달거나 혹은 1인용 시트로 바뀌게 될 파츠.
휠 중간에 멈추는 리어 펜더와 테일램프는 귀여운 인상이다. 샤브레는 CS의 닉네임.
제원표
엔진형식수랭 52도 V트윈 OHC 3밸브
배기량1312cc
보어×스트로크89.5×104.3(mm)
압축비9.2:1
최고출력54ps/4250rpm
최대토크40.5kgm/2750rpm
변속기5단 리턴
전장×전폭×전고2580×785×1100(mm)
휠베이스1805mm
시트고638mm
타이어사이즈프론트 90/90-21
리어170/80-15
중량310kg
연료탱크12.8ℓ
가격17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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