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심수행장 풀이
한국 불교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스님중의 한분인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은 2004년 12월 열반하신
숭산 스님께서 스님이 되기 위하여 공부할 적에도 매일 읽었고,
스님이 된 후에도 항상 읽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근현대 한국 불교를 중흥하신 경허 대선사께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도 늘 보았다는 훌륭한 명문장으로 손색이 없는 글입니다.
오장 큰스님께서 1,000독을 하라고 권유한 글이기도 합니다.
발심수행장 뜻 풀이
모든 부처님께서 적멸궁(寂滅宮)을 장엄하게 꾸미신 것은
오랜 세월동안 욕심을 버리고 수행하신 까닭이고,
수많은 중생들이 불타는 집(火宅)에서 윤회하는 고통을 받는 것은
한량없는 세월동안 탐욕을 버리지 못한 까닭이다.
막는 사람이 없는 데도 천당에 가는 이가 적은 것은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의 번뇌를
재산으로 삼기 때문이고, 유혹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악도에 들어가는 이가 많은 것은
네 가지 뱀(몸을 구성하는 흙, 물, 불, 바람의 4요소)과
다섯 가지 욕심(재산, 여색, 명예, 음식, 수면)을
망령된 마음의 보배로 삼은 까닭이다.
그 누구인들 산속에 들어가 도 닦을 생각이 없으랴마는,
저마다 그렇게 하지 못함은 애욕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산에 들어가 마음을 닦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착한 일하기를 버리지 말라.
자신의 욕심과 쾌락을 버리면 성현처럼 공경 받을 것이고,
하기 어려운 일을 참고 이기면 부처님과 같이 존경 받을 것이다.
재물을 아끼고 탐하는 이는 마귀의 무리이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베푸는 이는 부처님의 제자이다.
높은 산 험한 바위는 지혜로운 이가 거처할 곳이고,
푸른 소나무 들어선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가 살아갈 곳이다.
주리면 나무열매로 창자를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타는 마음을 풀어라. 맛있는 음식을 먹여 길러 봐도
이 몸은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비단 옷으로 감싸 지키고 보호해 봐도 목숨은 마침내 끊어지고 만다.
메아리 울리는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 울어 되는 기러기를 마음의 벗으로 삼으라.
예배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불을 생각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질 듯, 하여도 먹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
백년이면 잠깐인데 어찌 아니 배우며,
일생이 얼마길 래 수행하지 않고 놀기만 하겠는가?
마음속의 애착을 여읜 것을 사문(沙門)이라 하고,
세상 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을 출가라 한다.
수행하는 이가 비단 옷을 입는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쓴 격이고,
도 닦는 사람이 애욕에 얽히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 것과 같은 격이다.
비록 재주와 지혜가 있더라도 쾌락의 유혹에 가까운
도시의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부처님께서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시고,
설사 도를 닦는 실천이 없더라도 산속에서 사는 사람은
모든 성현께서 이 사람에게 환희심을 내느니라.
비록 재주와 학문이 있더라도 계행(戒行)이 없는 이는
보배가 가득한 곳으로 인도해 주어도
따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과 같고,
부지런하지만 지혜가 없는 이는
동쪽으로 가고자 하면서 서쪽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과 같다.
슬기로운 사람이 하는 일은 쌀을 쪄서 밥을 짓는 것이고,
지혜없는 사람이 하는 일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이다.
밥을 먹어 주린 배를 달랠 줄은 누구나 다 알지만,
부처님 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알지 못한다.
계행과 지혜를 다함께 갖추면 수레에 두 바퀴가 있는 것과 같고,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것은
새에게 양쪽 날개가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주(施主)를 받고 축원하면서도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또한 보시한 시주에게 당연히 수치스럽지 않겠는가?
또한 공양을 받고 범패(梵唄)를 하더라도 그 깊은 이치를 알지 못하면
성현님께 당연히 죄스럽고 부끄럽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깨끗함과 더러움을 가리지 못하는 벌레를 싫어하듯이,
성인께서도 출가한 사문이
깨끗함과 더러움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세상일의 시끄러움을 버리고 높은 하늘나라에 올라가는 데는
청정한 계율이 좋은 사다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어기고서 남의 복밭(福田)이 된다는 것은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업고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죄도 벗지 못하고 어떻게 남의 죄를 풀어줄 수 있겠는가?
계행을 지키지 않고 어찌 다른 이들이 공양해 주는 것을 받을 수 있겠는가?
수행하지 않는 헛된 몸은 먹여 길러도 이익이 없고,
덧없는 뜬 목숨은 아껴도 보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용상(龍象)과 같은 큰스님이 되기 위해서는
능히 끝없는 고통을 참아야하고,
사자좌(獅子座)에 앉는 부처님이 되고 싶거든
오래도록 세상의 욕망과 쾌락을 등져야 한다.
수행자의 마음이 깨끗하면 여러 하늘이 하나같이 찬탄하지만,
도를 닦는 이가 여색을 생각하면 착한 신장도 그를 버리고 떠난다.
흙, 물, 불, 바람의 사대(四大)로 구성된 이 몸은
갑자기 무너져 버리는 것이다.
오늘도 저물어 저녁이 되고 아침 새벽이 곧 다가오리니,
세상의 욕망과 쾌락은 고통이 뒤따르는 것인데 어찌 탐할 것이며,
한 번 참으면 오래도록 즐거움이 되는데 어찌 도를 닦지 않는가?
도를 닦는 이가 탐욕을 내는 것은 수행자에게 수치스러운 행위요,
출가한 사문이 재물을 탐해 부자가 되려는 것 또한
군자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지 말라고 막는 일이 끝없이 많은데도 탐욕과 집착은 끊지 못하고,
다음다음하고 미루는 것은 끝이 없지만 애착하는 마음을 끊지 못한다.
이런 일 저런 일이 한없이 많은데 세상일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 꾀 저런 꾀 한없이 많은데 끊어버린 마음을 일으키지 못한다.
하루하루는 끝이 없는데 오늘 한 번만 한다는 생각에
악한 죄는 많아지고, 내일 내일하고 미루는 내일은 끝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는 날은 날마다 줄어만 든다.
금년이란 한 해는 다함이 없고 번뇌는 끝도 없이 지속된다.
내년 내년하고 미루는 내년은 끝이 없지만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지는 않는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하루가 지나가고,
하루 하루는 잠깐 흘러 어느새 보름 그믐 한 달이 되고,
한 달 한 달 지나가서 홀연히 한 해가 번쩍 오고,
한 해 두 해 바뀌어서 잠깐사이 죽음의 문턱에 이른다.
깨어진 수레는 굴러갈 수가 없고 사람도 늙으면 수행할 수 없으니,
눕고만 싶고 게으름만 부려지고
억지로 앉아보아도 어지러운 생각만 일어난다.
몇 생애를 닦지 않고 낮과 밤을 헛되이 세월만 보냈는데,
또다시 헛된 몸을 얼마나 살리려고 이 한 생을 수행하지 않겠는가?
이 몸은 반드시 끝마칠 날 있으리니,
죽어서 다시 받을 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찌 바쁘고 급하고, 또 바쁘고 급하지 않겠는가?
발심하여 수행하라!
출처: 사자산 원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