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갈수록 우리는 수북이 쌓여가는 낙엽 위를 걸으면서 ’바스락, 바스락’ 소리에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프랑스 작가 레미 드 구르몽은 1892년에 낙엽이라는 시에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문구로 낙엽을 통해 사랑의 낭만적 정서를 표현했다.
가을의 낭만을 상징하는 낙엽이지만 이번 가을, 낙엽은 사람들에게 다소 원망의 대상이 됐다. 11월 12일 저녁부터 시간당 50mm 넘는 폭우로 인해 곳곳에서 침수 신고가 잇따랐고 하마터면 차량이 침수될 뻔하기도 했다. 단시간에 내린 많은 양의 비도 문제였지만 길가에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배수 불량 원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도시는 가로수 아래가 축축한 토양으로 덮여있지 않고 주로 콘크리트로 된 불투수층으로 돼있기 때문에, 낙엽이 배수구로 몰려 또 다른 불투수층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기후 변화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가을 폭우와 낙엽이 만들어낸 새로운 피해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양버즘나무의 은행나무의 잎이 쌓이는 사철나무
낙엽의 양은 한 해에 어느 정도나 될까? 상수리나무숲(흉고직경 23cm, 헥타르(ha)당 2800그루 기준)의 낙엽은 1년에 ㎡당 567~697g(건중량 기준) 정도인데 9월에서 11월 사이의 낙엽생산량이 397~511g 정도나 된다. 한 그루 나무가 차지하는 공간을 10㎡라고 가정하면 가을에 나무 한 그루는 약 4~5kg의 낙엽을 떨어뜨리고 2020년 기준 국내 총 가로수는 944만 4829본이므로, 총 3만7800~4만7200톤 낙엽이 생겨난 셈이므로, 적지 않은 양이다. 따라서 많은 양의 낙엽을 처리하는 인력과 비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가능한 자연의 숲과 같이 땅에서 선순환하는 과정으로 처리하는 것이 적절하다.
양버즘나무의 낙엽을 받는 사철나무와 남천
낙엽은 어떤 성분을 가지고 있을까? 낙엽은 나무에 질소,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영양분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나무의 생장에 필수적이다. 낙엽이 어느 정도나 지면에서 순환되고 생태계 건전성을 유지하는지는 나무 종류별, 장소별로 낙엽분해율과 토양미생물, 토양동물을 측정하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생존 이외에도 나무는 여름 내내 인간에게 그늘을 내주고,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물질을 걸러주는 등 인간사회에서 이로운 역할도 담당해왔다.
철쭉 안에 만든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이뿐만 아니라 낙엽은 생물들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새들은 가을과 겨울철에 주로 지면과 낙엽에서 먹이를 찾기 때문에 겨울잠을 자지 않는 새들에게 낙엽은 중요한 먹이 공급처가 된다. 하지만 도시 내 건조한 낙엽은 산불 위험이 있어 미리 제거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새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그래도 가로수 아래에 남천, 사철나무 등 낮은키나무는 낙엽을 잘 받아서 가지 사이에 숨겨두기 때문에 새들은 종종 낮은키나무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다. 수림대처럼 만든 낮은키나무 사이에서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를 발견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도시에서 인간, 동물, 그리고 나무가 서로에게 이롭게 공존하는 방법은 뭘까? 옛날 사찰에서는 낙엽과 나무를 연료로 쓸 때 바로 쓰지 않고 며칠 동안 말리면서 다양한 생물이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가을 폭우에 대비해 침수 위험이 높은 곳은 미리 낙엽을 관리해 도시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새를 위해 낙엽을 받아주는 낮은키나무를 심고 뭇 생물의 안식을 위해 도시 동물을 위한 세심한 배려도 필요할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야기처럼 다 내어주고도 내년 봄에 다시 또 내어줄 마음으로 추운 겨울을 견뎌내는 나목을 보며 고마운 마음을 전해보자.
출처 : 아파트관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