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뚝섬에 사무실이 있던 공공연맹 시절에 <붕어사랑>이라는 낚시 동호회를 만든 적이 있다. 작은 현수막도 있었다. 낚시를 좋아 하는 사람들까지 몇 번인가 출조도 했었다. 그러고 보면 살면 살수록 바빠지기만 하고, 여유는 더 없어진다.
낚시를 하게 되면 물 밖에 있는 내가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찌’(fishing float)다. 일정한 부력이 있어 뜨게 되어 있는 것으로 종류도 다양하다.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낚시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지인들이 가끔 자신이 만든 찌를 주기도 한다. 내겐 그만큼 귀중한 선물은 없다.
다양한 종류의 찌 모양
사실 낚시의 즐거움은 준비하는 데 있다. 찌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중력을 맞춰야 한다. 납을 달고, 찌맞춤용 플라스틱 통에 빠뜨려 무중력 상태가 될 때까지 조금씩 납을 깎아낸다. 사람에 따라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해 낚싯바늘까지 달아서 맞추는 사람들도 있다. 완벽한 균형이 이뤄지면 물 밖에 찌톱만 간신히 보인다. 그 정도면 됐다. 말이 그렇지 어떤 경우엔 너무 깎아서 물 위로 한참이나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그 납은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낚시는 과학이기 때문이다.
사실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낚싯대, 줄, 바늘, 찌, 미끼 등이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어긋나면 아예 못 잡거나 잡다가 놓치기 일쑤다. 낚싯대도 물고기의 저항을 이길 만큼 충분한 탄력이 있어야 하고, 바늘도 적당한 크기여야 하고, 낚싯줄도 중간에 흠이 없고 장력(tension)도 적당해야 한다. 낚싯줄은 숫자가 클수록 더 굵다.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일이다. 인간과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를 만나는 가슴 떨리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조화(harmony)를 갖추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우리 몸도 조화가 무너지면 아프게 된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딘가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삶에서도 노동과 휴식, 집중과 이완 등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하다. 그 어느 하나에만 몰입하게 되면 언젠가 터지게 된다. 스트레스는 거기서부터 온다.
직업이 노동운동이라는 특성상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많은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이 생기지만 간혹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주말엔 거의 매번 집회가 있다. 삶을 돌아보기는커녕 유지하기도 힘들 때도 많다. 경주마처럼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앞으로 내달리기 일쑤다. 낚시 입으로 백번 얘기를 하면 한번 갈 정도밖에 짬이 난다. 그래도 그게 필요하다.
낚시는 삶의 일정한 조화와 균형을 준다. 지난 2002년 철도, 가스, 발전노조의 민영화 반대를 위한 파업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발전노조의 파업은 38일 동안 진행되었다. 당시 조직팀장을 맡았던 나로서는 지금도 할 말이 매우 많이 남아있는 투쟁이기도 하다. 아무튼 마지막 잘못된 협상으로 인해 민주노총과 당시 공공연맹 지도부 모두가 사퇴하는 큰 파동이 있었다.
파업평가를 위한 중앙집행위가 있었고,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날선 얘기들이 많았다. 때로는 말이 검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에 박힐 때가 있다. 회의 후 뒤풀이가 있었지만 나는 낚시터로 향했다. 아마도 술자리에 있었더라면 뭔가 사고를 크게 쳤을 것이다. 혼자 낚시를 하고, 음악을 듣고, 술을 한 잔 하면서 다시 평온과 항상심(恒常心)을 찾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분전환이다. 기술이나 이론 같은 것은 그 다음이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낚시왕 강바다>에서 초보자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왜 낚시를 하는 걸까?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물고기가 신호를 보내는 거구나. 만나려고. 아주 수줍게 쫑긋하며 찌의 끝만 보여주기도 하고, 옆으로 흔들어도 보고, 밑으로 가라앉아 보기도 하고, 아주 수줍게 신호를 보낸다. 내가 다른 짓을 하면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잡히지 않는 신호를 반복한다. 그래서 긴장해야 하고, 넉넉해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엔 끝도 없다. “인생의 반(半)은 기다림이다” 딸들에게 무수히 반복한 얘기다.
<침묵연습> 2
그렇구나 돌아보니
시작하려다 그만둔 만남도
많고 많구나
올리다 만 찌처럼
네가 중간에 다른 선택을 했거나
내가 그게 최선이라고 착각했거나
하늘이 아직 때가 아니라고 했거나
스치고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만남 자체가
행복인 경우는 아주 드문 거구나
나를 만나기 위해 너는 너의 일을
너를 만나기 위해 나는 나의 일을
그렇게 엉키고 설켜
이런 만남을 만들었구나
달빛아래 조용히
꽃잎아래 살포시
<마정 저수지> https://www.mjjf.co.kr
※ 신월지를 다니다가 알게 된 중대형 저수지. 관리를 잘해서 식사도 가능하고, 맛있다. 화장실도 깨끗하고 해보지는 않았지만 샤워실도 있다. 피라미의 성화가 적고, 초보자도 즐겁게 낚시를 할 수 있다. 좌대가 너무 많아서 흠이긴 하지만 경치도 그런대로 좋은 편이다. 크기는 신월지보다 약 4배 정도 큰 8만여평이다.
주소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적산읍 마정리 314번지
전화 : 010-5433-8680
좌대 : 수상 좌대 종류별로 매우 다양함.
입어료 : 2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