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래킹!
한국에서 직항 비행기를 타면 6시간 거리에 있는 네팔의 수도 카투만두, 그곳에서 다시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경비행기로는 한시간 거리다), 포카라
전세계 여행자들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위해 이 곳에 모여든다.
누구나 갈 수 있다.
난 직장생활 3년만에 더없이 부실해진 하체. 이틀만에 무릎이 고장나는 '저질체력'을 확인했다. 하지만 100여번의 '헬로우'와 '나마스떼', 10여차례의 '안녕하세요' 를 트래커들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안나푸르나의 거대한 흰벽과 마주할 수 있다.
그 시작은 페디였다.
<1일차>
페디 08:10 - 담푸스 10:45 - 포타나 12:10 (점심) - 데우랄리 14:15 - 톨카 15:25 - 란두룩 16:40
안나푸르나 트래킹의 기본적인 출발 지점은 포카라다. 페와 호수를 끼고 있는 이 작은 도시는 여행자들에게 그지없는 휴식을 주는 도시다. 이 곳에서 트래커들은 대부분 포터와 동행자들을 구해서 산으로 향하게 된다.
포카라에서 택시를 타고 페디로 향했다. 일반적으로 페디보다는 나야풀에서 시작하는 코스를 많이 잡는다.
페디에서 올라가는 길은 트래커들이 마음과 몸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바로 산으로 이끈다. 급경사의 길은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이들의 숨을 금방 턱까지 차게 만든다. 30분 정도 오르면, 급경사 대신 쉬어갈 수 있는 길이 나타난다. 첫 관문이다.
숨을 헐떡거리고 있을때, 한 네팔 청년이 우리와 함께 오르고 있었다. 그는 담푸스에 있는 학교의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는 쉬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이렇게 통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안나푸르나로 향하는 길은 촘롱으로 가기 전까진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의 길이었다.

<담푸스의 초등학교, 이곳에서 만난 교장선생님은 한국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도와주고 있다며, 사진까지 보여줬다. 작은 기부는 이들에게 희망이다>
담푸스에서 포타나로 가는 길은 매우 평온하다. 숲도 차분한 길로 우리를 이끌 뿐, 페디에서 첫 오를 때의 힘겨움은 없었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려면 허가(퍼밋)를 받아야 한다. 포카라의 ACAP에 가서 2000루피를 내면 안나푸르나 지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허가를 내준다. 이곳은 담푸스에서 만난 팀스(TIMS) 체크 포인트이다. 팀스는 퍼밋과 달리 트래커와 포터의 안전을 위한 일종의 증명서다. 퍼밋은 포타나에서 확인한다.>

<포타나에서 내려다본 운해>
첫날은 일종의 흥분 상태에서 길을 걸었다. 안나푸르나를 보러 간다는 설렘과 이국적인 풍경에 난 눈길을 뺐겼다.
하지만, 안나푸르나는 쉽사리 그 얼굴을 내보이지 않았다. 10월과 11월은 네팔의 건기로 하늘이 언제나 청명하지만, 우리가 트래킹을 시작하기 하루전부터 포카라 지역에는 이상하게 비가 내리고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란드룩에서 본 안나푸르나 사우스>
<2일차>
란드룩출발 08:00 - 뉴브릿지 09:30 - 지누단다 10:50 - 온천 - 지누단다 출발 14:10 - 촘롱 15:40
(란드룩에서 뉴브릿지까지 가는 길은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사진도 찍으며 천천히 갔다. 예전에 있던 다리가 떠내려가고 새 다리를 만들면서 뉴브릿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누단다는 보통 안나푸르나 트래킹에서 한번씩 거쳐가는 곳이다.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 뜨겁지는 않지만, 계곡 바로 옆에 있는 노천 온천은 매혹적이다.

<지누단다 핫스프링, 탕은 3개가 있다. 수영복을 준비해 가면 좋겠다. 오후에는 붐비니, 여유있게 즐기기 위해서는 오전에 가는 것도 좋다. 우리는 오전에 가서 커피도 타먹으며 '신선놀음'을 했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 위에 소지품을 내려놓고 들어가면 된다.>
온천 청소비 명목으로 입구에서 10루피 정도 내면 되겠다... 우리는 처음에 도네이션(기부)이라고 써놔서, 흡족한 마음에 100루피나 냈다... ㅡㅜ
온천욕을 끝낸 뒤 우리는 촘롱으로 향했다.
지누단다에서 촘롱으로 올라가는 길은 거의 90도의 절벽을 올라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주로 지누단다로 오는 길은 촘롱에서 내려오는 길로 잡지, 우리처럼 올라가지는 않는다. 길에서 만난 한국인 산악회 아저씨는 '얼마나 가야되요' 라는 물음에 '에이, 알려고 하지마'라고 답해주셨다... ㅡㅜ
고생 끝의 낙이었을까?
촐롱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마차푸차레를 볼 수 있었다..

<촘롱 롯지에서, 나쁜 기상 탓에 구름 사이로 살짝 모습을 드러낸 마차푸차레>
위키백과를 보면, 마차푸차레는 히말라야 유일의 미등정 산으로도 유명하다. 1957년 지미 로버트가 이끄는 영국등반대가 정상 50m 앞까지는 등반한 적은 있으나, 네팔인들이 신성시하는 산으로 등반이 금지되어 있다.
촘롱부터는 미네랄워터를 살 수 없다. 이곳부터 플라스틱병은 사용할 수 없는 룰이 있다고 한다. 또 모든 물품을 사람이 직접 날라야 하는 이 곳에서 물까지 공수하는 것은 무리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곳 부터는 보일드 필터 워터라고 해서 끓이고 정수한 물을 1리터씩 판다.
<3일차>
촘롱 출발 08:10 - 시누와 10:50 - 시누와 출발 11:30 - 뱀부 13:20 - 뱀부 출발 14:10 - 도반 15:10
3일차에 무릎이 고장나 버렸다.
서울의 고른 길만 다닌 나에게 안나푸르나 산의 수없이 많은 계단과 가파른 경사는 무리였을까? 왼쪽 무릎 뒷부분은 걸을때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급한대로 촘롱의 한 가게에서 무릎밴드를 샀다.
덕분에 이날은 조금만 걸으며 쉴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잠도 매번 설쳤다...
롯지(숙소)에서 잘 때마다 나와 동행했던 형은 꿈을 꿨다. 형은 '첫사랑'이 3년만에 느닷없이 나왔다고 했다. 나도 잊고 지내던 '옛 친구'가 꿈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군대 있을 때 행군을 다시 하기도 했고, 기자로서 시위현장에 서있던 모습도 나타났다...
우리는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문명의 기본인 전기가 이제 더이상 들어오지 않는 곳이다.
계속되던 꿈은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고산병 증세인 어지럼증에 시달린 뒤에야 더이상 꾸지 않게 됐다.....